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첫 번째 관문
"허튼소리! 정말 허튼소리구나! 진남, 당장 여기서 나가거라. 우리는 다른 제자들이 심사에 참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그들은 철목이 저렇게 화를 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사실 그들은 몰랐다.
전에 양대 성지에서 진남 쟁탈전을 벌일 때 철목도 현장에 있었다.
진남의 천부적인 재능과 성격을 본 그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진남을 데려오려고 철목은 비양 성지의 호법들을 흠씬 두들겨 패기도 했다.
바로 이 때문에 그는 진남이 패배하고 체면을 잃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정곤은 안색이 변했다.
그가 철목에게 알려준 것은 철목이 진남을 마구 비웃기를 바라서였다.
그런데 철목이 되려 진남을 쫓아내려고 할 줄이야!
그때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철목 호법, 무엇 때문에 이토록 노발대발하십니까?"
듣기 좋은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사람들 속에서 다가왔다.
"진영이다!"
"혹시 그녀도 성급 사품 연단사 심사를 위해 온 걸까?'
"고작 연단한지 두 해 만에 성급 사품 연단사 심사라니! 역시 진 사형의 동생이야. 대단해!"
"……."
정곤은 나타난 사람을 보자 표정이 확 바뀌었다.
초목봉의 연단사 심사는 다른 곳과 달랐다.
심사를 통과한다고 진급하는 것이 아니었다.
심사에서 일 위를 해야 사품에 진급할 수 있었다.
진영은 초목봉의 천재 연단사의 동생이었는데, 재능이 뛰어나서 주목을 받는 자였다.
정곤은 이번 심사에 팔 할 정도의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진영도 참가한다면 오 할 정도의 승산밖에 없을 것이었다.
진남과 투단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진영을 이기는 게 관건이었다.
아니면 한 달을 기다려야 다시 심사에 참가할 수 있었다.
"진영, 여기는 웬일이요."
철목은 표정이 굳었다.
신분 지위만 놓고 보면 그는 진영의 아래였다.
진영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심사장에 들어섰다.
그녀는 철목 장로를 무시하고 진남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소문은 들었어.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만나는군. 듣자 하니 정곤과 투단할 거라면서?"
진남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왠지 모르게 이 여자에게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누구지?'
"할 말이 있으면 솔직히 말하시오."
진남은 서슴없이 말했다.
제자들이 놀랐다.
초목봉에서 이런 식으로 진영에게 말하는 사람은 진남이 처음일 것이었다.
"그럼 솔직하게 말할게."
진영이 싸늘하게 말했다.
"도대체 소비봉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종비경에 다녀오더니 그런 꼴이 된 거야?"
"소비봉?"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의외였다.
그는 진영이 소비봉 때문에 시비를 걸 줄은 몰랐다.
진남은 모르고 있었다.
시혈성 성주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다.
그들을 소씨 삼 공자들이라고 불렀는데, 하역에서 꽤나 유명했다.
다들 재능이 남달랐는데 특히 셋째 공자 소비봉은 시혈성의 후계자라고 지정될 만큼 뛰어났다.
양대 성지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은 성지의 여인들이 그를 몰래 사모했다.
진영도 소비봉을 사모하는 여인들 중 하나였다.
그녀와 소비봉은 어릴 적부터 혼약이 정해진 사이였다.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얼마 후 순조롭게 반려자가 될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청룡 성지에서 소비봉을 만나게 되었다.
진영은 소비봉이 자신을 보러 온 줄 알고 무척 기뻤다.
그러나 곧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목격했다.
칠 척 사내이자 하역의 인재인 소비봉이 단목봉의 큰 사형 조방에게 푹 빠져 그녀를 무시했다.
그 장면은 그녀에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주었다.
진영은 여러 곳에 수소문해서야 소비방이 진남과 척을 진 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진남이 손을 쓴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진남이 정곤과 투단한다는 소식을 듣자 놀람과 동시에 복수심이 생겨서 달려온 것이었다.
"소비봉의 일은 나와 상관없소. 탓하려면 조방을 찾아가시오."
진남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소비봉이 이유 없이 진남을 공격했으니 진남이 반격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소비봉이 저렇게 된 것은 조방이 뿌린 금약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얼떨떨했다.
보아하니 진남은 진영과도 갈등이 있는 것 같았다.
진남은 어디를 가든 적이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거짓말하지 마!"
진영의 두 눈에 살기가 스쳤다.
"네가 소비봉을 그렇게 만든 거야! 너를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오늘 정곤과 투단한다고? 용기가 있으면 나와도 투단하자! 만일 네가 패배하면 소비봉을 원상복구하고 무릎 꿇고 사과해!"
'진영이 진남에게 투단을 신청했다고?'
사람들은 놀랐다.
진영은 정곤과 달랐다.
그녀는 초목봉의 인정받은 인재였다.
그런 그녀가 진남에게 투단을 하자고 하는 건 대놓고 괴롭히겠다는 게 아닌가?
"내가 이기면 어떻게 하겠소?"
진남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도발하는 사람을 겁낸 적이 없었다.
진영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이기면 나는 네 단동이 되겠다."
단동!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진영은 재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미인이었다.
그녀를 단동으로 두는 건 대단한 복이었다.
물론 진영은 질 가능성이 없기에 그런 제안을 했다.
"내 단동이 되겠다고 했소? 허튼 망상을 하는군!"
뜻밖에도 진남이 차갑게 말했다.
"만약 진영이 지면 다른 요구는 없소. 나에게 원석 열 개만 주시오."
'진영은 참 이해타산이 빠르군. 내 단동이 되겠다고? 그건 내 득을 보겠다는 소리잖아.'
