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미행이 붙다
일호 실은 대략 방원 십 장 크기였다.
이 객실 중앙에 두 개의 의자와 나무로 만든 다탁(茶卓)이 있었다.
주위에는 여러 가지 기괴한 돌들이 한데 쌓여 몽환적인 빛을 뿜었다. 그 외에 기묘한 꽃들이 활짝 피어 향기를 뿜어 기분이 상쾌하게 했다.
열 평도 안 되었지만, 매우 오묘한 공간이었다.
백의 면사의 여인이 중앙에 앉아 새하얀 두 손을 내밀어 찻주전자를 들어 연한 청록색의 차를 붓고 있었다.
"진남 도우."
그녀가 진남을 불렀다.
진남이 무표정하게 그녀 앞에 앉아 마치 물을 마시듯이 찻잔을 들어 단번에 마셔 버렸다.
"진남 도우는 과연 남다르군요. 청록춘차(靑綠春茶)는 한 잔의 가치가 스무 개의 입미지석인데,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천천히 음미했을 것이에요."
백의 면사의 여인이 동작을 멈추었다.
진남은 비록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진남이 찻잔을 놓고 담담하게 말했다.
"저에게 삼 흑인을 찍어놓고 지금 저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다니, 도대체 무얼 하자는 겁니까."
"진남 도우 화내지 말아요."
백의 여인이 가볍게 웃었다.
"제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요? 당신이 만약 무연각의 비밀을 저에게 주면 제가 당신에게 무궁한 이익을 주겠다고, 그리고 만약 주지 않으면 제가 다른 수단을 쓴다고 해도 욕하지 말라고요."
백의 여인의 목소리가 매우 가볍고 부드럽게 변했다.
"진남 도우, 무연각의 비밀을 저에게 알려주는 것이 어때요?"
일순 주위의 모든 것이 마치 멈춘 듯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서 나온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한 덩어리 청색의 물결로 변해 진남의 마음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 같았다.
진남은 얼굴이 살짝 멍해졌다.
백의 여인이 그의 표정을 보고 눈에 희색이 스쳤다.
이건 그녀가 요즘 새로 수련한 '매심영술'이란 비기였다. 매심영술에 당하면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잃고 시전한 사람의 말을 따르게 만들었다.
그녀는 일부 무왕 경지 정상의 강자에게도 이 기술을 펼친 적이 있었다. 매번 모두 성공했기에 그녀는 이번에 진남이 순순히 무연각의 비밀을 내놓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때 진남의 얼굴의 멍한 기색이 사라지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방법으로 저를 이용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당신…… 왜 영향이 없는 거죠?"
백의 여인이 놀랐다.
'이 초식은 무왕 경지 정상의 강자마저도 막을 수 없었는데? 진남은 분명 겨우 반보 무왕 경지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거지?'
'아냐, 진남은 짧은 몇 개월 내에 선천 일 단계에서 반보 무왕 경지로 진급했다. 오늘 이자가 나의 매심영술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분명 무연각의 비밀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오늘 어떻게 해서든지 무연각의 비밀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
백의 여인은 놀란 마음을 빠르게 진정하고 생각을 정리하더니 다시 한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진남 도우는 역시 대단하군요. 제가 너무 경거망동했네요. 하지만 저는 무연각의 비밀을 반드시 가져야겠어요. 만약 진남 도우가 원한다면 진남 도우에게 줄 수 있는 중요한 소식들이 있어요."
"허허."
그녀의 말이 끝나자 진남이 바로 냉소하더니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소식이요? 전혀 흥미 없습니다."
백의 여인이 여전히 체념하지 않고 달랬다.
"진남 도우, 당신의 실력으로는 무연각에 관련된 비밀을 혼자서 보전할 수가 없어요. 당신이 저와 힘을 합치는 것이 현재로서 제일 좋은 선택이에요. 우리 상도맹은 매우 신용이 있으니 힘을 합치기만 하면 다른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신용?"
진남이 일어서면서 비웃으며 말했다.
"당신들 상도맹은 저에게서 비밀을 얻기 위해 더러운 수단을 쓰는 것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따위 일을 저지르고도 저하고 신망을 논하는 겁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와봤더니 헛소리만 내뱉는군요."
말을 마친 진남이 몸을 돌려 가려 했다.
"서요!"
백의 여인의 얼굴이 살짝 변했다. 이어 깊게 숨을 마시더니 말했다.
"진남 도우, 당신이 이번에 강황성에 온 것은 아마 성지의 제자가 되기 위한 거지요? 당신은 지금 삼 흑인이 있으니 양대 성지 모두 당신을 시험에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에요."
"그리고……"
백의 여인이 멈칫하더니 말했다.
"전 비록 강황성 내에서 규칙을 무시하고 당신에게 무력을 쓸 수 없지만, 당신을 곤경에 처하게 할 수는 있어요. 그러니 성질을 거두고 충동하지 말고 잘 생각해 보기를 바라요."
진남의 얼굴이 흉악해졌다.
"지금 저를 위협하는 겁니까?'
백의 여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 당신을 위협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당신더러 현실을 잘 보라는 것뿐……."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남이 갑자기 손을 흔들어 말을 자르고 담담하게 말했다.
"개소리!"
그는 말을 마치고 바로 성큼성큼 가버렸다.
진남이 떠나자 일호 실의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휙! 휙!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리더니 두 개의 거대한 체구가 일제히 내려왔다.
둘 다 무종 경지의 강자였다.
"아가씨!"
그중 한 명이 낮은 소리로 외쳤다.
"태고 살진을 움직여 그의 영혼을 빼고 그의 영혼을 고문할까요?"
백의 여인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낙하왕국쪽에는 소식이 있느냐?"
"아직 없습니다."
