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화 마지막 연마
시간이 하루하루 흘렀다.
강벽난의 몸에서 가장 먼저 찬란한 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흰색 단발머리가 흩날리고 신비한 제위가 퍼져 나왔다.
"강벽난! 앞에 있는 이자는 너의 원수다! 이자가 아니었다면 어찌 너의 가문이 망하고 지금 이 지경이 되었겠느냐?
나와 연합하자. 진남을 죽이고 그의 대제의 시골을 빼앗아 우리 대제를 초월하고 무신이 되어 창람대륙을 지배하자."
강벽난의 머릿속에서 그녀를 지배하려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남은 나의 원수다. 무신이 되어……."
강벽난은 홀린 것처럼 눈빛이 희미해졌다.
시골을 연화할 때 남아있던 생전의 반보대제의 의지가 강벽난을 유혹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습다!"
순간, 강벽난의 눈길이 싸늘해지며 정신을 되찾았다.
"뭐가 우습느냐? 내 말이 틀렸느냐? 너는 무신이 되고……."
반보대제의 의지가 강벽난이 정신 차리자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수명을 다 태워 몇 년 남지도 않았다. 한데, 이런 수단으로 나를 지배하려 하느냐?"
강벽난은 하찮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흰색 머리카락이 유난히 빛났다.
"너……."
반보대제의 의지는 말문이 막혔다.
"내 몸에 들어와 제식(帝息, 대제의 기운)이 되어라!"
강벽난은 크게 소리치더니 수명을 다시 태워 짙은 죽음의 의지를 만들어 반보대제의 의지를 감싸고 삼켰다.
그녀의 몸에 강한 힘이 생겼다.
폐관하기 전에 강벽난은 진남을 힐끗 보고 또 용호를 힐끗 보고는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금지는 다시 조용해졌다.
진남은 정신을 집중하여 자신의 존자의 힘, 전신의 힘으로 대제의 시골을 감쌌다.
대제 시골의 기운이 점점 줄어들어 진남의 기운으로 변했다.
'이상하다. 대제 시골의 기운은 이제 거의 연화되었는데 왜 아무런 반응이 없지? 천기서가 천기도의 연마가 이제 시작이라고 하지 않았나?'
진남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대제의 시골은 신묘하여 왼쪽 눈도 심오한 부분까지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아직은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
강벽난이 반보대제의 시골을 연화한 후 용호도 연화를 시작했다.
"하하하, 너는 진짜 불쌍한 요수구나. 천룡뇌호의 혈통이 있으면서 이렇게 불쌍하게 사는구나. 진짜 가련하다. 가련해."
조롱 섞인 목소리가 용호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닥쳐라!"
용호는 화가 났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이렇게 말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왜, 내 말이 틀렸느냐? 너는 묘묘 공주를 많이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는 너를 좋아하지 않고 진남을 좋아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도 얻지 못하면서 어찌 사내라고 할 수 있느냐?"
날카로운 말이 용호의 가슴을 찔렀다.
용호는 몸이 굳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너는 용호산맥에서 나온 후 혈통을 전혀 빛내지 못했다. 하역이나 동주에서 누가 너의 이름을 기억하느냐?
네가 예전에 제이 금지(第二禁地)의 전승을 얻었지만 아무도 너를 신경 쓰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지 아느냐?
바로 진남 때문이다. 그 자식이 너의 기세를 눌렀다."
목소리는 갑자기 높아지더니 호통쳤다.
"그리고 진남은 네가 자신을 그토록 잘해주는 걸 알면서도 대제의 시골을 너에게 나눠주려고 하지 않았다. 이건 너를 형제로 보지 않는 거다.
저놈은 네가 사랑하는 여인도 얻고, 잘난체하면서 너의 기세를 누르고 또 대제의 시골도 자신이 가져갔다."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네가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나는 안다. 매우 불편하지! 너는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진남을 돕고 있는 거냐? 왜?"
목소리가 별안간 싸늘해졌다.
