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화 보굴로 모이는 이들
"그, 그게……."
사경도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양공의 동생이란 청년이 이런 요구를 제기할 줄은 몰랐다.
"설마, 싫은 거냐?"
진남의 두 눈은 눈빛이 예리해지고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솟아올랐다.
"존자, 팔 단계?"
사경도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앞에 있는 청년이 엄청난 실력자일 줄은 몰랐다. 앞에 있는 청년이 자신과 경지가 비슷했지만, 왜인지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그는 진남과 싸운다면 반드시 처참하게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 줄게……! 전부 다 너에게 줄게!"
사경도는 열 개의 영패를 와락 잡아 전부 진남에게 던져줬다.
진남은 영패를 잡더니 하나만 가지고 나머지 아홉 개는 줄을 섰던 무인들에게 나눠주며 말했다.
"이건 내가 자네들에게 주는 첫 만남 선물이요. 누가 감히 자네들을 귀찮게 하면 나를 찾아오시오."
무인들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지자 얼떨떨했다.
"가자!"
궁양이 미소를 짓더니 진남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한참이 지나서야 빙하도장의 사람들은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표정은 여전히 얼떨떨했다.
그들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너희 아홉 명은……."
사경도 뒤에 있던 열 명의 무인들은 영패를 가진 아홉 무인들에게 살기를 드러냈다.
그들은 영패를 저들에게 빼앗기고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잠깐! 싸우지 말거라. 오늘 일은 여기서 그만두자!"
사경도가 손을 저으며 호통쳤다.
"혀, 형님……."
열 명의 무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양공과 청년이 이미 자리를 떴는데 뭘 두려워하는 거지? 비록 청년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절대 이런 일에 참견할 것 같지 않았는데.'
"누가 감히 내 말을 어기면 인연을 끊을 것이다!"
사경도는 더욱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사경도의 표정을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 그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
사경도는 고개를 저으며 심장을 움켜잡았다.
그가 문도산에서 잠룡방 삼십일 위가 되기까지 무혼 덕분인 것도 있지만, 직감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청년이 떠난 후 사경도는 왠지 모르게 양공도 신비한 청년보다 실력이 낮은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진남과 궁양은 하늘을 느긋하게 날고 있었다.
허공에 몸을 숨긴 수위들은 그 모습에 깜짝 놀라 막지도 못했다.
문도산에서는 날아다니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날아다니는 사람에 따라 상황이 달랐다.
"진남아."
궁양이 진남을 보며 말했다.
"명심하거라. 문도산에서는 실력이 있으면 다른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도산에서는 실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문도산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식이 조금 남달랐다. 예전의 비양성지와 살짝 비슷했다.
"근데, 너 왜 온 것이냐?"
궁양이 그제야 생각난 듯 물었다. 그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큰소리치는 게 아니라, 문도산에서 내 한마디면 웬만한 일은 다 해결할 수 있다……."
"문도보굴."
진남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궁 형, 저는 반드시 문도보굴에 들어가야 합니다."
"문도보굴에 들어가겠다고?"
궁양의 자신감이 넘치던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어렵습니까?"
진남은 그의 표정을 보고 얼른 되물었다.
"네가 잘 모르는 게 있다. 지난번 시혈난해에서 실패하는 바람에 스승님이 나를 의심하고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전이었다면 너를 문도보굴에 들여보낼 수 있었을 거다. 그러나 얼마 전에 문도보굴에서 이변이 생겼지. 그래서 더욱 들여보내기 어렵게 되었다."
궁양이 무기력하게 말했다.
"지금은 너 스스로 문도보굴에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구나."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망하지도 않았다.
아까 벌어진 일 때문에 그는 문도산이 현실적인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궁양이 시혈난해에서 실패를 했으니 스승이 의심하고 다르게 보는 것도 당연했다.
시혈난해에서 궁양이 실패한 것은 진남을 돕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까?"
진남은 이어서 질문했다.
"방법은 아주 쉬워."
궁양은 심호흡하더니 존경스러운 시선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문도보굴은 문도산의 가장 중앙에 위치하여 있다. 그곳은 눈먼 검객이라는 장로가 지키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문도산의 원로인데, 문도 노조 위라고 하더구나. 문도 노조도 그 장로를 깍듯이 대한다는구나.
그분은 크게 다치고 경지가 여전과 같지 않아서 스스로 문도보굴을 지키겠다고 자처했다는구나. 그분의 심사를 통과해야 문도보굴에 들어갈 수 있다.
"재미있군요."
진남은 눈에 빛이 반짝거렸다.
"가자."
궁양은 진남을 데리고 문도산의 주산(主山)으로 날아갔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진남은 문도산의 체계를 모두 알게 되었다. 서른여섯 개의 산봉우리가 있는데, 그중 열두 개는 외문 제자들이, 열 개는 내문 제자들이, 여덟 개는 진전 제자들이, 다섯 개는 종문 장로들이 머물렀다.
문도산은 규칙이 매우 엄격했다. 내문 제자는 절대 규칙을 어기고 진전 제자들이 머무는 산봉우리에 오면 안 되었다. 이를 어길 시 모두 짓밟았다.
궁양은 문도산의 오대 진전 제자 중 한 명이었다.
"도착했다."
궁양은 걸음을 멈추었다.
궁양과 진남은 주봉 아래에 도착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주봉은 구름에 닿을 듯 높고 기세가 방대했다. 청룡 제일 봉도 이와 비교하면 뒤처졌다. 진남은 주봉의 꼭대기에 방대한 기운을 풍기는 궁전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진남은 왼쪽 눈으로 쓸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주봉에 있는 궁전은 장교전 같은 건가 봐. 백호성보다 더 대단해 보여……."
