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빛을 내뿜다
석실 안에 백 개의 잔편이 정연하게 놓여있고 잔편 가운데에 노인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노인은 소리를 듣고 행동을 멈추더니 진남과 홍풍 태자를 훑어보고 바로 말했다.
"어린 친구들, 난 목 대사다. 여기 백 개의 잔편은 모두 내가
천수봉오인으로 기운을 봉쇄했다. 너희 두 사람은 마음대로 동술을 펼쳐 와서 고를 수 있다. 각자 세 개만 택할 수 있고 한 개에 천 개의 입미지석이 필요하다."
"천 개의 입미지석이요?"
홍풍 태자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한 개의 제황지기의 잔편은 팔백 개의 입미지석이었다. 다시 말하면 설령 제황지기 잔편을 골랐다고 해도 손해 보는 것이었다.
목 대사가 계속해서 말했다.
"여기 놓인 백 개의 잔편에 제황지기의 잔편은 서른 개뿐이다. 남은 일흔 개의 잔편은 우리 상도맹의 감정사도 내력을 검증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 중에 경천거보가 있어서 만 개의 입미지석에 팔릴 가능성도 있다."
이 말을 듣고서야 홍풍 태자의 안색이 평온해지고 눈에 흥분이 솟아올랐다.
진남이 힐끔 보더니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의 표정을 팽어가 바로 보아내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남 도우, 규칙을 잊지 말아라. 너는 오늘 반드시 열 배의 가격을 지불해야 여기서 잔편을 살 수 있다!"
"열 배요?"
홍풍 태자의 눈에서 조롱이 흘렀다.
사마공은 분노한 기색을 내비쳤다.
'여전히 열 배라고?'
열 배라면 만 개의 입미지석으로 세 개를 고른다면 바로 삼만 개의 입미지석이었다.
삼만 알의 입미지석이라면 노인이 말하는 세 개의 경천거보의 잔편을 골라야만 겨우 본전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칠십 개의 잔편은 상도맹의 감정사도 검증할 수 없었다. 그러니 누가 그 나머지 칠십 개의 잔편 안에 경천거보가 있다고 보증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그저 칠십 개의 보통 잔편 일 수도 있었다.
이때 팽어가 갑자기 눈빛을 반짝이더니 좋은 생각이 떠올라 홍풍 태자를 향해 하나의 신념을 전했다.
"진남 도우, 너의 동술이 비범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만약 네가 이번 유희에 참여하고 싶다면 우리 둘이 내기를 하는 것이 어떠냐?"
홍풍 태자가 팽어의 신념을 듣고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이 모두 세 개의 잔편을 고르자. 네가 만약 나를 이기면 난 너에게 천 개의 입미지석을 주고, 네가 만약 지면 너는 나에게 만 개의 입미지석을 주거라, 어떠냐?"
"만 개?"
사마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잊고 너에게 알려주지 않았구나. 일반적인 무명소졸은 나와 일 대 일로 내기를 할 자격이 없다. 그러니 나하고 일 대 일로 도박하려면 나는 열 배를 받아야 한다."
홍풍 태자가 오만하게 말했다.
'내기할 자격이 없다고? 열 배를 받는다고?'
진남은 어이없었다. 홍풍 태자가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날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네가 말한 판돈에 동의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진남이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다만 판돈을 바꿔야겠어. 만약 내가 이기면 나에게 입미지석 만 개를 줘. 만약 내가 지면 너에게 입미지석 십만 개를 줄게. 어때?"
그 말에 홍풍 태자와 팽어, 목 대사 세 사람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입미지석 십만 알이라니! 설마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방금 전에 홍풍 태자가 진남에게 그렇게 말한 건 바로 팽어의 신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진남의 동술은 실로 강대했다. 그러나 백 개의 잔편에서 목 대사는 어느 잔편의 가치가 제일 큰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홍풍 태자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그렇기에 홍풍 태자는 식은 죽 먹기로 이길 수 있을 것이었다.
"하하하! 그렇게 한다면 굳이 열 배의 입미지석을 내지 않아도 된다. 반드시 내기를 해라!"