주위의 온도도 떨어졌다.
"너, 너."
용호는 눈을 부릅뜨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도대체 누구야! 어떻게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어!"
목소리는 용호의 위선을 찢고 그의 마음속 어두운 상처를 드러냈다.
"내가 누구냐고?"
목소리가 웃으며 말했다.
"바로 너 자신이잖아."
황궁의 금지는 무척 조용했다.
"대제의 시골은 역시 다르구나."
진남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의 기운이 대제의 시골의 기운에 완전히 스며드는 순간 그는 뼈에 새겨진 매우 기묘한 제술을 전신의 왼쪽 눈으로 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꿰뚫어 볼 수 없던 부문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뼈에 가득한 힘은 불가해였다.
진남이 지금 가지고 있는 힘은 그에 비하면 천지차이였다.
"연화하려면 불꽃이 필요하다. 마침 봉황시혼화가 있으니 불꽃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겠다."
진남은 신념을 움직여 전신의 힘을 보라색 불꽃으로 만들었다.
보라색 불꽃의 위력은 기존의 봉황시혼화보다 훨씬 더 강했다.
"연화하자."
진남은 표정이 엄숙해졌다.
천기도의 진정한 연마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기에 그는 조심해야 했다.
진남은 자신과 멀지 않은 곳의 용호의 안색이 어두워진 걸 발견하지 못했다.
그의 등 뒤에 시커먼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어떻게 나일 수 있어?"
용호는 안색이 크게 변하여 이성을 잃고 포효했다.
"모르겠어? 맞는지 아닌지 너 스스로 잘 보거라."
이어 용호의 머릿속에 장면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처음 진남을 만났을 때였다.
용호산맥에서 묘묘는 진남을 위해 목숨을 버리려 했다.
두 번째 장면에선 하역의 양대 성지에서 진남이 혜성처럼 솟아올라 하역을 흔들었다.
용호가 반년이나 폐관했지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세 번째 장면이었다.
죽음의 바다에서 진남은 승승장구하며 사신대를 폭발시켰다.
모든 장면에서 용호는 한숨을 쉬는 자신을 보았다.
용호는 이제는 정말로 목소리가 자신 같게 느껴졌다.
"봤느냐? 이게 바로 너다. 너는 진남을 질투하고 원망한다. 또, 진남은 줄곧 너를 들러리로 생각하고 너를 진정한 형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너는 계속 참기만 할 것이냐? 이제 너와 내가 연합하여 진남을 죽이자. 그렇게 하면 대제의 시골은 우리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대제가 될 수 있다. 무신이 되어 창람대륙을 휩쓸고 만인의 존경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묘묘 공주도 네 것이 될 것이다."
용호는 천천히 눈을 뜨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진남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에 시커먼 빛이 가득했다.
'죽이자! 진남을 죽이면 나는 절세의 강자가 될 수 있고 가문을 빛낼 수 있다!'
화르륵-!
용호의 등 뒤에 시골이 떠올랐다.
시골은 갑옷처럼 천천히 용호의 몸을 뒤덮었다.
용호의 기운이 점점 더 강해졌다.
"이 칼로 저자의 머리를 베거라."
시골이 큰소리로 외쳤다.
어느새 용호의 손에 시커먼 칼이 쥐어졌다.
"저자의 머리를 자르라고? 안 돼! 저자는 진남이야! 나의 형제라고."
용호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는 묘묘 공주와 함께 있고 싶지 않느냐? 강자가 되고 싶지 않느냐? 어서 칼을 휘둘러라. 저자는 너의 형제가 아니다."
시골이 명령했다.
용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괴로움이 사라졌다.
그의 온몸에 검은 기운이 가득했다.
펑-!
폭발음이 울려 퍼지더니 용호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솟아올랐다.
그는 한발 성큼 내딛더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손에 쥐고 있는 흑도를 휘둘러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진남을 내리쳤다.
'죽이자! 진남을 죽여버리자!'
찍찍-!
