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진남을 믿어야 한다
구자진음을 전수받은 궁양은 끊임없이 수련하며 하역의 동향을 잘 살폈다.
죽음의 바다가 열릴 때 진남의 처지를 들은 그는 바로 출관하여 진남을 도우러 온 것이었다.
"양 형!"
진남은 표정이 활짝 폈다.
그는 여기서 궁양과 상봉할 줄 상상도 못 했다.
묘묘 공주도 정신을 차려보니 진짜 궁양이었다.
"자, 지금은 우리가 옛날 얘기할 때가 아니다. 이 자들은 우리에게 맡기고 너는 얼른 소중황을 쫓거라."
궁양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패기가 넘쳤다.
진남은 전신의 왼쪽 눈을 굴려 궁양을 살폈다.
그의 경지를 확인한 후 놀란 진남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좋습니다."
말이 끝나자 진남은 발끝으로 땅을 차더니 원영을 거두고 앞으로 달렸다.
"도망가려고? 꿈 깨거라!"
양 봉주 등은 화가 났다.
'이놈은 대체 누구길래 우리를 다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건방지다!'
스물다섯 개의 무황 경지가 순식간에 폭발했다. 기운이 대단했다.
"너희를 죽이진 못하지만, 너희를 막는 건 충분하지."
궁양은 크게 부르짖더니 손을 뒤집어 스물다섯 명에게 힘껏 휘둘렀다.
그의 손바닥에서 '병'자가 쏟아졌다.
"죽여라!"
하늘을 찌를 듯한 살기가 내하교에 가득 찼다.
'병'자는 병사들로 변했다.
그들은 스물다섯의 강자들에게로 돌진했다.
구자진언은 글자마다 신비한 힘이 가득해서 창람대륙의 강자들이 침을 흘렸다.
궁양이 펼친 '병'자는 예전의 위엄을 가질 수 없어도 신병들의 영을 불러들이는 건 충분했다.
"싸워라!"
궁양은 쉬지 않고 또 소리쳤다.
묘묘 공주, 사마공, 조방의 눈에 놀란 빛이 스쳐 지나갔다.
'궁양이 이렇게나 강하다니!'
그들은 흥분해서 각종 힘을 폭발하며 양 봉주 등에게 사납게 달려들었다.
이들은 경지가 양 봉주 등보다 낮았지만, 절세 인재들이라서 수단이 많았다.
상황이 바뀌었다.
양 봉주 등은 궁양 등에게 갇혔다.
진남은 후방의 형세를 힐끗 보더니 정신을 차리고 온 힘을 다해 내하교를 건넜다.
그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수많은 원혼들이 포효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사마공의 도법도 작용이 점점 약해져 진남은 환상에 시달렸다.
환상은 예전의 진천, 철삼 등 진남이 친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흉악한 표정으로 진남을 괴롭혔다.
"내 도심이 얼마나 단단한데 고작 귀신들 따위가 방해하려고 해?"
진남이 크게 호통치자 그의 머리 위에 종이 생겨났다.
뎅 하는 소리와 함께 내하교의 신비한 힘이 순식간에 부서졌다.
진남이 발끝을 튕기자 수많은 성공지뇌가 몸을 감쌌다.
"청심당마결, 마두를 멸하라!"
성공지뇌는 태고의 하늘에서 온 뇌정이라서 사악한 힘이 침투하지 못했다.
진남은 내하교를 건너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소중황을 쫓아갔다.
소중황은 오만한 표정으로 내하교를 건너다가 뒤쪽의 엄청난 기운을 느끼고 안색이 크게 변했다.
"진남, 어떻게……."
"죽어라!"
진남의 전신의 왼쪽 눈에서 뇌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원영과 힘을 합해 소중황의 머리 위에 눈의 형상을 만들었다.
눈의 형상에서 뇌광이 나와 소중황을 공격했다.
소중황은 안색이 변했다.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경지는 고작 무황 경지 칠 단계였다.
