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화 천기도에 모이다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살펴보니 뜨거움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천기부조였다.
'천기부조는 내 몸에 들어와 혼돈지기를 흡수한 후 깊게 잠들어 줄곧 깨어나지 않았다. 한데, 어떻게 깨어났지?'
"어?"
진남은 깊이 들여다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기부조에서 신기한 생명체가 자라나고 있었다.
찍찍-.
청아한 울음소리와 함께 방대한 생명의 힘이 펼쳐졌다.
천기부조는 터져서 수많은 빛으로 변하더니 다시 모여 쥐의 형상으로 변했다.
"이건……."
양대 무조는 눈앞에 벌어진 장면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빛이 사라지고 금색의 쥐가 나타났다.
쥐의 두 눈 깊은 곳에 기묘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찍찍, 찍찍.
금색 쥐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훌쩍 뛰어 진남의 몸에서 빠져 머리 위로 올라가서 누웠다.
쥐는 여유로워 보였다.
"천기서(天機鼠)다! 천기서야!"
양대 무조는 정신을 차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은 천기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기물(奇物)이 천기부조가 혼돈지기를 흡수한 후 탄생한 것일 줄은 몰랐다.
"천기서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왼쪽 눈으로 금색 쥐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쥐에게서 보이는 옛 부문의 비밀을 알아볼 수 없었다.
보아하니 천기서는 평범하지 않았다.
"천기서는 천기일맥(天機一脈)의 기물이다. 구체적인 기능은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천기서를 가진 자에게 반드시 좋은 일이 벌어지지……."
양대 무조는 저도 몰래 입을 열었다.
그들은 부럽고 질투가 섞인 시선으로 진남을 바라보았다.
'왜 좋은 건 다 이 녀석 앞에 차려지는 거야?'
천기서는 알아들은 것 같았다.
쥐는 그들을 조롱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마치 무조가 천기서도 본 적 없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좋은 일이 생긴다고요?"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폈다.
천기서를 얻은 건 나쁜 일은 아니었다.
"쥐새끼 주제에 그건 무슨 눈빛이냐?"
양대 무조는 안 그래도 마음이 불편했는데 천기서의 표정에 화가 났다.
천기서는 둘을 무시하고 훌쩍 뛰더니 진남의 앞에 갔다.
천기서는 공수하고 찍찍 소리를 내며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태도가 공손하고 표정은 아부하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해 보거라……. 천기도를 연다고?"
진남은 얼떨떨했다.
이유는 몰랐지만, 천기서는 천성적으로 그와 가까운 것 같았다.
천기서의 행동만으로 진남은 그 뜻을 알아차렸다.
양대 무조는 그 말을 듣자 흠칫했다.
'천기도를 연다고? 정말? 천기도가 열릴 때까진 아직 한참이나 남았잖아."
천기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진남에게 묻는 것 같았다.
'천기도를 열까요?'
진남은 두 눈에 금빛이 돌았다.
'천기도를 연다니!'
천기도가 열리면 잠룡방 삼 위에 든 천재들과 거물들은 한자리에 모일 것이었다.
"천기도 안에 들어가서 상황을 살피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나는 전신무존이 된 후로 싸운 적이 없어……."
진남은 빠르게 생각을 굴리더니 눈 깜짝할 새에 결정을 내리고 천기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찍찍!
천기서는 마치 큰 보물을 얻은 것마냥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훌쩍 뛰어 진남의 머리 위에 앉더니 작은 입을 벌리고 기묘한 금빛을 뿜었다.
금빛은 빠르게 허공으로 들어갔다.
"이게……."
양대 무조는 눈을 부릅떴다.
'정말 천기도가 열릴까?'
진남은 그 장면을 보며 입꼬리를 추켜올렸다.
'잠룡밤 서열 삼 위 안에 든 자들! 이번 기회에 너희들이 얼마나 강한지 한번 보자!'
* * *
같은 시각, 상역 동주 남부.
동주 남부에는 적월족(赤月族)이라는 부족이 있었다.
적월족은 큰 종족이었다.
