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화 단청의 무혼
선제의 영정은 적풍운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화르륵.
별안간 선제의 영정의 머리에서 보라색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보라색 빛은 미친 듯이 퍼져나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매우 오묘하고 복잡한 보라색 대진이 가슴 위에 떠 올랐다.
"적풍운은 지난번에 대진도 열지 못했는데, 어쩌려는 거지?"
강자들과 신하들은 가슴을 졸였다. 눈도 깜빡이지 못했다.
"법왕(法王) 열쇠!"
이때 적풍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부르짖었다.
그의 체내의 존자 힘이 들끓더니 팔뚝만 한 열쇠가 나타났다. 열쇠는 보라색인데 대진의 기운과 똑같았다.
주벽화, 임풍소 등을 포함하여 사람들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
"법왕 열쇠다. 적풍운이 법왕 열쇠를 가졌다!"
"법왕 열쇠는 선제의 유물이다. 여러 가지 진법을 열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 보물은 회멸되지 않았나? 한데, 저자가 어떻게 얻었지?"
"이게 바로 적풍운의 수(手)였구나."
주벽화의 눈에서 한기가 뿜어 나왔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발 성큼 내디뎠다. 엄청난 무성의 위압이 용솟음쳤다.
'법왕 열쇠가 나타났다. 대진이 곧 열린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동시에 그는 혈익봉황에게 신념을 전달했다.
"이제 양대 신수가 나타날 때가 되었습니다."
"주벽화 뭐 하려는 거냐?"
소일백호가 눈을 크게 뜨고 악기를 뿜으며 물었다.
이때 커다란 손이 허공에서 나타나 소일백호의 어깨를 눌렀다. 손을 쓴 사람은 분천황제였다.
"백호 대인, 흥분하지 마시오."
분천황제는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소일백호는 털을 꼿꼿이 세우고 몸을 버둥거렸지만 분천황제의 손을 벗어날 수 없었다.
분천황제의 손바닥이 산처럼 소일백호를 눌렀다.
휙!
주벽화의 커다란 손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적풍운을 잡으려 했다.
"멈추시오!"
손을 뻗자 위압이 엄청났다. 존자 정상의 적풍운은 주벽화를 막을 수 없었다.
"주벽화, 아쉽게도 오늘은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소."
적풍운은 크게 부르짖었다. 그의 체내에서 흰색 형상이 솟아올랐는데 위압이 엄청났다. 소일백호의 분신이었다.
소일백호의 분신은 나타나더니 하늘을 찌르는 살기로 큰 손을 부수고 주벽화에게 달려들었다.
주벽화는 눈을 찌푸렸다.
위쪽의 분천황제도 안색이 살짝 변했다.
소일백호만이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를 막겠다고?'
'어림도 없다!'
싸움이 곧 일어날 것 같았다.
주벽화는 봉황으로 변한 것처럼 소일백호의 분신을 공격했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소일백호의 분신을 깼다.
그도 안색이 살짝 변했다.
'혈익봉황과 진국현무는 왜 아직도 오지 않는 거지? 어서 오지 않으면 늦을 텐데!'
이때 적풍운이 손을 썼다.
법왕 열쇠는 엄청난 빛으로 변해 보라색 대진 중앙에 꽂혔다.
철컥.
세상이 조용해졌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만이 사방으로 퍼졌다.
우르릉!
엄청난 폭발음이 구천에서 울려 퍼졌다.
금빛 속에서 갑옷을 걸친 형상이 흐릿한 무사가 떠올랐다.
"대진이 열렸다. 지보 심사의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무사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적풍운! 나오시오! 개세봉황권(蓋世鳳凰拳)!"
주벽화는 어두워진 안색으로 사납게 호통쳤다.
수많은 봉황의 형상이 주먹을 감싸 들끓는 불로 변하여 금색 대진을 내리쳤다.
쿵!
동시에 호위무사의 두 눈에서 끝없는 한기가 반짝거렸다.
