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묘묘 공주의 눈물
다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남 도련님?"
'이게 무슨 일이야? 방검 사자가 진남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다니?'
"흥!"
묘묘 공주와 용호요중은 시큰둥했다.
그들은 방검을 잘 알았다. 현령종에서 구양패와 연합하여 선노를 공격하던 청룡 성지의 사자였다.
마지막에 단목봉주가 청룡 사람이라는 체면을 봐서 목숨을 살려주고 다른 용도로 쓰려고 곁에 남겨둔 자였다.
방검은 태도가 변했지만, 진남 일행은 여전히 그가 달갑지 않았다.
진남은 방검에게 호감이 없었기에 고개만 끄덕였다.
"진남 도련님, 무슨 일이 발생한 겁니까?"
방검은 화를 내지도 않고 오히려 웃으며 물었다.
"단목…… 도련님의 상황을 배려해서 직접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혹시 억울한 일이라도 당할까 봐 저를 보냈습니다. 무슨 일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진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래는 적이었던 사람인데 그 감정을 없었던 일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용호요종은 참을성이 없었다. 그는 난리를 떨었다.
"방검, 보았느냐? 이 나쁜 놈들이, 그 뭐냐, 육이 존자, 상도맹의 성녀 그리고 외팔 무황이라고 했던가? 궤검황, 팽어? 아무튼 이것들이 진남을 괴롭혔다."
"예?"
방검은 차가운 시선으로 외팔 무황을 향해 호통쳤다.
"외팔! 얼른 와서 사과하시오! 진남 도련님을 화나게 하면 누구도 당신을 보호해줄 수 없소!"
외팔 무황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왜 방검이 반보 무왕 경지를 진남 도련님이라고 하는 걸까? 그리고 나더러 저놈에게 사과하라고?'
방검은 외팔 무황이 움직이지 않자 화가 났다.
그는 외팔 무황과 감정이 꽤 좋은 사이었다. 그래서 이번 경매에도 그를 보낸 것이었다.
또 외팔 무황더러 얼른 사과하라고 한 것도 진남을 화나게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진남이 화가 나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었다.
"얼른 와서 사과하오! 사과하지 않는다면 이후 내가 매정하게 연을 끊는다고 원망하지 마시오!"
방검이 호되게 말했다.
외팔 무황은 방검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는 멍청하지 않았기에 얼른 상황을 파악했다. 진남은 아마 엄청난 배경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방검도 저런 말을 하지 않을 테였다.
"진, 진남 도련님, 이번 일은 제가 오해했소. 죄송하오."
외팔 무황은 체면을 세우지 않고 진남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공손하게 사과했다.
"괜찮소."
진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팔 무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고맙소, 진남 도련님."
외팔 무황은 왠지 모르게 시름이 놓이고 심지어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지었다.
방검도 한시름을 놓았다. 진남의 용서를 받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강황, 육이 존자, 백의 여인, 팽어 등 사람들은 당황했다.
'외팔 무황이 진남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사과를 했다! 게다가 진남의 용서를 받고 기뻐했다!'
백의 여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그마한 임수성에서 나온 황급 십품 무혼을 가진 사람이 오늘 이토록 대단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니.'
"육이 존자? 백의 성녀?"
방검은 시선을 육이 존자 등 사람들에게 돌렸다.
평소 같았으면 방검은 이들에게 공손하게 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존자이든 성녀이든 진남을 괴롭힌 사람이라면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단목 봉주는 천재 사이의 결투라면 그냥 넘긴다고 했다. 하지만 윗세대 선배들이 진남을 진압한다면 하역의 그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당신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겠소. 진남 도련님께 사과하시오! 단지 기회니까 거절할 수도 있소. 나 혼자 실력으로는 당신들의 상대가 안 되고 어떻게 할 수도 없소."
방검이 싸늘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한마디만 하겠소. 진남 도련님의 용서를 받는다면 당신들에겐 영광이오. 만약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상도맹이라고 해도 멸문당할 수도 있소."
방검의 마지막 한마디는 폭탄을 던진 것과 같았다.
'상도맹이 멸문을 당한다고?'
상도맹은 주요 세력이 상역에 있었다. 하역에 있는 것은 분맹이었다. 양대 성지도 상도맹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조심스러워했다.
그런데 진남을 화나게 하면 상도맹이 멸문될 수도 있다고 했다.
진남이 성지 성주의 아들이라고 해도 그만한 힘이 없었다.
이들은 죽어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방검이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건 진남의 뒤에 전설의 인물인 살황 당청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진남이 당청산을 부르면 상대방이 아무리 재간이 있어도 살 수 없을 것이었다.
"흥!"
묘묘 공주는 턱을 치켜들고 거만하게 서 있었는데 차갑기 그지없었다.
'상도맹이 그렇게 대단해? 진남을 진압하겠다면서? 계속 날뛰어 보시지?'
"그게 무슨……"
육이 존자와 백의 여인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검이 저런 말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들은 너무 놀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미처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진남에게 사과를 해야 할까?'
그건 너무 부끄러웠다.
'그럼 사과를 안 하면 어떻게 될까?'
방검의 기세를 보니 진남의 위에는 엄청난 세력이 있는 것 같았다. 만약 그 세력을 건드린다면 손실이 클 것이었다.
"진남 도우가 엄청난 신분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진남 도우의 신분으로 격에 맞지 않는 일을 하지 않았을 테지요. 제가 섣불리 오해했어요."
