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종주들의 연합
그의 말에 종주와 전주들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들이 추측한 대로 구왕패는 음모를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무황이 되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진남은 구양패의 시선에 온몸의 피가 굳고 보이지 않는 압력이 그를 조여오는 것 같았다. 쇠약하기 그지없는 육체는 굳어져서 장도를 계속 휘두를 수 없었다.
진남도 이제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드디어 깨달았다. 구양패를 정탐할 때 보인 눈부신 금빛은 무황 경지의 기운이었다.
그 외에도 진남은 영기 거룡이 왜 그런 당부를 했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구양패는 꿍꿍이가 많고 자신을 깊이 감추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구양군이 죽기 직전에야 구양패는 본 모습을 드러냈다.
진남은 이내 충격이 가시고 차분함을 회복했다.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무황? 당신이 무황 경지면 대단합니까? 두 무황 경지가 있다고 제가 겁을 먹을 것 같습니까?"
진남의 웃음기가 점점 더 짙어지고 목소리가 천지에 울렸다.
"제가 가장 두려워하지 않는 게 죽음입니다! 두 분 모두 무황이면 어떻습니까? 당신의 아들이 저를 괴롭혔으니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마지막에 진남은 거의 악을 쓰듯이 소리 질렀다.
진남은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장도에 온 힘을 다 실어 강대한 위압을 뚫고 구양군의 머리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순간 종주들과 제자들 모두 넋이 나갔다.
'패기라는 게 무엇인가? 진남이 보여 준 것이 패기다. 반보 무왕 경지가 두 무황 경지를 마주하고도 대들다니!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가능한 일일까?'
"진남!"
구양패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는 무황 경지의 기운을 풍겨도 진남을 누를 수 없자 몸 안에 있던 끝없는 금광이 거대한 용으로 변해 묘묘 공주에게 달려들었다.
"흥! 내 하인을 방해하려고? 어림도 없다!"
묘묘 공주는 표정이 거만했다. 그녀의 작은 체구에서 근원이 힘이 용솟음치더니 몸집이 약간 커진 것 같았다. 그녀의 경지는 쭉쭉 높아지더니 반보 무황 경지에 이르렀다.
묘묘 공주가 발을 구르자 열 개의 검이 진이 쳐져서 금광 거룡을 막고 구양패의 몸을 봉쇄했다.
"비켜라!"
구양패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또다시 살초들을 펼쳤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묘묘 공주가 친 진을 뚫을 수 없었다. 진남의 칼이 곧 아들의 머리에 떨어지려고 하자 그는 하늘을 뒤흔들 정도로 큰 고함을 질렀다.
"진남, 네가 감히 내 아들을 죽인다면 네 주변의 친구, 가족 그리고 너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모두 다 죽여버리겠다!"
구양패의 호통에 진남의 칼은 멈칫하더니 허공에 멈췄다.
구양패는 진남의 변화를 눈치채고 호탕하게 웃었다.
"진남, 현령종에 네 친구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 친구들뿐만 아니라 선노, 용호요종 그리고 묘묘 공주까지 모두 나와 청룡성지의 사자 손에 죽을 것이다! 너희들이 무황 경지의 강자 둘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얼른 무릎을 꿇고 네 모든 것을 바치거라. 그리고 스스로 경맥을 자른다면 나는 너에게 더 이상 따져 묻지 않겠다!"
모든 사람들은 진남이 들고 있는 칼이 다시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진남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두 무황 경지의 강자도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묘묘 공주, 선노, 용호요종, 궁양, 소냉, 황용, 초운, 묵자삼, 서유 등은 무황 경지 강자 두 명의 힘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었다.
'이들이 나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면?'
"진남!"
크지 않은 목소리가 경천대전 중에 울렸다.
진남이 시선을 돌려 보니 소냉의 모습이 보였다. 하늘을 뒤덮는 폭격에서 그는 유난히 작아 보였다.
