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무혼을 믿어라
"스승님!"
단목 봉주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응, 급해 말거라."
청룡 성주가 미소를 지으며 자애롭게 말했다.
"비양 성주가 내 건 조건은 역시나 풍부하오. 청룡 성지에서는 그렇게 못 해주겠소. 진남, 네가 청룡 성지에 온다면 똑같이 예비 성자로 임명할 것이다. 허나 다른 것들은 네가 직접 쟁취해야 할 게야. 네 신분 때문에 특별한 대우를 해줄 수 없다."
비양 성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진남이 비양 성지에 올 거라고 확신했다.
그들이 내건 조건이 훨씬 유리했다.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두 성주의 태도를 보면 비양 성지가 훨씬 조건이 좋았다.
그러나 용호요종과 묘묘 공주가 동의도 거치지 않고 단목봉에 가입하는 바람에 진남은 머리가 아팠다.
그때 청룡 성주가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진남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청룡 성지에 오면 네 의혹을 풀 수 있을 거다. 예를 들면 네가 들고 있는 검이라던가, 또 네 무혼이라던가……"
진남은 표정이 굳었다.
'내가 들고 있는 검? 내 무혼?'
진남이 들고 있는 검은 전신의 기운이 묻어있었다.
진남은 그 점을 느끼고 얻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전신의 혼은 확실히 문제에 봉착했다.
전신의 혼은 더 이상 단약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다른 어떤 것을 얻어야 진급할 수 있었다.
'청룡 성주가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알지?'
진남은 주저하지 않고 전신의 왼쪽 눈을 움직여 청룡 성주를 살폈다.
그러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청룡 성주의 기운은 깊은 동굴 같아서 알아볼 수도 없고 아무런 낌새도 없었다.
'지난번에는 구리거울이 전신의 혼이 내 원래 무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봤어. 그러나 구리거울도 전신의 혼의 내력은 몰랐어. 그런데 청룡 성주가 그걸 안다고? 여기 와서 아직 무혼을 드러낸 적도 없잖아.'
진남은 긴장한 채로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그는 질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청룡 성주가 그리 쉽게 알려주지 않을 것 같았다.
"청룡 성지에 가입하겠습니다."
진남은 한참을 고민해도 답이 없으니 청룡 성주의 뜻대로 청룡 성지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청룡 성주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반드시 알아보리라 결심했다.
"뭐라?"
비양 성주는 어이가 없었다.
비양 성지의 봉주와 사자들도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나 좋은 조건을 내걸었는데도 진남이 청룡 성지를 선택하다니!'
그러나 그들은 진남이 이런 선택을 한 건 청룡 성주의 마지막 말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남, 청룡 성주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을 나도 줄 수 있다. 청룡 성주가 주지 못하는 것도 줄 수 있다!"
비양 성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잘 생각하거라. 네 결정은 네 미래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네가 천재라고 해도 말이다!"
"진남, 잘 생각해 보거라."
나 봉주도 다급하게 외쳤다.
진남 같은 천재는 몇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했다.
나 봉주는 진남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두 분, 저는 이미 결정했습니다."
진남이 공수하며 말했다.
"두 분이 저에게 두터운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양 성지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청룡 성지를 선택하겠습니다. 청룡 성지가 저에게 더욱 적합합니다."
청룡 성주는 여전히 자애로운 표정이었다.
마치 이런 결과를 미리 예상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청룡 성지의 사람들은 모두 기쁜 표정을 드러냈다.
그들은 진남이 청룡 성지에 온 후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예견했다.
비양 성지의 사람들은 표정이 어두웠다.
그들은 진남을 데려가고 싶었지만 진남 스스로 청룡 성지를 선택했기에 강요할 수 없었다.
비양 성주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진남, 이미 결정을 했다니 강요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제부터 비양 성지의 모든 젊은 천재들은 너를 적으로 대할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비양 성지에서는 너를 죽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야! 하니, 마지막으로 선택을 번복할 기회를 주겠다!"
진남처럼 재능 있는 사람을 데려오지 못하면 죽이는 게 마땅했다.
아니면 미래에 비양 성지의 적이 될 것이었다.
청룡 성지의 봉주들은 화가 난 표정이었다.
'좋아! 이제 협박까지 하겠다? 청룡 성지를 안중에 두지 않는 거잖아?'
청룡 성지의 사람들이 입을 열기 전에 진남이 호탕하게 웃었다.
"좋습니다. 비양 성주, 비양 성지의 천재들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부디 저를 실망시키지 말아주십시오!"
말이 끝나자 진남은 전의가 솟아올랐다.
용문 금단이 만들어지고 한꺼번에 무왕 최고 경지에 이른 진남은 온몸이 근질거렸다.
'천재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비양 성주는 당황했다.
비양 성지의 봉주와 사자들도 당황했다.
위풍당당한 비양 성주의 위협에 고작 무왕 최고 경지인 진남이 역으로 비웃었다.
사람들은 진남의 담이 엄청나다고 생각했다.
"그럼 나도 긴말하지 않겠다. 네가 비양 성지 천재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강자가 될 수 있다면 나도 탄복하겠다!"
비양 성주는 깔끔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은 남고 선택된 천재들은 나를 따라오너라."
말을 마친 비양 성주는 힘껏 발을 구르더니 허공을 찢고 사라졌다.
그가 나타난 것은 진남을 위해서였다.
다른 천재들은 그가 직접 올 정도가 아니었다.
"저는 비양 성지에 가입하겠어요."
뜻밖에도 강벽난이 제일 먼저 나서서 말했다.
"아주 좋다."
