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염치없는 사시관
소중황의 말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사시관, 양 봉주 그리고 모든 무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꼬리가 비틀렸다.
'소중황, 나왔으면 순위부터 확인할 순 없나?'
진남 등은 모두 담담하게 그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중황은 그 모습에 버럭 화가 났다.
'이놈들이 감히 나를 무시하다니!'
"허허, 너희들 꼴을 보니 백여 개나 들어갔겠군. 절세 천재가 고작 그 정도 혈분에 들어가다니 부끄럽구나!"
소중황은 비아냥거렸다.
양 봉주 등은 보다못해 기침을 했다.
양 봉주가 낮게 말했다.
"중황, 먼저 순위부터 확인하거라."
"보든 말든 뭐가 다릅니까? 제가 말했잖습니까. 이번에 일 위는 반드시 접니다. 진남과 다른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가……."
소중황은 양 봉주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조롱했다.
그러나 양 봉주의 표정이 점점 이상해지자 덜컹했다.
'혹시 변고가 생겼나?'
소중황은 얼른 돌아서서 순위를 확인하더니 표정이 굳었다.
'이거 잘못된 거 아니야? 이천여 개? 이게 무슨 장난이야!'
그는 사백여 개를 가지고 고작 칠 위를 했다.
무인들은 소중황의 표정을 보자 참을 수 없었다.
"하하하!"
"웃겨 죽겠다."
"소중황은 얼굴이 뜨겁겠네."
"……."
무인들은 모두 큰소리로 웃었다.
소중황의 행동이 너무 웃겼기 때문이었다.
양 봉주는 얼굴이 후끈거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소중황은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방금 전 일을 떠올렸다.
그는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진남은 소중황을 힐끗 보더니 모른 척하고 사시관에게 말했다.
"선배님, 약속대로 제가 일 위를 했으니 보리심을 주십시오."
그 말에 웃음소리가 멈추고 모든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보리심!
보리심을 복용하면, 무예 천부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진남은 현급 십품 무혼에 소중황과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진남이 보리심을 먹는다면 사신대에 올라 누가 이기고 질지 알 수 없을 것이었다.
"보리심?"
사시관이 차가운 시선으로 딱딱하게 말했다.
"진남, 내가 너를 벌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보리심을 달라고? 너희 여섯은 전부 규칙을 위반해서 전부 죽어야 한다. 그러나 어렵게 정상급 인재가 된 것을 봐서 처벌하지 않고 따지지도 않겠다. 이번 상품은 칠 위인 소중황에게 주겠다."
그의 말에 장내가 침묵에 휩싸였다.
'소중황에게 상을 준다고? 일 위부터 육 위까지 전부 규칙을 위반했다고?'
무인들은 모두 알아차렸다.
사시관은 대놓고 소중황 편을 들고 소중황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뭐?"
진남은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묘묘 공주, 사마공, 용호요정과 조방도 눈빛이 싸늘해졌다.
'사시관, 이렇게 염치없을 수 있나?'
* * *
같은 시각, 죽음의 바다 밖.
사망수를 통해 죽음의 바다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도 안쪽의 상황을 분명히 보았다.
그들은 소중황이 진남을 비아냥거릴 때 다 같이 웃었다.
그러나 사시관의 말을 듣자 다들 안색이 변했다.
송옥, 묘어심, 육간은 당연히 내막을 조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시관의 말을 듣자 동시에 비양 성주와 문도 노조를 쳐다봤다.
"염치없다!"
당청산은 눈빛이 차갑고 살기가 하늘에 닿을 듯했다.
단목 봉주 등도 화가 잔뜩 난 표정이었다.
그들은 당연히 이 모든 것이 문도 노조의 계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염치없다니? 당청산! 말조심하거라!"
문조 노도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위엄 있게 고개를 들고 호탕하게 웃었다.
"청룡 성주, 이거 안 됐소. 자네 사람들이 규칙을 다 위반했으니 어쩌겠소? 소중황은 무예 천부가 충분히 강한데 보리심까지 얻었으니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되지 않소. 허허허."