무사가 한 발짝 크게 내디디고 주먹을 날렸다.
펑!
주벽화는 안색이 변했다. 엄청난 힘이 세차게 밀려와 그는 몇백 보나 날려가 멈췄다.
호위무사는 무성 강자였다. 그것도 보통이 아닌 무성이었다.
"지보 심사는 지급 팔품 무혼 이상, 무성 경지 이하의 천재만 참가할 수 있소.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쳐들어오면 다 죽일 것이오!"
호위무사가 차갑게 말했다.
목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지급 팔품!'
'무성 이하!'
강자들은 숨이 턱 막혔다.
이 조건에 부합되는 사람은 분천고국 전체에 적풍운 한 명뿐이었다.
다시 말하여 지보 심사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적풍운 혼자였다. 적이 없고, 상대도 없었다. 그렇다면 지보는 그가 가질 게 뻔했다.
"하하하, 주벽화! 내가 어떻게 지보를 얻는지 눈 제대로 뜨고 보오."
적풍운이 크게 웃음소리를 냈다. 의기양양하고 기세가 엄청났다.
적풍운이 한 발 한 발 호위무사에게 걸어갔다.
이때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깐!"
* * *
하늘 위 끝없는 허공에 커다란 짐승 두 마리가 조용히 떠 있었다. 그들은 허공을 뛰어넘어 제천대전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보고 있었다.
두 거수는 혈익봉황과 진국현무였다.
"영감탱이, 좀 전에 왜 손을 쓰지 않았소?"
진국현무는 얼굴에 의문이 가득했다.
그는 적풍운을 막을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멈출 수 있었다.
"선제께서 전에 말씀하셨소. 선제가 남긴 지보를 금년에 누군가 가져갈 거라고! 이건 선제의 예언이기도 하고 그분의 바람이기도 하오. 단청은 근원의 힘도 있소. 보통이 아닌 것 같소. 마지막에 그 자식이 형세를 바꿀 수 있을 거요!"
혈익봉황은 안색은 덤덤했다.
"그게……."
"단청이 손을 썼소!"
혈익봉황은 안색이 엄숙해졌다.
진국현무는 다급히 바라봤다.
그의 눈에 의문과 기대감이 드러났다.
'단청이 형세를 바꿀 수 있을까?'
* * *
그 시각, 제천도장.
이런 상황에 누군가 말할 줄을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게다가 말한 사람은 단청이었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눈길을 돌렸다. 단청이 천자인에서 걸어 나왔다. 독이 채 가시지 않아 그는 안색이 창백했다.
그러나 단청의 발걸음은 천 근이라도 되는 듯한 기세가 있었다.
"뭐 하려는 거지?"
천재들과 강자의 눈에 의문이 드러났다.
형세가 분명했다. 거물들의 싸움이었다.
단청은 미련하지 않았다. 지금 나서는 건 틀림 없이 확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선배님! 저도 지보 심사에 참가하겠습니다!"
진남은 호위무사에게 공수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단청이 심사에 참가하려 하다니, 설마 지급 팔품 무혼을 갖고 있나?'
소일백호와 적풍운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단청, 함부로 하지 말거라. 너의 무혼은 등급이 안 된다. 참가할 수 없다!"
주벽화가 사나운 표정으로 호통쳤다.
그는 진남이 지급 육품 무혼밖에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주벽화가 호통치자 어리둥절하던 사람들은 더욱더 의문스러웠다.
'단청은 무혼 등급이 안 되는데 어떻게 심사에 참가하겠다는 거지? 억지로 쳐들어가면 죽음을 자초하는 거잖아?'
'설마 단청이 그렇게 미련할까?'
적풍운은 정신을 차리고 한숨을 쉬더니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단청 무혼 등급이 부족하면서 심사에 참가하겠다고? 꿈 깨라!"
휙!
그의 말이 끝나자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남이 불쑥 속도를 높여 달려왔다.
