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전신의 혈(血)
소홍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묘묘 공주의 깃발은 그의 무혼을 직접 공격할 수 있었다.
"봉황지화! 한방에 하늘을 무너뜨려라."
진남은 하늘을 향해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온몸의 화염이 세차게 일어났다.
화염이 하늘을 향해 소용돌이쳤다.
진남은 화신처럼 폭발하여 권법으로 빙설 세계를 향해 세차게 내리쳤다.
설무극과 설무흔의 얼굴에는 조소가 넘쳤다.
"이 빙설세계는 우리 두 형제가 연합하여 펼친 것인데 어찌 그리 쉽게 깨질 수 있겠느냐?"
"취천일격!"
진남이 온몸의 기세를 드러내자 불타던 화염이 순식간에 주먹 끝에 빨려들어 작은 불길로 변해 얼음벽을 내리쳤다.
쿵!
설무극과 설무흔의 표정이 굳어졌다.
거대한 얼음벽이 마치 큰 망치에 맞은 듯 순식간에 붕괴되면서 수많은 얼음조각들이 하늘 가득 흩날렸다.
진남은 쾌감을 느낄 새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양태천 등은 벌써 그 돌기둥 위에 도착했다.
"늦었어."
양태천은 진남을 보면서 입가에 오만을 드러냈다.
그는 오른손으로 돌기둥 위에 있는 손자국을 내리쳤다.
진남의 동공이 빠르게 움츠러들었다.
묘묘 공주 등은 일제히 안색이 변했다.
이 정도의 거리에서는 공격하려고 해도 어림없었다.
"하하하!"
소홍, 설무극, 설무흔이 모두 광소를 터뜨렸다.
그들은 진남의 실력에 깜짝 놀랐었다.
"하지만 그게 어때서? 이 청룡 성주 전승은 우리들의 것이 될 것이다!"
양태천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청룡 성주의 전승이었다.
얻으면 무존으로 진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었다.
거기다 아버지의 도움이 더해지면 앞날이 휘황찬란할 것이었다.
하지만 한참 후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돌기둥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으며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소홍, 설무극 그리고 설무흔의 표정이 굳었다.
"어떻게 된 거지? 왜 돌기둥에 반응이 없는 거야?"
양태천의 흥분된 얼굴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청룡 성주는 재능만 있으면 열 수 있다고 했잖아? 나는 현급 육품 무혼에 호법 서열 일 위다. 그런데도 재능이 부족하다는 건가?"
한참 지난 후 양태천은 안색이 어두워져서 외쳤다.
"한비, 자네가 해보시오."
한비는 앞으로 나와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하나, 둘, 셋…….
한참이 지나도 돌기둥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자네가 해보시오!"
양태천의 이마에 핏줄이 불끈 솟았다.
다른 사람들이 너도나도 나섰다.
네 사람이 해봤지만, 돌기둥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내가 해보겠소!"
소홍이 굳은 표정으로 다가가 손바닥을 위에 올려놓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럴 수가!"
설무극과 설무흔도 시도했지만, 결과는 모두 마찬가지였다.
호수가 정적에 휩싸였다.
양태천 일행이 넋이 나갔을 뿐만 아니라 진남 일행도 모두 어리둥절했다.
"이상한데? 이렇게 많은 인재가 있는데, 아무도 돌기둥을 열 수 없단 말인가?"
"우리도 한 번 가보자!"
묘묘 공주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양태천 일행은 그들을 보고 막으려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자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 모두 열지 못했다. 저자들이라고 해도 열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묘묘 공주도 해보고 사마공도 해보고 엄자함과 주립청도 해보았지만, 돌기둥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들 조용해졌다.
이렇게 많은 인재들도 못 연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청룡 성주가 일부러 우리를 속이려고 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상하잖아, 성주께서 왜 이런 일을 벌인단 말이야?"
수많은 의혹이 뭇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내가 한번 해볼게."
진남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몰랐지만, 전신의 부위가 여기에 있었다.
그는 반드시 얻어야 했다.
그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 손바닥을 돌기둥에 가져다 댔다.
기분이 나빴던 양태천이 냉소를 금치 못했다.
"진남!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이렇게 많은인재들도 돌기둥을 열지 못하는데 네가 열 수 있단 말이냐? 웃겨!"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은 진남이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혀 믿지 않았다.
그때 진남이 손바닥을 돌기둥 위에 놓자 이변이 일어났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돌기둥에서 수많은 빛들이 하늘을 찌르며 솟아올랐다.
양태천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진남이 돌기둥을 열 수 있다니……."
수많은 빛이 하늘에서 떠다니더니 천천히 응집되어 사람 형상을 이루었다.
바로 청룡 성주였다.
청룡 성주는 허공에 서서 진남을 바라보면서 자애롭게 말했다.
"진남, 전에 단목봉에서 너에게 말한 적 있다. 다만 그때는 사람이 많아 너무 명확하게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이 전승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다."
이 말에 어리둥절해 있던 양태천 등은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특별히 진남을 위해 준비했다니! 우리를 속인 거잖아!"
진남은 얼떨떨했다.
"나를 위해 준비했다고?"
그가 깊이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돌기둥에 금이 생기더니 돌기둥 전체에 퍼졌다.
뒤이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돌기둥이 산산조각이 났다.
쾅! 쾅!
엄청난 위압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안 돼!"
묘묘 공주가 외쳤다.
무형의 힘이 진남을 제외한 여러 사람의 몸을 때렸다.
