457화 부주의 마지막
"이건……."
백발노인은 막으려고 했다가 칼을 보자 충격을 받았다.
"베거라!"
진남이 큰소리로 외치자 그의 온몸의 의지와 전혈, 그리고 힘이 전부 폭발했다.
그의 왼팔은 단천도를 들고 망설이지 않고 야라 족쇄를 힘껏 내리쳤다.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단천도는 무언가를 느낀 것처럼 웅 하는 소리를 내더니 엄청난 도기를 뿜었다.
도기는 실체가 없었고 그림자만이 있었다.
야라 족쇄는 별안간 위기를 느꼈는지 사악한 검은 빛을 활짝 뿜었다.
그러나 단천도 앞에서 모든 것들은 헛수고였다.
쿵-!
단천도는 순식간에 야라 족쇄를 반으로 갈랐다.
수많은 검은색 빛이 천지에 뿌려졌다.
"성공했다!"
진남은 표정이 밝아졌다.
단천도는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웅-!
백발노인의 등 뒤에 보이던 무도의 나무는 금제가 사라지자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무도의 힘이 움직이더니 노인의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노인의 경지가 쑥쑥 올라갔다.
짧은 시간에 백발노인은 반보 무조 경지로 회복되었다.
"성, 성공했어?"
백발노인은 몸속의 강한 힘을 느끼며 두 눈이 빛났다.
'나는 온갖 수단으로 야라 족쇄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런데 칼 한 방에 부서지다니?'
"진남! 대단하다!"
묘묘 공주는 기뻐서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녀는 저도 몰래 진남을 안고 그의 목에 입을 맞췄다.
"고, 공주……."
진남의 한 방은 쉬워 보였지만 사실은 엄청난 힘을 소모했다.
그런 상황에서 공주가 안기자 그는 몸이 떨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하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정말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백발노인은 정신을 차리고 호탕하게 웃었다.
"딸아, 걱정 말거라! 이제 경지를 조금 회복했으니 너를 반드시 살릴 거다. 너는 네 꿈을 좇아가거라!"
부주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진남!"
백발노인은 심호흡으로 감정을 추스르더니 눈에 빛을 뿜으며 말했다.
"네 칼이 전설 속의 단천도가 맞느냐?"
"맞습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천도……, 정말 단천도라니. 예전에 온 대륙의 강자들이 그것을 얻으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그런데 네가 가지게 될 줄이야! 천기 전승도 네가 가져갔구나……."
백발노인은 중얼거렸다.
그는 동주에 이런 절세 인재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잠시 후, 백발노인은 표정이 진지해졌다.
"진남, 그 사람이 나를 공격한 것은 이것 때문일 것이다. 목목을 구해 준 은혜를 갚을 길이 없으니 네게 이걸 주마."
백발노인이 손을 뒤집으니 금인이 나타났다.
"네? 그게 무슨……."
진남은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금인을 보는 순간 심신이 흔들렸다.
금인은 아무런 특색이 없고 기운마저 없었다.
그러나 금인의 깊숙한 곳에 식해에 있는 구리거울과 똑같은 기운이 있었다.
"……부주, 고맙습니다."
진남은 사양하지 않고 금인을 저장 주머니에 넣었다.
이 일이 지나가면 자세히 알아볼 작정이었다.
"내 경지는 이미 반보 무조로 회복되었다. 이제 너희 셋을 전송할 수 있다.
이 영패를 가지고 있거라.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 영패로 중주에 가서 소요검조를 찾거라. 그가 너희를 도와줄 것이다!"
백발노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남에게 영패를 건넸다.
진남은 영패를 받고는 얼떨떨했다.
'부주가 다친 것이 소요검조 때문이라며?'
그러나 그는 더 묻지 않았다.
부주가 그런 말을 하는 건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공주, 부끄러운 부탁이 있소. 부디 우리 목목이를 돌봐주시오……."
백발노인은 진남과 묘묘 공주를 번갈아 보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선배님, 걱정 마십시오!"
