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전쟁의 시작
소일백호와 적풍운은 동시에 눈빛이 반짝거렸다.
"선제……."
적풍운이 성큼 나서서 말을 하려고 했다.
적풍운은 단청이 거절했으니 분천고국에서 선제의 무혼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선제의 영혼이 엄하게 꾸짖었다.
"썩 꺼지거라!"
적풍운은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해서 제 자리에 멈추었다.
'왜 나더러 꺼지라고 한 거지? 무슨 뜻이야?'
사람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선제는 고개를 돌리고 진남에게 허허 웃으며 말했다.
"단청 아우, 이렇게 하는 게 어떠냐? 주인이 없는 내 무혼은 누구에게 가나 똑같다. 그러니 네가 내 무혼을 가질 자를 지목하거라."
선제의 말에 자리에 있던 거물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주인이 없는 무혼은 운명을 거스를 수 있다. 그런 대단한 기연인데 고작 단청에게 결정을 할 권리를 주겠다니?'
'단청은 선제의 무혼을 거절하고, 선제는 두 번이나 그에게 사과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단청에게 무혼의 주인이 될 자를 결정하라고 했다. 둘 다 미친 거 아니야?'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선제의 영혼이 이렇게 하는 것은 사실 진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근원의 힘, 신비한 무혼, 신비한 구리거울 그리고 무연각의 수호 이 네 가지 기연을 모두 가졌으니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겠는가? 선제의 영혼은 머지않아 단청이 엄청난 폭풍을 일으키며 적들을 소멸하고 상상도 못 할 정상에 오를 것을 예감했다.
게다가 주인이 없는 무혼이 누구에게 가든 선제의 의지대로 분천고국을 수호해야 했다.
그러니 선제는 일거양득이었다.
선제는 적풍운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그러니 백호가 적풍운의 뒤에서 꿍꿍이를 꾸미고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있겠는가.
진남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일이 이렇게 진행될 줄 몰랐다. 그러나 생각을 해보니 선제의 뜻을 대략 알 것 같았다.
"단청 아우, 나는 진지하다. 분천고국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그러니 나보다 상황을 잘 아는 네가 결정하기로 하자!"
선제의 영혼은 빛을 뿜더니 작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하얀색 영패로 변해 진남의 손에 떨어졌다.
선제는 무혼을 포기하고 영패로 되어 운명을 개변하려고 했다.
"단청 아우, 소일백호가 곧 공격할 거다. 네가 호위무사들을 부려도 된다."
선제는 진남에게 신념을 전했다.
진남은 눈에서 빛이 났다. 그는 선제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반문했다.
"왜 직접 공격하지 않으시고요?"
선제는 잠시 침묵하더니 느릿느릿 대답했다.
"나는…… 차마 공격하지 못하겠다."
침묵이 흘렀다.
진남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소일백호와 적풍운은 그의 적이었다. 그들이 진남을 먼저 공격했기에 진남은 당연히 갚아줄 생각이었다.
강자들은 진남의 손에 들린 흰색 영패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진짜 단청에게 결정하라고 한 거야?'
강자들은 두 눈이 이글거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저 영패를 얻으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단청!"
이때, 하늘을 흔드는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일백호가 엄하게 호통쳤다.
"선제 무혼의 주인을 어떻게 너 같은 인간이 결정할 수 있겠느냐! 네가 선제를 거절했으니 주인이 없는 무혼은 규정대로 적풍운이 가져야 한다!"
오늘 벌어진 일들이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서 소일백호는 무척 화가 났다. 그러나 쓸데없는 말을 더할 필요 없었다. 이제는 그저 단청에게서 영패를 빼앗아오면 될 일이었다.
쿵!
소일백호가 본 모습으로 변신했다. 거대한 호랑이가 천지를 뒤흔들 만한 살기를 풍겼다.
분위기가 변했다. 백호의 살기가 솟아오르더니 굵은 밧줄이 되어 주변을 꽁꽁 묶었다.
"소일백호, 그렇게는 안 될 겁니다!"
불꽃을 튕기며 어떤 그림자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주벽화였다.