온 하늘에 의기양양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송옥, 묘어심, 육간은 눈빛이 싸늘해졌다.
'역시 문도 노조구나. 소중황이 지급 일품의 무혼을 가지고 있어서 승산이 분명하지만, 이런 수를 쓰다니.'
무인들은 숨도 쉬지 못했다.
'문도 노조의 말대로 소중황은 보리심까지 얻었으니 얼마나 강해질까?'
진남이 소중황과 사신대에 오르면 당연히 질 게 뻔했다.
당청산 등은 모두 살기가 솟아올랐다.
그들은 백 년 전부터 패기 넘치는 인재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억압을 받고 있으니 당연히 참을 수 없었다.
"당청산, 사소한 일로 화낼 필요 있느냐."
그들이 화를 내려 하자 청룡 성주가 담담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스승님."
당청산 등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다가 청룡 성주의 눈을 보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화를 억지로 삼켰다.
보라색 보좌에 앉은 문도 노조는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청룡 성주, 아직도 침착할 수 있다니. 사신대에 가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
* * *
죽음의 바다, 첫 번째 관문, 만혈분.
사시관은 사람들의 눈빛을 무시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맑고 투명하며 신비한 과일이 소중황의 손에 떨어졌다.
소중황은 과일을 얻자 방금 전 굴욕적인 장면이 떠올랐다.
"진남, 일 위를 하면 뭐 하냐? 보리심은 결국 내 거잖아?"
소중황은 호탕하게 웃는 와중에 이성을 잃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보리심을 삼켰다.
쿵!
소중황의 몸에서 현란한 빛이 솟아오르고 몸의 기운이 신비해졌다.
"이놈!"
진남의 두 눈에서 번개가 번쩍했다.
그가 성큼성큼 발을 내딛자 기운이 세상을 뒤덮었다.
활짝 웃던 양 봉주 등도 그 장면을 보자 기운을 바꾸며 진남과 대치했다.
'열여덟 명의 봉주와 많은 무황 경지 강자들이 있다. 그런데도 달려들다니?'
"무엄하다!"
하늘에서 사시관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
"사신 삼관 중 첫 번째 관문에서는 싸울 수 없다. 싸우는 자는 즉시 자격을 잃고 영원히 사신대에 오를 수 없다."
진남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사시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더없이 차가웠다.
"진남, 그러지 마시오."
이때, 사마공이 진남에게 말했다.
"사시관은 죽음의 바다의 많은 사령들이 지명한 사람이오. 심사를 책임진다는 건 권력이 엄청 크오. 우리 지금은 심기를 건드리지 맙시다. 걱정 마시오. 사신대에 가서도 사시관이 허튼짓을 한다면 반드시 죽음의 바다에게 벌을 받을 것이오."
이 말을 듣고 진남은 깜짝 놀라 사마공을 돌아보았다.
그는 사마공이 아는 일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사시관은 살황 선배에게도 손을 댔던 자요. 그런데 지금 소중황의 편을 드는 걸 보니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하오. 하지만 이들은 모르는 게 있소. 나도 지급 오품의 무혼을 가지고 있소. 게다가 무예 천부를 비교하면 소중황은 내 상대가 아니오."
진남의 마음속 살기가 점차 진정되었다.
지금 밖에는 문도 노조가 있고 죽음의 바다에는 사시관이 있다.
강자와 강자가 연합했으니 진남은 너무 많은 걸 드러내면 안 되었다.
사신대에 가서 손을 써야 했다.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살황과 청룡 성주를 위해 반드시 참아야 했다.
"그럼 그렇지!"
양 봉주 등은 진남이 달려들지 못하자 입가에 비웃음이 더 짙어졌다.
'정말 자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청룡 성주가 지켜주지 않는다면 네가 뭐라고?'
"지금부터 두 번째 관문에 들어가겠다."
사시관은 진남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방금 첫 번째 관문의 규칙을 알려주지 못했다. 사시관에게 선택된 사람들은 혈분에 들어갈 필요가 없이 바로 진급한다."