진남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시선을 돌렸다.
주봉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쭉 뻗었다. 길의 끝에는 눈바람이 휘날렸는데 계속 가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다.
그들 앞에 나타난 길은 다른 길과 달랐다. 계단이 나 있었고, 그 위에 옛 부문이 가득했다. 옛 부문은 눈동자처럼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건 천안도(天眼道)라고 해. 예전의 무조가 쳐 놓은 진법이다. 이 위를 걸으면 외모를 바꾼 무인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영상을 다른 곳에 보내지."
궁양은 설명하면서 계단에 올랐다. 그는 처음에 천안도에 올랐을 때 무척 긴장했다. 하지만 신비하기 그지없는 홍진변신술 덕분에 천안도 그의 본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습니까?"
진남은 감탄했다.
천안도는 문도산에 적들이 숨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것이 분명했다.
진남은 문도산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실력은 부정할 수 없었다. 사대 세력 중 하나이고, 이제는 은근히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는 문도산은 기초가 단단하고 잠재력이 깊었다.
둘은 천안도에 올라 계속 앞으로 나갔다.
"맞다. 문도보굴에 이변이 일어났다는 게 뭡니까?"
진남이 물었다.
진남은 이변이 일어난 것은 전신의 오른팔과 연관이 있다고 느꼈다. 그는 구체적인 상황을 알고 싶었다.
"며칠 전에 벌어진 일이라 나도 자세히 모른다. 그때는 폐관 중이었거든. 내가 들은 바로 이번 이변에 문도 노조도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 천재들과 강자들도 모두 달려왔다고 해."
궁양은 고개를 저었다.
"문도 노조도 놀랄 정도입니까?"
진남은 눈에 빛이 스쳤다.
둘은 천안도를 지나 주봉의 산 중턱까지 왔다.
진남의 왼쪽 눈과 왼팔이 더 격렬하게 웅웅 소리를 냈다. 진남이 제때 제지하지 않았다면 이상이 벌어졌을지도 몰랐다.
"이 신비한 끌림은 산 안쪽에서 느껴지는 것 같아……."
진남은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산 중턱에 오래된 청석도장이 나타났다. 도장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지만, 세월의 풍파를 겪은 느낌이 들었다.
도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미 많은 무인들이 와 있었다.
도장의 끝에는 삼십 장이나 되는 동굴이 있었다. 동굴 입구에는 빛이 반짝였는데, 마치 동굴 안팎을 가르는 막 같아 보였다.
동굴 입구 앞에는 한 노인이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두 눈에 상처가 나 있었고, 머리는 흩어졌으며 고검을 등에 메고 있었다. 하늘에서 큰 눈이 흩날렸지만, 노인의 주변에는 떨어지지 않았다.
"저분이 눈먼 검객입니까?"
진남은 왼쪽 눈으로 살피더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눈먼 검객의 몸에서 무서운 파멸의 기운을 느꼈다. 파멸의 기운이 커다란 벌레처럼 눈먼 검객의 경지를 갉아먹고 있었다
눈먼 검객은 이 파멸의 기운 때문에 중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너를 저기에 데려가마!"
궁양이 경지를 전부 드러냈다.
문도산은 강자를 존경했다. 오대 진전 제자 중 한 명인 그는 경지를 드러내야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청석도장의 무인들은 깜짝 놀라서 돌아보더니 안색이 변했다.
"양공!"
"양공 사형이다! 왜 온 걸까?"
"어? 사형 곁에 있는 젊은이는 누구지?"
이곳에는 문도산의 제자들도 있었고 다른 곳에서 온 무인들도 있었다. 그들이 오늘 이곳에 온 것은 문도보굴에 들어가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양공이 직접 나타날 줄 몰랐다.
사람들은 저도 몰래 양옆으로 물러서서 양공에게 눈먼 검객에게로 가는 길을 내어주었다.
궁양은 무표정하게 진남과 나란히 걸어갔다.
"양공이냐?"
둘이 몇십 보 걸음을 옮겼을 때 눈먼 검객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매력적인 동시에 또, 괴상했다.
도장의 무인과 제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역시 양공이야! 검객 선배님은 우리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어. 그런데 양공이 오자 먼저 입을 열다니!'
"선배님,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 사람은 제 아우입니다. 서로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사이입니다. 문도보굴에 이변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보굴에 들어가고……."
궁양은 성큼성큼 다가가서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속에서 우러난 공손함이었다.
진남은 곁에 서서 공수하고 있었다. 다만, 그는 보굴 입구 쪽을 힐끔거렸다.
'끌림이…… 점점 더 강렬해지는구나!'
"잠깐!"
눈먼 검객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진남과 궁양은 어안이 벙벙했다.
바로 그때.
쿵!
폭발음과 함께 어떤 그림자가 엄청난 기세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앞에 나타난 사람은 축항이었다.
축항은 전과 달랐다. 그는 표정이 어둡고 두 눈에 한기가 번뜩였다. 그는 시혈난해에서 있은 일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아서 변한 것 같았다.
"축항이다! 웬일로 왔지?"
"상도맹은 보물을 중요하게 생각해. 그들은 오랫동안 문도보굴을 정탐했어. 이번에 이변이 생겼으니 나타난 게 정상이지."
"허허, 단청이 왔다면 재미있었을 건데."
무인들은 소곤거렸다.
시혈난해에서 축항이 단청에서 타격을 받은 일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축항은 사람들의 말을 듣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곧 화를 낼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