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세전혼-167화 (167/1,498)

167화 무릎을 꿇어라

퍽!

삼십 장 길이에 달하는 검기가 하늘을 가로질러 장교대전에 떨어졌다.

장교대전의 대진들이 검기를 막으려 움직였다.

하지만 거대한 검기는 막히는 게 없는 듯이 모든 것을 파괴해버렸다. 온 대전이 두 동강 났다.

장교대전이 두 동강 나도 대전의 많은 전주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전주들이 정신을 차리자 마음에서 한기가 솟아올랐다.

노인이 다시 움직였다.

침묵 가운데 사람들은 수만 갈래의 칼 빛을 보았다.

빛이 각기 다른 각도, 다른 방위로 부서진 장교대전을 가득 채웠다. 그 빛은 멀리서 보면 허공에 피어 있는 꽃 같았다. 꽃이 모든 전주, 장로 등을 전부 감쌌다.

휙!

노인은 장교대전의 삼백 척 떨어진 허공에 떠올라 담담하게 말했다.

"너무 약하구나."

그의 말이 끝나자 빛이 끝없이 폭발하며 삽시간에 감싼 것들이 터져나갔다.

쿵! 쿵! 쿵!

왕도지기는 장교대전을 삽시간에 삼켜버렸다.

하늘을 뒤덮은 기운이 온몸을 가득 채우고 부서진 전주들의 몸은 산산이 조각나 혈우(血雨)가 되었다.

폭발음이 사라지자 사방팔방이 또다시 끝없는 적막에 휩싸였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람들은 혈우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지며 부슬부슬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다. 어떤 혈우는 제자들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그 차가운 촉감과 피비린내는 그들의 영혼을 자극해 약간 정신을 차리게 했지만 두 눈에는 망연자실함이 가득했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바람조차 제대로 불지 못했다. 엄청난 피가 땅에 주룩주룩 떨어지고 부서진 백옥도장은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조용해질 때까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죽음과 같은 침묵만이 있었다.

수백 명의 강자의 목숨이 짧은 호흡 사이에 전부 참살당하자, 사람들은 놀라움이 아니라 끔찍한 학살이 몰고 온 충격에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죽은 뒤에 감을 눈도 없이, 살아 숨 쉬며 낙하왕국을 누비던 명성이 높은 인물들이 전부 죽었다.

"이게 뭐야……"

용호요종의 눈동자는 동그래져 눈알이 빠질 정도였다. 당당한 청룡뇌호의 혈맥은 지난번 어린 괴물인 진남에게 호되게 충격을 받은 이후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한 강자가 몰고 온 학살은 그를 몸서리치게 했다.

"이 노인은……"

묘묘 공주는 아름다운 눈이 휘둥그레진 후 코를 찡그렸다. 그녀의 식견으로도 외진 하역에서 한 명이 살육의 극치를 연출한 것은 처음 보았다.

진남의 눈에서는 섬뜩함이 드러났다. 그는 노인의 비범함을 알았지만 이렇게나 잔인할 줄은 몰랐다.

"너희 셋."

노인은 시선을 조방, 위통, 임선에게로 돌렸다.

쿵!

조방 등은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노인의 평범하고 위압적이지 않은 눈빛에서 그들은 끝없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들도 무종 경지의 강자였다.

그들은 필사적인 힘으로 울부짖었다.

"……도망가……!"

조방 등은 순식간에 장홍이 되어 세 방향으로 미친 듯이 도망쳤다.

"말을 잘 안 듣는구나."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손가락으로 조방 쪽을 가리켰다.

"으악!"

처량한 비명 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도망치던 조방의 몸이 굳어지더니 표정이 괴이해졌다. 마치 극도의 공포를 만난 듯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조범의 몸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더니 폭발했다. 그는 혈무(血霧)가 되어 몸이 한 줌도 남지 않았다.

노인은 임선을 다시 바라보며 손바닥을 흔들었다.

