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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전혼-133화 (133/1,498)

133화 구자진언

"지금이 싸울 때야?"

소리를 지른 사람은 진남이었다.

진남은 화가 났다. 그는 용호요종이 왜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구층지부탑에서 싸움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었다.

묘묘 공주와 요종은 진남이 화를 내며 호통을 칠 줄은 몰랐다.

그들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진남을 쳐다봤다.

"하룻강아지,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

용호요종이 피식 웃었다. 그는 용기(龍氣) 한방으로도 진남을 죽일 수도 있었다.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묘묘 공주는 진남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용호요종을 차갑게 응시하며 말했다.

"지금 너와 싸울 기분이 아니니 눈치껏 기어라!"

묘묘 공주는 몸을 움직여 다시 나무 상자를 잡으려 했다.

"보물을 가지려고? 어림없다!"

용호요종의 시뻘겋게 쩍 벌린 입에서 마치 강줄기 같은 거센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죽고 싶은 게로구나!"

묘묘 공주가 폭주했다. 그녀의 몸에서 엄청난 검의가 세차게 흔들리다가 응집되더니 칠상검진을 이루었다. 칠상검진은 홍수 같은 광채로 대전을 뒤덮었다.

진남은 끄트머리에 서 있는데도 바람에 흔들리는 풀처럼 수시로 그 힘에 휩쓸려 나갈 것만 같았다.

묘묘 공주는 조금 망설이는 듯했다. 그녀는 진남과 사이가 틀어진 후였지만, 진남이 싸움에 휩쓸리지 않게 했다.

'역시 묘묘 공주를 믿으면 안 돼!'

진남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묘묘 공주는 자신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양보하기도 하지만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그대로 버려두는 전형적인 무정하고 냉혈한 사람이야.'

"응?"

전신의 눈에서 다시 격렬한 후끈후끈함이 전해졌고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큰 북이 울리는 듯 놀라울 정도로 쿵쿵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번에 전신의 눈의 이변은 전보다 더 심했다.

"저건……?"

엉켜서 싸우던 묘묘 공주와 용호요종의 안색이 변하여 일제히 진남을 쳐다봤다. 금빛이 찬란한 진남의 두 눈을 본 그들은 놀란 기색이 역력하여 싸움마저 멈추었다.

조금 전 둘은 엄청난 파동을 느꼈는데 그들은 파동에 몸서리쳤다.

이때 위엄 있는 목소리가 구층지부탑에서 터져 나왔다.

"구자진언이 여기 있다. 모두 무력을 사용하지 말거라."

우르릉, 쾅!

천둥소리와 함께 엄청난 기운을 풍기는 아홉 개의 그림자가 동시에 강림했다.

아홉 개의 그림자는 생김새가 희미했다. 그들의 몸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이 맴돌고 있었다.

동시에 구층지부탑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구층지부탑의 모든 벽과 마루 등에는 금색 무늬가 가득했고 하늘을 찌를 듯한 힘이 솟구쳤다.

거대한 탑은 마치 신탑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구자진언 기영(器灵, 물건에 깃든 영혼)!"

묘묘 공주와 용호요종의 안색이 동시에 변했다.

무종의 경지까지 오른 둘이었지만 아홉 갈래의 기운에 완전히 억압되었다.

진남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홉 개의 그림자가 구자진언의 기영인가?'

"구자진언, 잘 나타났다."

묘묘 공주는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의 몸에서는 신비로운 힘이 솟아났다.

"너희들에게 있는 물건이 필요하다. 나에게 그걸 준다면 백 년 안에 너희들을 모두 제황지기(帝皇之器)로 만들어 주마."

구자진언은 모두 법보이고 왕도지기(王道之器)였다.

왕도지기도 엄청났다. 그런데 묘묘 공주가 모두 황제지기로 만들어 주겠다고 큰소리 쳤다.

진남은 황당했다. 그는 묘묘 공주의 엄숙한 모습을 처음 봤다.