사람들은 그 힘을 맞고 날려나 호수 맞은편에 떨어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양태천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아무 일 없이 호수 중앙에 서 있는 진남을 보자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전승이 진남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는 건 그렇다 쳐도 우리를 전부 때리고 날려버리다니! 우리를 갖고 논 것도 모자라 괴롭히기까지 하다니!"
하지만 그들은 이내 눈앞의 광경에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호수 중앙에서 엄청난 핏빛이 솟아올라 방원 이십 리 이내를 빨갛게 물들였다.
천지가 격렬하게 떨렸다.
물건이 드러나자 모든 사람들이 엎드려 절했다.
"이게……."
진남은 눈앞의 물건을 보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수많은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부서진 돌기둥 가운데에 옥상자가 있었다.
그 옥 상자 안에는 자줏빛 피 한 방울이 떠 있었다.
이 자줏빛 피는 영지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피는 진남을 보자 세게 떨기 시작했다.
마치 오랜 세월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만 같았다.
끝없는 전의가 용솟음쳐 올랐다.
그것은 전신의 피였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만물이 조용해졌다.
"전신의 피라니!"
진남이 정신을 차렸다.
그는 전신의 피 앞에서 그의 온몸의 혈액이 조급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남은 자신의 신체를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온몸의 혈액이 어렴풋한 무늬를 이루고 복잡하고 엇갈린 걸 발견했을 것이다.
무늬는 가로세로로 뒤엉켜 있었는데, 마치 지도 같았다.
"지금은 아직 복용할 수 없어. 상황을 먼저 해결하자."
진남은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손을 저어 옥함을 주머니 안에 넣었다.
모든 이상이 전부 사라지고 원 상태를 회복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그 혈액이 뿜은 기세가 그들의 영혼을 충격했기 때문이었다.
"진남!"
한참 후 양태천이 정신을 차렸다. 그의 눈에 짙은 탐욕과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소홍과 설무극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성지의 뛰어난 인재이고 배경이 강대하고 견식이 비범했다.
그들은 혈액이 어떤 물건인지 모르지만, 아마 청룡 성주가 말한 대로 혈액을 얻으면 환골탈태하여 미래에 무존으로 진급할 수도 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보물을 보고 그들이 어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왜? 내 물건을 빼앗으려고?"
진남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지금은 예전의 원한과 갈등을 따지지 않겠다. 하지만 너희들이 내 물건을 뺏으려고 한다면 봐주지 않을 것이다."
"따지지 않겠다고? 우습구나. 물건을 내놓아라! 그러면 살려주겠다!"
양태천이 싸늘하게 웃었다.
하늘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열여섯 명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들은 모두 기세가 매우 강했다.
"열여섯 왕괴(王傀), 하나로 합치거라!"
양태천이 큰소리로 외치자, 그의 기세가 열여섯 명의 기사들과 합쳐졌다.
순식간에 엄청난 위압이 가해졌다.
마치 양태천이 무황이 된 것만 같았다.
소홍, 설무극 등도 살기를 폭발시켜 차가운 시선으로 진남을 보았다.
"영패를 써야 할 것 같구나."
진남이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 강했지만, 이런 세력 앞에서 이긴다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이때, 귀찮아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열여섯 왕괴? 꼭두각시의 분신이잖아.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마침 얼마 전에 운 좋게 벌레를 얻었는데, 너희들에게 이 벌레의 위력을 보여줄게."
묘묘 공주가 손을 젓자 눈알만 한 크기의 벌레 한 마리가 윙윙 날아올랐다.
벌레는 마치 지네처럼 천 개의 발이 달렸고, 여덟 쌍의 날개를 지니고 있었다.
벌레의 송곳니는 밖에 드러나 있었고, 이마에 붉은색 점이 있었다.
양태천, 소홍, 설무극 등은 일제히 안색이 변했다.
"붉은색 지네!"
"어떻게 붉은색 지네를 가지고 있는 거지?"
"……."
붉은색 지네는 공격을 무시하고 방어를 무시하고 진법을 무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독극물을 가지고 있었다.
붉은색 지네에 한입 물리면 독이 순식간에 영혼까지 퍼져 무황이라도 횡사할 수 있었다.
사마공과 엄자함, 주립청 셋은 표정이 홀가분해졌다.
그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엄자함은 겉모습은 차갑지만 속은 여린 데다 한비 등을 잘 알았기에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물러나요. 더 이상 진남 사제를 화나게 하지 말아요. 여러분은 진남 사제를 감당할 수 없어요."
그녀는 이 한마디가 양태천과 소홍 등의 분노를 터뜨리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좀 전에 진남이 우리보고 손을 쓰지 말라고 말리더니, 이제는 엄자함마저 나서서 말린다고?"
"진남을 감당할 수 없다고? 우리가 고작 진남을 이기지 못한다고?"
"설마 저들은 고작 한 마리 붉은색 지네로 우리를 달아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설무극, 공격해라!"
소홍이 사납게 외쳤다.
설무극이 싸늘한 미소를 짓더니 새하얀 얼음 피리를 꺼내 입가에 대고 곡을 불어 사방에 음을 퍼뜨렸다.
"진남! 넌 오늘 반드시 죽는다!"
양태천이 온몸의 기운을 솟구쳐 진남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손을 저었다.
그의 손에 부적이 세 개 들려 있었다.
묘묘 공주의 예쁜 얼굴이 저도 모르게 살짝 어두워졌다.
그녀는 세 개의 부적을 잘 알고 있었다.
전에 무종 비경에서 소비봉이 사용한 부적과 똑같았다.
진남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도 당연히 이 부적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양태천 등이 그를 상대하기 위해 이런 수단을 쓸 줄은 생각지 못했다.
진남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두 개의 영패에 신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