진남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남, 그럼 잘 부탁한다."
백발노인은 한시름 놓았다.
그는 돌아서서 목목의 얼굴을 눈에 담듯이 쳐다봤다.
아버지로서 마지막으로 딸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진남과 묘묘 공주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둘은 무언가 느꼈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은 조금씩 흘렀다.
정원 밖에서의 소란은 계속되었다.
금색 나뭇잎 제기는 이미 부서졌다.
목곤 등은 제기를 움직여 신위를 풍기며 정원의 금제를 공격했다.
정원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일 주 향의 시간이 지났다.
쿵-!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제기의 공격에 정원의 금제가 깨져 하늘에는 광점이 가득 찼다.
백발노인, 진남, 묘묘 공주 그리고 목목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감탱이! 오늘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시오! 모든 사람들은 내 명령을 들으라, 탕불진(蕩佛陣)을 만들어라!"
목곤은 호통을 치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다섯 장로, 세 무성 강자가 그의 뒤를 따랐다.
목곤의 성자의 힘이 서서히 퍼져 금빛 무늬로 변하여 허공에서 떠다녔다.
목곤은 자신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대진을 형성했다.
방원 십 리의 허공이 전부 금제에 갇혔다.
파멸의 기운이 점점 퍼졌다.
이 대진이라면 무조 경지라도 조심해야 할 것이었다.
"묘묘 공주, 그리고 진남……."
목곤은 하늘에서 진남과 묘묘 공주를 보더니 눈에 흥분이 스쳤다.
"목곤, 자네가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소?"
백발노인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성큼 나서더니 하늘을 찌를 듯한 기운을 풍겼다.
"하하하, 영감탱이! 수작 작작 부리시오! 조금 전에 속아줬더니 또 속을 것 같소?"
목곤은 크게 웃었다.
그때 백발노인은 몸을 날려 주먹으로 대진을 힘껏 내리쳤다.
대진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아니……!"
목곤과 다른 장로들은 안색이 변했다.
'부주는 무성 경지 정상급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이 대진을 흔들 수 있지?"
"이럴 수가! 경지가 반보 무조로 회복되었어?"
목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야라 족쇄를 파괴한 건가?'
"하하하! 예상 못 했소?"
백발노인은 호탕하게 웃으며 엄청난 기운으로 권법을 펼쳤다.
연거푸 날아오는 주먹에 대진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그는 비록 반보 무조 경지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력은 그보다 더 높았다.
목곤과 다른 장로들은 표정이 구겨졌다.
그들은 일이 이렇게 될 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제 그들이 백발노인을 죽이려면 죽이는 건 훨씬 어려워졌다.
하지만 백발노인과 진남을 놓친다면 결과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다시 돌아와 복수할 게 분명했다.
"내가 자네를 얕잡아봤네! 하지만 반보 무조 경지가 된들 뭐 하오? 자네는 오늘 죽음을 면치 못할 걸세! 대인, 나와주십시오!"
목곤은 영패를 꺼내 들며 외치더니 영패를 부쉈다.
그는 스스로 이 일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정원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진남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부주가 전에 한 말들에서 그는 목곤의 배후에 다른 누군가가 계략을 짜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배후가 드디어 나타나는 건가?'
백발노인도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쳐들었다.
쿵-!
그때 공연성의 하늘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지더니 허공이 무너지고 부서졌다.
그 틈 사이로 그림자가 천천히 나타났다.
그는 무조의 기운을 풍겼다.
"장로를 뵙습니다."
목곤 일행은 얼른 공수하고 인사를 했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목풍사도 얼른 인사를 했다.
허공을 넘어서 온 사람은 무량산의 태상 장로이자 목풍사의 스승인 비악무조였다.
이 모든 일은 그가 뒤에서 꾸미고 지시한 것이었다.
진남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는 일이 이 정도로 번질 줄 몰랐다.
'무조…….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영감탱이도 상대하지 못하다니! 굳이 내가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면서 나타나야 하오?"
