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떠나거라
"진남, 얼른 문을 열거라. 궁양이다. 너에게 중요한 말을 전하려고 왔다."
묘묘 공주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으려고 제삼 정원에 금계를 쳤다.
진남이 묘묘 공주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곧 여러 개의 그림자가 달려들었다.
온 사람은 궁양 한 사람이 아니었다. 소냉, 초운, 황용, 묵자삼, 소유 등도 함께였다.
"어, 어, 어? 이 사람들은 대체 뭐냐?"
용호요종이 갑자기 밀려들어온 사람들을 보고 살짝 당황했다.
"이게……"
궁양 등도 용호용종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제 친구들이에요."
진남은 용호요종에게 눈치를 주었다. 이어 궁양 등을 살펴보며 웃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요? 당황하지 말고 말해보세요. 제가 있잖아요."
궁양 등은 하나같이 움찔했다.
진남의 말이 따뜻한 기운이 되어 그들을 감쌌다. 그들의 감정이 차분해졌다.
궁양 외에 소냉, 초운, 황용, 묵자삼 소유 등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진남이 패배를 인정했다고 했을 때 그들은 의심하고 실망했다. 그런데 진남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들을 안심시켰다.
"진남, 너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어……"
초운과 소냉이 그 따뜻함에 씁쓸하게 입을 열었다.
궁양도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나도 미안해."
"왜요?"
진남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렇게 다 같이 몰려와서는 갑자기 미안하다뇨."
"네가 냉봉에게 패배를 인정했을 때 우리는 너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보니까 네가 두렵고 무서워서 물러난 게 아니란 걸 알았어."
그들이 말했다.
진남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가 패배를 인정한 건 소경설의 부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궁양이 무거운 표정으로 연신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한 달 동안 현령종의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나도 처음부터 조사했지만 조금 전에, 사실을 알았어."
궁양은 잠깐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현령종 종주가 어떤 비경에서 황겁(皇劫)을 하고 있었어. 무종 경지를 돌파해 무황 경지가 되려고 준비 중인 거야."
청천벽력이었다.
무황, 무도황자!
사대 종문 안에는 지금껏 무황 강자는 한 명도 없었다!
무황이 되면 하역을 종횡무진으로 누빌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물론 무황이 되기는 무척 어려웠다. 무혼 등급이 적어도 황급 십품은 되어야 했다. 무혼 등급이 현급이 되었다 해도 여러 기연이 필요했고 수많은 비호가 있어야 무황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낙하왕국에서는 적어도 백 년 동안 무황 경지의 강자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궁양, 소냉 등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서야 알았다. 오만하던 진남이 왜 패배를 인정했는지.
현령종의 종주와 태상 장로는 악연이었다. 현령종의 종주가 무황 경지를 돌파한다면 돌아온 후 반드시 숙청을 진행할 것이었다.
진남이 계속 냉봉에게 도전한다면 지든 이기든 구양군과 관계가 악화될 것이었다. 그럼 태상 장로나 명예 장로라고 해도 진남을 보호해줄 수 없을 것이었다.
"에고!"
이때 요호요종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는 과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종문에서 무황 경지를 돌파할 사람이 있다고? 대단하다, 대단해! 덕분에 견식이 늘었어!"
용호요종은 콧방귀를 뀌었다.
"쳇!"
'뭔가 큰일이 일어난 줄 알았는데 고작 무황 경지를 돌파하는 일로 이렇게 호들갑을 떨다니! 심지어 오를 수 있는지 없는지도 아직 모르잖아.'
궁양 등이 경악했다. 그들은 이마에 혹이 두 개 난 청년이 무황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에 놀랐다.
'무황으로 진급한다고?'
진남은 눈빛이 서늘해졌다. 소경설이 왜 패배를 인정하라고 했는지 구양군이 왜 그렇게 날뛰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현령종의 종주가 황겁을 겪으며 무황 경지를 돌파하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진남, 넌 아마 무황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모를 거다. 현령종 역사상 현재 종주를 제외하면 백 년 전에 딱 한 번 무황이 나타난 적이 있다."
궁양은 용호요종을 힐끗 보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선배는 무황이 된 후 비검문 무종 경지의 태상 장로 세 명을 순식간에 다 죽였다."
진남의 표정이 한 번 흔들렸다.
진남은 무황 강자가 대체 얼마나 강한지 몰랐다. 하지만 궁양의 말에 그는 무황 강자가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깨달았다.
"세 명의 무종 경지를 죽였다고?"
용호요종은 이상한 눈빛을 보냈다.
"이 쓰레기 같은 종문에서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나왔어? 그 정도는 보통 무황이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야."
"맞아. 그 선배는 비검문을 소탕한 후 사라졌다고 하더군. 그는 하역으로 갔다고 하는데 이미 시간이 오래 흘렀고 아무 소식도 없었어. 종문의 오래된 장로가 말하기를 아마 하역에서 돌아가신 게 아닌가 싶다더군……"
궁양은 엄숙한 표정으로 진남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무황 경지를 돌파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종주가 무황 경지를 성공적으로 돌파한다면 큰 재난이 될 것이다. 그러니 빨리 종문을 떠나거라. 여기에 남아있으면 안 된다. 구양군의 성격상 너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네가……"
궁양이 씁쓸하게 말했다.
"종문을 떠났으면 좋겠다…."
* * *
같은 시각 내원봉 제일 정원.
려홍이 제자의 편지를 받아서 펼치더니 표정이 변했다.
"왜?"
구양군이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남이 지금쯤 크게 망신을 당했겠지? 보물들도 다 털렸을 테고? 나와 대적한 결과가 그거다!"