비양 성지의 봉주들은 진남을 못 데려가서 우울했다.
그러나 강벽난도 실력이 살황보다 조금 뒤처지는 정도였기에 당연히 반가웠다.
"저도 비양 성지에 가입하겠습니다."
교십일이 얼른 말했다.
"교십일……!"
교철은 표정이 변했다.
그는 사실 청룡 성지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교십일이 버릇을 못 고치고 계속해서 강벽난에게 미쳐있었다.
"그럼 저…… 저도 비양 성지에 가입하겠습니다."
교철은 몰래 탄식을 하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하하! 저는 청룡 성지에 가입하겠습니다."
사마공은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남 형이 저를 지켜주는데 무서울 게 있겠습니까?"
제자 선발 대회에 진남 외에 다른 천재 세 명은 이미 귀속을 정했었다.
양대 성지의 사람들은 다시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하게 싸워봤자 얼굴을 붉히고 언쟁하는 정도였다.
청룡 성지에서는 진남을 데려왔기에 다른 천재들은 대부분 비양 성지에 양보했다.
두 성지에는 힘의 평형이 필요했다.
"성주!"
진남은 고개를 돌리고 청룡 성주를 바라보았다.
"나를 따라오너라!"
청룡 성주는 미소를 짓고 소매를 휘둘러 진남을 감싸더니 사라졌다.
* * *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은 제자 선발전이 시작되어서부터 허공의 맨 위쪽에 거대한 건물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성주들조차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은 무연각이었다.
무연각은 하역에서 유명한 금지였다.
그런데 무연각이 허공 속에서 청룡 성지의 모든 것을 굽어볼 줄은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무연각 오 층에는 노인 한 명, 중년 한 명 그리고 노파 한 명이 서 있었다.
진남이 이곳에 있었다면 그들을 알아봤을 것이다.
그들은 무연각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심사를 맡은 사람들이었다.
이들 앞에 청년이 서 있었는데 모습이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허허, 저 녀석은 내가 한눈에 재능을 알아봤지!"
첫 번째 관문의 노인이 허세 가득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깝다, 여인이었어야 하는데……"
"에고, 그때 깜짝 놀라지 않으셨습니까?"
중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또 싸워?"
노파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청년을 바라보며 공손하게 말했다.
"주인님, 천 년을 기다렸어요. 드디어 창람 대륙에 비범한 인물이 나타났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저자를 도울까요? 무연각을 통과했을 때 상품을 너무 적게 줬어요."
"상품?"
청년의 미소는 보이지 않았지만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저 아이에게 입미지석 한 개라도 충분했다. 선물을 줄 때는 뭐가 부족한지 살펴보고 주는 게 가장 적합하다. 도움이라고 하면, 딱히 우리 도움이 필요한 것 같지 않구나. 우리는 음지에 숨어 저 아이가 잘 자라기를 바라기만 하면 된다."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저 아이가 점점 강해지면 반드시 저쪽도 주의 깊게 지켜볼 거다. 그전까지 우리에겐 한가지 임무밖에 없다. 비밀을 잘 감춰 저쪽 사람들이 발견하는 시간을 늦추고 저 아이에게 성장할 시간을 주는 거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세 사람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청년은 허공을 바라보며 유유하게 탄식했다.
"무인은 무혼으로 천지와 소통해야 수련할 수 있다. 창람 불인, 대도 불인……"
그의 유유한 탄식 소리와 함께 무연각의 형상이 허공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 * *
청룡 성주는 무성 경지였다. 그가 가진 힘은 진남의 인지 범위를 벗어났고 진남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진남은 숨이 막히는 것 같더니 다음 순간 다른 곳에 와 있었다.
방원 수십 장이 되는 저택이었다.
저택은 깨끗하고 간단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마당에는 희귀하고 이상한 꽃을 심었는데 색깔이 찬란하고 기운이 신비했다.
꽃들 사이에 돌 탁자가 있었다. 탁자의 표면은 물처럼 맑았는데 빛이 얼기설기 엉켜 바둑판을 만들었다.
"청룡 성주, 대체 무엇을 알고 계시는 겁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진남은 주변 환경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무혼에 관한 일은 큰 사안이라 함부로 폭로할 수 없었다.
"지금은 알려줄 수 없다."
청룡 성주가 평온하게 말했다.
"네 경지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네가 적어도 무종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야 알려줄 수 있다."
'알려줄 수 없다고?'
진남은 눈빛이 서늘해졌다.
'무성 경지의 강자라고 나를 놀려도 되는 거야?'
청룡 성주는 자애롭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진남의 화를 못 본 척하며 말을 이었다.
"조급해하지 말거라.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너에게 모든 것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려줄 수 있다. 난 너에게 아무런 악의도 없다. 오히려 너는 나를 믿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너에게 가장 잘해 주는 사람이 나일 테니까."
"저에게 가장 잘해 주는 사람이라고요?"
진남은 웃음을 터뜨렸다.
'청룡 성주는 내력이 신비하다. 게다가 나의 비밀을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은 악의가 없고 나에게 가장 잘해 주는 사람이라고 하다니? 나와 농담하자는 건가?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못 믿겠느냐?"
청룡 성주는 담담하게 웃었다.
"누구라도 처음 만난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믿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네 무혼은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
진남은 안색이 변했다.
그의 등 뒤로 열 개의 청색 빛이 번쩍거리더니 수십 장에 달하는 전신의 혼이 드러나 천지 사이에 우뚝 섰다.
진남은 전신의 혼을 불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전신의 혼은 청룡 성주의 한마디 말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