사시관이 손을 뻗어 양 봉주 등 열여덟 명과 무황 경지의 강자 열 명을 가리켰다.
무인들은 이 광경을 보고 일제히 분노를 금치 못했다.
'파렴치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의 시선을 알아챈 사시관은 차가운 시선으로 훑어보며 말했다.
"이의 있느냐?"
무인들은 비록 분노했지만 사시관이 쳐다보자 두려워서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사시관은 반보 무성 경지였다.
그가 풍기는 위압은 어마어마했다.
"이놈이……."
묘묘 공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용호요종과 조방은 모두 표정이 냉담했다.
그들은 상황 파악을 잘했다.
그래서 화가 나지만 참고 있었다.
"두 번째 관문으로 가자!"
사시관이 손을 크게 휘두르자 수많은 검은 기운이 솟구쳐 나왔다.
소중황 일행과 진남 일행 그리고 '영'과 무인 열 명이 그 기운에 감싸였다.
진남은 몸이 가벼워졌다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더니 발끝이 땅에 닿았다.
주변의 검은 기운도 사라졌다.
"응?"
진남은 무언가를 느끼고 고개를 들어서 보고는 안색이 변했다.
그들의 앞에는 엄청나게 큰 강이 있었다.
천 장이나 되는 넓은 강은 사방팔방으로 굽이굽이 뻗어 있어 어디까지 이어졌는지 알 수 없다.
이 강물은 핏빛을 띠고 있었다.
수많은 피가 한데 모인 것 같았다.
강의 깊은 곳에는 칠흑 같은 그림자들이 허우적거리며 끊임없이 포효하고 있었다.
어찌나 촘촘하게 들어차 있는지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이 그림자들은 모두 사령들이었다.
쿵!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있는데 무서운 강 위에서 한바탕 폭음이 났다.
이어 강의 맞은편에서 먹물 같은 검은 빛이 뿜어 나와 사람들 앞에 떨어졌다.
검은빛이 진동하더니 돌다리로 변했다.
돌다리는 너비가 여덟 장이고 짙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마치 피가 응고되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이 외에도 다리 위에는 수많은 골짜기가 있었다.
사람들 앞에 비석이 하나 더 나타났다.
비석의 중앙에 커다랗고 시뻘건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내하교(奈何橋, 저승으로 가는 다리).
전설에 의하면 사람이 죽어서 내하교를 건널 때 맹파탕(孟婆湯, 전생을 망각하게 한다는 탕)을 마시면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내하교 아래는 맹파하다.
다리를 건널 때 경지가 낮고 심신이 불안하면 사악한 마귀의 방해를 받아 맹파하에 떨어져 사령이 된다."
사시관은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핥았다.
"조금 전에 봤지? 맹파하에 있는 원혼과 사령들은 생전에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무존 경지의 강자라고 해도 맹파하에 떨어지면 열에 아홉은 죽는다.
두 번째 관문은 내하교이다. 먼저 건너는 자가 일 위다. 일 위는 도법액 한 방울을 상품으로 줄 것이다."
말이 끝나자 묘묘 공주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법액도 무예 천부를 제고하는데 사용한다. 효과가 보리심 못지않지. 내 추측이 맞는다면 도법액도 소중황을 위해 준비한 거겠지? 그럼, 이번 심사도 무슨 의미가 있느냐?"
공주의 말에 용호요종 등은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첫 번째 관문, 보리심.
두 번째 관문, 도법액.
사신 삼관 중 첫 두 개의 관문 모두 소중황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사시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그러면 또 어떠냐? 아니면 또 어떻고? 사심 삼관은 모두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 관문에 참가하고 말고는 네 선택이다. 참가하기 싫으면 당장 돌려보내 주마."
"당장 돌려보내겠다고? 고작 사시관 따위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게냐?"
묘묘 공주의 얼굴에 살기가 떠올랐다.
"묘묘 공주, 싸우지 말아."
진남은 그녀를 잡아당기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사시관에게 분노할 필요가 없었다.
무슨 음모를 준비했든 절대적인 실력 앞에서 모든 음모는 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잠깐 기뻐하게 두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