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화 농담한 거뿐이다
"단청?"
석풍은 시선을 거둬들이고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듣자 하니 적풍운도 너보다 못하다면서? 실력 좀 있네? 잠룡방에서도 삼십삼 위를 차지했더구나. 분천고국에서 너 같은 인물이 나올 줄 몰랐다."
진남은 그를 쳐다봤다.
석풍은 지급 팔품의 무혼을 가졌고, 경지는 존자 오 단계이며 성도지기 지보를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 실력이면 잠룡방에서도 순위가 낮지 않을 것 같았다.
상도맹 맹주는 석풍을 보더니 신념을 전했다. 석풍의 눈이 번뜩거렸다.
"단청, 여기를 비무대(比武臺)라고 생각하고 한번 겨뤄볼래? 네가 겁쟁이는 아닐 거라고 믿는다!"
석풍은 도발적인 시선을 보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석풍이 단청에게 도전장을 던진 거야?'
"지금은 시간이 없다. 다음에 겨뤄보자."
진남은 표정이 평온했다.
사마공은 엄청난 계획이 있다고 했다. 진남은 그를 도와야 했다.
교철과 검존자를 만나서 시간을 지체했는데 석풍과 겨루기까지 한다면 많이 늦게 될 것이었다.
"시간이 없어?"
석풍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사람들이 단청이 대단하다고 떠들어대는데 오늘 보니 별거 없구나. 겁을 먹었으면 겁먹었다고 하거라. 그렇게 되지도 않는 핑계 대지 말고."
말을 마친 석풍은 입꼬리를 올리고 흉악하게 웃었다.
"네가 싸우지 않는다면 교철 도우는 맹주의 자리를 잃고 검존자 도우는 이제부터 상도맹에 발도 들이지 못한다!"
그 말에 검존자와 교철은 안색이 변했다.
석풍은 낯짝이 두껍게도 그들을 빌미로 단청을 위협했다.
"날 가지고 협박 따윌 하는 게냐? 발 들이지 말라고 하면 안 오면 그만이다!"
검존자는 성격이 난폭했다. 그 말을 듣자 바로 냉랭하게 받아쳤다.
"상도맹이 이렇게 불공평한 곳이라면 그깟 맹주 신분, 나도 필요 없소."
교철도 표정이 평온했다.
석풍은 놀랐다. 교철과 검존자가 그의 말을 신경도 안 쓸 줄 몰랐다.
상도맹의 맹주는 가면 속에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나를 위협하는 거야?"
진남은 표정이 차가워졌다. 친구를 가지고 협박을 하는 일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검존자와는 처음 만났지만, 그도 하역에서 왔고 성격이 진남과 잘 맞았다. 그래서 진남은 검존자에게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석풍의 행동은 진남의 역린을 건드렸다.
"아니, 아니."
석풍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는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너를 협박한 게 아니야. 권력으로 너와 연관된 사람들을 억압한 것뿐이지!"
단청이 분천고국에서 벌인 일들을 석풍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뭐? 내 신분에 단청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게다가 맹주가 직접 지시했잖아?'
"물론, 나와 싸워서 이긴다면 나는 저 둘을 건드리지 않을 거다. 그러나 네가 진다면 이황자의 지도를 내놓거라! 어떠냐?"
석풍은 기운을 드러내며 진남을 몰아세웠다.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석풍이 단청을 도발한 것은 그가 지닌 지도를 얻기 위해서였다.
"단청, 안 되오. 석풍은 잠룡방 서열 삼십 위요. 그러니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시오."
교철과 검존자는 얼른 진남에게 전음했다.
석풍이 일부러 도발하고 둘을 빌미로 단청을 협박한 것은 결국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만일 단청이 싸움에 응한다면 상대방의 계략에 걸려든 것이다.
"아, 지도 때문에 그런 거네."
진남은 둘의 경고를 못 들었는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는 사마공에게 신념을 보내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럼 소원대로 해주지!"
쿵!
진남의 몸에서 존자 오 단계의 기운이 터져 주변을 휩쓸었다.
"어? 존자 오 단계로 승급했어?"
석풍은 안색이 변했다.