진남과 싸우면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만약 진짜 진남과 엮이기라도 한다면 사신대에 오르기 전에 죽을 것이었다.
"큰일이다!"
양 봉주 등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들은 정세가 변해서 자신들이 불리한 위치에 처할 줄 몰랐다.
'만약 소중황이 두 번째 관문에서 죽임을 당한다면 문도 노조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묘묘 공주, 용호요종 등은 움찔하더니 눈에서 강렬한 빛을 뿜었다.
소중황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규칙을 위반했으니 죽음의 바다를 대표하여 심판한다. 썩 꺼지거라!"
이때 커다란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시관이 진남에게 손을 날렸다.
진남은 안색이 변했다.
사시관은 반보 무성 경지였다.
진남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진남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사시관의 손에 맞아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기 전에 그는 튕겨져 날아갔다.
묘묘 공주, 궁양 등은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사시관이 손을 쓸 줄 몰랐다.
사시관의 경지가 높고 또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들은 막을 새도 없었다.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 진남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시뻘겋고 무수한 원혼들이 크게 소리치는 맹파하에 떨어졌다.
맹파하의 원혼들은 맛있는 음식을 만난 것처럼 흥분돼서 완전히 미쳐버렸다.
맹파하는 죽음의 바다에서 사령이 가장 많은 곳이다.
사시관은 진남을 맹파하에 집어넣으면 반드시 죽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하하, 진남 나를 공격해보지!"
소중황은 순간 당황하더니 이내 귀에 거슬리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는 흥분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겨 내하교 건너편으로 달렸다.
"가자!
양 봉주 등은 표정이 활짝 펴서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일제히 달아났다.
"진남!"
묘묘 공주는 동공이 바늘처럼 작아지더니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진남을 향해 몸을 날렸다.
"돌아와!"
용호요종이 손을 내밀어 그녀를 잡고 고함을 질렀다.
"너 미쳤어? 이렇게 뛰어내리면 목숨을 잃을 거야!"
"놔!"
묘묘 공주의 눈에 분노가 솟구쳤다.
그녀는 사령들이 진남을 삼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다들 조용하십시오!"
궁양이 진지한 목소리로 호통쳤다.
"다들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세요. 우리 진남을 믿어봅시다. 그는 절대 죽지 않을 겁니다. 맹파하라 해도 그의 목숨을 앗아갈 수 없습니다."
궁양은 흔들림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묘묘 공주는 흠칫하더니 용호산맥에서 나타났던 신물을 생각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맞아! 진남은 절대 죽지 않는다!'
소중황과 양 봉주 그리고 사시관은 그 말을 듣자 비웃음을 드러냈다.
'맹파하에 떨어졌는데 안 죽는다고? 진남이 신도 아니고!'
"사시관!"
묘묘 공주, 용호요종 등의 시선이 일제히 사시관에게 쏠렸다.
그들의 눈에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가 일었다.
'권력으로 멋대로 행동하는 것도 모자라 직접 손을 쓰다니!'
"사시관이라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시오!"
사마공이 화를 내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는 이마에 핏줄까지 솟아올랐다.
"제천구신, 구혼만법, 사해지령."
사마공이 손을 휘두르자 세 개의 부적이 나타났다.
부적은 불을 붙이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타더니 자욱한 연기가 공중에 흩어졌다.
"너, 설마……."
사시관의 시선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는 생전에 반보 무성 경지로 상역 동주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수단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부적을 써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귀신을 깨울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설마 죽음의 바다에 제사를 지낸 건가?'
순간, 죽음의 바다 하늘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하늘에 수많은 검은 구름들이 모여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을 가리고 태양을 가렸다.
검은 구름 한가운데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겼는데 그 속에는 뇌정들이 번쩍거렸다.
* * *
같은 시각, 죽음의 바다 밖.
문도 노조와 청룡 성주, 비양 성주 등은 먼저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들은 동시에 죽음의 바다를 쳐다봤다.
