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저는 저입니다
"너는 모른다."
잠자코 대꾸하지 않던 묘묘 공주가 입을 열었다.
"유실 약원을 아는 걸 보니 내 신분도 알고 그 사건도 알겠지. 이자는 평범한 인간이 맞다.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해도 살아날지 모르는 것도 맞다. 하지만 암흑 속에서 삼백 년 동안 잠든 나를 깨운 것이 네가 말한 이 평범한 인간이다."
"만일 이 사람이 나와 혈계를 맺어서 내 영혼이 따뜻함을 얻고 회복하지 못했더라면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이 사람이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다."
용호요종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건 없다."
묘묘 공주가 인삼이 되었지만 용호요종은 왠지 그녀가 가볍게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넌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내 하인이다. 주인인 내가 구해주지 않으면 누가 구해주겠느냐."
말을 마치자 삼천 갈래의 수염이 홍수처럼 진남의 체내로 모두 밀려 들어갔다.
펑!
폭발음과 함께 묘묘 공주는 인삼의 모습이 아니라 이전의 어린 모습으로 변했다. 그녀의 얼굴은 핏기없이 창백했고 기운은 쇠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진남은 생기가 들어가니 시체 같던 몸에서 활기찬 생명력이 분출되었다. 호흡이 생기고 심장이 뛰기 시작하면서 백지장 같던 피부가 점점 혈색을 찾아갔다.
진남이 선약의 힘으로 기사회생했다.
"……"
용호요종은 그 모습에 잠시 침묵하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 녀석이 공주가 그런 대가까지 치를 가치가 있다니. 그러면 나도 힘을 보태겠다.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이제 이자에게 달렸다."
용호요종은 핏자국이 낭자한 용머리에서 입을 벌리더니 주먹만 한 크기의 옥구슬을 꺼냈다.
옥구슬에서 용음호소가 번갈아 들려오고 정기가 뿜어져 나와 하늘에 이르렀다. 세상의 많은 오묘를 품고 있는 것처럼 신비하기 그지없었다.
옥구슬의 이름은 용호주(龍虎珠)였다. 용호요종은 천 년의 수련을 거쳐 겨우 하나를 응집시켰다.
용호주가 진남의 몸에 들어간 이후 용호요종의 기운이 급속도로 쇠약해지더니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 호흡하기조차 힘들어했다.
"젠장…, 여인 한번 꼬셔보려다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구나……"
용호요종은 슬며시 불만을 토로하며 진남을 쳐다봤다.
진남의 몸이 용호주와 융합된 후 왕성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그의 온몸을 휘감고 있던 자주색 무늬가 충격으로 겹겹이 부서졌다. 그는 숨을 쉬는 것이 매우 세차게 변했다.
"고맙다…."
묘묘공주가 힘겹게 말했다. 그녀는 몸을 겨우 가누고 비틀거리며 진남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그리고 천천히 바닥에 앉아 뽀얀 손을 내밀어 진남의 머리를 토닥거렸다. 그녀의 작은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진남아, 너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나한테 무왕단 십만 알을 빚졌잖아…. 설마 지금 그거 갚기 싫어서 일부러 이러는 거냐?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서 일어나거라……."
그녀는 계속 말했다.
"내가 계속 너를 괴롭혔는데 복수도 해야 하잖아…."
"내가 네 단약들도 많이 빼앗았는데 그것들도 다시 가져가야지…"
"주인이 죽으라고 허락하지 않았는데 누가 감히 허락도 없이 죽으려고 하느냐…"
"……"
* * *
어둠!
끝없는 어둠!
진남은 몸이 산에 눌린 것처럼 무거웠다. 그는 끝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죽었구나."
피곤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를 삼켜버렸다.
진남은 깊은 잠에 빠졌다.
이때, 한줄기 찬란한 빛이 어둠을 뚫고 커다란 손으로 변하여 진남을 꽉 잡고 위로 잡아당겼다. 끝없는 심연 속에서 그를 끌어냈다.