이 종족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미간에 붉은색 초승달이 있어서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
적월족은 천기도를 등지고 있기에 세력이 시혈난해의 난씨 가문보다 강했다.
몇십 년 동안 적월족은 외출하지 않고 방원 만 리 내에서만 활동했다.
세력다툼에 참여하지 않았던 덕분에 그들은 사대 세력의 공격을 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천기도를 이용하여 사대 세력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쿵!
적월족의 부락 뒤쪽에 눈부신 붉은 빛이 솟아오르더니 하늘에 닿았다.
방원 천 리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었다.
마치 하늘에 핏빛의 보름달이 떠 있는 것 같았다.
적월족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그 장면을 보더니 안색이 변했다.
"천기도?"
"천기도가 열린다!"
"어찌 된 일이냐? 천기도가 앞당겨 열리다니?"
적월족은 웅성거렸다.
얼마 후 천기도에 이변이 생겼다는 소식이 빠르게 양대 세력의 귀에 들어갔고, 곧이어 동주에 퍼졌다.
동주가 한바탕 시끄러워졌다.
"천기도가 열렸다!"
"천기도가 앞당겨 열리다니, 이변이다! 가서 확인해보자!"
"가서 뭐 하느냐?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이 바보! 천기도가 열리면 진남과 잠룡방 삼 위에 든 천재들이 반드시 올 것이다. 너는 성천가와 진남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느냐?"
"하하, 그러네! 진남이 문도산을 멸망시켰으니 성천가는 반드시 복수할 거야!"
"가자, 가자, 가자! 무슨 말이 그리 많아, 얼른 가보자!"
* * *
분천고국.
분천황제와 혈익봉황 등은 의견이 일치했다.
천기도가 나타나면 진남은 반드시 참가할 것이다.
분천고국에서는 강자를 보내 진남을 보호하려고 했다.
온 나라가 움직일 필요 없이 혈익봉황과 진국현무가 나서면 충분했다.
진남의 뒤에는 목부 장로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상도맹과 만향루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두 세력이 연맹을 맺고 상도맹은 만향루의 선녀 산맥에 자리를 잡았다.
선녀 산맥의 제자와 거물들은 전에 없이 강해졌다.
선녀 산맥은 시끌벅적했다.
의논하는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허허, 진남도 온다던데 나도 가보고 싶어. 진남이 나에게 반할 수도 있잖아."
"바보 같은 계집애, 꿈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진남이 너를 보기나 할까?"
"섭 사매, 진남은 이제 폐인이야. 그런데도 좋아?"
"폐인이라도 사형보다 나아요!"
* * *
선녀 산맥의 한 산봉우리.
한 여인이 연못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는 두 눈을 반짝거리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진남이라? 문도산을 멸망시킬 수 있는 남자인데 훌륭하겠지. 가서 만나봐야겠어."
여인은 잠룡방 이 위이자 만향루 제일 천재인 모용설(慕容雪)이었다.
* * *
동주 전체가 들썩이고 있을 때, 극서 지역의 화산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눈을 떴다.
엄청난 기운이 하늘로 솟구치고 천지를 진동했다.
"진남……."
사내는 나지막이 혼잣말했다.
그의 두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표정은 냉담했다가 일그러졌다.
바로 잠룡방 일 위인 성천가였다.
* * *
천기도는 동주 제일 금지로 신비하기 그지없었다.
한 천재가 그곳에 들어가 역천개명을 했고 대제가 되었다.
그리고 중주에 가서 수많은 폭풍우를 일으켰다.
그 이후로 여러 세력과 천재들은 천기도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다.
천기도 이변이 벌어지고 몇 시진이 지나자 적월족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여간 북적거리는 게 아니었다.
적월족도 어쩔 수 없이 관문을 설정하고 일정한 비용을 받고 천기도로 보내줬다.
몰려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쿵-!
이때 엄청난 기운이 강림했다.
강자들은 안색이 변했다.
상도맹 맹주, 부 맹주 그리고 태상 장로 등 거물들이 도착했다.
상도맹 맹주의 오른쪽에는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청년은 금색 옷을 입고 표정이 무뚝뚝했다.
