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본색을 드러내다
"이번 일은 더 이상 협상이 불가능하겠구나."
묘묘 공주는 표정이 차분해졌다. 차분하게 힘을 모으는 중이었다.
구양군은 두 무종 경지를 가진 자들의 반응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오직 진남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도발했다.
"왜? 진남아, 두려워? 너는 외문 일 위가 아니더냐? 고개를 숙인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 군맹의 사람들을 시켜서 너를 공격한 것도 나이고, 이번 기습도 내가 한 거다. 그런데 나를 죽이고 싶지 않아? 죽이고 싶으면 내 도전을 받아들여!"
구양군은 감정이 격앙되어서 소리를 질렀다.
"죽어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 엄청난 파동이 생겼다. 용호요종이 화가 나서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후안무치한 구양군을 물어뜯어 삼켜버리려고 달려들었다.
청룡성지의 사자와 구양패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용호! 멈추시오!"
입을 연 사람은 진남이었다.
"진남, 너……"
용호요종은 머뭇거리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묘묘 공주가 고개를 흔들자 청룡성지의 사자와 구왕패를 향해 콧방귀를 끼고 고개를 흔들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진남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다. 그러나 누구라도 진남의 몸속에 엄청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진남은 엄청나게 화가 났다.
평소에 수많은 원한을 쌓았던 사람이니 그 점만 봐도 진남은 그를 죽여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그런데 무왕 내단을 진급하는 중요한 때에 기습을 받아서 진급에 실패했으니 오죽하겠는가!
거기다 구양군이 그를 도발하며 스스로 도전하기까지 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상처를 입었다고 아무나 괴롭힐 수 있는 존재인가?'
"결투 신청에 응하마."
진남은 눈이 싸늘해지더니 입을 열었다.
"다만 이번 결투는 목숨을 걸고 하는 걸로 하지."
진남의 한마디에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남이 구양군과 생사 대결을 하자고 하다니? 진남은 다친 몸으로도 구양군을 이길 자신이 있는 걸까?'
"목숨을 걸고?"
구양군은 움찔하더니 이내 미친 듯이 웃었다.
"하하하, 좋다, 좋아. 안 그래도 너와 생사 대결을 하고 싶었는데 네가 먼저 제안하다니! 제 발로 찾아온 거니 네 목숨은 내가 거둬주지!"
"그래?"
진남은 소리 없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형의 위엄이 그의 몸에서 퍼져 나왔다.
그때, 또 다른 호통 소리가 들렸다.
"잠시만!"
호통을 친 사람은 청룡성지의 사자였다.
그는 눈을 반짝거리며 웃음기 어린 말투로 말했다.
"네 제안이 참 좋구나. 두 사람의 원한은 둘이 해결해야지. 하지만 이번 대결은 진남에게 불리하다. 그러니 이번 결투에 내 명의로 취세지석(聚勢之石) 백 개를 걸겠다. 진남이 이긴다면 백 개의 취세지석을 상으로 주고 또 청룡성지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주겠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취세지석 백 개? 게다가 청룡성지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니?'
'성지의 사자는 구양패와 한 패거리가 아닌가? 그런데 왜 이렇게 좋은 조건을 제시했을까?'
사람들이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청룡성지의 사자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선노를 향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알기로 네가 진남의 스승이지? 나는 백 개의 취세지석과 청룡성지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걸었다. 그러니 공정성을 위해서 너도 무언가 걸어야 하지 않겠느냐? 구양군이 이긴다면 살황경을 주거라."
그의 말은 청천벽력 같았다.
제자들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장교 대전의 종주들과 전주 그리고 거두들은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왜 청룡성지의 사자가 먼저 보상을 하겠다고 제안했는지 깨달았다. 그의 목적은 살황경이었다.
살황경은 그들도 그 가치를 잘 알기에 욕심냈었다. 그러나 선노가 무종 경지 최고봉의 강자라서 실력이 뛰어나 감히 손을 쓰지 못했다.
구양패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판돈이 꽤나 괜찮은 거 같군요. 저도 사자 대인의 말에 동감합니다. 여러 종주들 생각은 어떻소?"
구양패는 조방과 기타 종주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세 종주는 안색이 살짝 변했다. 구양패는 그들에게 줄을 서라고 압력을 준 것이었다.
그들은 드디어 구양패가 무황 경지 돌파에 실패하고도 떠들썩하게 생일잔치를 열고, 군웅들을 불러 모았을 뿐만 아니라 큰 대가를 치르면서 청룡 사자를 모셔온 원인을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구양패는 선노의 살황경을 얻으려고 판을 짠 것이었다.
"하하하. 사자 대인의 말이 맞습니다. 저도 이번 결투를 지지합니다."
조방이 먼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저도 의견이 없습니다."
임선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위통은 한참 머뭇거리며 조금 전 벌어진 일들을 생각했다. 그는 사자의 태도를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난염문도 이번 결투를 지지합니다."
삼대 종주가 입을 모으자 다른 전주와 거두들은 다른 의견이 있어도 종주들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 결투는 그렇게 하는 게 맞습니다."
"구양군과 진남은 서로 원한이 깊이 쌓여서 이렇게 해결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저도 사자 대인을 지지합니다."
"……"
장교 대전의 사람들이 의견을 표하자 제자들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그들 중 영리한 제자들은 민첩하게 구양패가 사자와 연합하여 삼대 종주에게 압력을 가하고 선노를 궁지에 몰아넣는 판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나쁜 놈들! 후안무치한 것들……!"
용호요종은 화가 나서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제기랄! 진남이 크게 다쳤는데 나쁜 놈들이 이런 음모를 꾸미다니!'