진남은 궤단대전을 장악했고 마단 존자의 연단 기억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곁에 있으면 적지 않은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허……."
진영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원석 열 개를 달라고? 좋다!"
열 개의 원석의 가치는 십만의 공헌점이었다.
적지 않은 재산이었다.
진영의 모든 재산을 털어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망설임 없이 대답한 것은 진남을 안중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를 이기겠다고? 불가능한 일이야!'
"잠깐만."
철목이 정신을 차리고 호되게 호통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진남, 너는 초목봉의 제자가 아니니 투단할 수 없다. 집법대를 불러 압송하기 전에 얼른 초목봉을 떠나거라! "
진남이 진영과 투단을 한다고 하니 철목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진영이 아니라 초목봉의 성급 이품 연단사라고 해도 진남보다 강할 것이었다.
진남은 대체 무슨 정신으로 투단에 응한 걸까? 그것도 상대가 점점 더 강해졌다.
"철목 호법, 그렇게 딱딱하게 굴 게 뭐예요? 단목봉의 제자가 초목봉에 와서 투단을 한다면 그것도 미담이잖아요."
진영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게……."
철목은 머뭇거렸다.
진영의 신분은 그보다 한참 높아서 계속 간섭한다면 보복을 받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진남이 패배한 후 연속 두 번이나 무릎을 꿇을 걸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팠다.
절세 인재인 진남을 수모를 겪게 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충격을 받아서 도심이 파괴될 수도 있었다.
"나는 동의할 수 없소. 규칙은 규칙이요. 누구도 거역해서는……."
철목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말을 마치기 전에 진남이 공수하며 말했다.
"철목 호법, 제가 투단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살살하겠습니다."
'살살한다고?'
철목은 황당해했다.
진영과 정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얼떨떨했다.
'살살한다고? 설마 연단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철목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며 진남에게 손가락질하더니 겨우 한마디했다.
"진남, 후회하지 마!"
진남은 철목이 좋은 마음에서 말린 것을 알았다.
하지만 철목은 진남이 자만한 것이 아니라 사실대로 말했다는 걸 몰랐다.
'이 사람들은 내가 믿는 구석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진남은 이렇게 된 이상 아예 오만하게 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이 사람들에게 무술을 연마하면 연단을 못 한다는 편견을 깨주기로 했다.
냉건웅과 임소우는 어쩔 바를 몰랐다.
그들이 일이 이 지경으로 번질 줄 어찌 짐작이나 했겠는가?
"진남 사제, 우리의 투단은 내기하지 말자. 어쨌든 동문 사제 아니냐? 걱정 마. 이따 내가 임소우에게 제대로 사과를 할게."
이때 정곤이 입을 열었다.
역시 정곤은 여우였다.
심사에서 일 위만이 진급할 수 있었다.
진영이 오자 정곤이 이길 확률은 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먼저 꼬리를 내린 것이었다.
만약 성급 사품 연단사가 되지 못하면 임소우를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규칙을 들먹일 수도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 진남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한다면 반드시 앙심을 품을 것이다. 그래서 먼저 꼬리를 내리고 진남에게 내려올 조건을 마련해준 것이다.
"허허."
진남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취소하자고 하면 취소할 줄 알았소? 취소해도 되오. 대신 지금 사람들 앞에서 절을 한다면 말이오."
정곤의 안색이 급변했다.
'진남은 정말 분수를 모르는군. 내가 봐주겠다는데도 여전히 물고 늘어지다니. 호의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그럼 마음대로 하거라."
정곤의 표정은 냉담했다.
'이것은 네가 자초한 것이다. 그때 가서 나를 탓하지 말거라.'
심사장의 제자들도 서로 마주 보았다.
그들도 진남을 무시했지만, 감히 건드릴 자신은 없어서 얌전히 있었다.
철목은 그 모습에 더욱 화가 치밀었다.
그는 진남이 안하무인이라서 단단히 혼이 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철목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제 성급 사품 연단사 심사를 시작하겠다. 이번 심사는 두 개 관문이 있다. 첫 번째는 영약을 구분하는 것이다. 영약마다 이름을 말할 필요는 없다. 그저 영약의 성질에 대해 가장 완전하게 말하면 만점이다. 만점은 삼십 점이다. 두 번째는 단약을 겨룬다. 만점은 칠십 점이다. 이제 첫 번째 관문심사를 시작하겠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아 여느 때처럼 먼저 격려하지 않았다.
그가 손을 휙 흔들더니 스물한 개의 영약을 사람들 앞에 펼쳤다.
진남이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영약은 단지 한 가지뿐인데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왼쪽에는 세 송이의 다른 색의 꽃이 피어있고, 오른쪽에는 다섯 개의 색깔이 다른 과일이 있었다.
뿌리와 줄기도 여러 가지 색이고 오색찬란했다.
마치 수십 가지의 영약을 합쳐서 만든 것 같았다.
"재미있구나."
진남은 중얼거리며 다른 사람을 힐끗 살폈다.
다들 여러 수단을 사용해서 약의 성질을 알아보고 있었다.
정곤은 귤색의 불꽃으로 영약을 태웠다.
그러나 영약은 녹지도 않고 이상한 냄새도 나지 않아서 성질이 구분되지 않았다.
진영은 역시 인재답게 동술로 영약을 관찰했다.
"저 둘은 역시 강하구나."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서 번개가 번쩍이더니 전신의 왼쪽 눈이 영약의 성질을 읽었다.
반 주 향이 타는 시간 후 사람들은 모두 멈추고 자신의 답안지를 전부 제출했다.
그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것이 제대로 적어내지 못한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