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오랜만이다
진남은 손을 흔들며 임소우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손동을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손동이라고 했소? 나는 자네가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든 상관없소. 돌아가서 그 사형에게 전해주오. 임소우는 이제부터 내가 지키겠소. 그리고 사형에게 주제 파악을 하고 얌전히 살라고 전해주오."
진남의 마지막 한마디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손동과 그의 사형처럼 권력을 믿고 사람을 괴롭히는 폐물들에게 진남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뭐라?"
손동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이놈은 도대체 누구기에 초목봉에서 살기를 펼치며 위협을 하는 걸까?'
"사형!"
임소우도 다급해졌다.
초목봉은 기타 산봉우리와 달리 그 어떤 갈등도 모두 단약을 만들어 싸우는 것으로 해결하며 살기를 방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니면 집법당의 처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교역대전 안에 솟아오른 살기는 조용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즉시 사람들 대부분의 시선을 끌었다.
'이놈은 누구지? 초목봉의 규칙도 모르다니?'
그때 한 제자가 어리둥절해 있다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진남! 진남이다!"
"뭐? 진짜?"
"진짜 진남이야?"
"누가 그렇게 대담한가 했더니 진남이구나!"
"진남은 뭐 하러 여기 온 거지? 단약을 구하러 왔나?"
"……."
교역대전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손동은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진남? 이 사람이 진남이라니? 어쩐지 낯익더라니!'
손동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른 인재였다면 그는 초목봉 제자의 신분을 믿고 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남은 달랐다.
그를 데려가기 위해 양대 성지가 싸울 정도였다.
그 싸움에 초목봉 봉주도 참여했다.
손동은 고작 성급 이품의 제자였다.
그러니 어떻게 진남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진남이 그를 공격하고 그의 경지를 폐한다고 해도 청룡 성지에 손동의 억울함을 풀어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진, 진남 사형……."
손동은 이마에 식은땀이 솟으며 말하는 것조차 바들바들 떨었다.
"나는 자네의 사형이 아니오. 내가 방금 한 말 명심하고 가시오."
진남은 무표정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게……."
손동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형이 이번에 임소우를 순순히 데려오지 않으면 호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엄하게 경고했다.
그가 임소우를 위협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왜?"
진남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왼쪽 눈에 빛이 반짝였다.
교역대전에 있던 사람들은 흥분했다.
'역시 진남이다. 성격이 불같아. 곧 손을 쓰겠군.'
"아!"
손동은 깜짝 놀라 울상을 지었다.
"가요, 갈게요."
사형의 징벌이 엄하긴 했지만, 진남에게 한바탕 두들겨 맞는 게 더욱 두려웠다.
그런데 손동이 미처 몸을 돌리기 전에 자못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진남 사제, 언제 초목봉에 방문했느냐?"
발걸음 소리와 함께 기세가 비범한 중년 사내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가 입은 흰옷 흰색 두루마기 가운데에는 세 개의 엄청나게 눈부신 금색 무늬가 새겨져 있었.
"사, 사형!"
손동의 표정이 다시 한 번 바뀌었다.
'사형이 직접 오다니 큰일 났어!'
중년 사내는 손동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는 임소우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선이 진남의 몸에 떨어졌다.
그의 눈빛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스쳤다.
"어? 정곤(鄭坤) 사형 아니야?"
"왜 왔지?"
"……."
교역대전의 사람들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곤은 초목봉에서 유명했다.
초목봉 대부분 제자들은 성급이었다.
그래서 성급 일품부터 삼품, 사품부터 육품, 육품부터 구품, 성급 십품 이 네 개의 단계로 나뉘어서 구분했다.
교역대전에 있는 제자들은 성급 삼품 이하였다.
사람들은 정곤이 성급 사품을 돌파하려고 하고 대단한 기우를 만났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가 나타나자 술렁거렸다.
손동은 마음이 씁쓸했다.
정곤은 그를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정곤은 여기에서 발생한 일을 틀림없이 마음에 담아두고 반드시 보복을 할 것이었다.
"정곤 사형!"
임소우의 표정이 단호하게 바뀌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여기서 벌어진 일은 진남 사형과 상관없어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정곤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뜨뜻미지근하게 말했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 맞다. 임소우, 내가 진급해서 성급 사품 연단사가 되기를 기다려라. 그리고 나의 단동이 되어라.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나는 너를 도와 경험을 늘려 주고 싶을 뿐이다."
정곤의 말에 주변 제자들은 그제야 눈치를 챘다.
"정곤이 임소우에게 반했구나!"
진남도 이제 눈치챘다.
그는 초목봉의 규율을 몰랐다. 그러나 단동은 하인과 같은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싫어요."
임소우는 전혀 미련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정곤 사형, 심사에 참가하려면 하세요. 저는 초목봉에서 나가겠어요. 이제 초목봉 제자가 되지 않을 거예요."
그녀의 말에 정곤은 짐짓 속상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소우야, 네가 오해했다. 나는 너에게 다른 의도가 없다. 네가 전에 그랬잖아. 네 꿈은 연단대사가 되는 거라고. 설마 꿈을 포기할 거냐?"
주변 제자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의도가 없다고? 귀신을 속여라.'
임소우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꿈!
그녀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의 병세가 위독했지만, 그녀는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후에 반드시 대단한 연단사가 되어 병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고 고통받는 사람을 치료해 주리라 결심했다.
