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화 맹독에 걸린 용호
사람들은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구황자는 역시 수단이 좋아. 현무영 영장과 관계를 맺었구나.'
"하하, 황자들과 천재들, 처음 뵙겠소."
용호는 건성으로 인사하며 사람들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아홉째야, 잡담은 그만하고 일단 자리에 앉자."
대황자는 손을 흔들더니 당연하게 오른쪽 첫 번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그나저나 셋째는 어디 있느냐?"
그의 말에 주위는 조용해졌다.
많은 황자들은 눈빛이 반짝였다. 재미있는 일이 곧 시작될 것 같았다.
황자들 중에서 삼황자와 대황자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큰형님, 저 여기 있습니다."
삼황자는 평온한 얼굴로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왜 거기에 앉았느냐?"
대황자는 놀란 척 서둘러 손짓하며 말했다.
"이리 오너라. 너는 셋째니까 내 아래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 자리에 앉으면 어찌 되느냐?"
다른 황자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구황자도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셋째 형님, 큰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큰형님 아래 자리에 앉으시지요."
많은 황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설마 구황자와 대황자가 손을 잡은 건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최근 삼황자는 여러 싸움에서 먼저 나서고 성과를 얻어와 황제의 칭찬을 여러 번 받았다.
대황자와 구황자는 어리석지 않았다.
오랫동안 삼황자가 일부러 참고 양보한 것은 때를 보며 힘을 모으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삼황자는 몇 년째 자세를 낮추고 있었지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큰형님과 아홉째의 호의는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는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큰형님 말씀대로 오늘 밤은 형제들과 천재들이 모여서 즐기는 자리입니다."
"허허, 셋째의 뜻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내 아래 자리는 너를 위해 남겨놓겠다."
구황자 송옥은 가만히 있다가 물었다.
"셋째 형님을 도울 천재를 모셔왔다고 들었는데……. 봉황영의 단청입니까?"
그 말에 있던 사람들의 눈길은 다시 삼황자에게 쏠렸다.
특히 몇몇 황자들이 데려온 백호영의 천재들이 눈빛을 매섭게 빛냈다.
백호영에서는 단청을 만나면 백방으로 내막을 알아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담담한 표정의 삼황자는 진남을 향해 전음 했다.
"단청, 나는 오랫동안 때를 기다렸다. 모든 상황에 대해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으니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상대방이 도발하면 알아서 하거라.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책임지겠다."
"알겠습니다."
진남은 눈을 반짝였다.
그는 더 이상 숨지 않고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인사했다.
"저는 단청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진남에게 집중됐다.
그리고 몇몇 동술을 아는 천재와 황자들은 진남을 훑으며 단서를 알아보려 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실망했다.
대황자는 표정이 변했다. 약간 음침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삼황자가 단청의 도움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아홉째는 알고 있었나?'
송옥은 앞에 서 있는 단청이 자신이 그토록 쫓고 있는 진남인 줄 몰랐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 봉황영에서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사이에 단청 도우가 주 영장의 후계자가 될 줄은 생각 못 했다. 정말 대단하구나."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사람들은 눈을 가늘게 떴다.
"단청 도우, 주 영장의 눈에 든 걸 보면 실력이 대단할 텐데 현무영 구십구기의 용호 영장과 획주(劃酒)를 겨루는 게 어떠냐?"
송옥은 느긋하게 물었다.
사람들은 흥미진진하게 단청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송옥이 단청과 용호에게 획주를 겨루라고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획주란 분천고국 황실에서 천재들이 무예를 겨루는 방식이었다.
두 천재는 술잔을 듣고 각종 공법을 움직여 술잔을 다른 천재의 앞에 밀어놓는다. 만약 그 천재가 술잔을 받지 못하면 반드시 술을 마셔야 한다.
천재 연회석, 황자 연회석에서는 획주로 우열을 가리기도 했다.
대황자는 흐뭇하게 송옥을 바라보았다.
구황자가 먼저 나서서 삼황자를 상대했다.
둘이 서로 싸우면 그는 즐겁게 구경을 하면 그만이었다.
사실 송옥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앞장서서 삼황자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단청의 실력을 알아보라는 현무영 영장의 부탁을 받았기에, 그도 어쩔 수 없었다.
단청은 혜성처럼 갑자기 세상에 나왔다.
분천고국의 여러 세력들은 그에게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단청은 대체 얼마나 대단할까? 설마 적풍운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저와 획주를 겨루라고 했습니까?"
진남은 묘한 눈빛으로 말했다.
"당연히 좋습니다."
그의 말에 황자들은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때 용호는 어떤 공주와 사랑을 속삭이느라 이곳 상황을 알지 못했다.
송옥은 용호에게 전음했다.
"용호, 획주를 겨루거라. 이긴다면 내 여동생을 소개해주마."
"여동생을 소개시켜 준다고?"
용호는 정신이 들어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누가 나랑 획주를 겨룰 거냐? 덤벼보거라. 혼자서 둘을 상대할 수도 있다!"
용호의 외침에는 용의 위엄이 담겨 있어 대전의 사람들은 마음이 흔들렸다.
특히 몇몇 백호영의 천재들은 그의 기운을 더욱 또렷하게 느꼈다.
그들은 안색이 약간 변했다.
현무영의 영장 용호는 엄청 강한 것 같았다.
대황자는 눈빛이 번쩍였다.
이렇게 강한 천재라면 단청을 상대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저자와 겨루거라."
송옥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는 용호의 실력을 가장 잘 알고 있었는데, 자신도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현무영 영장이 부탁한 것이니 용호에게 단청을 진압하라고 시키는 것도 맞았다.
"응?"
