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화 운명을 바꾼 이들의 만남
"이 대문은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아!"
진남과 난풍은 마주 보더니 몸을 날려 도장에 들어가 흰색 대문으로 뛰어갔다.
그들의 짐작대로라면 문 뒤에 전승이 있을 것이었다.
펑!
그때, 보이지 않는 힘이 흰색 대문 삼 장 밖에서 퍼지기 시작하더니 벽을 이루었다. 그들은 벽에 부딪혀 관성에 의해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
"응? 베어라!"
진남은 낮은 소리로 외쳤다. 엄청난 도의가 몰려와 세게 내리쳤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파도가 일더니 조용해졌다.
"이상하다, 왜 앞으로 갈 수 없지?"
진남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우리를 들어가게 하려고 문이 열렸을 텐데?'
"단청! 사람들이 왔어!"
난풍이 낮은 소리로 외쳤다.
"응?"
진남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 봤다. 그는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하늘에서 세 개의 그림자가 날아왔다. 석평, 석원, 석풍이었다.
"단청, 너 여기 있었구나!"
석평 등은 그들을 보자 눈을 가늘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셋은 정신을 차리고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지옥에 찾아왔구나! 지난번 난해성에서는 진국현무가 너를 지켜주었는데 이번에는 누가 너를 지켜줄 수 있나 보자!"
셋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 나왔다.
진남의 옆에 있던 난풍은 아무 표정 없이 천천히 고궁(古弓)을 뽑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힘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너는……."
석평 등은 눈을 찌푸렸다. 그들은 표정이 싸늘한 여인의 경지가 이 정도로 강한 걸 그제야 발견했다.
'설마 단청을 도우러 온 여인인가?'
휙! 휙! 휙!
그때 무인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그들은 석평과 단청 일행을 보자 모두 당황했지만, 바로 광막으로 뛰어갔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힘에 막혔다.
"넌 누구냐! 단청을 도우면 우리 상도맹의 원수가 된다는 걸 아느냐?"
석평이 사납게 호통쳤다. 단청 하나만으로도 상대하기 쉽지 않을 것이었다. 거기다 싸늘한 표정의 여인까지 둘을 죽이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었다.
"허튼소리 하지 말거라!"
진남의 눈길이 사나워졌다.
전승이 열리기 전에 상도맹 같은 원수는 죽일 수 있으면 되도록 많이 죽이는 게 좋았다.
철컥!
도의가 순식간에 뿜어 나왔다.
이때 싸늘한 웃음소리가 멀리에서 울려 퍼졌다.
"역시 단청이구나.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대놓고 여기로 오다니. 너 설마……. 나를 기다리는 거냐?"
싸늘한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아봤다. 그들은 나타난 사람을 보고는 심신이 떨렸다.
축항이었다.
진남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형세로 보아 그와 난풍이 연합한다 해도 축항 일행을 이길 수 없었다. 뇌정주와 폭열광염부를 써야만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곤란한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전승이 열리기 직전이라 그는 절대 떠날 수 없었다.
'당청산, 단목 봉주 등은 나를 가족처럼 대했는데 내가 어떻게 갈 수 있단 말이냐? 싸우자. 어떤 상황에도 물러설 수 없다.'
진남은 눈빛이 사나워졌다. 예리한 검이 칼집에서 나온 것처럼 진남의 기세가 확 바뀌었다.
난풍의 눈에서 빛이 반짝거렸다. 그녀는 진남에게서 이렇게 두려운 위압이 풍기는 걸 처음 봤다.
다른 무인들은 이 광경에 흐뭇했다.
두 세력이 싸우면 한쪽은 상처를 입게 될 것이었다. 그들은 두 세력이 어서 싸우길 원했다.
"죽어라!"
축항은 크게 외치더니 다섯 손가락을 벌렸다. 순식간에 서른여 개의 왕도지기가 뿜어져 나왔다. 크고 작은 왕도지기들이 하늘에 떠올라 법보대진(法寶大陣)을 이루어 사방의 허공을 내리눌렀다.