그의 두 눈은 충혈되어 벌겋게 되었고 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화가 나서 떠는 것이었다. 그는 입을 벌리고 온몸의 힘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나를 걱정하지 말고 구양군을 죽여주시오! 지난 십팔 년 동안 잘 살았으니 다음 생에 다시 잘 살지 뭐! 하지만 그놈은 반드시 죽여주시오. 그놈을 죽이지 않는다면 나는 사형과 인연을 끊을 거요! 친구도 안 할 거요!"
"진남, 네가 남자면 그놈을 죽이거라!"
"저놈은 오래전부터 꼴사나웠소! 그러니 단칼에 죽여버리시오!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소!"
"나는 사실 속으로 엄청 겁이 나지만 그래도 그놈을 죽여달라고 하고 싶소!"
"……"
격앙된 목소리들이 연이어 들렸다.
황용, 서유, 묵자삼 초운은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앞으로 한 걸음씩 나섰다. 그들의 모습은 커다란 싸움 앞에서 무척 작았다. 숨 한번 내쉬면 손쉽게 날려버릴 것 위태로웠지만 그들은 여전히 소나무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그들도 죽음이 두려웠다. 무황 경지의 강자가 위협을 하자 그들도 두렵고 마음이 서늘했다.
하지만 진남의 무왕 내단이 구양군은 기습으로 금이 갔다. 그것을 직접 목격한 그들은 분노했다.
또한 구양군이 몸이 성치 않은 진남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청룡성지의 사자가 광명정대하게 진남을 진압했을 때 그들의 분노는 최대치에 달했다.
그러나 그들은 분노가 하늘까지 치솟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비천하고 나약했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나약해도 진남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구양군같은 짐승 새끼를 지금 죽이지 않으면 언제 또 죽일 수 있을까?'
제자들과 각 전주 그리고 종주들까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남이 두 무황 경지와 맞선 건 그럴 수 있었다. 그도 그만한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이름도 못 들어본 저자들은 어디에서 저런 용기가 나온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젊은 제자들도 그들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니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끓고 가슴이 찡했다.
"하하하! 녀석들, 잘 말했다! 진남, 뭘 꾸물거리는 거냐!"
용호요종은 흥분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진남, 안심하거라."
선노도 미소를 지었다.
"내 하인은 겁먹으면 안 돼!"
묘묘 공주는 콧방귀를 뀌었다.
구양패는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는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것들은 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무황 경지의 강자를 이렇게나 무시하다니.'
"진남 네 놈이 감히……"
구양패는 포효를 질렀다. 방원 십 리가 진동으로 쿵쿵 울렸다. 다만 그의 몸은 묘묘 공주가 친 진에 갇혀 온갖 살수를 써도 나올 수 없었다.
진남은 우두커니 서서 구양군을 바라보고 있다가 씩 웃었다.
"네가 감히 나를 괴롭혔으니 나는 너를 죽이겠다!"
"베거라!"
마지막 단어는 마치 하늘을 가르는 것 같았다.
수많은 시선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남은 칼을 높이 들더니 서슬 퍼런 칼날이 구양군의 머리를 향해 그대로 떨어졌다.
푹!
구양군의 피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기절한 구양군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고 죽었다.
주변이 고요해지더니 한참 후 사람들은 경악했다.
"죽였어!"
"진남이 정말로 구양군을 죽였다."
"젠장! 이런 난리라니!"
"……"
조방과 위통과 임선은 충격에 휩싸여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진남!!!"
구양패는 두 눈에 핏발이 서고 금빛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백옥도장의 허공에 떠 있는 장교대전은 마치 그의 분노를 감지한 듯 천 갈래의 빛이 솟아오르더니 엄청난 대진들이 하나씩 운행되기 시작했다.
"구양패!"
그때 청룡의 성지 사자가 호통쳤다.
"진정하거라! 지금은 저놈을 상대할 때가 아니다!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작정이냐?"
