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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전혼-329화 (329/1,498)

329화 술 석 잔

"참, 사망 대제는?"

진남은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눈빛이 번뜩였다.

"백호성에서 대황자의 초대를 받아 대황자와 함께 살고 있다."

여인의 목소리가 말했다.

"대황자?"

진남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옛말에 틀린 게 없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사망 대제를 용연비경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끝내겠다."

여인의 목소리가 한마디를 던지고 구리거울은 빛으로 변해 진남의 체내로 날아들더니 조용해졌다.

진남은 멍하니 있다가 다급히 물었다.

"구리거울, 나중에 혼돈지기를 충분히 줄 테니 사람의 위치를 알아봐 줄 수 있느냐?"

"구리거울……?"

진남이 연신 물었지만, 구리거울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진남은 쓴웃음을 지었다.

구리거울은 신통력이 뛰어나 사람을 알아보는 일조차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아쉬운 건 구리거울은 완전히 진남의 소유가 아니라서 말을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됐어. 사람들의 행방만 알면 되지 뭐."

'이번 일은 삼황자가 동편을 준 덕분에 구리거울이 모습을 드러낸 거지. 그에게 신세를 졌구나.'

진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이번 용연비경에서 최선을 다해 서로 도와주자. 마침 그놈을 처리할 수도 있잖아.'

진남은 시선이 차갑게 변했다.

'사망 대제, 이번 싸움에서 어디 또 도망갈 수 있나 보자!'

* * *

사흘 뒤.

진남은 무술을 연마하는 대신 책을 읽었다.

수행대전 이 층에는 많은 고적들이 있었다.

고적들에는 상역 동주의 인문, 풍경, 기이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기재되어 있었다.

진남은 사흘 동안 수천 권의 고적을 모두 읽었고, 상역 동주에 대해 더 객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동주 목부는 뭔지 모르겠네. 구리거울은 목부가 무척 대단하다고 했어. 선배가 돌아오면 다시 물어보자.'

진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수행전 일 층에 갔다가 설몽 일행이 아직 수행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방해하지 않았다.

그는 왕노와 인사를 나눈 뒤 자리를 떴다.

진남은 지금 존자의 몸이었지만 허공을 찢을 수 없었다.

그는 무려 여덟 시진을 날아서 백호성에 도착할 수 있다.

웅장한 백호성을 보고 진남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영패를 보이고 곧장 들어갔다.

"황궁으로 가야지."

진남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분천고국 황실의 사람들은 황궁에 살고 있다.

황궁은 외전, 중전, 내전으로 나뉜다. 외전에는 황자, 공주와 군대가 살고 있었다. 중전에는 권신(權臣, 권세를 잡은 신하)과 황실의 강자들이 살고 있었다.

내전에는 황제가 살고 있었다.

진남은 삼황자의 영패로 순조롭게 황궁에 들어갔다.

막 황궁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넓은 도로에 화초들이 만연해있었다.

궁전들은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었고 갑옷을 입은 무사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들은 엄청난 기세를 풍기며 주변을 순찰했다.

"분천고국의 황궁답게 성중지성(城中之城)과도 같구나. 풀 한 포기, 궁전 하나도 전신의 왼쪽 눈으로 쉽게 엿볼 수 없구나."

진남은 마음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고적에 따르면 백호성은 반보제기로, 성도지기를 능가하는 엄청난 존재라는 소문이 있다.

다만, 진남은 백호성의 강대함이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진남은 시녀의 안내로 큰 호수에 도착했다.

봉황호(鳳凰湖)이고 방원 사백여 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호수는 적색이고 햇빛을 받아 매우 아름다웠다.

봉황호를 중심으로 주위에는 관저(官邸)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관저는 모두 서른여섯 채였는데, 서른여섯 개의 서로 다른 풍격을 뽐냈다.

진남은 한 관저 앞에 도착했다.