묘묘 공주는 말없이 용호요종의 용머리를 토닥거리며 진정시켰다.
선노는 거물들이 연합하여 압력을 가해도 여전히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진남을 바라보았다.
진남의 두 눈에는 끝없는 한기가 번졌다.
드디어 이들의 뻔뻔함을 몸소 체험했다. 백 개의 취세지석과 청룡성지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까지 더하면 살황경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청룡성지의 사자는 핑계를 댔을 뿐 대놓고 빼앗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선노! 저들의 요구에 응해주세요!"
진남은 천천히 숨을 내쉬며 가슴 속에 가득 찬 살기를 누르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뜻밖에도 선노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사자 대인과 전체 종문의 사람들이 이 결투 방식을 지지하니 저도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구양군이 진남을 이기면 살황경을 그에게 주겠습니다."
청룡성지의 사자와 구양패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이 생일잔치를 벌인 것은 살황경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들은 살인극을 미리 준비했다. 다만 생각지도 못한 것은 구양군이 진남에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진남이 그 도전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도 내기를 하는 방식으로 살황경을 얻으려고 했다.
선노는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진남이 결투에서 지면 그들은 손도 안 대고 코를 푼 거나 마찬가지였다. 살황경을 얻기 위한 수많은 시끄러움을 다 피할 수 있었다. 억지라고 해도 그들은 대의를 내세워 당당하게 가져갈 수 있었다.
이번 결투의 결과는 진남이 질 게 분명했다.
"이번 대결은 제가 주지하겠습니다."
생사전의 전주가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가 재판이 되는 데 의견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생사전의 전주는 고지식한 사람이라서 규칙대로 행동했다. 종주가 명령을 내려도 그는 규칙을 지킬 수 있는 공평한 사람이었다.
"진남, 덤비거라. 외문 일 순위의 실력이 어떤지 보자꾸나."
구양군은 미친 듯이 웃었다. 아버지와 성지 사자가 무슨 꿍꿍이가 있든지 상관없었다. 그는 진남을 죽일 수 있다면 충분했다.
"네 소원을 이뤄주마."
진남은 발끝을 굴러 구양군의 앞에 섰다. 그리고 칼을 휙 뽑아 망설임 없이 베었다.
"잘 왔다!"
구양군은 소리를 질렀다. 그의 육신이 한층 한층 팽창하더니 피부가 고동색으로 변했다. 모공에서 수많은 열기가 사방으로 풍겼다.
쿵!
한칼에 구양군을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
"진남, 네 육신만 강한 줄 알았지? 난 어릴 적부터 태사거인체결(太史巨人體訣)을 연마했어!"
구양군이 흥분해서 소리 질렀다.
"자, 최선을 다하거라. 너 먼저 백 초식을 해 보거라, 나를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호통 소리가 들렸다.
"시끄럽다!"
진남의 왼쪽 눈에서 전신의 위엄이 강렬하게 날뛰더니 커다란 산이 되어 구양군의 머리를 짓눌렀다.
"악!"
비명 소리가 울렸다. 다들 지켜보는 데서 구양군의 거대한 육신이 전신의 위압에 눌려 바닥에 엎드렸다.
진남은 상처를 입어 삼 할의 전투력밖에 발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왼쪽 눈동자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전신의 눈으로 관찰한 구양군은 태사거인체결 덕분에 육신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대단해졌는데 머리가 약했다. 머리가 그의 약점이었다.
때문에 전신의 혼을 방출하지 않고도 구양군을 바닥에 납작 누를 수 있었다.
"진남……!"
제자들은 흥분했다.
구양군이 진남을 기습했다. 그리고 구양군은 진남이 다친 시기에 도발했다.
그런데 결투를 시작하자 구양군은 진남의 상대가 아니었다. 몸 하나 꼼짝하지 않고 구양군을 바닥에 눌렸다.
청룡성지 사자와 구양패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들은 구양군이 진남의 앞에서 이토록 비실거릴 줄 몰랐다. 그들의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결투로 살황경을 얻어내지 못하면 잠시 후에 원래 계획대로 진행해야 했다.
"하하하!"
용호요종은 즐겁게 웃었다. 그는 구양군이 꼴뵈기 싫었다.
구양군을 바닥에 누르는 순간 진남은 오만 고도를 꺼냈다. 두 힘을 동시에 휘두르자 두 갈래의 강렬한 도의가 나타나더니 십자 모양으로 교차되어 구양군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젠장, 저놈이 내 약점을 알아냈어!'
구양군은 머리털이 곤두서서 소리 질렀다.
"선천지기, 나를 보호하라!"
구양군이 손을 휘두르자 커다란 방패가 눈앞에 나타났다. 방패는 빛에 싸여서 마치 별빛과 영기처럼 두 칼의 공격을 막아냈다.
"폭룡검(暴龍劍)!"
구양군은 다른 선천지기를 꺼내 들었다.
그 선천지기는 길이가 삼 장이었고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마치 용이 울음소리를 내며 그 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았다.
구양군이 폭룡검을 허공에 휘두르자 전신의 위엄을 그대로 쳐냈다. 구양군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싸움에서 벌어진 변화에 천재들은 안색이 변하고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뻔뻔하다! 정말 뻔뻔해! 진남은 삼 할의 전투력만 발휘했는데 저놈은 선천지기를 사용하다니!"
"뒷배를 믿고 정말 뻔뻔하게 행동하는구나! 선천지기를 두 개나 사용하다니!"
"이러다간 대성 입미지경까지 사용하려고 하겠구나!"
"공평하게 싸우자고 하더니! 구양군, 정말 부끄럽지도 않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