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기한이 곧 다가온다
진남은 깊게 생각할 새도 없이 이상하고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전신의 혼은 청룡 성주가 진남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게……"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전신의 혼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거지? 청룡 성주는 대체 누구일까? 전신의 혼은 어떻게 청룡 성주를 아는 걸까?'
수만 가지 의문이 진남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청룡 성주가 그윽한 시선으로 말했다.
"진남, 깊게 생각하지 마라. 예전에 나와 전신의 혼이 어떤 인연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존재를 알고 있고 그도 나를 아는 것이다. 네가 무종 최고 경지가 되면 나를 다시 찾아오거라. 그때 모든 것을 말해주마."
진남은 숨을 들이마시며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지만, 청룡 성주가 입을 열지 않으니 진남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청룡 성주를 바라보는 진남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청룡 성주가 전신의 혼과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전신의 혼은 청룡 성주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청룡 성주가 진남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니면 전신의 혼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룡 성주가 계속 말했다.
"진남, 청룡 성지에서 열심히 노력하거라. 삼 년 후 당청산을 실망시키지 말거라."
'살황을?'
진남은 깜짝 놀랐다.
청룡 성주가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내 슬하에 네 명의 제자와 한 명의 의붓딸이 있었다. 당청산의 무혼 등급은 제일 높은 건 아니었지.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미래는 상역까지 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한 사건 이후로 그는 타락했다. 그래도 그도 이미 알 거다. 내가 자기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진남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살황 당청산에게 태산 같은 은혜를 입었기에 당연히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진남은 청룡 성주를 마주하고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본 사람이 그의 무혼과 엮여 있었다.
"선배님, 이 검의 내력을 알려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신의 혼의 진급에 관한 문제도 지금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진남은 청룡 성주가 누구인지 전신의 혼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 상관없이 진급하는데 필요한 것만 확인하면 되었다.
청룡 성주는 손을 뒤집었다.
그의 손바닥에 무언가 있었다.
청룡 성주가 들고 있는 건 손바닥 절반 정도 크기이고 형태는 매끄럽지 못하지만, 빛이 나고 투명한 물건이었다.
마치 물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진남은 전신의 왼쪽 눈으로 살펴보았다.
그 물건은 천지의 힘을 가득 머금고 있었는데 진남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이건 원석이다."
청룡 성주가 말했다.
"수사들이 어느 정도 강해지면 상역으로 가려고 하는 게 다 이것 때문이다. 원석의 효능은 내가 굳이 말할 필요 없겠지. 특히 상역에서 하역 사람들을 못 들어오게 하는 바람에 원석은 하역에서 귀하디귀한 물건이 되었다."
"원석이요?"
진남은 저도 몰래 손을 뻗어 잡으려고 했다.
청룡 성주는 손바닥을 뒤집더니 원석을 거두며 허허 웃었다.
"진남아, 원석은 무척 귀하단다. 천금을 줘도 살 수 없어. 가지고 싶으면 스스로 노력하거라."
"……"
진남은 어이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잘해 주는 사람이라고 하더니 원석 하나도 안 주다니.'
진남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의 직감이 맞았다.
양대 성지로 오니 전신의 혼이 필요한 물건을 알 수 있었다.
필요한 것을 알면 아무리 비싸도 얻을 방법이 있었다.
"청룡 성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진남은 두말없이 자리를 뜨려고 했다.
성주는 내력이 무척이나 신비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상대방은 그를 꿰뚫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진남은 이런 기분이 싫었다.
"기다리거라."
청룡 성주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묵직하게 말했다.
"진남, 무종 최고 경지가 되면 모든 것을 알려주겠다. 내가 너에게 알려줄 일은 엄청난 비밀이다."
말을 마친 청룡 성주는 영패를 꺼냈다.
그는 얼굴의 주름이 다 펴지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건 너를 위해 준비한 신분 영패이다. 이름은 단청(段青)이다. 청룡 성지에서 너는 다른 신분으로 살아야 한다."
"네?"
진남은 청룡 성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다가 또 신분 영패까지 건네자 어안이 벙벙했다.
'다른 신분이 필요하다고?'
의문스러웠지만 진남은 거절하지 않았다.
영패를 받은 그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제 생각에 무종 최고 경지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때 가서 모른 척하시면 안 됩니다."
"당연하지."
청룡 성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강한 힘이 진남을 덮고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진남이 떠나자 저택은 조용해졌다.
청룡 성주의 얼굴에 미소도 서서히 사라졌다.
피곤함이 얼굴에 드러났다.
무성 경지의 강자가 아닌 연로한 노인처럼 보였다.
"후."
청룡 성주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저택도 모습이 변했다.
활짝 피어있던 꽃들도 빠르게 시들고 죽음의 기운이 저택에 가득 맴돌았다.
"기한이 곧 다가온다. 네가 하루빨리 무종 경지로 진급해야 할 텐데……"
* * *
휙!
진남의 형상이 무술 경기장에 나타났다.
수많은 빛이 그의 몸에 동시에 내려앉았다.
청룡 성주가 진남을 데려갔던 동안 양대 성지에서는 천재를 고르는 일도 끝나고 사람들이 다 떠나갔다.
