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화 능운무제
"왜 그냥 보내줬어?"
용호가 가자 강벽난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 죽일까? 폐물로 만들어버릴까?"
진남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배신을 당했다.
한데, 자신을 배신한 사람이 형제였다.
그는 무척 화가 났다. 그러나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예전에 함께 싸웠던 세월이 떠올라 진남은 용호를 공격할 수 없었다.
이렇게 각자 갈 길을 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네 말도 일리가 있어. 그러나 명심하거라. 이런 일로 발목 잡히지 말거라. 너는 중주로 가야 한다."
강벽난이 말했다.
"나는 오늘 중주로 떠나겠다."
"너와 연합할 수 있어서 기뻤어. 중주에서도 너와 연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강벽난은 눈을 깜빡이더니 손을 내밀었다.
진남은 얼떨떨했지만, 손을 내밀어 강벽난의 손을 살짝 잡았다 놓았다.
강벽난은 웃음소리를 내더니, 망설이지 않고 성큼 내디뎌 시커먼 빛으로 변해 금지에서 뛰쳐나갔다.
"강벽난의 말도 틀린 건 아니야. 고통스럽지만 이런 일에 발목 잡힐 순 없어. 나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남은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이 확고해졌다.
'지난 일들은 바람에 따라 흩어지겠지. 기억 깊은 곳에 묻어두자!'
"궁양이 중주로 가고, 옥나찰도 중주로 가고, 사마공은 소식 없으니 아마 중주로 갔을 거야.
강벽난도 방금 중주로 갔으니, 이미 모두 중주에 있겠구나."
진남의 눈이 반짝거렸다.
중주는 창람대륙의 중앙이었다.
수많은 강자와 무인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중주에는 무제도 있고 무신도 있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천재들이 끊임없이 겨루며 역천개명하느라 기세가 격렬하고 드높았다.
"대제의 시골을 연화한 후 목부로 가자. 동주의 일이 완전히 마무리되면 가문에 돌아갔다가 중주로 가면 되겠다."
진남은 빠르게 결심하고 대제의 시골을 바라봤다.
용호가 배신한 일은 그에게 대제의 시골에 아직 의지가 조금 남아있음을 알려줬다.
"계속 숨어 있으려고? 썩 나오거라!"
진남의 왼쪽 눈에서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만 개의 존자의 힘과 한 개의 전신의 힘이 동시에 움직여 불꽃을 이루었다.
보라색 불꽃이 대제의 시골의 머리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찍찍- 찍…….
대제의 시골이라도 이런 강력한 불꽃에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놈! 나를 보고 싶어 하니 그 소원을 들어주마!"
큰 호통이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커다란 그림자가 시골에서 솟아올랐다.
커다란 그림자에서천하를 깔보고 진압하는 무서운 위압이 뿜어져 나왔다.
펑-!
황궁 금지의 땅이 순식간에 갈라졌다.
"멍멍!"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두 마리의 천기견은 큰소리로 짖었다.
몸이 위압에 눌려 바닥에 엎드리고 꼼짝도 못 했다.
진남만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검은 두루마기가 흩날렸다.
"응? 고작 존자가 나의 위압에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다니. 심지가 굳건하구나.
그러나 아직 멀었다!"
커다란 그림자는 진남을 내려다보며 우레와 같이 큰소리로 외쳤다.
"너에게 자신을 증명할 시간을 잠깐 주겠다. 증명하지 못하면 너는 능운무제의 의발(衣缽, 스승이 제자에게 전수하는 가사와 바리때)을 이어받을 자격이 없다."
"저를 증명하라고요?"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능운무제가 자신을 공격하여 육신을 빼앗으려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진남은 몰랐다.
능운무제가 어찌 진남의 몸을 빼앗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미련이 별로 남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죽은 지 몇백 년 전이 지났기에 진남을 차지하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능운무제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죽어 사라지기보다 후계자를 찾아 자신을 대신해 창람대륙에서 이름을 남기는 것이 나았다.
