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약탈왕
흑수성은 방원 구백여 장을 차지하고 있어 규모가 웅장했다.
성은 태고 흑석(太古黑石)으로 만들어져 신비로운 기운을 풍겼다.
성문 입구에는 광장이 하나 있었는데 적어도 수천 명의 인파로 북적이었다.
진남은 대충 훑어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황 경지에 이른 사자들이 매우 많았다.
"사형제들, 안녕하시오."
그때 광장 가운데 한 청년이 하늘에서 내려오며 우렁차게 말했다.
"나는 흑수성 주인 정활(鄭闊)이라 하오. 오늘은 흑수성에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약탈왕 대회를 하는 날이요. 대회의 규칙은 간단하오. 열 번의 시합을 하는데 그중에서 순위가 가장 높은 사람이 '약탈왕'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소. 게다가 천 개의 공헌점도 얻을 수 있소."
"약탈왕 대회?"
멀리 서 있던 진남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기쁜 표정을 지었다.
약탈왕 대회에서 일 위만 하면 천 개의 공헌점을 얻을 수 있다니 흥미가 생겼다.
그는 두말없이 신속하게 앞으로 나가 사람들 틈에 섞였다.
"하하, 이번엔 내가 약탈왕이 될 거야."
"네가?"
"그거 알아? 이번 대회에 약탈왕을 했던 사람들도 참가할 거야."
"뭐? 그게 정말이야?"
"……"
진남은 사람들 틈에 섞여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에는 약탈왕에 대한 규칙도 있었다.
약탈왕 대회의 규칙은 간단했다.
스무 개의 공헌점을 지불하고 영패를 받으면 흑수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흑수성에는 태고 흑석이 있는데 그것을 움직이면 성 안의 사람들의 실력, 무도 경지 등을 전부 선천 경지로 제한할 수 있었다.
즉, 무황 경지의 강자라도 선천 경지의 실력밖에 발휘할 수 없었다.
그밖에 흑수성에서는 공식적으로 파는 법보 외에는 자신의 법보를 사용할 수 없었다.
"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
진남은 눈에 불꽃이 이글거렸다.
'만약 이번 약탈왕 대회에 천 명이 참가했고, 내가 그들을 모두 이긴다면 공헌점을 적어도 이만 개는 얻을 수 있어. 혹시라도 천 명을 약탈하지 못해서 백 명만 약탈해도 이천 개의 공헌점을 얻을 수 있지. 이렇게 공헌점을 버는 것은 임무를 한다거나 법보를 팔아서 공헌점을 얻는 것보다 훨씬 빨라!'
"먼저 영패부터 바꿔야지."
진남은 중얼거렸다.
그는 무일푼이었지만 청룡 성주가 준 영패 덕분에 스무 개의 공헌점을 빌리는 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때 사람들이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
"헛! 저자는 여덟 번째 약탈왕이잖아!"
"이런, 호법 오 위의 이소설(李小雪)이야."
"그녀도 왔어? 그런데 정말 무섭게 생겼네."
"무섭게 생겨서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군."
"……"
진남은 발걸음을 멈추고 사람들 틈에 끼여 멀리 바라봤다.
한 여인이 보였는데 이목구비가 거칠고 얼굴에 흉터가 몇 개 있었다.
그녀는 누더기 갑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살기등등하고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호법 오 위의 이소설……, 경시하면 안 되겠어."
진남은 눈빛이 차갑게 굳어졌다.
청룡 성지에는 호법이 최소 삼천여 명이 있는데 오 위 안에 들 정도라면 실력, 무혼 등급, 각종 수법이 아주 뛰어날 것이다.
그러나 흑수성에서는 경지 등이 전부 제압되어 진남은 그녀와 맞서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하하, 여덟 번째 약탈왕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소. 오늘 당신이 센지 내가 센지 한번 보자고!"
문득 수천여 명의 사람들 속에 소탈한 분위기에 거만한 표정을 지은 백의 청년이 걸어왔다.