백의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는 한 맺힌 말투로 말했다.
"진남 도우, 전에 여러 가지 오해에 있었는데 부디 저를 원망하지 마세요. 제가 도우의 신분을 몰라봤어요."
그녀의 말투는 가련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용서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육이 존자도 얼른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 오해요, 오해. 진남 도련님, 마음에 두지 마시오. 그리고 진남 도련님의 삼 흑인도 오해였소. 내가 바로 해결……"
"됐습니다."
침묵하고 있던 진남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미간을 짚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이 삼 흑인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상도맹의 선물은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기회를 주지 마십시오. 아니면……"
진남은 두 눈에 한기를 번뜩였다.
"상도맹은 불모지가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강한 자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꼴도 보기 싫었다.
육이 존자 등은 표정이 다양하게 변하더니 이를 갈며 자리를 떴다. 계속 남아 있는다면 굴욕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 * *
진남이 정원에 들어가자 강황과 방검도 따라 들어왔다.
외팔 무황과 궤검황 등 사람들은 주제 파악을 하고 따라가지 않고 정원 대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무황 강자들이 마치 문지기 같았다.
"네 이 녀석."
강황은 만면에 미소를 짓고 말했다.
"배짱이 어찌 이렇게 큰가 했더니 대단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구나."
방검은 화들짝 놀랐다.
'그럼 상도맹에서 벌어진 일들을 진남이 한 일이란 말인가?'
방검은 저도 몰래 찬 숨을 들이켰다.
역시 진남이었다. 현급 팔품의 무혼이긴 하지만 고작 반보 무왕 경지인 그가 육이 존자 등 사람들을 데리고 놀고 그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
그도 일부 손해를 보았다.
"선배, 나서서 저를 보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진남이 진지한 표정으로 공수하고 인사했다.
그와 강황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번이나 도와준 것은 깊이 감사할 일이었다.
방검은 저도 몰래 부러운 시선으로 강황을 바라보았다. 이번 사건에서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하지만 진남은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도 현령종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진남의 마음속에 응어리가 남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관계 유지를 잘하고 잘 풀어가면 되었다.
강황은 진남의 배경에 대해 더 깊이 추측했다. 그러나 강황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천부와 배경만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의 인품만을 보았다.
강황이 손을 흔들며 웃음기 가득해서 말했다.
"나는 규칙대로 일할 뿐이다. 참, 이번 선발 대회 전에 떠나면 안 된다. 꼭 제자 선발대회에 참가하거라."
"강황, 이번 선발대회는……"
방검은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왜 그러십니까?"
진남이 그를 바라보았다.
"진남 도련님, 청룡 성지와 비양 성지에서 제자를 받는 방식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강황성에서 선발에 참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각 문파의 강자들이 직접 데리고 가서 단체로 심사를 받는 것입니다.
심사에 통과된 대부분의 천재들을 보면 양대 성지 강자들에게 선택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강황성에서 진행하는 선발전에서 뽑힌 천재는 별로 없습니다."
방검이 느긋하게 말했다.
방검은 진남이 이번 선발전에 참가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진남이 참가를 한다는 건 다른 참가자들을 괴롭히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방검의 말이 맞다. 그러나 반드시 참가해 강황성을 위해 빛을 내주려무나."
강황이 말했다.
"선배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참가하겠습니다."
진남은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진남은 내단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서 마침 강황성에서 폐관 수련을 해야 했다.
폐관 수련이 끝나고 선발전에 참가하면 될 것이었다.
방검은 더 설득하지 않고 공수하고 말했다.
"도련님께서 그리 결심하셨다니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강황, 자네 성주부에 가서 대화를 좀 나눌 수 있겠소?"
"좋소."
강황은 대답하고 방검과 함께 정원을 떠났다.
정원에 있던 원숭이는 돌처럼 굳어졌다.
오늘 겪은 일들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는 상도맹에게 진압당하던 진남 일행이 마지막에 판을 뒤집을 줄 몰랐다. 이들의 신분이 대단하다는 것도 의외였다.
"원숭이, 나는 한 달 동안 폐관 수련을 해야 한다. 이곳을 빌려 써도 되겠느냐?"
진남이 물으며 저장 주머니 하나를 던져줬다.
"그럼요, 문제없습니다."
원숭이는 저장 주머니를 확인하지 않았다. 진남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흥분해서 얼굴이 상기되어서 재빨리 정원에서 물러갔다.
정원에서 나온 그는 저장 주머니에 들어있는 입미지석을 보자 너무 감격스러워 엉엉 울었다. 그는 속으로 꼭 진남 같은 강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용호, 묘묘. 이건 너희 두 사람 몫이다."
진남은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더니 그들이 마음에 둔 보물을 꺼냈다.
그리고 용호요종에게 이십만 개의 입미지석을, 묘묘 공주에게 이십팔만 개의 입미지석을 주었다.
이번에 수확이 커서 거저 가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니 그는 친한 벗에게 아낌없이 퍼주었다.
"와! 이제부터 할아버지로 모실게. 진 할아버지, 죽도록 사랑한다!"
용호요종은 흥분해서 소리 질렀다.
"이거면 한가득 살 수 있어!"
그는 부랴부랴 뛰쳐나갔다.
묘묘 공주는 달랐다. 그녀는 놀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깨를 들썩이고 코끝이 빨개지더니 두 눈에 물안개가 피어올라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