진남 체내의 천기서가 뭔가 느낀 듯 눈을 번쩍 떴다.
그것은 칼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더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시혈무조가 변한 천기견을 차 용호를 공격했다.
펑-!
흑도가 사정없이 천기견을 내리쳤다.
"어이쿠."
시혈무조는 고통을 호소하며 멀리 날아갔다.
그들의 눈에 절망이 가득했다.
'이게 뭐야……. 진남을 죽이는 걸 몸으로 막아야 하다니…….'
시골을 연화하던 진남은 이변을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눈앞의 광경에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용호가 나에게 칼을 휘두르다니?'
"개자식, 보기 싫다! 죽여라! 지금이 기회다. 이번 기회에 죽이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
용호를 덮고 있던 시골이 호통쳤다.
용호는 엄청난 빛을 뿜는 칼을 휘둘러 다시 한 번 진남을 내리쳤다.
천기서는 다른 때엔 전신 같던 진남이 이처럼 중요한 순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넋을 놓자 긴장했다.
그리곤 옆에 있는 다른 천기견을 보더니 망설이지 않고 걷어찼다.
펑-!
칼은 다시 한번 천기견을 내리쳤다.
천기견은 칼에 맞아 피를 토했다.
"깨갱!"
개의 처량한 비명이 허공을 갈랐다.
난해무조는 입에서 피를 토하고 마음속으로도 피가 떨어졌다.
'개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불운이 끝나지 않은 거야……?'
"놈! 방해하지 마라!"
시골은 버럭 화를 냈다.
두 번의 좋은 기회가 연거푸 무산되었다.
"무, 무엇 때문입니까?"
진남은 코앞에 있는 용호에게 물었다.
'혹시 꿈을 꾸고 있나?'
"무엇 때문이라니! 진남, 나는 모든 일에서 너에게 눌렸다.
묘묘도 네가 가졌다. 그런데 제일 좋은 지보도 네가 얻었다. 무엇 때문이냐! 너는 나의 형제가 아니다! 오늘 너는 죽어야 한다!"
용호는 시커먼 눈을 부릅뜨고 미친 듯이 소리치며 진남의 머리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천기서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인이 왜 피하질 않지?'
"개자식!"
이때 사나운 외침이 터졌다.
강벽난이 깨어나 용호의 칼을 튕겨냈다.
"나를 방해하지 말거라!"
시골이 크게 소리쳤다.
시골이 엄청난 힘을 뿜어내자 도기가 폭등했다.
"진남, 아직도 손 쓰지 않고 뭐 하는 거야!"
강벽난이 호통쳤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칼을 튕겨냈다.
그녀의 손바닥 힘은 대도를 겨우 옆으로 살짝 밀쳤다.
엄청난 도기에 그녀도 몇 걸음 밀려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용호는 팔목을 뒤집더니 칼을 뻗어 진남의 단전을 찔렀다.
피식-!
피가 뿜어져 나오더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두 마리 개의 몸에 떨어졌다.
"진남, 너……."
강벽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막질 않는 거지?'
두 눈이 시커메진 용호도 어리둥절했다.
진남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렸다.
엄청난 아픔이 밀려와 이 모든 것이 환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눈을 뜨고 앞에 있는 용호를 바라보았다.
그는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줄곧 형제로 생각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용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칼을 쥔 그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진남은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꺼져라!"
호통을 터뜨렸다.
그가 전신의 힘을 한 개 뿜어내 용호 등 뒤의 반보대제의 시골에 주입하자 반보대제는 비명을 질렀다.
얼마 안 돼 시골의 어두운 의지가 완전히 사라졌다.
용호 얼굴의 시커먼 빛이 사라지자 눈빛이 밝아졌다.
"지, 진남……. 나는……."
용호는 목소리가 떨렸다.
진남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천기서가 말한 마지막 연마가 이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가십시오."
진남은 한숨을 내쉬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용호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머뭇거렸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차가운 바람이 불자 그는 몸을 휘청거리며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