이틀 전 잠룡방이 나왔을 때 단청은 존자 일 단계이고 존자 삼 단계를 누를 수 있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고작 이틀 동안에 오 단계가 되었을 줄은 몰랐다.
"존자 오 단계면 내 상대가 될 줄 아느냐?"
석풍은 역시 잠룡방에 이름을 올린 천재라 달랐다. 그는 이내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가 입은 장포에서 채색 빛이 뿜어 나오더니 갑옷으로 변해 온몸을 감쌌다. 존자 오 단계의 힘도 동시에 드러났다.
낭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와 함께 하늘을 찌를듯한 도기를 뿜으며 진남은 칼을 뽑아 들었다.
진남은 발을 힘껏 내딛더니 소리 없이 허공에 날아올랐다. 칼은 봉황으로 변하더니 엄청난 기운을 풍기며 석풍의 머리를 내리쳤다.
한 방에 살초를 날렸다.
북쪽 거리 사람들은 표정이 굳었다. 그들은 단청이 공격할 줄 몰랐다.
검존자와 교철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긴장감에 심장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그들 때문에 단청이 손해를 입는다면 둘 다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두 천재의 겨룸이 시작되었다.
"고작 영기로 나를 상대하려고?"
웅웅웅.
석풍이 하찮다는 듯 손을 휘두르자 원이 돌아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러 개의 금빛이 반짝거리며 금륜(金輪)이 되어 떠올랐다. 금륜들은 모두 왕도지기였는데, 그것들은 대진을 이루고 태양처럼 빛을 뿜었다.
"금륜대무진(金輪大舞陣)!"
석풍이 외치자 몇십 개의 금륜이 서로 교차되며 진남의 도기를 부수고 그를 공격했다.
금륜들은 영혼이라도 있는 것처럼 사방팔방에서 진남에게로 달려들었다.
진남은 왼쪽 눈에서 빛을 번쩍이더니 몸을 움직였다. 금륜이 아무리 움직여도 진남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석풍은 안색이 변하고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의념을 움직여 금륜을 전부 불러들였다. 눈 깜짝할 새에 금륜들은 거대한 방패가 되어 그의 앞을 막았다.
쿵!
진남은 활처럼 날아가 칼을 휘둘렀다. 엄청난 도기가 방패를 내리치더니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금륜들은 모두 부서졌다.
단칼에 진남은 열몇 개의 왕도지기를 부셨다.
'금륜에 영기가 있으면 뭐 해? 나무 몽둥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단청! 죽어!"
석풍은 고함을 질렀다.
부서진 금륜 조각들 사이로 수많은 검은 꽃잎들이 석풍의 몸에서 나오더니 커다란 입으로 변해 진남을 콱 물었다.
"흥! 진압하라!"
진남의 눈에 한기가 스쳤다.
평소 같았으면 잠룡방에 이름 오른 천재라고 흥미를 가지고 한 초식 한 초식 겨뤘을 것이다. 그러나 석풍은 그의 역린을 건드렸다.
엄청난 위압이 번졌다.
진남은 칼에 봉황시혼화, 성공지뇌, 봉황격천술 등 힘을 전부 모았다.
칼이 웅웅 거리며 진동하더니 엄청난 도기를 뿜으며 북쪽 거리를 갈랐다.
사람들은 호흡을 멈추었다. 석풍의 표정도 확 변했다.
단청이 엄청난 힘을 가진 칼이 휘두르면 석풍은 질 게 뻔했다. 몸에 있는 성도지기를 펼친다 해도 막을 수 없고 중상을 입을 게 분명했다.
그만큼 단청은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멈추거라!"
진남이 칼을 휘두르려는 찰나, 상도맹 맹주가 끼어들었다.
방대한 성광이 솟아올라 큰 강을 만들더니 도기를 전부 삼켜 부수고 없애버렸다.
맹주의 실력은 대단했다.
"상도맹은 참 대단합니다."
진남이 큰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보셨습니까? 석풍이 제 친구들로 위협하더니,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상도맹 맹주가 직접 끼어들었습니다. 상도맹은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까?"