그 관저는 방원 십 리를 차지했는데, 벽돌과 기와 그리고 벽까지 모두 붉은색이어서 무척 절제된 느낌이었다.

진남이 문을 두드리자 주름투성이의 노인이 문을 열었다.

노인은 등을 굽히고 그를 살피더니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젊은이, 삼황자께서 자네를 무척 중하게 여기오. 그러니 실망시키지 마시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관저로 들어갔다.

그는 몇 걸음 걷다가 멈추더니 담담하게 웃었다.

"선배님, 존자 팔 단계의 경지이시군요. 아주 훌륭합니다. 상역 동주에서도 일인자니까 기회가 되면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의 눈에는 섬뜩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내 경지를 간파한 거야……? 정말 강대한 동술이구나.'

"하하하! 단청 도우, 이분은 임백(林伯)이다. 어려서부터 날 돌봐주셨지."

인기척을 듣고 나온 삼황자는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자, 같이 들어가자. 안에 또 다른 천재도 함께 왔다."

황자들은 두 명의 천재를 데리고 용연비경에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삼황자는 단청 외에도 다른 사람을 한 명 더 찾았다.

"알겠습니다."

진남은 흥미로운 듯 삼황자를 따라 대전에 도착했다.

대전 중앙에는 원형 옥탁이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여러 가지 향기로운 음식들이 차려졌다.

또 여러 개의 옥병이 놓여있었는데 그 안에는 금색의 술이 담겨 있었다.

옥탁의 옆에는 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 청년은 짧은 머리에 백호영의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삼황자가 진남을 데리고 들어갔지만, 청년은 고개도 들지도 않았다.

'무황 정상, 지급 오품 무혼이면 괜찮은 편이군.'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에 앉았다.

삼황자는 술잔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은 모두 훌륭한 인재들이네. 두 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무척 기쁘구나. 자, 어서 잔을 들게."

삼황자가 술을 들자마자 그 청년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삼황자, 초월급 천재를 모셔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초월급 천재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봅시다."

청년이 고개를 돌리며 두 눈에서 신광을 뿜었다.

펑!

진남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신광이 그의 몸에 떨어졌지만, 옷이 살짝 탄 것 외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오? 아주 강한 육신이구나."

청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삼황자는 언짢았지만,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윤정(尹程) 도우, 뭘 그렇게 흥분하느냐? 내가 너에게 소개하는 것을 잊었구나. 지금 소개하겠다. 이분은 주 영장의 후계자이자, 봉황영의 구십구기 영장인 단청 도우이다."

"단청?"

윤정의 동공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백호성뿐만 아니라 상역 동주에 단청의 이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특히 백호영의 각 천재들은 단청에 대한 각종 정보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삼황자가 단청 도우를 모시고 올 줄은 생각 못 했습니다."

윤정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단청 도우, 주 영장의 후계자이니 경지가 높지 않소? 오늘 좀 보고 싶은데 단청 도우의 생각은 어떻소?"

진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삼황자에게 의견을 구했다.

삼황자는 표정이 굳어서 진남에게 전음했다.

"윤정은 큰형님이 내 옆에 꽂은 사람이다. 백호영 사람들 앞에서 터놓고 조건을 제시했기에 내가 나서서 쫓아낼 수 없다."

삼황자의 뜻은 분명했다.

진남은 술잔을 들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윤정이라고 했소? 우린 삼황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데 서로 겨루다가 감정을 상할 일이 있소?"

"하하하, 왜 감정 상하게 하겠소? 우린 단지 한번 겨루어 보는 것이지 목숨 걸고 싸우는 것도 아니잖소. 단청 도우는 주 영장의 후계자라는 사람이 설마……."

윤정은 일부러 멈추고 어조를 길게 빼며 말했다.

"겁먹은 건 아니겠지?"

삼황자가 불러온 다른 천재라면 윤정은 이 정도로 몰아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이 사람은 달랐다.

이 사람은 단청이기 때문이었다.