미친 듯이 도망치던 임선은 목이 시린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허공에서 격렬한 파동이 일었다.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큰 칼이 나타나 그녀의 목을 스쳤다. 순식간에 그녀는 목이 잘렸다.

양대 무종 경지의 강자가 도망가자마자 죽었다.

미친 듯이 도망치던 위통은 마치 거대한 불덩어리가 소리를 내듯 공기마저 타들어 가는 소리를 냈다.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숨겨왔던 비장의 무기를 펼친 것으로 '생명화둔(生命火遁, 불을 이용하여 자기 몸을 숨기는 기술)'이라 불렀다. 생명을 태우면 속도가 열 배나 빨라졌다.

"멀리 도망쳤으니 난 살 수 있을 거다……"

위통은 백 리 밖까지 도망친 것을 알고 난 뒤, 안도하며 기뻐했다.

백 리 거리는 살황이 신통력이 광범위하다고 해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분명 백 리 떨어져 있었는데 똑같이 담담한 목소리가 위통의 귓가에서 뚜렷하게 울려 퍼졌다.

"혼자 멀리 도망갔으니 제일 천천히 죽을 거다."

백옥 도장에서 노인이 손가락을 꼽아 수를 셌다.

백 리 밖 위통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순간 그의 왼쪽 다리가 터지며 그가 비명을 질렀다.

"계속 도망가겠느냐?"

노인이 또 손가락을 꼽아 수를 셌다.

백 리 밖에 있는 위통의 오른쪽 다리가 터졌다.

노인이 다시 한번 손가락을 꼽아 수를 셌다.

위통의 한쪽 팔이 터졌고, 노인은 나머지 손가락을 꼽았다.

노인이 손가락을 꼽는 순서로 위통의 남아있던 팔, 가슴, 머리가 점점 터지면서 완전히 떨어졌다.

삼대 종문의 종주가 모두 얼마 도망가지도 못한 채로 죽어버렸다.

"너희 둘은 어떡하겠느냐?"

노인의 시선이 청룡성지의 사자와 구양패에게 향했다.

청룡성지의 사자와 구양패는 이미 혼비백산하여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렇게 직접 살황의 실력을 보는 것은 그들도 처음이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힘에 두 사람의 영혼이 압도됐다.

"선, 선배님… 저, 저는 현령종의 종주입니다…그래도……"

구양패는 이전의 난폭한 패기가 사라져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안 된다."

노인이 말했다.

"네가 구양패냐? 너는 진남을 계속 무릎 꿇게 하고 싶었던 거 아니냐?"

"선배님, 저는……"

구양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구양패, 이리 오거라."

노인이 손짓했다.

"저……"

구양패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노인의 학살이 가져다준 충격은 설령 그가 무황일지라도 겁나게 했다.

"두 번 말하고 싶지 않다."

노인의 수중에 있던 검은 칼이 천천히 움직였다.

구양패의 척추부터 올라온 한기가 그의 머리털을 곤두서게 했다. 그는 자신이 다시 쓸데없는 말을 한다면 삼대 무종처럼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휙!

구양패는 곧장 노인에게로 달려갔다. 노인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진남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남 앞에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말하거라."

진남은 드디어 만상도의 신비한 노인이 바로 선노가 말하던 살황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자신을 위해 사대 종문의 모든 전주, 거물들을 죽이고 다른 삼대 종문의 종주들도 죽였으며, 구양패를 그의 앞에 무릎 꿇게 했다!

처음엔 살황이 왜 자신을 특별하게 대하는 건지 몰랐다. 하지만 진남은 미련하지 않았다.

그는 짐작해봤다. 만상도에 있을 때 자해만월석을 시험하기 위해 그는 자해만월석을 부수었다.

그는 자해만월석을 부순 것이 살황에게 있어서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진남은 자신이 자해만월석을 부순 것이 이번에 그를 구했다고 짐작했다.

그리고 이전에 이미 살황이 그에게 취천일격을 가르쳐 주었고 그는 이 취천일격으로 급을 넘어 임자소를 격파하고 구양군을 죽였다.

