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세전혼-370화 (370/1,498)

370화 영패를 소유할 사람

"왜?"

소일백호는 손을 멈추고 흥미진진해서 쳐다보았다.

강자들도 안색이 변했다.

'설마 주벽화가 선제의 영혼으로 저놈을 구하려는 건 아니겠지?'

강자들은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주벽화가 독한 마음을 못 먹으면 그들이 대신할 생각이었다.

하늘 위의 혈익봉황과 진국현무는 이 점을 눈치채고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강자들은 손이 굳었다.

"선배님, 필요하시면 드리겠습니다."

진남은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

주벽화는 그에게 도움을 많이 주었다. 만약 주벽화가 적풍운을 구하겠다고 하면 진남은 최선을 다해서 도울 것이다.

"단청, 고맙다. 하지만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주벽화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적풍운을 바라보면서 추억을 되새기는 듯하더니 쉰 목소리로 감탄했다.

"어려서 잘못을 범하지 않는 자가 어디 있겠소. 자네의 배신에 마음이 아팠지만, 어쨌든 내 제자가 아니오. 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자네 운명에 달렸소. 나는 이미 최선을 다했소."

쿵!

주벽화의 몸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는 번개 같은 속도로 손을 움직여 결인(結印)을 만들었다.

"이건……."

혈익봉황은 동공이 확 작아졌다.

청아한 울음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주벽화는 불꽃이 모여 만들어진 봉황으로 변신하고 엄청난 위압을 드러냈다.

똑!

똑!

봉황이 정혈을 한 방울 한 방울 토했다. 정혈 일곱 방울이 적풍운 앞에 떨어졌다. 정혈은 다시 핏빛을 뿜으며 적풍운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소일백호는 안색이 변하더니 손에 힘을 더 주어 적풍운의 목을 눌렀다.

쿵!

적풍운의 몸 안에서 엄청난 봉황지화(鳳凰之火)가 용솟음쳤다.

봉황제혈(鳳凰啼血)과 칠보창상(七步滄桑)이 적풍운 몸속의 봉황의 힘을 깨웠다. 소일백호가 적풍운의 몸 안에 심어놓은 원신이 순식간에 부서지고 적풍운은 스스로 몸을 주체할 수 있게 되었다.

쿵!

적풍운의 등 뒤로 금빛이 번쩍이더니 무혼이 드러나서 최강의 힘을 펼쳤다. 그는 소일백호의 손을 벗어나 주벽화에게 달려들었다.

"스승님!"

처량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봉황으로 변한 주벽화는 불꽃이 사라지자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 생겼다. 개세무성(蓋世武聖)에서 곧 죽어가는 노인으로 변했다.

봉황제혈과 칠보창상은 진혼을 부르는 봉황 금술이었다.

금술을 펼치면 봉황지술을 연마한 무인의 힘을 자극해서 발휘하게 할 수 있었다.

주벽화는 이 금술로 적풍운이 가지고 있는 봉황의 힘을 자극했고 스스로 금술의 부작용을 감당했던 것이다.

강자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씁쓸했다.

"스승님!"

적풍운은 주벽화에게 달려가 와락 안았다.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으며 두 눈이 시뻘겠다. 그는 지금 후회막급이었다.

'왜! 왜 나는 주벽화를 배신했던 걸까? 주벽화가 다른 사람을 편애해서? 주벽화가 나를 의심해서?'

온 세상이 적풍운을 포기했을 때 오직 주벽화만이 금술을 펼치면서 그를 죽음의 문턱에서 끌어냈다.

주벽화가 적풍운에게 불사봉황술을 전수하지 않은 것도 그를 위해서였다.

진남은 가볍게 탄식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소일백호를 돌아보았다.

"백호, 아직도 그만둘 생각이 없느냐?"

혈익봉황과 진국현무가 물었다. 분천황제와 강자들이 소일백호를 물샐틈없이 둘러쌌다.

오직 소일백호 혼자서 싸우고 있었다.