팽어가 기분 좋은 듯이 입매를 오물거리며 말했다.
"진남……"
사마공은 안색이 다급해졌다. 그는 이상한 점을 전부 알지는 못했지만 대충 짐작이 갔다.
진남의 동술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홍풍 태자 등의 음모에 걸려 질 게 분명한 도박이었다.
"뭐가 두렵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려면 크게 한방 해야 합니다."
진남이 사마공에게 말했다.
"그게……"
사마공은 머뭇거리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진남의 말이 맞다. 할 거면 크게 해야지!'
"자신만만하구나! 그럼 오늘 네가 무슨 자신감으로 이렇게 판돈을 올렸는지 한번 보자!"
홍풍 태자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안색이 극도로 나빠졌다.
팽어와 목 대사의 눈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진남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군. 좀 쓸 만한 동술 하나 가졌다고 자신이 천하무적이라도 됐다고 생각하나? 반드시 입미지석 십만 개를 빚지게 하겠어!'
팽어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 말했다.
"두 분이 내기하기로 결정했으니 이제 고르시죠. 홍풍 태자가 먼저 우리 고운방에 오셨으니 이번 내기는 홍풍 태자께서 먼저 고르시죠!"
그 말에 사마공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홍풍 태자를 먼저 고르게 하는 건 대놓고 홍풍 태자더러 가치가 제일 높은 잔편을 고르라는 거잖아?'
'진남 동생, 만약 네가 지면 나는 먼저 도망갈 거야……'
사마공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방주 고맙습니다!"
홍풍 태자가 웃으며 한 걸음 크게 나섰다. 그의 두 눈에서 단풍잎 하나가 나타나 현광을 내뿜어 수백 개의 잔편을 모두 뒤덮었다.
석실 안의 목 대사가 눈빛이 반짝이더니 바로 신념을 일으켰다.
다섯 번 호흡하는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홍풍 태자는 입가에 희색을 띠고 높이 외쳤다.
"저는 팔 호, 삼십이 호, 구십구 호, 이 세 잔편을 선택하겠습니다. 팽 숙부, 여기 입미지석 삼천 개입니다!"
팽어와 목 대사 두 사람은 얼굴에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일제히 진남을 바라봤다.
진남은 안색이 변하지 않았다. 시작할 때부터 그는 이미 이 백 개의 잔편을 한번 훑어봤었다. 홍풍 태자가 선택한 세 잔편은 모두 제황지기를 초월한 존도지기의 잔편이었다.
법보는 후천, 선천, 왕도, 황도, 존도, 성도, 제기 등 급으로 나뉜다.
제황지기의 잔편 하나라도 그 가치가 엄청났다. 존도지기의 잔편은 그 가치가 제황지기의 열 배나 되었다.
"홍풍 태자가 선택한 세 잔편을 봅시다!"
팽어는 일부러 크게 말하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세 갈래 빛이 잔편에 튕겨 들어갔다. 순식간에 잔편에서 세 갈래 자색 빛이 반짝거리더니 짙은 존자의 뜻으로 변해 주위를 휩쓸었다.
"존도지기의 잔편이오!"
사마공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이제 큰일 났어. 홍풍 태자와 팽어 등이 이미 한통속이 되었구나!'
홍풍 태자는 이 광경을 보고 크게 기뻐하더니 자신만만하여 진남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세 개 모두가 존도지기의 잔편이구나! 진남, 빨리 잔편을 세 개 고르거라. 근데 오늘 내기는 내가 이미 이겼구나. 하하하!"
팽어와 목 대사 두 사람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백 개의 잔편은 그들 상도맹에서 이미 검증을 마친 것이었다. 이 세 개의 존도지기의 잔편 외에 나머지는 제황지기의 잔편이었다. 또 일부는 아무 작용이 없는 폐편이었다.
다시 말해 진남이 아무리 고른다 해도 지는 건 뻔한 것이었다.
진남은 그를 힐끔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왼쪽 눈동자에서 금빛이 반짝거렸다.
"이건 무슨 동술이지?"