석평 등은 성큼 나섰다. 그들은 살초를 펼쳤다.
"전신의 왼팔!"
진남은 왼손을 번쩍 들고 오른발을 벌렸다. 첫 번째 공격을 막기만 하면 그는 상대가 당황해하는 틈을 타 무혼을 드러내 공격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되든 한 명이라도 죽이면 전세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이때 엄청난 위압이 도장에 퍼졌다.
"멈춰라!"
한마디였지만 커다란 법력이 엄청난 강풍을 일으켰다.
커다란 형상이 흰색 문에서 나왔다. 형상의 시커먼 눈은 매우 차가웠다.
"도장에서는 공격할 수 없다. 아니면 모두 죽는다!"
살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삼성자와 축항은 모두 몸을 덜덜 떨었다. 마음이 서늘해져서 감히 공격할 수 없었다.
"수호지령이 있다니?"
진남은 당황했다. 왼쪽 눈으로 훑어보니, 눈앞의 형상은 태고의 싸움터 전체가 하나로 뭉쳐 이루어진 것이라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경지가 무성에 도달했다.
"단청, 운 좋은 줄 알거라!"
축항은 이를 깨물었다. 그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진남을 누르지 못하게 되자 그는 이전의 패배에서 얻은 마음속의 굴욕감이 더욱 커졌다. 그와 같은 뛰어난 인재는 나중에 무조를 이룰 수 있었다. 한데, 진남이 그의 앞에서 잘난 척하니 참기 힘들었다.
"선배님, 전승입니까?"
진남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물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축항 등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다리거라!"
수호지령은 진남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한마디하고는 조용히 서 있었다. 마치 분부를 기다리는 전사 같았다.
'기다리라고?'
진남과 다른 사람들은 머릿속에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뭘 기다리라는 거지?'
의문스러웠지만 그들은 수호지령의 태도에 더 묻지 못하고 제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럼 기다리자!"
진남은 천천히 한숨을 내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잠시 후면 알게 되겠지!'
시간이 흘러 다른 태고 싸움터의 무인들이 모두 도착했다. 상도맹의 제자들까지 합류하니 축항 일행의 세력은 더 커졌다.
"이제 어떻게 하지?"
난풍이 난색을 표했다.
"이들이 함께 공격하면 우리는 당해낼 수 없을 거야……."
진남은 축항 등을 힐끗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만약 싸우게 된다면 뇌정주를 써야 할 것이었다. 어차피 상도맹과는 관계가 나빠질 대로 나빠졌기에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휙! 휙! 휙!
이때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또 누가 왔나?'
선비가 나무 바구니를 메고 허공을 밟으며 천천히 왔다.
그 외에 다른 방향에서 곽노, 구길 등 문도산의 천재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왔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위에는 옥나찰 등 만향루의 제자들과 경지가 매우 강한 무인들이 있었다.
도장은 바로 시끄러워졌다.
"어떻게 된 거야. 문도산의 양공, 만향루의 옥나찰 그리고 곽노, 구길과 다른 제자들이야! 어떻게 왔지?"
"응? 시혈난해는 닫히지 않았었나?"
무인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축항과 삼성자도 안색이 확 변했다. 축항은 옥나찰은 두렵지 않았지만 양공은 잠룡방 서열 십 위였다.
축항도 양공의 상대가 안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인재들이 모두 온 건 틀림 없이 태고 싸움터에 이변이 일어난 것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양공? 옥나찰?"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이 두 이름이 매우 귀에 익었다.
"단청, 큰일 났어. 이들은 엄청나."
난풍은 얼굴이 굳었다.
진남은 전신의 왼쪽 눈을 움직여 바라봤다.
그는 몸을 세게 떨었다.
'양공은 무슨! 궁양이잖아! 그리고 옥나찰은 조방이잖아?'