"이건……?"
진남은 눈을 뜨고 몸속에 들끓는 힘을 느끼더니 깜짝 놀랐다.
'죽은 거 아니었어? 어떻게 갑자기 살아났지?'
"진남!"
이때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신의 혼이었다.
전신의 혼은 예전과 달리 왼쪽 눈알이 완전히 모습을 갖추었고 생기있었다. 흐릿하던 모습도 생동해져서 마치 전신이 재림한 것 같았다.
"전신의 왼쪽 눈……"
진남은 안색을 굳히고 말했다.
"왜 내 몸을 탈사하는 겁니까?"
"왜? 나한테 왜라고 물었느냐?"
전신의 혼은 우레같이 큰 소리를 냈다.
"전신의 혼, 전천전치, 무소불능, 무소불승. 네가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니 네가 전신의 혼을 계승할 자격이 있겠느냐?"
진남의 심신이 흔들렸다. 그의 두 눈은 몽롱해졌다.
'내가 잘못한 건가? 친구를 위해서 고개를 숙인 것이 잘못일까?'
"진남, 네가 말한 그 친구가 얼마나 우스운지 아느냐!"
전신의 혼은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그들 앞에 어떤 장면이 펼쳐졌다. 묘묘 공주가 진남이 죽자 구령전선삼으로 변해서 근본의 힘을 사용해서 진남을 구했다. 용호요종은 백 년을 수행한 용호주를 진남의 체내에 넣었다. 묘묘 공주가 비틀거리며 진남에게 다가와 계속 말을 했다.
그 모습에 진남은 멍해졌다.
'묘묘 공주가 나를 구하기 위해서 근본을 사용하다니? 왜 나를 구해준 거지…? 그녀는 내가 죽기를 바랬던 게 아니었나…? 그래야 혈계가 풀어지는데……?'
진남은 묘묘 공주와 혈계 때문에 같이하는 거지 그게 아니면 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묘묘 공주와 어떤 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예상 밖이었다.
"보았느냐? 저게 네가 말한 친구다!"
전신의 혼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구하기 위해서 근본을 상하다니 얼마나 위대하느냐? 그런데 결과는 어떠하느냐?" 이번 심사는 구자진언이 너를 심사하는 게 아니라 내가 너를 심사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심사는 네가 죽는 걸로 정해졌다. 그러니 저것들도 결국 다 죽게 되는 것이다!"
전신의 혼은 계속해서 말했다.
"전신은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 친구는 네 발목을 잡을 뿐이다. 진정한 전신은 천지 만물을 적으로 두고 싸운다. 싸움에 싸움을 거듭해야 절세의 전신이 될 수 있다. 친구라고 하는 모든 것들은 필요하지 않……"
이때 웃음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하하하!"
진남은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지 못한 듯 너무 기뻤다. 그의 두 눈은 이제 몽롱하지 않고 또렷해졌다.
"왜 웃느냐?"
전신의 혼이 싸늘하게 물었다.
"저 자신을 비웃은 겁니다."
진남은 웃음소리를 거두며 말했다.
"제가 너무 멍청해서요. 단지 죽었다는 이유로 저는 제가 잘못한 게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참 멍청합니다. 이게 어떻게 잘못이겠습니까? 친구는 친구입니다. 뭐라고 해도 그 가치는 충분합니다."
진남은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전신의 혼을 향해 말했다.
"당신의 존재가 무척이나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범한 존재라서 제 목숨을 거두겠다고 하면 제가 반항할 수도 없겠지요."
"네가 깨닫는다면 너를 죽이지 않겠다."
전신의 혼이 느긋하게 말했다.
"너는 전신의 후계자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자리로 돌아오면 모든 것은 네 것이다."
"아닙니다!"
진남은 망설임 없이 못 박아 말했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러니 잘못을 인정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전신의 혼은 대단한 게 분명합니다. 제가 용호산맥에서 당신을 얻은 덕분에 수많은 천재들을 발아래에 두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신이 없었다면 저는 한낱 일반인일 뿐입니다."