거대한 바다가 일렁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문도 노조가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무인들도 이 같은 상황을 감지했다.
사신 삼 관은 오직 세 번째 관문 사신대에 오를 때만 바다 위에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이제 겨우 두 번째 관문인데, 왜 이변이 생겼지?'
* * *
죽음의 바다, 두 번째 관문 내하교.
소용돌이 속에서 시커먼 손이 내려와 사시관을 콱 움켜잡았다.
사시관이 반보 무성 경지라고 해도 커다란 손 앞에서는 개미 같았다.
큰 손의 주인은 죽음의 바다의 영이었다.
"죽음의 바다, 저를 죽이면 안 됩니다. 저는 사신 삼 관을 주재하는……."
사시관은 혼이 나가서 비명을 질렀다.
전에 보여주던 패기와 오만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사시관은 너무 놀라서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러나 큰 손이 머뭇거리자 안도하는 동시에, 온몸에 힘이 돌았다.
그의 눈에 잔인한 빛이 돌았다.
계획만 성공하면 그는 육신을 회복하고 죽음의 바다를 떠나 진정한 무성 경지로 진급할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수백 년 동안 죽음의 바다에 갇혀 있었다.
그는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자신의 모습을 참을 수 없었다.
또 죽음의 바다 하인 노릇을 하는 것도 지쳤다.
자유를 위해서 그가 하는 일들은 가치가 있었다.
사신 삼 관이 끝나면 그는 규칙 위반으로 죽음의 바다가 벌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이미 성공적으로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문도 노조가 손을 쓴다고 했으니 걱정할 것도 없었다.
만약 죽음의 바다가 두렵지 않았다면 그는 좀 전에 진남을 한 방에 죽였을 것이었다.
소중황이 이길 가능성이 컸지만, 그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
"하하하, 죽음의 바다로 나를 죽이려고 하다니 너도 참 꿈이 야무지구나……."
사시관은 사마공을 보며 미친 듯이 웃었다.
'여기서 나가면 난 네 놈들을 다 산산조각 내서 죽일 거다!'
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의 칠흑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뇌정이 날아왔다.
쿵! 쿵! 쿵!
번개는 사정없이 사시관을 내리쳤다.
사시관은 죽은 사람이라서 뇌정을 무서워했다.
특히 죽음의 바다가 내리는 뇌정은 더 무서웠다.
사시관은 마치 가시가 돋친 채찍으로 몸을 내리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머리를 부둥켜안고 비명을 질렀다.
쿵! 쿵! 쿵!
총 백서른여덟 번의 번개가 내리친 후 하늘의 검은 구름은 흩어지고 평온을 되찾았다.
사시관은 번개에 맞아 검게 타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사시관의 두 눈의 두려움이 사라졌다.
사시관은 시뻘건 눈으로 사마공 등을 보며 한마디 했다.
"내 반드시, 반드시 너희들을 죽지 못해 살게 만들어 주겠다!"
사시관은 더 이상 다른 짓은 할 엄두를 못 내고 내하교의 건너편으로 날아갔다.
가면서도 잊지 않고 비웃었다.
"하하, 진남은 맹파교에 떨어졌다. 사령들이 그의 육신을 찢고 심장을 물어뜯을 것이다. 하하하!"
사시관의 웃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묘묘 공주, 용호요종, 조방, 사마공의 눈에서 분노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몸도 덩달아 떨리고 기운이 일렁거렸다.
궁양의 눈에도 전에 없던 한기가 드러났다.
'사시관은 죽음의 바다 영혼에게 벌을 받고도 여전히 고약하구나.'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반드시 진정해야 합니다."
궁양은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서야 화를 누르며 말했다.
"흥분하면 안 됩니다. 아직 사신 삼 관을 진행 중입니다. 사시관에게 우린 대항할 수 없습니다. 일단 반드시 사신대로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남이 돌아왔을 때 혼자 대응할 수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