"세 번째 약탈왕 백소(白少)야!"
"백소는 비법으로 신분을 가리기에 누구인지 전혀 짐작이 안 가."
"이번 약탈왕 대회에 전임 약탈왕 두 분이 왔으니 정말 재미있겠구나!"
"……"
현장의 분위기는 백소의 출현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약탈왕 대회마다 많은 제자들이 참가했지만, 오늘처럼 전임 약탈왕이 두 명이나 출현한 것은 정말 보기 드물었다.
"오늘 대회에 참가한 건 여덟 번째와 세 번째뿐 아니라 흑수성의 전설적인 인물도 있소."
느닷없이 흑수성의 주인 정활이 큰소리로 외쳤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연속 세 번 우승을 한 전설의 약탈왕 옥나찰(玉羅刹)이오."
그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백소와 이소설도 표정이 변했다.
제자들은 약을 먹은 듯 흥분했다.
"옥나찰이 왔다니!"
"그녀를 이기면 내가 전설이 될 수 있어."
"나도 참가하겠어! 내가 옥나찰을 지킬 거야! 지키지 못하고 그녀의 손에 맞아 기절할 수 있어도 영광이야."
"……"
제자들의 환호와 함께 한 여인이 하늘거리며 다가왔다.
여인은 흰색 긴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가슴 쪽은 뽀얀 속살이 드러났다.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과 풍만하진 않아도 매력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매혹적이었다.
주변의 사내들은 고함을 지르고 환호했다.
"저 사람은……"
진남은 표정이 굳어지고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옥나찰이라고? 단목봉의 큰 사형 조방이잖아?'
진남은 큰 사형 조방의 이름이 비검문 문주의 이름과 같아 인상이 깊었다.
하지만 나중에 진남의 손을 만지며 이상한 취향을 드러내 몸서리치게 했다.
'변신술로 자신을 여인으로 만든 것이 분명하다.'
남들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진남은 옥나찰의 기운이 조방과 꼭 같은 것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사형제들, 안녕? 옥나찰이에요."
조방은 얼굴이 상기되고 애정을 담아 말했다.
"이번 약탈왕 대회에 사형 사제들이 저를 잘 챙겨주길 바라요. 저는 고마움을 간직하고 앞으로 꼭 보답할 거예요."
그녀의 유혹에 넘어간 제자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연신 대답하는 바람에 현장은 시끌시끌했다.
백소와 이소설은 콧방귀를 뀌었다.
옥나찰에 비해 둘의 전적은 상당히 부족하지만, 이번 약탈왕 대회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 아무도 몰랐다.
"아주 중요한 소식을 알리겠소."
정활이 신비롭게 물었다.
"여러분에게 물어보겠소. 지금 양대 성지에서 어느 천재가 제일 유명하오?"
"진남입니다."
"당연히 진남입니다."
"……"
많은 제자들이 얼른 대답했다.
진남의 명성은 양대 성지의 성자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정활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흑수성을 대표해 진남 사제에게 초대장을 보냈소. 이번 약탈왕 대회에 진남 사제가 참가할 가능성이 아주 높소."
"네?"
지금의 진남은 신분이 평범하지 않았다. 그를 초대하려면 엄청난 힘이 필요했다.
'정활이 진남을 초대했다고? 대단하구나, 정활은 이번 약탈왕 대회를 모임의 장으로 만들려는 건가?'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진남 사제를 만나 겨룰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
세 명의 약탈왕이 대회에 참가해서 제자, 호법, 사자 등을 흥분시켰다면 진남의 참가 소식은 그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순식간에 너도나도 지원하며 우르르 몰려들었다.
정활은 그 모습을 보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진남은 당황스러웠다.
'내가 언제 정활의 초대를 받았지?'
그는 초대받은 적이 없었다.
정활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그는 '가능성이 높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속였다.
나중에 사람들이 진남이 정말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도 발뺌할 수 있었다.