청룡 성지의 봉주와 사자들은 일찍 천재들을 데리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단목봉의 사자와 호법 그리고 제자들은 진남이 단목봉에 소속된다는 소식을 듣고 무술 경기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남이 나타나자 그들은 우르르 모여들어서 진남을 꽁꽁 에워쌌다.
"진남 사제 단목봉을 선택한 건 정말 잘한 거야!"
"진남 사제, 무슨 문제가 있으면 나를 찾아와야 해?"
"……"
청룡 성지에는 열여섯 명의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마다 봉주, 사자, 호법, 제자가 있었다.
봉우리들마다 서로 간섭하지 않고 어떤 때에는 서로 경쟁하기도 했다.
진남은 무왕 최고 경지밖에 안 되었지만, 단목봉의 대표 제자이고 자랑이었다.
단목봉의 사자와 호법 그리고 제자들 중 진남의 대우를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미래를 위해서 그들은 진남을 잘 지켜야 했다.
"사형들 고맙습니다."
진남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진남은 현령종에 있을 때는 내부에서 끝없이 싸워야 했기에 몇몇 친구들 빼고 거의 모두가 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형들의 이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사자, 호법, 제자들은 더 만족스러웠다.
사제가 오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조용하거라."
단목 봉주가 이때 반 공중에서 웃으며 말했다.
"진남, 용호, 묘묘, 반구 넷은 단목봉에 금방 가입했다. 청룡 성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을 테니 사람을 시켜 소개해주도록 하겠다. 너희들 중 누가 그 임무를 맡겠느냐?"
"저요!"
"안 돼요, 제가 하겠습니다!"
"썩 꺼져, 내가 해야 해!"
"싸우자는 거지?"
"……"
사자와 호법, 제자들은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였다.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불현듯 진남은 청룡 성주가 신분 영패를 준 게 떠올랐다.
유명해지는 게 썩 좋은 것만 같지 않았다.
'매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오면 수련하기가 어렵겠구나.'
"여러분, 제가 하겠습니다."
이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청색 도포를 입고 손에 총채를 든 얼굴이 백옥 같은 청년이 백학을 타고 나타났다.
그는 아무런 기운도 풍기지 않았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봄바람을 맞아 고민이 사라지는 것처럼 그를 만나자 모든 게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큰 사형!"
사자와 호법 그리고 제자들은 한 줄로 물러나 길을 터주었다.
진남은 목소리가 나는 쪽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청년은 서른이 되지 않았는데 반보 무황 경지였다.
무혼의 등급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적어도 현급 팔품 무혼 이상은 될 것 같았다.
"봉주, 그리고 여러분, 방금 한 말처럼 제가 진남 사제를 안내하는 게 어떻습니까?"
청년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의 목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문제없습니다!"
"큰 사형이 왔으니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
조금 전까지 서로 하겠다고 달려들던 사자와 호법들은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다.
단목 봉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방(趙方), 그럼 네가 안내하거라. 양대 성지의 여러 상황에 대해 자세히 말해줘야 한다."
"알겠습니다."
조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그는 진남 등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진남 등도 인사를 하고 따라갔다.
현장에 있는 사자와 호법들은 멀어지는 진남 일행의 뒷모습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 *
"청룡 성지의 열여섯 개 봉우리는 저마다 의미가 다르다. 예를 들면 단목봉은 심경을 수련하는 작용을 한다. 봉래선연도장 등도 심경을 제고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다른 봉우리들은 제각각 수련장들이 있는데 공법전승, 연단, 투무, 도박장, 수보 등 있을 건 다 있다."
"청룡 성지는 비양 성지와 다르다. 비양 성지는 싸움을 권하고 강자를 우대하고 약자를 하인 취급한다. 강한 천재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 허나 청룡 성지는 생존을 가르친다."
조방은 여러 가지를 조리 있게 설명했다. 진남 등은 양대 성지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생존이요?"
진남은 마지막 말을 듣고 의문을 제기했다.
"맞아. 생존."
조방은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청룡 성지에서 연단이나 연기(煉器)를 배운다. 왜 이런 것들을 가르쳐줄까? 청룡 성지의 역대 성주들은 무인의 수행은 쟁취, 혹은 명예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단이나 연기를 가르치는 것이다. 연단을 배우면 일정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능력이 부족해서 상역에 가더라도 배를 곯을 지경은 되지 않으니까. 적어도 연단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조방은 잠깐 숨을 고르고 계속 말했다.
"게다가 청룡 성지에서는 아무 때나 결투를 신청할 수 있지만 죽이고, 경지를 폐하고 불구가 될 때까지 때리는 건 안 된다. 누구든 어길 시 엄한 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청룡 성지에서는 편취, 기만, 약탈 등은 규칙에 위반되지 않는다."
"예? 약탈, 편취, 기만도 규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요?"
사마공은 작은 눈을 힘껏 부릅떴다.
이게 진짜라면 청룡 성지는 사마공에게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재미있어, 재미있군."
묘묘 공주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 곁에 있던 용호요종도 꿍꿍이를 꾸미는지 실실거리며 웃었다.
"맞다."
조방은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문파에서는 제자들에게 무도의 세계가 흉악해서 방심하면 강자라도 손해 본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