"자신을 잘 아는구나. 그러니 전신의 혼의 의지를 계승 받아라."
전신의 혼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에 진남은 고개를 흔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흔들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묘묘 공주의 행동을 본 후 그는 깨달았다.
진남은 고개를 들고 전신의 두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전신의 혼을 얻은 건 영광입니다. 하지만 힘을 얻으려고 자신을 잃어버리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전신이 아니라 진남입니다!"
"제 친구는 제가 지킵니다. 저의 적도 제가 격파할 겁니다! 저는 저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제 마음에 부끄러움 없이 살 겁니다. 설사 비천해지고 나약해지더라도 죽기보다 더하겠습니까?"
진남의 말처럼 전신의 혼이 없으면 그는 비천하고 나약한 존재였다.
'그렇다고 해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다. 친구들을 지키고 나의 신념을 지킬 것이다. 가장 안 좋은 결과라야 죽기보다 더하겠는가?'
진남다운 생각이었다.
이런 모습이 진정한 진남의 모습이었다.
'바로 이거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자태를 잊을 수 없구나…….'
전신의 혼의 이상한 낌새를 진남은 눈치채지 못했다.
"전신의 혼, 저는 당신의 내력이 신비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탈사하겠다고 하니 평범한 인간 주제에 감히 한번 싸워보렵니다. 마지막 승자가 누가 될지 한번 봅시다."
진남이 당돌하게 전신의 혼에게 도전했다.
"하하하, 용기가 가상하구나! 좋다!"
전신의 왼쪽 눈이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진동하자 세상이 부서질 것 같았다. 거대한 전신의 혼이 진남을 항해 날아왔다.
그러나 싸움은 진행되지 않았다. 전신의 혼은 놀랍게도 초록빛을 뿜으며 진남의 육체와 하나로 융합되었다.
"아니……?"
진남은 크게 당황했다.
'나를 탈사하겠다고 날뛰던 전신의 왼쪽 눈이 갑자기 내 육체와 하나가 되다니!'
진남이 깊이 생각하기 전에 그의 육체에 놀랄만한 변화가 생겼다.
진남의 몸속에 융합된 전신의 왼쪽 눈이 저도 몰래 눈물을 흘렸다.
슬픔도, 고통도 아닌 기쁨 때문에 흘린 눈물이었다.
'주인님, 지난 생에 저를 데리고 싸웠던 그 아홉 날, 좋으셨습니까?'
* * *
용호요종은 바닥에 누운 진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중얼중얼 계속 진남에게 말을 거는 묘묘 공주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슬프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물어볼 게 있다."
"무엇을 일이냐?"
묘묘 공주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약간은 귀찮은 것 같기도 했다.
'왜 말을 거는 거야. 용호요종은 내가 진남을 깨우는 게 안 보이나?'
용호요종은 가슴 아파하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 보거라. 너 이 녀석을 사랑하게 된 거냐?"
"사랑?"
묘묘 공주는 망연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사랑이 뭔데?"
"사랑을 모르느냐?"
용호요종이 이상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네가 이 녀석을 위해서 근본을 희생했는데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란 말이냐?"
묘묘 공주가 대답하기 전에 진남의 몸이 떨리더니 활기차던 생기가 말끔히 사라지고 적막이 흘렀다.
"진남…!"
묘묘 공주는 안색이 대뜸 변하더니 진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휴……."
용호요종은 탄식을 하더니 말했다.
"내가 그랬잖아. 진남을 살린다고 해도 탈사를 피하지 못한다고. 진남을 탈사한 것은 구자진언 영기도 굴복시킨 신물이 아니더냐……"
그때 이상한 현상이 다시 벌어졌다.
진남의 몸에서 청색의 찬란한 빛이 솟아올랐다.
바닥에 누워있던 몸이 무형의 힘에 끌린 듯 천천히 허공에 떠올랐다. 그의 체내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풍겼다.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