"이런 수법으로 인기를 높이려 하다니……"
진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남은 청룡 성주가 준 영패로 정활에게서 공헌점을 조금 빌리려 했다.
그런데 상대방이 이런 수법을 사용한다면 공헌점을 더 많이 빌려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이번에 약탈왕 대회에 등록하는 곳은 광장의 중앙이었다.
사람들로 붐비어 진남은 잠시 기다린 뒤에야 앞으로 갈 수 있었다.
진남은 등록을 담당한 제자를 찾지 않고 정활을 향해 직접 말했다.
"정활, 저는 공헌점이 없는데 좀 빌려도 됩니까?"
정활은 너무 바빠 그런 것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공헌점이 없으니 빌리겠다고? 절대 안 돼.'
정활은 대충 흘겨보다가 진남이 들고 있는 영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성주의 제자냐?"
"네, 저는 단청(段青)입니다. 정활, 저에게 백 개의 공헌점을 빌려주십시오."
진남이 담담하게 말했다.
"백 개의 공헌점 말이냐? 문제없지."
정활은 진남의 신분에 공헌점이 없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영패를 잘못 봤을 리 없는지라 얼른 웃으며 말했다.
"우리 성주가 제자를 들인 걸 몰랐구나.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며칠 전에 성주께서 저를 제자로 받아 주셨습니다."
진남은 평온한 얼굴로 문득 생각이 난 듯 입을 열었다.
"참,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성 안의 금제로 제 경지를 제한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너의 경지를 제한하지 못한다고?"
정활은 우스갯소리를 들은 것처럼 크게 웃었다.
그는 진남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몸을 날려 광장의 수천 명의 제자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사형제들, 내가 한 가지를 선포하겠소. 내 초대를 받고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이번 약탈왕 대회에 참가하게 됐소. 이 사람은 청룡 성주가 갓 받아들인 제자로 단청이요."
그 말은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 같았다.
진남이 대회에 참가한다는 소식만큼 충격적이었다.
청룡 성주는 당청산 등을 제자로 받아들인 뒤로 청룡 성지의 예비 성자들이라 해도 제자로 받지 않았다.
단청이 청룡 성주의 제자라면 천부적인 재능이 대단할 것이다.
"정활은 이번에 진짜 공을 들였구나. 청룡 성주가 새로 들인 제자까지 초대하다니."
"삼대 약탈왕, 진남 사제, 단청 사제를 초대할 수 있다니. 정활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구나."
"……"
제자들은 정활에 대해 감탄하면서도 눈으로는 진남을 계속 살폈다.
약탈왕 이소설, 백소, 그리고 옥나찰로 변한 조방도 진남을 주시했다.
그들은 단청이라는 사람을 몰랐지만,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닌 것 같았다.
"정활은……"
진남의 눈빛이 매섭게 굳어졌다.
그는 사람들의 칭찬에 들뜬 정활을 보았다.
진남은 이제야 정활이 잘난 체하기 좋아하고 칭찬을 좋아하며 체면을 중히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활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여러 사형제들, 단청 사제는 처음으로 우리 약탈왕 대회에 참가하오. 그는 방금 흑수성이 그의 경지를 제한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소. 이 문제는 자네들이 말해주게나."
"하하, 단청 사제, 그런 건 걱정하지 마오. 사자들의 경지도 제압되었는데 하물며 자네 경지야 말해 뭐하겠소."
"단청 사제, 흑수성은 장옥 봉주가 직접 흑석으로 만들었소. 성이 움직이면 무도의 경지, 자신의 실력, 공법의지 등이 다 제한당하오."
"……"
사람들은 웃으며 말했다.
정활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남을 바라보며 물었다.
"단청 사제, 들었느냐? 내가 허풍 떠는 게 아니다. 네 경지가 제한당하지 않으면 우리 흑수성은 절대로 시비를 걸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규칙을 위반한 것도 아니다. 금제를 돌파할 수 있다면 그건 네 능력이니 다른 사람들도 별다른 이의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