그녀는 이십여 년 동안 꿈을 이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포기해야 할까?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때 두툼한 손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렸다.
그녀의 모든 아픔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진남이 웃으며 말했다.
"정곤이라고 했소? 사람이 참 가식적이군. 임소우가 맘에 들면 제대로 말해야지. 잘 들으시오. 임소우는 내 사매요. 그러니 똑바로 행동하시오."
진남의 말투에 한기가 서려 있었다.
주변의 제자들은 진남의 말에 눈앞이 환해졌다.
'오호라, 진남이 임소우를 위해 온 거구나. 설마 진남이 정곤을 공격할까?'
정곤의 눈동자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는 진작에 진남을 발견했었다.
그리고 진남이 이곳에 나타난 것은 아마도 임소우를 위해서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임소우를 꼬박 일 년 동안 쫓아다녔다.
그러나 임소우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정곤은 화가 나서 단술에 매진했다.
성급 사품에 진급하면 임소우를 단동으로 지정하여 단단히 괴롭힐 작정이었다.
정곤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다잡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남 사제, 오해가 있나 본데 나는 임소우에게 정말 다른 의도가 없다. 그저 그녀를 도와주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진남 사제는 단목봉 사람이지?"
정곤은 뻔히 알면서 일부러 물었다.
진남에게 단목봉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다.
양대 성주가 서로 데려가려고 한 절세 천재지만 초목봉에서는 초목봉의 규정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경고한 거나 다름없었다.
"나는 확실히 단목봉 사람이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한가지 해결책밖에 없소."
진남은 느긋하게 말했지만, 말투는 살기 등등했다.
"바로 두들겨 패야 한다는 거요!"
말이 끝나자 진남의 몸은 태고의 화산처럼 폭발하더니 한 방을 날렸다.
정곤은 무왕 최고 경지였다.
그는 진남이 한 방을 날리자 엄청난 힘이 몸을 덮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죽음의 두려움이 순간적으로 마음속에서 솟아올라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주변의 제자들은 넋을 잃고 바라봤다.
'미쳤어! 진남은 미쳤구나! 설마 정곤을 불구로 만들려는 거 아니겠지?'
"그만하세요!"
별안간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림자 하나가 화난 용처럼 돌진해 오더니 검광을 발산하여 진남의 주먹 끝에 떨어졌다.
쾅!
폭발음과 함께 방대한 진기가 사방팔방으로 번졌다.
진남이 허공을 바라봤다.
백의에 검을 메고 있는 한 사내가 보였다.
그는 무종 경지 일 단계였다.
백의 사내를 본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 사람을 바로 냉건웅이었다.
"냉 사제, 집법대를 출동시키거라. 진남이 나를 죽이려고 해!"
정곤이 냉건웅을 보자 다급히 외쳤다.
주변의 제자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집법대가 왔다. 그러면 이번 사건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초목봉의 집법대는 공정하기로 유명했다.
예전에 절세 천재가 초목봉에 단약을 구하러 왔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무력을 쓴 일이 있었다.
그 제자는 집법대에 의해 사지가 절단되어서 쫓겨났다.
그 후 절세 천재의 스승님은 초목봉에 따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과했다.
초목 봉주가 규칙을 세울 때 봉주가 잘못을 저질러도 집법대는 참살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했기 때문이었다.
"사형, 이 일은 보시는 것과 같지 않아요……."
임소우도 다급해졌다.
지난번에 그녀는 진남의 도움을 받았다.
그녀는 이번에도 자신의 일 때문에 진남을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때 냉건웅이 씁쓸하게 웃었다.
"진남 사형, 오랜만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는 당연히 두말 안 하고 집법대의 강자를 불러 진압했을 것이다.
그러나 냉건웅은 강황성의 청룡 성지 제자 선발 대회에서 진남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진남을 존경했다.
그 말에 정곤은 어안이 벙벙했다. 주위 제자들도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냉건웅이 진남을 알아? 근데 말투로 보아 냉건웅은 진남을 난처하게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정곤은 표정이 말이 아니게 일그러졌다.
'공정하게 집법한다며?'
"오랜만이다."
진남은 아는 사람을 만나자 당연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냉건웅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말했다.
"청룡 성지에 들어온 후 기우를 만난 모양이구나. 무종 최고 경지의 강자가 된 걸 보니."
"으흠! 흠!"
냉건웅은 목이 메었다.
그는 방금 진남과 한 수 겨루며 진남의 몸속에 내포해 있는 엄청난 힘을 느꼈다.
만약 그 힘을 다 발휘하면 그의 무종 경지 일 단계의 힘은 바로 부숴질 것이다.
"진남 사형, 그게……"
냉건웅은 적절하게 말을 끊었다.
"냉 사제!"
정곤은 시기를 맞춰 분노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진남이 제 신분을 믿고 나를 공격하고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왜 규칙대로 집행하지 않는 거냐? 설마 둘이 안면이 있다고 봐주는 거냐?"
정곤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진남과 척지면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규칙을 물고 늘어졌다.
"죄송합니다. 저는 상대가 안 됩니다."
냉건웅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 정곤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냉건웅은 무종 경지 일 단계였다.
현재 진남이 풍기는 기운은 고작 무왕 최고 경지였다.
둘 사이 힘의 차이가 매우 컸다.
진남이 절세 인재라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결코 상대가 안 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진남을 감싸주려는 거구나!'
그들은 냉건웅이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