그의 곁에 왕노, 임풍소도 나타났다.
오늘 벌어진 일들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결국 주인이 없는 무혼은 단청의 손에 들어왔다. 이번 싸움에서 그들이 이겼다.
이제부터는 소일백호를 막아야 했다.
"백호영 사람들은 전부 나서서 공격하라!"
소일백호가 호랑이 울음소리를 냈다. 울음소리는 하늘을 뚫을 것만 같았다.
슈슈슉!
권신들과 강자들이 동시에 하늘로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모두 강한 기운을 풍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은 사백여 명이 되었다.
이들은 소일백호가 백호영을 운영하면서 키운 인재들이었다.
소일백호의 크게 부르짖자 인재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군대를 이루었다.
"봉황영!"
"현무영!"
주벽화와 임풍소도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봉황영과 현무영의 많은 강자들은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하하. 고작 너희 두 개 영이 우리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죽여라!"
소일백호는 살기 등등해서 앞장섰다. 그는 성자의 힘을 드러내고 엄청난 기운을 풍겼다.
주벽화와 임풍소도 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분천고국에는 삼대 강자가 있었다. 그들 중 제일 강한 자는 역시 소일백호였다.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무성 경지 정상급이었다.
"소일백호 대인, 여기는 분천고국이요. 싸운다면 서로 기분이 상하니 선제의 분부대로 하는 게 어떻소?"
슉!
분천황제가 나타나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여전히 선제와 단청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단청을 좋게 봤다. 그리고 선제의 분부도 있었으니 당연히 단청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폐하! 삼대 군영 사이의 일인데 끼어드시겠습니까? 설마 저들 편을 들어주시는 겁니까?"
소일백호는 호랑이 눈을 부릅뜨고 엄청난 기운을 내뿜으며 말했다. 그는 전혀 양보하지 않고 오히려 황제를 몰아세웠다.
삼대 군영의 싸움에 분천황제는 끼어든 적이 없었다.
누구의 편을 들어도 그에게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천황제는 그 말을 듣자 단청을 힐끗 보더니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선제의 의지를 따를 뿐이오."
'선제의 의지를 따르겠다는 건 단청을 돕겠다는 말이다!'
"그래요, 아주 좋습니다. 저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오늘 저를 막는 자는 다 죽일 겁니다."
소일백호는 크게 부르짖었다. 그의 울음소리가 백호성을 뒤흔들었다.
그때, 이변이 생겼다.
펑! 펑! 펑! 펑!
허공이 연이어 부서지더니 여러 개의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그림자들은 존자 정상급의 경지였는데 모두 서른 명이었다.
그들 중 앞장 선 셋은 무성 경지였다. 특히 가운데에 선 중년 사내는 무성 경지 정상급이고 소일백호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안색이 변했다.
주벽화와 임풍소 그리고 분천황제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소일백호가 이런 짓까지 벌일 줄은 몰랐다.
그들은 상도맹의 맹주, 부 맹주 그리고 태상 장로였다.
소일백호가 상도맹과 손을 잡았다.
상역 동주의 사대 세력들 중 분천고국과 상도맹은 특별한 이유 때문에 모두 백호성에 자리 잡았다.
두 세력은 암암리에 신경전을 하기는 했지만 겉으로는 도리를 지켰다.
그런데 소일백호가 상도맹과 손을 잡은 것이었다.
주벽화와 분천황제 등은 분노했다.
상도맹의 세 무성 경지 강자까지 합하니 도합 여섯 명의 무성 경지가 있었다. 그리고 백호영과 상도맹, 봉황영과 현무영의 무존 경지 강자들은 부지기수였는데, 얼핏 세어도 몇백 명은 되었다.
강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풍기는 기운만으로도 제천도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제의 영정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여러 개의 빛을 뿜었다.
빛들은 얇은 비단처럼 바닥을 덮더니 강한 방어막을 형성했다.
선제의 영정에서 나온 호위무사들은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도 무언가 느낀 것 같았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소일백호, 상도맹의 맹주, 부 맹주, 태상장로의 무성 경지 기운은 마치 출렁이는 바다처럼 터져서 주변의 허공을 전부 무너뜨렸다.