'묘묘 공주가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큰 혜택을 주겠다는 걸까?'

진남은 조금 전 묘묘 공주가 보물을 얻으려는 절박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나무 상자의 물건이 묘묘 공주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하하! 웃기는군. 제왕지기로 만들어 주겠다고?"

용호요종은 묘묘 공주를 시큰둥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넌 구자진언의 내력을 모르는구나. 소문에 의하면 구자진언에는 놀라운 비밀이 얽혀있다고 하더군. 나는 비밀이 뭔지는 모르지만, 이들이 살아 있을 때는 그 경지가 이미 제황지기를 넘었다고 했다."

"그 입 다물어라."

묘묘 공주가 스산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몸속에서 엄청난 힘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용호요종은 안색이 변하며 반박하려 했다.

그때, 구자진언이 동시에 말을 했다. 아홉 개의 목소리가 한데 겹쳐서 구층지부탑에 울리니 이루 말할 수 없이 신비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오로지 후계자를 고르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후계자가 된다면 구자진언을 포함한 이곳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후계자가 될 수 있느냐?"

묘묘 공주의 눈은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다.

"너희 셋 중에서 심사를 통과하는 사람이 후계자가 될 수 있다."

아홉 개의 기영이 동시에 말했다.

"이 심사에서는 한 사람만 이길 수 있다. 지는 사람은 목숨을 잃게 된다. 너희 셋 모두 심사에 참가할 거냐?"

"하하, 당연히 참가해야지."

용호요종이 그 말을 듣더니 두 눈에서 빛이 났다.

"나는 태고 천룡(太古天龍)이고 천롱뇌호의 혈통이라 더없이 고귀하다. 이 심사는 내가 이길 게 분명하다."

"심사?"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진남은 심사에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는 그저 전신의 눈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알고 싶었다.

"어떤 심사지? 그 물건은 내게 꼭 필요한 거다. 못 준다고 하면 싸워서라도 빼앗을 것이다."

이때, 묘묘 공주의 몸에서 신비로운 힘이 활짝 피어났다.

묘묘 공주는 더 이상 열두세 살의 가냘픈 몸이 아니라 어엿한 성인 여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녀는 늘씬한 키, 은하수같이 긴 머리카락, 뽀얀 피부에 이목구비가 반듯했다. 평소의 긴 치마는 금사 긴 치마로 변하여 온몸을 싸고 있었다. 천지가 놀랄만한 위압이 그녀에게서 풍겼다.

묘묘 공주는 어느 대국의 공주인 양 기세가 등등하고 만인이 경배할만한 모습이었다.

"무슨……?"

진남은 멍해졌다. 열두세 살로 보이던 묘묘 공주가 갑자기 어른이 되다니.

용호요종은 넋이 나갔다. 조금 전 그와 싸웠던 어린 소녀가 갑자기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했다. 그는 저도 몰래 가슴이 두근거렸다.

묘묘 공주가 맨손을 휘두르자 무변법인(無邊法印)이 겹겹이 나타나며 구자진언을 공격했다.

평범한 공격인 것 같지만 하늘에 차고 넘칠 만큼 거센 기의 흐름이 담겨 있었다.

"사서 고생하는구나. 부상을 당한 몸인데 근본까지 사용하면 상처가 더 심해질 거다. 나무 상자 속 단천속명고(斷天續命膏)도 네 상처를 완전히 낫게 할 수 없다."

구자진언 기영은 묘묘 공주의 공격을 받자 탄식했다. 동시에 아홉 개의 그림자가 손을 뻗어 허공을 향해 눌렀다.

삽시간에 모든 것이 허무로 돌아갔다.

묘묘 공주가 흠칫하더니 입가에서 피가 스며 나왔다. 조금 전까지 대국의 공주 같던 모습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런 묘묘 공주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구자진언, 오늘 무슨 일이 있든 단천속명고를 가져갈 거다. 난 그게 꼭 필요해. 어떤 대가를 치러도 아깝지 않다……"

묘묘 공주는 입가의 피를 닦아냈다. 그녀의 눈에서 흔들림 없는 의연함이 드러났다.