비록 여러 거물들 옆에 섰지만, 기운이 손색이 없고 심지어 신비하기까지 했다.
"강비범이다!"
"강비범? 이렇게 빨리 오다니!"
"강비범이 왔어! 이제 다른 세 명만 남았어!"
강비범.
잠룡방 삼 위, 지급 십품 무혼을 가진 절세 천재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의 무혼은 하나의 제기인데 드러내면 위력이 엄청나다고 했다.
강자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천기도가 열린다고 해도 천기부조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은 천기부조가 없어 천기도와 인연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동주에서 나타난 전설의 천재 진남과 다른 삼대 천재가 싸우는 것을 보고 싶었다.
"시끄럽다!"
상도맹 맹주가 차갑게 호통치며 위압을 뿜었다.
강자들은 안색이 변하더니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천지가 잠잠해지자 상도맹 맹주는 팔을 휘젓더니 강비범 등을 데리고 적월족의 관문을 하나하나 지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상도맹 맹주 등은 한 호수에 도착했다.
호수는 무척 컸다.
방원 몇천 리가 되는 호수는 흰색을 띠고 있었다.
그 위에 연기가 있고 신비한 힘이 떠 있었다.
아무런 수단을 써도 뚫을 수 없었다.
천기호(天機湖)였다.
천기도는 천기호 아래에 있었다.
무조 경지인 무인이라고 해도 천기도가 열리지 않았을 때는 어떤 신공을 펼쳐도 들어갈 수 없었다.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면 전부 죽임을 당했다.
천기호 옆에 백사장이 있는데 백사장 위에 모래들도 흰색이었다.
그러나 천기호와 달리 모래는 부드러운 빛을 풍기는 것이 청옥 같았다.
백사장은 성옥탄(星玉灘)이었다.
천기도가 완전히 열리기 전에 인재들은 성옥탄에서 기다렸다.
성옥탄에는 이미 백여 명의 무인과 천재들이 모였다.
그들 중에는 잠룡방 오십 위 안에 든 자들이 수두룩했다.
"진남은 아직 오지 않았구나."
강비범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
"이번 천기도에 오지 않을 확률이 높아."
강비범은 진남에게 호감도 없었고 심지어 싫어했다.
이런 혐오감은 진남이 상도맹을 부쉈기 때문이 아니고 문도산을 멸망시켰기 때문도 아니었다.
진남이 문도보굴의 지보를 얻어서도 아니었다.
그가 오랫동안 폐관 수련을 해서 어렵게 얻은 신공으로 동주를 깜짝 놀라게 하려고 할 때 진남의 소문이 동주를 휩쓸었기 때문이었다.
'그 녀석은 이미 폐인이 됐다면서 왜 다들 그 녀석 말만 하는 걸까? 이제 나에 대해 토론하라고!'
"강비범, 진남을 얕잡아보면 안 된다. 나중에……."
상도맹 맹주가 경고했다.
"더 말하실 필요 없습니다. 폐인이 됐는데 뭐가 두렵습니까? 성천가라고 해도 지금은 내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강비범은 뒷짐을 쥐고 서서 천기호를 바라봤다.
그는 오만함을 풍겼다.
천하의 군웅을 모두 무시했다.
상도맹 맹주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강비범은 다 좋은데 너무 오만하다. 자신이 최고의 천재라고 생각하다니.'
그는 심호흡하고 다시 한 번 경고했다.
"그 일은 더 말하지 않으마. 천기도가 열리면 네 기회가 오는 거다. 그러니 반드시 잘 잡아야 한다!"
상도맹 맹주의 눈에 잔인한 빛이 스쳤다.
그는 속이 좁은 사람이었다.
그는 진남이 상도맹에게 준 타격을 잊을 수 없었다.
다만 목부의 장로가 진남을 지키니 자신은 진남을 공격할 수 없었다.
만일 강비범이 역천개명을 하고 천기도 기연을 만난다면 실력이 엄청나게 늘어날 수 있었다.
그때면 목부의 장로도 진남을 지킬 수 없었다.
"맹주, 참 일찍도 오셨네요."
이때 여인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