비악무조는 허공에서 목곤 등을 내려다보며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목곤 일행은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비악! 역시 자네였구먼. 자네 목숨을 내가 구해줬다는 걸 잊었소?"
백발노인은 대진 안에서 고개를 들더니 무거운 표정으로 호통을 쳤다.
"그딴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시오! 이 세계에서는 이익이 최우선이오! 보물을 계속 내놓지 않으니 오늘 자네를 죽이겠소!"
비악무조는 차가운 시선으로 한치도 망설이지 않고 무조의 힘을 전부 드러냈다.
쿵-!
커다란 손바닥이 하늘에서 나타나더니 엄청난 기세로 힘껏 내리쳤다.
손바닥 앞에서 사람들은 개미처럼 작게 느껴졌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허허, 이익이 최우선이라! 내가 눈이 삐어서 자네를 구해줬소! 진남, 명심하거라, 목목은 네가 잘 돌봐야 한다!"
백발노인이 날아오르며 큰소리로 외쳤다.
"부주……."
진남과 묘묘 공주는 안색이 변했다.
순간, 백발노인의 등 뒤로 무도의 나무가 떠 올랐다.
무도의 나무가 산산조각이 나더니 백발노인이 평생 배운 무도 기운과 함께 목부를 감쌌다.
천지에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미쳤소? 스스로 무도의 나무를 폭발시키다니!"
비악무조는 안색이 변했다.
그는 무조가 되긴 했지만 동주로 오면서 큰 대가를 치르는 바람에 전력이 평소의 삼 할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목곤 등 장로들은 그 말을 듣자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미 폐인이라 아무런 미련이 없소. 하니, 오늘 자네들과 함께 죽으려고 하오!"
백발노인은 공연도의 깊숙한 곳을 향해 신념을 전한 후 행동했다.
무도의 나무가 전부 찢어져 무도 기운을 전부 드러냈다.
"이런!"
비악무조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부주는 제술로 목곤 등을 전부 가두었다.
쿵-!
위기일발의 순간, 공연도의 깊은 곳에서 오래된 존재가 깨어났다.
그것은 깊은 곳에서부터 빛으로 된 거대한 손을 뻗어 진남, 묘묘 공주, 목목 셋을 잡더니 허공에 힘껏 던졌다.
반쯤 올라갔을 때 신비한 힘이 펼쳐져 그들을 감싸더니 허공을 찢고 그곳을 떠났다.
거대한 손은 공연도의 도영(島靈)이었다.
"……잘 가거라."
백발노인은 떠나는 셋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육체가 별안간 터졌다.
그가 평생 배운 무예와 평생 쌓은 의지가 순간 가장 센 기세를 내뿜었다.
쾅-!
공연성 사람들은 이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목부에서 엄청난 불꽃이 태양처럼 솟아올라 목부 절반을 감싸 소멸해버렸다.
공연도의 깊숙한 곳에서 처량하고 구슬픈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부 부주가 사망했다.
* * *
끝없는 바다에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었다.
허공이 갑자기 찢어지고 세 사람이 떨어졌다.
진남, 묘묘 공주 그리고 목목이었다.
진남은 손가락을 튕겨 존자의 힘을 하나 뿜어 목목을 등 뒤에 묶었다.
"부주가……."
공주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였다.
진남은 침묵했다.
처음부터 부주는 비악무조가 이 모든 것을 꾸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폭하고 그들을 내보낸 것이다.
"나는 아직도 실력이 한참이나 부족해!"
진남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 목부 행에서 그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가 했던 건 부주를 위해 야라 족쇄를 풀어준 것뿐이었다.
"부주, 걱정 마십시오. 목목은 제가 잘 돌보겠습니다."
진남은 심호흡하고 목목을 바라보았다.
깊은 잠에 빠진 그녀는 문득 무언가 느꼈는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공주, 움직여야 해!"
진남은 고개를 흔들며 감정을 추슬렀다.
지금은 감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영패를 들고 분천황제와 다른 거물들에게 신념을 전한 후 묘묘 공주를 데리고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