묘묘 공주는 다시 두 손을 내밀어 자신의 근원의 힘을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신비한 힘이 그녀를 봉인해버렸다. 묘묘 공주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피를 왈칵 토했다.

"구자진언! 왜 내 힘을 봉인하는 게냐! 나는 오늘 반드시 널 이길 거다!"

묘묘 공주는 고개를 쳐들고 계속 손을 뻗어 봉인을 풀려고 했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충격으로 입가에 보랏빛 피를 토해냈다.

묘묘 공주는 수십 번 시도했지만, 봉인을 뚫을 수 없었다.

"구자진언, 너희들이 이렇게 대단할 줄 몰랐구나……. 내가 너희들을 우습게 봤다."

묘묘 공주는 입가를 닦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고집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됐으니 심사에 참여해야겠다. 어떻게 해서든 단천속명고를 손에 넣을 거다."

묘묘 공주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반드시 단천속명고를 얻는다.'

"왜 그런 고생을 하느냐……."

아홉 개의 기영 그림자는 동시에 탄식하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남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진남이냐?"

진남은 조금 전의 충격에서 벗어났다. 그는 정색하며 말했다.

"소인이 진남입니다. 아홉 선배님들께 감히 여쭈겠습니다. 어떤 부름을 느껴서 이곳 십자비장에 왔는데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혹시 제가 감화를 받은 겁니까?"

용호요종은 그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도 안 돼. 선천 경지의 일반인이 어떻게 감화를 받을 수 있느냐? 내가 나이가 어리다고 놀리는 거냐? 난 천룡뇌호의 혈통이고 엄청 고귀하다. 근데도 아직 감화를 받지 못했는데 어떻……"

"그렇다."

구자진언 기영의 대답에 용호요종은 묵직하게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대전의 한 켠에 있던 묘묘 공주는 그 말을 듣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진남을 힐끗 보았다.

"우리 구자진언이 대륙을 떠돌아다닌 건 오직 후계자를 찾기 위해서다. 그런데 천 년 전에 신물이 내려오더니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명령을 받아 후계자를 찾는 동시에 너를 찾고 있었다."

구자진언 기영이 감탄했다.

"얼마 전 신물이 네가 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전례를 깨뜨리고 십자비장을 열고 너를 불러들였다."

용호요종은 경악했다. 차가운 묘묘 공주의 아름다운 얼굴에도 경악하는 기색이 스쳤다.

'신물이라는 게 대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이길래 구자진언 같은 기영에게 진남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대단한 신물이 왜 천 년 전부터 진남을 찾았던 걸까?'

구자진언 기영이 말했다.

"이젠 네가 왔고 우리는 사명을 다했으니 원래 주인에게 물건을 돌려주겠다."

한 줄기 빛이 반짝이더니 독특한 흰색 나무 상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진남의 손에 떨어졌다.

진남은 흰색 나무 상자를 받고 멍하니 서 있었다. 이번에는 두 눈이 이글거릴 뿐만 아니라 온몸이 불에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남의 온몸의 피가 들끓기 시작하고 심장이 쿵쾅쿵쾅 격렬하게 뛰었다. 진남의 영혼에는 흥분, 그리움, 놀람과 기쁨 등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진남은 본능적으로 흰색 나무 상자를 열어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들었다.

진남은 두 눈이 초점을 잃고 손을 뻗어 흰색 나무 상자를 열려고 했다.

바로 그때 구자진언 기영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물이 말하기를 넌 아직 그것을 열 수 없다고 한다. 넌 이번 심사에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심사 중에서 그 상자를 열고 신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진남의 손이 굳어졌다. 그의 손끝이 흰색 나무 상자에서 불과 한 치 정도 거리에서 멈추었다.

진남은 몸속에서 거대한 충동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치 그의 귓가에서 상자를 열라고 계속 울부짖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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