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배상하겠습니다
진남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궁양 등이 이렇게 행동을 할 줄 미처 몰랐다. 감동한 동시에 씁쓸해서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가?'
진남은 솔직히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현령종 종주가 돌파에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무슨 상관일까?
진남은 일생을 물을 거슬러 배를 몰았다. 거센 파도가 일어나도 그는 태연자약할 것이었고 천만 명의 적을 상대해도 수중의 칼을 놓지 않을 것이었다.
현령종 종주가 무황 경지를 돌파하는 것 때문에 겁을 먹고 현령종을 떠나는 것은 겁먹은 강아지 같은 행동이라서 진남에게 크나큰 수치였다.
그러나 진남은 어떻게 그들의 부탁을 거절할 것인가.
묘묘 공주와 용호요종은 진남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그들은 이제 막 신물을 융합한 진남이 대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했다.
제삼 정원의 전체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때, 진남 허리춤의 자룡적아령이 진동하며 붉은빛을 뿜었다.
"이건……"
진남은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들도 놀라서 확인했다.
자룡적아령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빛은 온 하늘에 흩날렸고 한 노인의 허영으로 응집되었다.
선노였다.
선노는 나타나자마자 진남을 바라보며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
"진남, 사태가 아주 심각하단다. 결코 장난이 아니다. 지금 당장 현령종을 떠나거라. 멀리 갈수록 좋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넌 반드시 떠나야 한다. 지금부터 태상 장로의 명의로 너의 제자 신분을 박탈하겠다. 넌 이제 더 이상 현령종의 제자가 아니다."
"선노!"
진남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선노가 그를 현령종에서 쫓아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선노는 진남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탄식했다. 선노의 목소리는 조금 지친 것 같았다.
"얘야, 너는 내가 본 중에 가장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제자이다. 이미 여러 번 기적을 창조하기도 했지. 하지만 지금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상황이 불리하다. 네가 모험을 하게 할 수 없으니 떠나거라. 내가 더 강해지면 돌아오고. 내 말을 기억하거라. 살아만 있으면……"
말을 마친 선노의 그림자가 공중에서 사라졌다.
제삼 정원은 거대한 침묵으로 뒤덮였다.
궁양 등도 선노가 그런 행동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선노의 말투에서 어느 정도 실마리를 알아챘다.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자 그들은 결심을 굳혔다.
"진남……"
궁양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선노를 원망하지 마. 널 위한 거니까. 선노의 말처럼 넌 천부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다. 네 미래는 이 작은 현령종에서 끝날 게 아니야. 현령종에 내분이 일어나고 설사 종주가 무황 경지에 다다라서 휩쓸 수 있다고 해도 그 이후는 어떻게 하겠어. 지금 현령종을 떠나는 것은 와신상담하는 거다……"
궁양 뒤에 서 있던 소냉 등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남은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선노는 이제 현령종에서 그를 내보내려고 하고 궁양 등 친구들도 그를 보내려고 했다.
진남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꽁무니를 빼고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선노와 궁양 등의 뜻을 거역하고 여기에 남을 것인가?
"저는……"
진남이 말을 하려고 할 때 시끄러운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내원봉에서 강대한 기세가 세차게 몰려오더니 커다란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진남! 어서 나와!"
내원봉이 하늘을 뒤흔들 정도의 고함과 함께 뒤흔들렸다. 수많은 제자, 장로들이 잇달아 나와 상황을 살폈다.
내원봉의 길에 무려 스무 명의 제자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걸음에서 방대하고 힘찬 진기를 뿜어냈다. 경지는 선천 경지 육 단계보다 낮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구경 나온 장로와 제자들은 올라오는 제자들을 다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내원의 유명한 천재였고 무혼 등급은 적어도 황급 팔품이었다.
장로와 제자들은 그 행렬의 맨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자는 팽우(彭羽)잖아? 팽우가 오다니!"
"저자는 형벌전 전주의 아들 주귀력(周歸力)이 아니야? 저자가 왜 왔지."
"저자들은 군맹의 사람들이잖아! 설마 진남에게 시비를 걸려고 온 건가?"
"……"
장로와 제자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진남과 군맹 사이 원한과 갈등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줄곧 정면으로 붙지 않았는데 오늘 드디어 붙게 되는 것 같았다.
진남은 이번에 어떻게 대응할까?
* * *
제삼 정원 내
진남과 궁양 등은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어리둥절했다.
궁양 등은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누군가가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방금 그 일은 대체 누가 왔는지 먼저 보고 나중에 다시 의논해요."
진남은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궁양 등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진남이 그들의 부탁에 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깥의 상황을 마주하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지금은 사태가 급박하니 빨리 해결해야 한다. 진남이 계속 현령종에 머물게 할 순 없다.'
궁양은 머릿속에서 생각이 스쳤다. 그는 얼른 일어나 제삼 정원의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궁양 뿐만 아니라 소냉 등 사람들의 얼굴빛이 모두 변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뭘 하려는 거야?"
궁양은 안색이 굳어지더니 무왕 경지의 위압을 풍겼다.
"오, 궁양 사형이시네요. 사형도 제삼 정원에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거대한 무리 속에서 우두머리의 두 청년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는 분홍색 옷을 입고 얼굴이 희고 아름다우며 다소 매혹적이었다. 그는 궁양이 풍기는 위압을 못 본 척하고 되려 싱글벙글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제삼 정원에 있는 사람도 적지 않군요. 저를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주귀력이라 합니다."