사람들은 진남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도맹 맹주와 석풍을 보는 시선에 비웃음이 담겼다.
'천재들의 싸움에 강자가 끼어들다니 웬 말인가?'
'밖으로 전해지면 우스갯거리다!'
검존자와 교철은 표정이 차가워졌다.
"단청, 헛소리를 그만하거라. 우리 둘의 싸움 때문에 손실이 너무 크니 맹주가 나서서 막은 것이다. 아니면 내가 널 무서워할 것 같으냐?"
석풍은 입만 살아서 센 척했다.
진남은 시선이 서늘해지더니 손에 든 칼이 다시 웅웅 진동했다.
석풍은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저도 몰래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조금 전 단청의 한 방에 그는 겁을 먹은 게 분명했다. 진남이 공격할 준비만 해도 석풍은 위험을 느꼈다.
정신이 든 석풍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방금 뒷걸음질 친 것은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네놈들과 쓸데없는 말을 할 시간이 없다."
진남은 칼을 거두고 검존자와 교철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돌아서서 자리를 뜨려고 했다.
"잠깐!"
별안간, 상도맹 맹주가 입을 열었다.
진남이 고개를 돌리자 상도맹 맹주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청, 네가 가지고 있는 지도를 내놓고 가거라. 아니면 검존자와 교철은 상도맹의 탄압을 받을 것이다. 내가 직접 나서서 이들을 탄압할 것이다!"
그이 말에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다.
'싸움에서 석풍이 졌잖아?'
검존자와 교철도 어이가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상도맹 맹주는 웃으며 말했다.
"다들 오해하지 말거라. 방금 단청과 겨룬 것은 석풍이다. 석풍은 상도맹을 대표하지 않는다."
검존자와 교철은 동시에 표정이 변했다.
진남의 마음속에서 화가 폭발했다.
'석풍이 나에게 도발한 것이 상도맹 맹주의 지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석풍은 잠룡방에 오른 천재이고 상도맹에서 지위가 높아 그가 한 말은 상도맹을 대표하잖아.'
상도맹 맹주는 목적을 이루지 않고는 그만두지 않을 기세였다.
"이렇게 권력으로 사람을 괴롭히려는 겁니까?"
진남은 차갑게 웃었다.
"맞다."
상도맹 맹주의 목소리는 무정하기 그지없었다.
"황실에서는 너를 건드릴 수 없었지만, 북쪽 거리에서는 내 마음대로다. 단청, 지도를 주면 네가 원하는 것을 전부 들어주마. 분명 좋게 협력할 수 있는 일인데 굳이 싸울 필요가 있느냐?"
"권력을 믿고 사람을 괴롭히는 겁니까? 이곳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했습니까?"
진남은 다시 차분해졌다. 그는 망설임 없이 영패를 두 개 꺼내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맹주를 두려워한다고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장난치고 싶은 거라면 선배님들을 불러 놀아드리겠습니다."
두 영패를 본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봉황 성령과 현무 성령이었다.
이 두 영패를 움직이면 봉황영과 현무영의 사람들은 반드시 나타나서 최선을 다해 도와야 했다.
가면 아래 상도맹 맹주의 표정도 살짝 흔들렸다.
"허허, 작은 일로 그리 화를 낼 게 있느냐?"
상도맹 맹주는 가벼운 웃음소리로 적막을 깨며 말했다.
"너에게 농담을 한 것이니 마음에 두지 말거라. 석풍, 우리는 이만 가자!"
말을 마친 상도맹 맹주는 자리를 떴다. 가면을 썼기에 그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둘이 사라지자 북쪽 거리 무인들은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놀란 시선으로 진남을 쳐다봤다.
'대단하다!'
'단청은 수단이 엄청나구나!'
'상도맹 맹주도 물리치고 감히 건드릴 엄두를 못 내게 하다니!'
"후……."
검존자와 교철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이 그들 때문에 커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후……."
의외로 진남도 한숨을 내쉬었다. 둘의 의혹이 가득한 시선에 진남은 멋쩍게 기침을 하고 전음했다.
"나도 상도맹 맹주에게 겁을 준 것뿐이요. 두 영패를 사용해도 신수들은 올 수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