백호영에 있을 때 허오 부 영장은 명령을 내렸다.

백호영의 성원이라면 단청을 만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지를 똑똑히 알아보라고 했다.

그는 성공한 사람에게는 상품이 두둑하게 치러질 것이라고 했다.

윤정은 어리석지 않았다.

단청이 목성야를 물리치고 주 영장의 눈에 들었으니 경지가 대단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도 자신감이 있었다.

비록 그가 단청의 상대가 되지 못하지만, 단청의 수행을 알아보는 일은 충분할 것이었다.

"썩 꺼지시오."

진남은 술잔을 던졌다.

"고작 술잔으로 날 꺼지게 할 수 있을 것 같소? 웃기……."

윤정은 무황 경지 정상급의 힘을 발휘하며 술잔을 잡았다.

그러나 술잔을 잡는 순간 그는 '웃기네'라는 말을 채 뱉지 못했다. 커다란 충격이었다.

'엄, 엄청난 힘이다.'

"백호금천결(白虎金天訣)!"

윤정은 반응이 빨랐다.

그가 크게 외치니 손 형상이 나타나 그의 두 팔을 갑옷처럼 감쌌다.

윤정의 팔 힘이 빠르게 커지더니 겨우 술잔을 막았다.

그런데도 그는 진남의 힘에 뒤로 몇십 보나 밀려났다.

제 자리에 앉아서 지켜보던 삼황자의 눈이 번뜩였다.

'단청은 역시 평범하지 않구나.'

"윤형은 백호영의 천재이고 재능이 비범하며 영웅이라 불릴만한 훌륭한 사람이오. 내가 한 잔 올리겠소."

윤정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진남은 빠르게 말했다.

그는 술잔을 들더니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진남은 미련하지 않았다.

윤정은 이유 없이 그를 도발했다.

삼황자의 말까지 들어보니 분명 의도가 있는 사람이었다.

진남은 윤정을 단단히 혼내주려고 했다.

쿵!

술잔이 깨지면서 폭발음이 들렸다.

첫 잔보다 더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단청, 너……!"

윤정은 표정이 확 달라졌다.

"무혼은 모습을 드러내거라!"

윤정은 순식간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등 뒤로 금세 다섯 개의 금빛이 반짝이며 암석으로 된 거인 형상이 떠올랐다.

"부숴라!"

암석 거인은 팔을 휘둘러 엄청난 힘으로 술잔을 내리쳤다.

펑!

폭발음과 함께 술잔이 부서지면서 수많은 조각들이 주위의 벽을 때렸다.

벽에서 진법이 운행되더니 조각들을 모두 막아냈다.

그러나 윤정은 다시 뒤로 몇십 보 밀려났다.

'대, 대단한 육체야…….'

그 순간 윤정의 안색은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첫 잔의 힘만도 엄청났지만 두 번째 잔은 더 대단했다.

"윤정 도우, 한 잔 더 받으시오."

진남은 술잔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쿵!

술잔에서는 하늘을 찌르는 불빛이 솟구쳐 봉황의 형상으로 진화했다.

방대한 기운이 위로 솟구치며 대전을 채웠다.

"헉……."

윤정은 안색이 확 바뀌었다. 그는 두려워서 심신이 떨렸다.

윤정은 후회가 가득했다.

'단청의 실력이 이렇게나 강한 줄 알았더라면 조용히 간첩 노릇만 할 걸 그랬어. 괜히 나서서 단청을 떠봐서는…….'

"무혼, 방어하라! 왕도지기!"

윤정은 대적에 맞서 자신의 무혼과 법보를 최대로 운행시켰다.

무혼과 법보는 커다란 방어막이 되어 그를 보호했다.

쿵!

폭발음과 함께 수많은 불빛이 쏟아졌다.

왕도지기의 법보는 부서졌고, 윤정의 무혼도 타격을 입었다.

"악!"

비명이 울려 퍼지더니 윤정의 몸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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