목 대사는 안색이 굳어졌다. 방금 그는 영혼이 떨리는 위압을 느꼈다.
진남이 갑자기 손을 내밀며 말했다.
"십 호!"
"십 호?"
목 대사는 어안이 벙벙했다. 참지 못하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진남 젊은이, 내가 너를 속이는 게 아니라 십 호 잔편은 폐편이다. 네가 만약 그걸 사면……"
'폐편? 진남이 폐편을 선택했다고?'
팽어와 홍풍 태자의 눈에 경멸과 멸시가 스쳤다. 진남의 동술이 꽤 대단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저 그랬다.
사마공은 눈을 끊임없이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진남의 이 대단한 눈동자가 무슨 잔편을 선택했는지만 알고 싶었다.
진남은 목 대사의 표정을 신경 쓰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십 호 외에 이십일 호, 삼십구 호! 저는 이 세 잔편을 사겠습니다."
목 대사는 얼떨떨했다.
'십 호, 이십일 호, 삼십구 호?'
잠시 당황해서 입을 벌리고 있던 목 대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젊은이, 자네가 이 세 잔편을 사면 틀림없이 질 거야! 세 잔편은 모두 편이고 한 푼의 가치도 없다!"
'모두 폐편이라고?'
팽어는 만면에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는 이미 진남이 져서 본전을 다 날리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아가씨가 알게 되면 틀림없이 자신을 다시 보고 크게 칭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홍풍 태자는 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가 서슬 퍼런 눈빛으로 말했다.
"하하하! 진남, 세 개 모두 폐편을 선택하다니! 넌 내기에서 졌다. 이제 빨리 입미지석 십만 개를 내놓거라!"
"뭐가 그렇게 급해?"
진남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선 이 세 잔편의 금제를 풀자. 폐편인지 아닌지는 네가 결정짓는 것이 아니야!"
"뭐……? 감히!"
홍풍 태자의 눈에 분노가 가득했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포기하지 않다니?'
목 대사도 안색이 싸늘해져 말했다.
"방주, 그럼 이 세 잔편의 금제를 풀어주시오. 저 자에게 폐편인지 아닌지 보여주시오."
"좋습니다!"
팽어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세 갈래 빛을 튕겨 그 세 잔편의 금제를 풀었다.
과연 금제가 흩어진 후 그 세 잔편은 아무런 기운도 없이 고요했다. 바로 목 대사가 말한 폐편이었다.
사마공의 표정이 굳었다.
"흥! 내가 말했잖아. 이 세 잔편은 폐편이라고. 기어코 믿지 않더니!"
목 대사가 싸늘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끼었다.
"하하하! 이겼다!"
팽어가 참지 못하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진남, 보았느냐? 이 세 개는 폐편이다."
홍풍 태자의 기세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는 우레처럼 크게 소리쳤다.
"어서 빨리 입미지석 십만 개를 내놓거라! 네가 만약 내놓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을 쓸 테……"
홍풍 태자가 말을 멈췄다.
진남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오더니 그 세 잔편 중에서 녹이 슬어 얼룩진 철제함을 잡았다. 그는 손가락을 굽혀 그 철제함을 가볍게 눌렀다. 순식간에 엄청난 빛이 철제함에서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석실을 처음 봤을 때 진남은 전신의 왼쪽 눈동자를 움직여 이 세 잔편을 발견했었다. 이 세 잔편은 엄청 오래되었는데 강대한 힘을 품고 있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도 기운을 조금밖에 느끼지 못했다.
바로 이 때문에 홍풍 태자와 팽어, 목 대사 세 사람이 짜고 그를 속여도 그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철제함에서 솟아오르는 빛이 하늘을 찌르며 석실 안에 가득했다.
빛은 깨끗하고 환했는데, 봄바람을 맞는 것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줬다.
홍풍 태자, 팽어, 그리고 목 대사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건 폐편이 아니었나? 어떻게 이렇게 눈부신 빛을 뿜는 거지?'
목 대사는 놀란 와중에 갑자기 뭔가 생각나 실성한 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