"그만두라고? 내가 운명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지 아느냐? 그런데 이제 와서 그만두라고? 너희들이 많다고 내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았느냐? 오늘 반드시 단청을 죽이고 선제의 영혼을 가지겠다. 백호 해체!"

소일백호는 분노 섞인 고함을 지르더니 몸에서 흰빛이 폭발했다.

거대한 그의 몸은 순식간에 배로 커졌다. 무성 경지의 힘이 반보 무조 경지까지 솟구쳤다.

소일백호는 최강 금술을 사용했다. 수명을 태워 힘을 얻고 경지를 올리는 것이었다.

"죽여라!"

소일백호는 성큼 나서서 동시에 여러 살초를 펼쳤다. 그는 이제 분천고국의 수호신이 아니라 살신(殺神)이었다.

"죽음을 재촉하는구나!"

혈익봉황과 진국현무는 버럭 화를 냈다. 소일백호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소일백호는 금술을 펼쳐도 반보 무조 경지였다. 혈익봉황과 여러 거물들이 힘을 합쳐 공격하자 그를 제압할 수 있었다. 백호의 몸에 상처가 생기고 피가 흘렀다. 그러나 백호가 풍기는 살기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하하하, 아무도 나를 말리지 못한다!"

소일백호는 미친 듯이 계속해서 앞발을 휘둘렀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이때, 변화가 생겼다.

웅!

주변의 공간이 파도처럼 일렁이더니 가슴 떨리는 위압이 사방으로 번졌다.

선제의 영정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많은 빛을 뿜었다.

"백호!"

선제의 영정이 입을 열었다. 두 글자만 말했는데 천지가 진동했다.

"이건……."

분천황제와 혈익봉황 등은 놀랐다. 선제의 영정이 깨어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영감탱이, 어쩌라고요? 저를 공격할 겁니까? 처음부터 저를 경계한 거 다 압니다! 자, 해보십시오. 어떻게 저를 상대할지 봅시다!"

소일백호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거대한 몸집으로 선제의 영정에 달려들었다.

그의 분노가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진압하라!"

선제의 영정이 호통쳤다.

주변에 부문들이 생겨나더니 빛나기 시작했다. 부문들은 몇십 장으로 커지더니 순식간에 소일백호를 눌렀다.

푸확!

소일백호는 피를 토했다. 반보 무조 경지까지 힘을 끌어올렸지만, 선제의 영정 앞에서는 반항할 힘이 전혀 없었다.

혈익봉황 등은 그 모습에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소일백호는 고국의 개국 신수였기에 그들은 직접 공격할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은 선제에게 맡기는 편이 나았다.

"왜 아직도 이렇게 고집을 부리느냐? 왜 운명을 바꾸려고 하느냐? 운명을 바꾸는 게 그렇게 중요하느냐?"

선제의 영정은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영감탱이……."

소일백호는 겨우 목소리를 짜내 비아냥거렸다.

"운명을 바꾸지 않으면 어떻게 무조 경지로 오릅니까? 무조 경지가 되서 저는 모든 이들을 죽일 겁니다!"

소일백호는 살기가 가득해서 말했다.

"그래?"

선조의 영정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나라를 보거라. 네가 직접 건립한 것이지 않느냐? 그런데 왜 지키려 하지 않고 멸망시키려 하느냐?"

소일백호는 흠칫했다.

"영감탱이! 허튼소리 그만하십시오! 저는 이미 결정했습니다. 아무도 저를 막지 못합니다!"

소일백호가 포효했다.

부문에 진압된 호랑이 몸뚱이에서 흰색 호랑이 형상이 떠오르더니 진남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안 돼!"

혈익봉황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소일백호는 제 몸을 벗어나 원신으로 진남의 몸을 빼앗으려고 했다.

선제의 영정은 그 모습을 파악하고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백호야, 백호. 경고했잖아. 너는 지금 죽음을 자초하는 거다.'

"단청, 네 놈은 사사건건 나를 방해했다. 이제부터 네 몸은 내 것이다!"