다른 한 명이 무겁게 말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가 여러 가지 방법을 써 낙하왕국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청룡 성지와 비양 성지의 강자가 모두 암암리에 막았습니다. 때문에 이번에 열두 명의 그림자를 잃었습니다."
그림자라면 상도맹에서 소식을 알아내는 사람이었다.
그림자는 모두 상도맹이 힘들게 찾은 특수한 인재여서 매우 희소했다. 그리고 한 명의 그림자를 배양하는데 커다란 자원을 썼다.
그런데 열두 명이나 잃었으니 이미 크나큰 손실이었다.
백의 여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녀는 오랫동안 사색하고 나서야 천천히 말했다.
"다른 그림자들을 철수시키거라. 낙하왕국은 잠시 내버려 둔다. 그리고 너희 두 사람은 속히 진남을 뒤따라가 그의 모든 행적을 관찰하거라. 그가 우리의 시선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거라."
"알겠습니다!"
두 강자가 동시에 몸을 날려 사라졌다.
백의 여인이 중얼거렸다.
"진남…, 너는 내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어."
* * *
진남은 청심 객사를 떠난 후 원숭이와 함께 정원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절반쯤 갔을 때 진남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원숭이야, 너 먼저 가거라, 조금 있다가 알아서 돌아갈게."
원숭이는 청심객사에 간 진남에게 경외심이 생겼기에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신속히 떠났다.
"나를 미행하려고?"
진남의 시선이 흔적을 남기지 않고 뒤쪽을 흘겨보았다.
만약 다른 곳에서 양대 무종 경지 강자가 그를 미행한다면 그는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황성은 달랐다. 그 누구도 기운을 내보낼 수 없었고 경지를 쓸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강황성의 징벌을 받게 된다. 무종, 무황 강자라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두 무종은 그들만의 기교와 경험을 바탕으로 진남을 미행하는 것이었다.
진남이 걷는 속도를 높였다. 사람들 속에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해서 어렴풋하게 보였다.
양대 무종 강자는 이걸 보고 안색이 변했다.
"설마 우리를 발견한 건가?"
그들 두 사람이 경지를 쓰지 않은 상황에서 온몸의 기교만 썼다. 그렇다고 해도 무왕 경지 정상의 강자라도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진남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설령 네가 우리를 발견했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다!"
양대 무종이 냉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의 몸이 진남과 같이 흔들리며 왔다 갔다 했다. 그들이 내딛는 걸음은 모두 크기가 같았다.
이는 '부혼보(附魂步)'로 상도맹의 오래된 기교 중 하나였다. 오랜 연습을 걸치고 기교를 발휘하면 자아를 깊이 잠들게 하고 자신을 상대방이라 상상하게 됐다. 그리하여 자신의 몸과 상대방의 모든 행동이 전부 일치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오?"
앞에서 걷던 진남이 그를 발견하고 눈썹을 살짝 움직이더니 바로 전신의 눈을 펼쳤다.
순식간에 방원 삼 리의 모든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는 전신의 눈이 초기에 깨우친 능력이었지만 쓸모가 많지 않아 진남은 줄곧 쓰지 않은 능력이었다.
진남이 방원 삼 리의 지형을 조사했다. 그는 하나의 작은 골목을 보고 몸을 날려 그 속으로 들어갔다. 양대 무종 경지 강자가 그 뒤를 바짝 따라왔다. 다만 그들은 작은 골목에 들어선 후 안색이 저도 모르게 변했다.
원래 이 작은 골목에 벽이 하나 있어 맞은편을 막고 있었다.
양대 무종 강자는 서둘러 앞으로 가 그 벽을 넘어 앞을 봤다. 아니나 다를까 진남의 모습은 이미 골목에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여기에 골목이 있는 줄 어떻게 안 거지? 그리고 순식간에 그렇게 먼 거리를 가려면 분명 여러 번의 계산을 거쳐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경지도 쓰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두 사람을 따돌릴 수 없을 텐데……."
양대 무종 강자는 안색이 매우 보기 흉했다.
그들은 처음으로 미행에 실패한 것이었다. 더구나 상대방은 고작 반보 무왕 경지였다.
* * *
"강황성은 진짜 조용하지 않구나."
진남이 큰길을 걷고 있었다. 그가 지나가는 곳의 길 양옆의 노점상 상인들은 모두 안색이 변하고 그를 보는 시선에 모두 경계심이 가득했다.
"반드시 방법을 찾아서 이 자국을 없애 버려야겠어!"
진남이 깊게 숨을 마셨다. 세 줄의 흑인이 그에게 주는 영향은 무척 컸다.
진남은 전신의 눈이 있어 많은 내력이 평범하지 않은 보물이 싼 가격에 팔리는 것을 파악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노점상들이 모두 그와 거래하려 하지 않아 아무것도 살 수가 없었다.
이때 갑자기 진남을 부르는 소리가 울렸다.
"도우, 도우 걸음을 멈추십시오!
진남이 걸음을 멈추고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세 줄의 흑인이 있는데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니?'
작은 노점상 앞에 얼굴색이 누렇고 몸이 마르고 한 쌍의 삼각 눈을 지닌 청년이 진남을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도우,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 걸 보니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자자, 오십시오. 저에게 있는 건 모두 왕도지기입니다. 지금 매우 낮은 가격으로 팔고 있습니다. 이것들의 위력을 느껴 보면 기분이 매우 많이 좋아질 겁니다!"
"왕도지기?"
진남이 그 말에 노점상을 훑어보았다.
칼 하나, 검 하나, 창 한 자루가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서 흘러나오는 위압은 모두 왕도지기였다!
현령종의 지보 장교대전이 바로 왕도지기였다.
"오? 얼마나 싼 가격에 팔 거요?"
진남은 조금 흥미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