소경설은 불안했다.
려홍은 크게 숨을 들이쉰 후 입을 열었다.
"진남이 주양 등 사람들에게 호통을 치자 주양 등이 전부 무릎을 꿇었어요. 그들은 모두 정신을 못 차리고……"
"뭐?"
구양군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주양은 선천 경지 칠 단계의 천재이다. 그리고 아홉 명의 선천 육 단계 제자들과 같이 갔는데 진남의 한마디에 패했다고? 진남이 종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선천 경지 이 단계에서 선천 경지 칠 단계를 이길 실력을 갖췄다고?"
려홍이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가 하는 말은 더 놀라웠다.
"뿐만 아니라 진남은 장 부전주의 시비에 선천지기 다섯 개와 수많은 입미지석을 내놓았어요."
쿵!
구양군은 몸을 흠칫 떨었다.
종주의 아들인 그도 그 말에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선천지기 다섯 개에 수많은 입미지석이라니! 말도 안 돼!'
소경설의 얼굴에도 경악이 가득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진남이 용호산맥의 보물을 얻었음이 틀림없다."
구양군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는 몹시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진남은 얼마 전에 임무를 수행하러 가문에 돌아갔는데 그게 용호산맥 근처였다.
고작 한 달도 안 되어 진남이 이렇게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놀랄만한 재산을 가졌다는 건 한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용호산맥에서 기우를 만난 것이 분명했다.
용호산맥의 이변은 사대 종문에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용호요종이 용호산맥을 지키고 있어서 사대 종문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기에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사대 가문이 호되게 당하자 사대 종문도 용호산맥에 대한 욕심을 완전히 버렸었다.
"진남! 네 이놈!"
구양군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풍겼다.
"아버지가 무황 경지를 돌파하면 제일 먼저 너부터 죽일 거다!"
진남의 엄청난 재산을 듣자 구양군은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마음속의 욕망이 고개를 쳐들었다.
더군다나 진남은 무연각의 비밀도 알고 있었다. 진남은 살아있는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구양군은 진남을 손봐주겠다고 결심했다.
"구양군!"
소경설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
"감히 그를 건드리면 평생 죽는 한이 있어도 당신에게 시집가지 않을 거예요."
구양군은 고개를 돌리고 날카롭게 호통쳤다.
"감히 나를 위협하다니! 넌 내가 필요로 할 때만 쓸모 있는 거다! 내가 필요로 하지 않으면 넌 폐물이나 마찬가지야! 알겠어?"
말을 마친 구양군이 온몸의 기운을 폭발시켰다. 살의가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가자! 제삼 정원으로!"
"멈춰요!"
려홍은 안색이 변하며 훈계했다.
"구양군, 당신의 아버지는 지금 무황 경지를 돌파하는 중일 뿐 성공 여부를 알 수 없어요. 그런데 지금 진남을 도발한다면 태상 장로와 명예 장로가 나설 거예요."
"그건……"
려홍의 그 한마디는 마치 구양군의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듯 그를 놀라 깨어나게 했다.
"내가 그 점을 간과했어."
구양군이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만 진남을 마냥 편하게 지내게 할 순 없어. 군맹의 천재들을 나서게 하겠다. 그가 제 주제를 알고 있으면 목숨만은 살려 두지. 아니라면 생사전에서 결투시켜 그를 죽여도 된다."
려홍은 안색이 누그러지며 말했다.
"당신이 나서지 않으면 돼요."
구양군의 말을 들은 소경설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 * *
제삼 정원
진남이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말했다.
"저한테 도망가라고 하는 겁니까?"
"도망이라고 할 수 없다."
궁양은 속으로 안타까워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며 말했다.
"지금 종주가 무황 경지를 돌파하고 있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현령종을 잠시 떠나거라. 나중에 종주가 무황 경지를 돌파하지 못하면 다시 돌아오면 되잖느냐."
"진남, 이렇게 하는 게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대장부는 잠시 굽힐 줄도 알아야지."
소냉과 초운 등도 잇달아 입을 열었다.
"우리는 네가 겁이 없고 고개를 숙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런데 이번 일은 달라. 잠시만 떠나 있으면 돼. 한 걸음만 양보하고 참으면 평온하게 잘 지나갈 수 있어."
그게 궁양 등이 이번에 찾아온 목적이었다.
그들은 진남이 현령종을 떠나 잠시 몸을 피하고 상황을 지켜보면서 결정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해야만 진남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
진남은 그 말을 듣자 마음속이 따뜻해졌다. 그는 궁양 등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한 가지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습니다."
진남은 사실을 말했다.
"내가 패배를 인정했던 건 누군가가 나에게 부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저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궁양 등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들은 진남이 이 소식을 알고 패배를 인정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은혜를 갚기 위한 것이라니.
그들은 멍청하지 않았기에 이내 그 사람이 소경설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궁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남, 네 말뜻을 알겠다. 너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지. 그런데 이번 일은 평소와 달라. 지금은 종주가 무황 경지에 오르지 못해 일부 사람들이 아직 거취를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종주가 경지에 오른다면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재앙이 될 거야. 너를 위함이니 이번엔 반드시 현령종을 떠나야 한다. 네가 정 싫다면 내 부탁이라고 생각해줘. 제발 우리 우정을 봐서라도 현령종을 떠나거라."
궁양의 두 눈에서 처음으로 간절함이 떠올랐다.
"진남, 우리도 부탁할게. 제발 현령종을 떠나."
소냉, 초운, 황용, 묵자삼, 서유 등 다섯 사람도 간절히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