그러나 누구나 능운무제의 후계자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선배님, 저의 식해로 들어와 보십시오."
진남은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능운무제는 적이 아니었다.
그는 적이 아닌 무도강자를 대단히 존경했다.
"식해?"
능운무제의 눈에 의문이 스쳤다.
그는 성큼 한발 내디뎌 빛으로 변하여 식해로 들어갔다.
"왜 나더러 식해에 들어오라고 한 거냐."
능운무제는 식해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구리거울을 보고 구리거울의 기운을 느끼자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는 이 기운이 매우 익숙했다.
그는 죽기 전 금지 안에서 이 기운을 느낀 적 있었다.
'그런데 이 자식이 어떻게 이 지보를 갖고 있지? 설마 그 대인이 떠나기 전에 선택한 후계자인가?'
"선배님 왜 그러십니까? 혹시 이 구리거울을 아십니까?"
진남의 눈에 의문이 드러났다.
그는 능운무제에게 자신이 그의 후계자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능운무제가 이런 표정을 짓자 혹시 그가 구리거울을 아는지 싶었다.
"하하하. 안다. 당연히 알지."
능운무제는 마치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끝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통쾌하게 웃었다.
"창람의 신, 성천당(聖天堂)! 너희들은 그분이 이런 수단을 남겼을 줄 꿈도 꾸지 못했을 거다. 하하, 너희들은 내 후계자에게 뒤집힐 준비나 하거라!"
몇백 년 동안 능운무제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던 화가 전부 폭발했다.
"성천당? 창람의 신? 선배님, 이 구리거울에 도대체 무슨 내력이 있는 겁니까?"
진남은 눈이 반짝거렸다.
그는 아직 구리거울의 내력을 몰랐다.
능운무제가 알고 있다면 좋은 일이었다.
진남의 물음에 능운무제는 정신을 차리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가슴속의 화를 분출한 그는 후련했다.
"제대로 듣거라. 이 구리거울은 내력이 대단하다. 그녀는 창람대륙의 첫 번째……."
능운무제는 표정이 엄숙해지더니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존경하는 눈빛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치 말하면 안 되는 금기사항을 말하는 것 같았다.
윙-!
이때 구리거울에서 엄청난 빛이 반짝거렸다.
능운무제는 안색이 크게 변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가슴에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연거푸 물러섰다.
"대인……."
능운무제는 다급히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대인의 신분을 절대 말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구리거울의 빛이 원 상태로 돌아갔다.
이 광경을 본 진남은 어이가 없었다.
'신분을 말하는 게 뭐가 어때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나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명심하거라. 무제든 무신이든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이은 바로 진리다."
능운무제는 구리거울을 힐끗 보았다.
구리거울이 반응이 없자 그제야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럼 나는 지금부터 내 평생의 무학 경험(武學經驗)을 너에게 전수해주겠다. 그 전에 내 인생을 보여주마!"
그의 마지막 말에는 자랑스러움이 있었다.
우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장면이 진남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서생 차림을 한 소년이 작은 마을에서 매일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가문의 제자가 괴롭히자 소년은 화가 나 칼을 들고 그 제자를 죽였다.
그때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진남은 장면에 빠져들었다.
소년은 운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놀라울 정도로 총명하였고, 후에 기연을 얻어 경지가 빠르게 높아졌다.
마지막에 소년은 운이 트여 고분에 들어가 엄청난 전승을 얻어 역천개명하고 천급 일품 무혼을 얻었다.
소년은 크면서 점점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마지막에는 중주에 달했다.
그는 성장하면서 많은 이들과 여인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중주에서 천재들과 제위를 쟁탈하고 풍운을 일으켰다.
"이것이 바로 무제의 일생이다!"
시간이 꽤 흐른 후 진남은 깨어났다.