소냉과 초운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들 둘은 주귀력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주귀력은 형벌전 전주의 아들인 동시에 내원 십 위의 천재 중 한 명이었다.
"저는 팽우라고 합니다. 궁양 사형을 뵙겠습니다."
또 다른 냉랭한 표정의 팽우가 공수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경의가 보이지 않았다.
황용, 묵자삼, 서유 등의 안색이 또다시 급변했다. 그들은 팽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내원 삼 위의 천재였고 제삼 정원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진남이 무연각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바람에 문파에서 제삼 정원을 진남에게 내어줬다.
팽우는 그 사실을 알고 사석에서 말하기를 냉봉이 진남에게 싸움을 걸지 않았다면, 그가 먼저 싸움을 걸었을 것이라고 했다.
"너희 둘이 누군지 관심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오다니 대체 무슨 일이냐?"
궁양은 두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지금 당장 여기에서 떠나거라. 그럼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해주겠다."
주귀력과 팽우가 서로를 돌아봤다.
그들이 오늘 스무여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온 것은 진남에게 시비를 걸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궁양도 이곳에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바로 그때, 먼 허공에서 큰 웃음소리가 울려 천지를 뒤흔들었다.
"하하, 궁양 동생, 오랜만이야. 너의 위세는 꺾이지 않았구나."
슥!
사람의 그림자가 하늘을 가르며 내려왔다.
그는 소매에 용과 봉황이 휘감겨 있는 금포를 입고 있었는데 등 뒤로 황금색의 커다란 검이 세워져 있었다. 작은 눈에 초록빛이 끊임없이 반짝였지만 왠지 어두침침했다. 그의 화려한 차림새와는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장건(張乾)."
궁양의 안색이 삽시간에 변했다.
내원봉 주변에 모인 제자와 장로들은 그 이름을 듣고 경악했다.
"장건도 왔어?"
"맙소사, 그는 내문 제자 중 이 위야! 언제 군맹에 가입한 거지?"
"허, 이렇게 많은 천재가 다 몰려들었으니 볼거리가 있겠구나."
"……"
장건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처음에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이번 일이 얼마나 큰지 깨달았다.
군맹은 분명 나쁜 의도를 가지고 나타난 거였다.
"장건 사형을 뵙습니다."
팽우와 주귀력은 표정을 거두며 공수했다. 그들은 더없이 존경스러웠고 궁양에게 대하는 태도와는 완전 하늘과 땅 차이었다.
장건은 응하고 대답하더니 허공에 서서 궁양 등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궁양, 우리는 진남을 만나러 왔다. 이번의 일은 너와 상관이 없으니 지금 당장 떠나거라."
그의 말에 삽시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장건을 필두로 팽우, 주귀력 그리고 스무여 명의 천재 제자들은 제삼 정원으로 시선을 돌렸다. 팽팽한 전의가 감돌았다.
다른 한편에서는 궁양을 필두로 소냉, 초운 등이 적의를 내뿜었다.
묘묘 공주와 용호요종은 관심이 없는 듯 조용히 정원에서 관찰했다.
폭풍우의 중심에 선 진남은 기세등등하고 방대한 천재 무리를 보자 두 눈에서 불꽃이 일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세차게 타올랐다.
궁양은 주먹을 쥐더니 굳은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
"장건, 당신과 진남은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왜 그를 괴롭히려고 하려는 겁니까? 진남은 저의 형제이니 제 체면을 세워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팽우와 주귀력, 오늘 이 일을 그냥 넘기면 내가 너희들에게 신세를 진 걸로 해두겠다."
궁양은 장건과 팽우, 주귀력 등이 구양군의 지령을 받았을 것이라는 확신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든 막아야만 했다.
장건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궁양, 오늘은 네 체면을 세워 줄 수 있어. 다만 너의 형제 진남은 우리 군맹의 요구에 응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너라도 모두 죽일 거야."
팽우와 주귀력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싸늘했고 살기가 넘쳤다.
현장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장건 등의 기세에 점점 더 많은 장로와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움직였다. 심지어 외문의 장로와 제자들까지도 일제히 내원봉에 왔다.
짧은 시간에 내원봉에는 육백여 명이나 되는 인파가 모여들었다.
"군맹의 요구라니요? 어떤 요구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궁양은 화를 억눌렀다.
평소 같았으면 장건이 이렇게 난리를 치면 궁양은 경지가 부족하다고 해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었다. 다만, 오늘 그는 진남을 현령종에서 안전하게 떠나게 하고 목숨을 건지게 해야 했다.
"요구는 아주 간단해. 진남이 우리 군맹의 제자 열 명을 다치게 했어. 그러니 그의 몸에 지닌 단약을 다 내놓기면 하면 된다."
강건은 냉소를 지었다.
강건의 뒤에 있는 팽우와 주귀력의 눈빛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현장에 있는 장로들이 모두 황당해했다.
'군맹이 기세등등하게 온 것이 겨우 열 명의 제자들을 대신해서 배상이나 받으러 온 건가?'
궁양 등도 황당했지만 미간을 풀며 말했다.
"그 일 때문이었구나. 그럼 제가 배상해드리겠습니다."
궁양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진남의 재산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군맹의 요구는 매우 간단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형이 배상하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