용호는 눈을 뜨고 힐끗 훑어봤다. 그는 웃는 표정의 진남을 보자 동공이 작아졌다.
진남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그는 공수하고 말했다.
"이분이 용호 도우입니까? 나는 단청입니다. 존함은 오래전부터 들었습니다. 한 수 잘 가르쳐주십시오."
황자들은 긴장해서 정신을 집중했다.
그들은 두 천재가 대체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 보고 싶었다.
"어……?"
용호는 하마터면 술을 뿜을 뻔했다.
'이 자식이 왜 여기에 있지? 그리고……. 진남과 획주를 겨루라고?'
용호는 현무영에서 기우를 얻어 경지가 빨리 상승했다.
그는 반보 무존 경지를 돌파하고, 무존 일 단계를 거의 싹쓸이했다.
하지만 진남이라는 놈이 얼마나 대단한지 용호는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진남은 제구성에서 만 리의 뇌겁을 불렀다.
만 리나 되는 뇌겁이었다.
"왜 그러느냐?"
옆에 있던 송옥은 눈살을 찌푸렸다.
'왜라니? 왜 하필 진남이야!'
용호는 화가 나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는 송옥의 얼굴을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이놈은 평소에 일 처리를 잘하더니만, 중요한 때에 피해를 주는군…….'
황자들도 이상함을 눈치채고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진남은 흥분했다.
그는 용호와 겨룬 적이 없었다.
진남이 말했다.
"용호, 수단을 펼쳐보시오."
'펼치기는 뭘 펼쳐!'
용호는 가슴이 답답했다.
그와 진남이 획주하면 그가 질 게 뻔하다.
'만약 진다면 체면은 어찌고……. 앞으로 어떻게 여자를 꼬시겠는가? 그리고 아까 나와 사랑을 속삭인 공주는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용호는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쳐쳤다.
그는 크게 외쳤다.
"단청! 절세 살초를 받거라……!"
용호는 몸이 솟아오르며 공중에 떠서 술잔을 들었다.
그는 진남을 향해 튕기려 했다.
주위의 천재들은 마음이 흔들렸다.
용호는 기세만으로도 그들을 겁먹게 했다.
'이런 수를 단청이 막을 수 있을까?'
바로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펑!
허공에 뜬 용호의 체내에서는 폭발음이 터져 나왔고, 용호는 입에서 선혈을 뿜어냈다.
방금 그 사나운 기세는 사라져 버렸고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더없이 위축됐다.
"아니……."
황자, 천재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갑자기 왜 폭발이 일어난 거지?'
진남도 어리둥절해졌다.
"안 돼……. 이럴 수가……."
용호는 가슴을 움켜주고 고통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전에 중독된 것이 아직 다 풀리지 않았구나……. 조금 전 독이 또 발작했으니 획주를 겨루는 것은 다음에 하자."
용호는 말하는 동시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의 몸에서 빛이 반짝이며 치료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마 전에…… 중독됐다고?'
진남은 그런 용호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용호와 겨루려는 그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다.
송옥은 정신을 차렸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안색이 약간 굳어졌다.
그는 서둘러 용호에게 전음했다.
"무슨 짓이냐? 왜 이자와 획주하지 않겠다고 하는 게냐?"
용호는 송옥의 전음을 듣고 가슴속에 가득 찬 울분을 토로했다.
"이놈은 단청이라고! 단청과 획주하라고 하다니! 날 망신시키려는 거냐? 내가 어찌 단청의 상대가 될 수 있느냐?"
용호는 욕설을 퍼부었다.
송옥은 얼떨떨했다.
송옥은 한참 만에 정신을 차렸다.
그는 용호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는데 그와 비슷한 경지에서 거의 무적이었다.
'경지가 이렇게 높은데 단청을 두려워한다고?'
"가만히 좀 있으라고!"
용호는 언짢은 듯 말했다.
송옥의 안색이 이내 굳어졌다.
그는 단청이 강하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강하다고 해도 용호의 경지라면 기껏해야 약간 손해를 감수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꾀병을 부리며 체면을 크게 손상시킬 필요가 있을까?'
송옥은 의심됐지만, 용호를 꾸짖지는 못했다.
용호가 현무영 영장의 눈에 들었기 때문에 그는 용연비경에서 용호의 도움이 필요했다.
'몇 개월 동안 찾아봤지만, 진남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어. 이번 많은 황자 모임에서 내가 초대한 천재가 주눅 들었다는 게 소문나면 조롱당할 거야. 아바마마가 알게 되면 날 어떻게 볼지…….'
송옥은 속으로 여기까지 생각하자 용호를 바라보는 눈빛이 차가워졌다.
만약 단청이 용호의 말처럼 강하지 않다면 그때 가서 용호에게 확실하게 따질 것이었다.
송옥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수했다.
"정말 미안한데 우리 쪽에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이번 획주 시합에 우리는 참여하지 못합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는 어색한 표정으로 거듭 사과를 했다.
주위의 황자들은 경멸의 눈빛을 보냈으나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대황자가 언짢은 듯 입을 열었다.
"다 이해한다. 맹독에 걸렸다고 하지 않았느냐? 짧은 시간에 해독하지 못한 것도 이해한다."
대황자는 일부러 '맹독' 두 글자에 힘을 주었다.
송옥은 더욱 어색한 표정을 지었지만 반격할 수는 없었다.
대황자는 속이 후련했다.
하지만 구황자를 혼낸 것은 단지 그의 목적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제 삼황자를 타격해야 하는 그는 세 황자에게 눈짓했다.
세 삼황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의 천재들에게 신념을 전했다.
"용호 도우가 단청 도우와 획주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우리가 나섭시다."
한 천재가 일어서서 공수하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