그의 호통이 찬물을 구양패의 머리에 끼얹은 것 같았다. 구양패는 시뻘건 두 눈이 점차 냉정함을 되찾았다.
"선씨 성을 가진 놈!"
구양패는 하늘에 닿을 듯한 화를 참았다. 그는 묘묘공주를 무시하고 허공을 넘어 선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고함을 질렀다.
"살황경을 속히 내놓지 못할까!"
"네 주제에 살황경을 달라고?"
선노는 하찮은 듯 미소를 지었다.
"아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면서 살황경을 위해 화를 억누를 수 있다니. 너의 행동은 저 짐승과 또 뭐가 다르냐?"
"닥쳐라!"
선노가 아픈 곳을 찌르자 구양패는 얼굴이 흉악해졌다. 그는 억지로 화를 누르더니 고개를 돌려 장교 대전을 바라보며 호통쳤다.
"조방, 위통, 임선 세 사람은 속히 와서 나를 도우시오!"
또 하나의 음모가 드러났다.
구양패가 생일잔치를 연 것은 그가 준비한 대진이 세 명의 무종 경지가 참여해야 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방, 위통, 임선 세 사람의 얼굴이 모두 굳었다.
비록 구양패는 이제 무황이 되고 청룡성지의 사자까지 합세했지만, 그들은 삼대 종문의 종주였다. 무황이 나타났다고 해서 쉽게 고개를 숙일 수 없었다.
삼대 종문에는 무황 경지의 강자가 없었지만 오랜 역사가 있는 종문들이기에 무황의 존재라고 해서 그들을 소멸시키기는 어려웠다.
"당신들이 거들어준다면 진남이 가진 기우 그리고 그 무연각의 비밀은 모두 당신들에게 주겠소!"
구양패는 다시 한번 크게 외쳤다.
"뭐?"
조방, 위통, 임선 세 사람은 동시에 흠칫했다.
진남의 강력한 이변은 그들이 직접 목격했다. 진남의 기우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자신들은 물론 종문 전체에 큰 이득이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좋소, 구양 종주, 오늘은 협조하겠소!"
조방이 눈을 반짝이며 나섰다.
"구양 종주, 약속을 지키시오."
위통과 임선도 동시에 입을 열었다.
삼대 종문은 모두 구양패의 손을 들어줬다.
"썩 꺼지거라!"
구양패는 삼대 종주들의 협조를 얻어내자 고개를 돌려 호통을 쳤다. 그의 손에서 수많은 금빛이 분출되어 엄청난 폭풍으로 변하더니 묘묘 공주를 감쌌다. 묘묘 공주가 아무리 묘법을 부려 깨뜨려도 공격의 여파에 밀려 선노와 용호요종의 곁에까지 왔다.
"큰일 났다!"
용호요종이 안색이 크게 변했다. 이들 세 사람을 한데 몰아넣은 걸 보니 그리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또 도망가려고?"
청룡성지의 사자는 냉소하더니 다섯 손가락 벌리며 소리 질렀다.
"칠귀봉금술(七鬼封禁術)!"
음풍이 휙휙 불더니 그 허공에 무려 일곱 개의 귀신이 우뚝 솟아 묘묘 공주와 용호요종, 선노를 모두 가둬버렸다.
"구음구살연혼진!"
구양패는 길게 울부짖었다. 허공을 사이에 두고 손바닥만 한 시커먼 철편을 날렸다. 시커먼 철편 속에서 수많은 귀신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바라보니 칠흑 같은 철편 위에 오래된 부문(符文)들이 불길처럼 날아올랐다,
구양패와 청룡성지의 사자가 동시에 움직였다. 두 무황은 서로 대칭해서 쇳조각 위에 떠 있었다.
쾅!
하늘이 갑자기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철편 위에서 빛이 번지고 칠흑 같은 부문 한 줄만이 보였다. 부문은 마치 괴물의 촉수처럼 사방팔방으로 빠르게 뻗어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방원 삼 리를 촘촘하게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