소일백호의 원신이 흉악하게 웃더니 진남의 미간을 뚫고 식해로 들어갔다.

진남은 흠칫했다. 소일백호가 그의 몸을 빼앗으려 할 줄은 몰랐다.

다른 초식이라면 진남은 위기를 느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식해는 구리거울이 지키고 있었다.

"단청!"

혈익봉황, 진국현무, 용연수, 분천황제 그리고 강자들은 안색이 변해서 진남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수단을 드러냈다. 엄청난 빛이 진남을 감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단청이 백호에게 몸을 빼앗기게 해서는 안 돼! 금술을 사용해서라도 막아야 해!'

그 순간.

"꺼져!"

태고에서 전해 오는 듯한 여인의 차가운 목소리가 진남의 식해에서 울려 퍼졌다.

"이, 이건…… 시, 시조(始祖)……."

소일백호의 영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원신은 엄청난 힘에 맞아 튕겨 나갔다.

혈익봉황 등 강자들은 금술을 펼치려는 중이었다. 그때, 소일백호의 원신이 진남의 미간에서 튕겨 나왔다.

패기가 하늘을 찌르고 이성을 잃고 건방지게 굴던 소일백호는 바닥에 누워 겨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죽기 직전이었다.

"이게 무슨……?"

강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소일백호의 원신이 순식간에 튕겨 나오고 거의 죽을 뻔하다니?'

'무성 경지의 강자라고 해도 백호를 저렇게 만드는 건 불가능할 텐데?'

"왜, 왜……. 너, 너는 대, 대체 누구냐?"

소일백호의 원신은 바닥에 주저앉아 말을 더듬었다. 그의 눈은 아직도 겁에 질려있었다.

"단청 아우, 이놈은 내가 처리하게 해줘. 부탁이다."

그때 선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남은 한참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선제의 영정은 소일백호를 바라보며 호통쳤다.

"이제 네 잘못을 알겠느냐?"

"잘못? 죽이려면 죽이십시오……."

소일백호는 해탈한 표정을 지었다. 잘못이든 아니든 그는 이제 아무런 후회가 없었다.

선제의 영정은 손을 쑥 내밀더니 소일백호의 원신을 들어올렸다. 백호의 육체에서 빛이 번졌다.

소일백호는 석상으로 변해 선제의 영정 옆에 서 있었다. 한 쌍의 호랑이 눈이 대지를 굽어봤다.

"그래, 이제부터는 나와 함께 나라를 지키자꾸나……."

선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몸속에서 빛이 점점 사라지더니 결국 말 없는 조각상이 되어버렸다.

소일백호의 눈에 빛이 반짝이더니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사람과 호랑이 조각상이 좌우로 나란히 우뚝 서 있었다.

진남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소일백호가 몇백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선제의 영혼을 얻으려 한 것은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예전의 원한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싸우는 동안 혈익봉황과 진국현무도 아무리 화가 나도 소일백호에게 살초를 날리지 않았다.

그들 셋은 분천고국을 건립하면서 수많은 전쟁을 함께 겪은 사이였다.

주벽화와 적풍운이 오해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적이 된 것과 비슷한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제천대전의 풍파가 드디어 끝이 났다.

"여러분, 저는 선제의 영혼을 소유할 사람을 찾았습니다."

진남이 먼저 침묵을 깼다.

강자들은 일제히 진남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선제의 영혼은 지급 십품이고 운명을 바꿀 수 있었다. 그것을 얻는 자는 실력이 엄청나게 상승할 수 있었다.

용호는 두 눈을 반짝이며 진남을 쳐다봤다. 마치 '빨리, 빨리 나한테 준다고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진남은 어이가 없었다.

'너는 요수잖아? 그런데 선제의 영혼을 가져서 뭐 하려고?'

소일백호가 선제의 영혼을 욕심낸 건 진작부터 적풍운의 육체를 빼앗아 인류가 될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황자, 받으십시오!"

진남은 손가락을 튕기더니 흰색 영패를 망설임 없이 삼황자에게 넘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