"궁양은 이제는 잠룡방 십 위고 무혼이 지급 구품에 도달했구나. 조방은 십사 위이고 무혼이 지급 구품이구나. 저자들은 모두 운명이 바뀌었구나."
진남의 눈에 놀라움이 드러났다.
'궁양은 구자진음의 도움을 받았다고 쳐도 조방은 어떻게 된 거지?'
운명을 바꾸는 건 매우 어려웠다. 분천고국에서는 삼황자뿐이 사대강자의 도움과 선제의 영혼으로 겨우 운명을 바꾸었다.
"궁양, 조방 접니다."
진남은 고개를 젓더니 길게 생각하지 않고 신념을 전했다.
흰색 도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엄청 시끄러웠다. 축항 등은 정신을 차리고 바로 앞으로 걸어가 궁양과 조방에게 말을 걸었다.
진남이 신념을 전하자 궁양과 조방은 몸이 세게 떨렸다.
'진남!'
'진남이다!'
"하하, 진짜 여기 있었구나!"
궁양은 고개를 돌리고 전음했다. 그의 얼굴에는 기쁜 웃음이 번졌다.
"사제……."
조방의 눈은 할 말이 엄청 많아 보였다.
"우리는 제 신분을 드러내지 말고 신식으로 소통합시다. 두 분 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동주에서 이 정도 실력을 쌓다니. 대단합니다."
진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누가 하역에 영웅이 없다고 했지? 궁양, 조방, 사마공, 용호, 당청산 등은 모두 하역에서 왔다. 이들은 언제 어디서든 대단한 존재다!'
"너 이 자식!"
궁양은 구자진음으로 운명을 바꿨기에 진남의 체내에 뭐가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조방은 속으로 한탄했다.
'운명을 바꿨으면 뭐 해. 어떤 일은 여전히 정해진 것이라 바꿀 수 없는걸.'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수호지령의 눈에서 금빛이 뿜어 나오더니 위압이 퍼졌다.
"이제 더 기다리지 않겠다. 아직 못 온 자들은 인연이 없는 거다."
수호지령은 말하며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천재들과 무인들은 저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다.
"축하한다. 너희들은 삼대 전승지에 왔다!"
수호지령의 짧은 한마디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천둥이 친 것 같았다.
시혈난해 태고의 싸움터에 신비한 전승이 있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수호지령의 말을 들어보니 하나뿐이 아니고 세 개나 되었다.
"첫 번째 전승은 시혈무조(弑血武祖)가 남긴 것이다. 두 번째 전승은 난해무조(亂海武祖)가 남긴 것이다. 이 두 개 전승은 이미 다른 사람이 가져갔다."
수호지령의 말은 찬물을 부은 것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양대 무조 전승을 이미 다른 사람이 가져갔다고? 어떻게 된 거지? 시혈난해는 분명 방금 열렸잖아!'
'내 짐작이 맞는다면 아마 당청산, 단목 봉주 선배님들께서 가지셨을 거야.'
진남의 눈이 반짝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아쉬워했지만, 그는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양대 무조 전승을 얻었으니 당청산, 단목 봉주 등은 틀림없이 무성 강자가 될 것이고, 나중에 무조에 오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문도산 따위를 일망타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 번째 대전승은?"
이때 축항이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눈길이 사나워졌다.
'양대 무조전승을 이미 누군가가 얻었으면 세 번째 대전승은? 또 누가 가졌나?'
"세 번째 대전승은 아직 가진 사람이 없다."
수호지령의 말에 사람들은 긴장을 풀었다.
수호지령이 계속 말했다.
"세 번째 대전승은 보물도 아니고, 영약도 아니고, 공법도 아니다."
수호지령이 사람들을 한 번 훑어보더니 크게 외쳤다.
"세 번째 대전승은 바로 천기부조다!"
"뭐라고?"
궁양, 조방 등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천기부조! 세 번째 대전승이 천기부조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