그들 뒤에 선 강자들의 눈에서도 서늘한 빛이 번뜩였다.
엄청난 기운이 분천황제, 주벽화 그리고 임풍소를 진압했다.
"적풍운, 단청을 죽이고 영패를 빼앗거라!"
소일백호는 걸음을 멈추고 포효했다. 울음소리에 보이지 않는 힘을 실었다.
적풍운의 몸이 흠칫 떨리더니 가슴에 백호의 형상이 떠올랐다. 그는 어떤 힘의 도움을 받아 기운이 무성 경지로 솟아올랐다.
"제 몸속에 대체……."
적풍운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소일백호가 분신을 자신의 몸에 넣은 외에 다른 것도 숨겼을 줄 몰랐다.
"뭐 하는 게냐! 얼른 공격하거라!"
소일백호가 크게 꾸짖었다.
그들은 우세를 차지했다. 그러니 큰 싸움이 일어나도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적풍운을 통해 빨리 영패를 빼앗으면 싸우지 않고 쉽게 이길 수도 있을 것이었다.
"죽어라!"
정신이 든 적풍운은 앞뒤를 가릴 새 없었다. 일단은 단청을 죽이고 영패를 빼앗은 다음 다시 보자고 생각했다.
쿵!
적풍운의 몸에서 성자의 위엄이 터져 나와 진남을 목표로 정했다. 사방의 힘이 모여 엄청난 일격을 준비했다.
"안 돼!"
주벽화와 분천황제의 안색이 변했다.
그때, 상도맹의 맹주가 입꼬리를 올리더니 냉소를 지었다. 슉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절세 고술을 펼쳐 주벽화와 분천황제 등을 모두 묻어버렸다.
그들은 고술에 발목이 잡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적풍운은 엄청난 살초를 완성할 수 있었다.
"단청, 죽어라!"
적풍운은 고함을 질렀다.
'단청이 반보 무성 경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무성 경지의 공격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진남은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그는 호위무사들을 바라보았다. 무사들이 한걸음 나서더니 두 눈에 차가운 빛을 뿜었다.
"무엄하다! 감히 단청을 공격하느냐!"
호위무사들이 나설 새도 없이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공이 찢어지더니 오랜 기운을 풍기는 보라색 나무가 나타났다. 용연수였다.
용연수는 예전과 달리 무성 경지의 기운을 풍겼다. 무성 경지로 순조롭게 진급한 것이었다.
모든 것은 진남이 준 혼돈지기 덕분이었다. 그래서 제천대전에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자 용연수는 망설이지 않고 허공을 찢고 나타났다.
"아니……?"
소일백호 등 강자들은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용연수가 단청을 보호할 줄 몰랐다.
촤르륵!
용연수는 번개처럼 빠르게 공격했다.
수많은 풀, 꽃, 나무들이 진남을 둘러싸고 생겨나더니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진남을 완전히 감싸서 감추어버렸다.
쿵!
적풍운의 공격은 그것들을 뚫지 못했다.
적풍운은 소일백호의 힘을 빌어 무성 경지의 힘을 발휘한 것이기에 천지 대겁을 불러 무성 경지로 진급한 용연수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잘 됐어!"
주벽화 일행이 큰소리로 감탄했다.
"이형환위(移形換位)!"
이때, 소일백호가 움직이더니 앞발로 허공을 힘껏 내리쳤다. 진법이 공중에서 펼쳐지더니 그의 몸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적풍운의 몸이 진법에서 튕겨 나왔다.
소일백호는 어느새 진남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소일백호는 적풍운의 몸에 미리 손을 썼다. 소일백호는 적풍운이 선제의 무혼을 가지면 그의 몸을 빼앗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예상 밖의 일들이 벌어졌다.
소일백호는 미리 손을 써 놓은 덕분에 적풍운과 위치를 바꿀 수 있었다.
"죽어!"
소일백호는 뒷다리를 힘껏 구르더니 번개처럼 진남을 향해 달려갔다.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용연수나 분천황제 등 강자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단청을 죽이는 것은 그에게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