사람들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
'단청, 뭐 하려는 거지?'
분천황제는 놀라고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단청은 무혼 등급이 안 되니 마신포의 도움으로 심사에 참가하려는 건가? 그런데 무혼 등급이 안되면 심사에 참가한다고 해도 실패할 텐데?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진남이 안으로 들어갔다.
주벽화, 임풍소, 왕노 등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긴장되어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호위무사들이 손을 써 단청을 죽일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한참이 지났지만, 호위무사들은 손을 쓰지 않고 오히려 진남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심사에 참가하는 걸 허락했다.
'아니……?'
주벽화 등이 경악했다.
"무혼 등급이 안 된다고요? 누가 제 무혼 등급이 안 된다고 했습니까? 설마 영장님은 온 분천고국에 영장님만 지급 팔품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진남은 크게 소리치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성큼 한발 내디뎠다.
쿵!
그의 등 뒤에서 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다섯 개!
여섯 개!
일곱 개!
여덟 개가 되자 금빛 속에서 커다란 형상이 우뚝 솟아올랐다.
엄청난 위압이 뿜어 나와 장내를 휩쓸었다.
전신의 혼이 나타났다!
"눈을 똑바로 뜨고 보십시오. 저의 무혼은 지급 팔품입니다."
무혼을 드러낸 진남은 기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전신이 몸에 들어온 것처럼 기세가 엄청나고 하늘을 찔렀다.
적풍운, 소일백호, 분천황제, 임풍소 등 거물들과 다른 강자들은 이 광경에 경악했다.
'어떻게 된 거지?'
'단청의 무혼이 어떻게 지급 팔품이지?'
그들의 시선이 무의식 간에 주벽화에게 쏠렸다.
'방금 주벽화는 단청의 무혼 등급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주벽화는 경악했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진남의 무혼이 지급 육품인 건 하역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문도 노조 등 거물들도 직접 봤다. 그런데 어떻게 지급 팔품이 되었지?'
제천도장이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한참 후에야 강자들은 정신을 차렸다.
삼황자 등은 얼굴에 놀라움이 드러났다.
"지급 팔품 무혼이다. 단청의 무혼은 지급 팔품이다."
"좋다, 좋아. 진짜 잘 됐다. 두 강자가 겨루다니! 누가 이기고 누가 질지 모르겠구나!"
봉황영과 현무영의 편에 섰던 제 일 제후와 여러 강자들은 정신이 번쩍 들고 사기가 충만했다.
전에는 적풍운만 지급 팔품 무혼이라 지보를 빼앗을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젠 단청이 지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희망이 보이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백호영의 강자들과 소일백호, 적풍운은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단청이 그들의 계획을 방해할 줄 생각지 못했다.
'이 죽일 놈의 단청.'
'무혼 등급을 속이다니.'
'진작 알았더라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죽였을 거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결정되었다.
"양대 천재가 들어왔으니 지보를 쟁취하면 되겠다."
이때 호위무사가 들끓는 분위기를 무시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선제께서는 지보를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남겨준다고 하셨다. 첫 번째 관문의 진법이 열렸다. 두 번째 관문에서는 경지, 천부, 무혼을 겨루지 않는다. 인연만 본다. 이제 지보를 열겠다."
그의 외침이 끝나자 찰칵 찰칵하는 수없이 많은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내 선제의 영정의 가슴이 천천히 열리더니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엄청난 기운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지보가 나타났다.
지보가 열리자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지보는 분천고국이 건국될 때부터 계속 존재했다. 다만 모든 기의 천재들이 시도했지만, 첫 번째 관문의 대진도 열 수 없었다.
그런 지보가 지금 드러나게 되었는데, 그들이 어찌 주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남마저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봤다.
'지보는 도대체 어떤 물건이지?'
쿵!
대전 안의 빛이 한꺼번에 뿜어져 나와 흩어지더니 대전 안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