진남은 인정과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살황이 그를 도와준 것이 어쩌면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진남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직 자신이 살황에게 빚을 졌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살황의 은혜는 산과 같았다!

구양패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나더러 진남에게 무릎 꿇으라는 건가? 무황 경지의 강자인 나보고 진남에게 무릎 꿇으라고 하다니?'

죽일 수는 있어도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

노인은 구양패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내 말대로만 한다면 나도 너를 봐주도록 하마."

"……"

구양패의 노여움이 순식간에 풀렸다. 그는 고민으로 얼굴빛이 계속 바뀌었다. 방금 일어난 장면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시간이 지난 뒤, 그의 온몸은 모든 힘을 잃은 것 같았다.

"선배님…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뒤 구양패는 진남에게 다가갔다. 그는 피로 얼룩진 진남의 얼굴을 보더니 이를 악물었다. 털썩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무릎을 구부려 진남의 앞에 꿇었다.

구양패는 땅에 머리를 박았고 소리가 잇새에서 새어 나왔다.

"진남…내가……"

구양패는 반쯤 말했지만, 뒷말은 목에 걸린 듯 뱉기 힘들었다. 수많은 제자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들의 시선은 마치 바늘처럼 구양패의 마음에 꽂혔다.

구양패의 몸은 걷잡을 수 없이 약간 떨렸고 두 눈에서 깊은 모욕감과 원망이 드러났다.

'살황, 진남, 오늘의 나는 무릎을 꿇고 머리 숙여 사과하지만, 이후 내가 강자가 되면 이 치욕을 반드시 갚을 것이다!'

구양패가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그는 억지로 목구멍에서 나머지 글자를 뱉어냈다.

"잘못……"

바로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 * *

청룡성지

한없이 강대한 존재는 무언가를 느낀 듯 두 눈을 떴다. 그는 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백 년 만에 네가 드디어 세상에 나온 거냐? 설마 네가 찾으려던 사람을 벌써 찾은 거냐? 정말 찾아낸 거라면 용서할 수 있을 텐데……넷째야, 가자!"

그 존재는 큰소리로 외쳤고 소리는 허공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잠시 뒤, 두 개의 강한 기운이 청룡성지에서 하늘로 솟아올라 수많은 강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헉, 양대 봉주(峰主)가 동시에 세상에 나왔어. 설마 악마라도 나타난 거야?"

"……"

* * *

비양성지

"둘째 형님의 기운 아닙니까?"

깊은 곳의 강대한 존재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창공을 뚫는 듯 무수한 신광을 내뿜으며 말했다.

"얼마 만입니까. 대체 얼마 만이에요. 둘째 형님, 드디어 찾아야 할 사람을 찾은 겁니까? 하하하! 찾았으면 됐어요. 찾으면 된 겁니다!"

호탕한 웃음 소리와 함께 비양성지의 대지가 산산조각이 났다. 강대한 존재는 힘껏 발을 구르며 두 손을 허공 깊숙한 곳까지 밀어 넣더니 허공을 찢고 성큼성큼 나아갔다.

* * *

천봉산 현령종

알 수 없는 억압이 온 산봉우리를 휩쓸었고 천지가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불안이 온몸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윙!

천지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안색을 변하게 하는 마력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들은 저 멀리 하늘에서 무언가 날아오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윙! 윙!

떨리는 소리가 급격히 증가하더니 상상할 수 없는 위압이 천지를 내리눌렀다.

용호요종과 묘묘 공주 그리고 구양패와 청룡성지의 사자의 안색이 변했다.

현령종 허공에 떠 있는 노인은 고개를 들어 담담하게 먼 곳을 바라봤다.

쿵!

두 개의 그림자가 천신(天神)처럼 현령종에게 강림했다. 두 사람만으로도 현령종의 모든 대전이 커다란 압력을 받은 듯 흙 속으로 한 치나 더 깊이 빠져들었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의 영혼은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