무제의 일생을 본 그는 격동된 마음을 오랫동안 가라앉히지 못했다.
능운무제는 평생 수많은 위험과 고난을 겪고 배신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무제가 될 때까지 버티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소년은 이를 악물고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버텼다.
"내가 만든 능운시천무제술(淩雲弑天武帝術)을 네가 더욱 발전시키기 바란다!"
능운무제가 낮게 외쳤다.
그의 의지가 뿜어져 나와 수많은 기억 조각으로 변하여 진남의 식해에 흘러 들어왔다.
넓고 현묘한 무학경험이 진남의 머릿속에 흘러들었다.
"흡!"
진남은 심신이 떨렸다.
빠르게 정신을 집중하고 무학경험에 빠져들었다.
무제가 평생이었다.
조금도 낭비할 수 없었다.
시간이 하루하루 흘렀다.
진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스물다섯 번째 날이 되어서야 진남은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에서 수많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수많은 현묘한 무예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능운시천무제술, 그리고……."
진남은 흥분되었다.
능운무제는 평생 스물아홉 가지 제술을 익혔다.
그중에 능운시천무제술이 가장 강했지만, 다른 제술도 위력이 약하지 않았다.
그 외에 다른 잡다한 고술들은 수없이 많아 양을 헤아릴 수 없었다.
"선배님, 고맙습니다. 언젠가 제가 중주에 이름 날리는 날이 오면, 꼭 세상 사람들에게 저의 무예가 선배님께 전수 거라고 알려 주겠습니다."
진남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제의 시골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대제의 시골은 몸을 살짝 떨었다.
연기처럼 사라지던 능운무제가 진남의 마음을 느낀 것 같았다.
진남은 길게 숨을 들이쉬고 시골을 바라보았다.
평생의 무학경험 외에도 시골은 가치가 엄청났다.
"한번 연화해 보자."
진남은 시골에 불꽃을 뿜어 연화를 시작했다.
한참 후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 짐작이 맞았구나. 전신의 팔이 있으니 대제의 시골은 받아들일 수 없구나."
보통 사람이 이 대제의 시골을 연화하면 역천개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는 할 수 없었다.
그럴지라도 진남은 실망하지 않았다.
무제의 시골은 범상치 않았다.
나중에 무성으로 도겁할 때 뇌겁을 막는 데 쓸 수 있었다.
"이제 때가 된 것 같구나. 목부로 가자."
진남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몸을 날려 황궁의 비전으로 갔다.
비전 안에는 분천황제가 낡은 책상 앞에 앉아 금룡천필(金龍天筆)을 들고 상소를 검열하고 있었다.
"진남, 출관했느냐?"
분천황제는 눈이 반짝거렸다.
이어 그는 깜짝 놀랐다.
그는 진남의 몸에서 제위를 느꼈다.
"선배님, 저는 목부로 가려고 합니다. 선배님께선 하역을 봉쇄하여 저의 소문이 하역에 전해지지 않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목부에 들린 후 가문에 돌아가 아버지께 큰 기쁨을 드리고 싶습니다."
진남은 웃으며 말했다.
"하하! 밖에서 분투하고 금의환향하려고 하는 것이구나! 당연히 그래야지."
분천황제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오래전 상도맹에서 그림자를 파견하여 너를 알아볼 때부터 우리는 하역을 봉쇄했다. 하역의 사람들이 너에 대해 알 수 없을 것이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진남은 공수하고 말했다.
"진남아, 목부에서 혹시 너를 공격하게 된다면 우리 분천고국은 무조건 너를 돕겠다."
분천황제가 진중하게 말했다.
지금의 진남은 천기의 전승을 받아 앞날을 짐작할 수 없었다.
분천황제는 어떻게 해서든 그를 보호하겠다고 결심했다.
게다가 분천고국과 진남은 갈라놓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남은 웃으며 공수하고는 긴말하지 않고 돌아서 황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