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협력하자
앞쪽 동굴 안에서 점점 더 많은 허영이 밀려 나와 한데 쌓였다.
"감히 나를 만만히 보는 건가? 재미있구나."
진남은 콧방귀를 뀌며 큰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살기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모두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사람 형상의 허영은 음기가 응결된 망령이라 경지가 없었고 사람을 놀래키는 정도였다.
몸에 살기가 짙거나 혹은 많은 정기를 지니고 있어 음기가 왕성하면 이런 망령은 절대 건드리지 못하고 먼저 도망갔다.
진남은 더욱 의문스러워졌다.
'왜 갑자기 천지에 큰 변화가 생기고 또 이렇게 많은 망령이 생겼지?'
두 눈동자의 안내에 따라 진남은 또 백여 리를 걸어 산꼭대기 위에 도착했다.
산꼭대기 위에서 내려다보던 그는 표정이 크게 변했다.
산봉우리가 끝없는 검은 연기에 덮여 있었고, 아홉 채의 길이가 삼십 장 되는 궁전이 땅을 뚫고 나온 듯 우뚝 서 있었다. 어두컴컴하게 땅에 늘어선 궁전은 신비로 뒤덮여 있었다.
'구중지부전(九重地府殿), 한 겹이 한 개 관이다!'
머릿속에서 한 마디 옛말이 울려와 그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거지? 대체 무슨 뜻이지? 설마 아홉 개 대전의 한 개 전당이 한 번의 고난인가?"
진남의 머릿속에 의문이 솟아올랐다.
'구중지부전은 전신의 눈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이것이 사대 가문이 말하는 십자비장인가? 용과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가 나는 이상도 이것과 관련 있는 것인가?'
"정말 갈피를 잡지 못하겠구나……"
진남은 고개를 저으며 바닥에 늘어선 아홉 채의 커다란 전당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결심을 내렸다.
구중지부전이 십자비장이든 아니든 전신의 눈이 그를 이곳으로 데려왔으니 어찌 됐건 그는 반드시 한번 시도해 봐야 했다.
설사 커다란 위험이 있어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위험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진남은 지체하지 않고 몸을 움직여 산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진선의 기를 움직여 날개를 만들어냈다. 하늘에서 날아서 산 중턱에 내려 백현팔보를 펼쳤다. 그는 바람을 날리며 빠르게 나아갔다.
잠시 후 그는 산기슭에 있는 시커먼 대전 문 앞에 도착했다.
대전은 굳게 닫혀있고 문 어귀에는 열 개의 기둥이 있었다. 기둥은 하늘과 통하는 위력을 갖고 있는 듯했다.
대전의 간판은 딱 한 글자였다.
임(臨)
임자는 붓으로 쓴 것이 아니라 시커먼 부적을 겹겹이 붙여 만든 것이었다.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이상해도 상관없어. 나의 전신의 눈은 모든 걸 정탐할 수 있을 테니까."
진남은 두 눈동자를 돌려 임자대전을 보려 했다.
이때 임자대전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마치 산이 터지는 것처럼 귀가 얼얼하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진남이 정신을 차렸을 때 임자대전의 대문이 활짝 열리더니 작은 그림자가 충격을 받은 것처럼 거꾸로 날아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악……!"
진남은 그림자를 확인했다.
'묘묘 공주잖아?'
묘묘 공주는 예전의 풍채가 사라졌다. 영광이 반짝이던 긴 치마도 남루해졌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까지 묻어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거대한 분노가 드러났다.
"어떤 놈이야? 감히 나 묘묘 공주를 때리다니! 내가 지금 경지가 낮지 않다면 너희 이 개자식들을 짓밟……"
그녀의 분노 어린 외침이 멈췄다. 그녀는 드디어 옆에 서 있는 진남을 발견했다.
그녀는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진남……? 왜 여기에……?"
그녀는 뭔가 생각난 듯 재빨리 일어났다.
순간 빛이 반짝이더니 남루하던 긴 치마가 다른 치마로 바뀌었다. 그녀의 주위에 빛이 반짝거리고 영기가 가득해졌다. 그녀는 흐트러졌던 머리카락도 높게 말아 올렸다. 좀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가 묻잖아, 네가 어떻게 여기 있어?"
묘묘 공주는 머리를 쳐들고 예전의 오만한 표정을 되찾았다.
진남은 속으로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그 말은 내가 물어보려던 거다, 너는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너는 한 번도 용호산맥에 와본 적 없잖아."
그의 말에 묘묘 공주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구중지부전 안에는 뭐가 있는 거야?
"어?"
묘묘 공주가 굳은 표정을 하고 위엄 있게 말했다.
"너 이게 주인을 대하는 태도야? 내 귀허석과 구변화는 어디 있어?"
"귀허석과 구변화는 내게 있어."
진남은 그녀의 말에 당당히 대답했다.
"다만 한 가지 요구가 있어. 네가 아는 걸 모두 알려줘. 조금도 숨겨서는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이 두 가지 물건은 내가 가지겠어."
"너!"
묘묘 공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화를 냈다.
'고약한 놈! 건방진 놈! 감히 나에게 조건을 걸다니!'
"하하하, 네가 전에 우리 가문을 도와 대진도 쳤으니 나는 그에 보답해야 하는 게 맞아. 그러니 어찌 이 두 물건으로 너를 협박하겠어? 농담이야, 농담."
진남은 그녀가 화가 난 걸 보자 기분이 좋아져 웃으며 구변화와 귀허석을 꺼내줬다.
이미 약조한 일인데 어찌 떼먹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줄곧 묘묘 공주에게 당했으니 참지 못하고 그녀를 골탕 먹인 것이었다.
"뭐라고?"
'진남 이 자식이 오늘 간이 부었나? 감히 나와 맞서다니.'
"나 먼저 간다."
진남은 그녀의 기세가 꿈틀거리는 걸 보고 더 머무르지 않고 떠나가려 했다.
묘묘 공주도 임자대전에서 맞고 나왔는데 그의 실력으로 들어가면 죽을 게 뻔했다.
이때 화가 났던 묘묘 공주가 뭐가 생각난 듯 급히 입을 열었다.
"서라!"
진남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왜? 또 볼일 있어?"
"내가 너에게 큰 기회를 주련다."
묘묘 공주는 눈빛이 반짝이며 말했다.
"십자비장에선 함께 협력할 수 있어. 대신 너 일 할 나 구 할로 나누자."
"나 일 할 너 구 할?"
진남은 어이없었다. 그와 협력하자고 하면서 이렇게 야박한 조건을 제시하다니.
묘묘 공주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싫어? 네가 나의 하인이니까 이런 기회를 주는 거지 보통 사람에게는 이런 기회를 주지 않아."
"그래?"
진남은 속으로 비웃었다.
'묘묘 공주의 성격에 이익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스스로 협력하자고 하는 걸 봐서는 틀림없이 내가 해결해 줘야 하는 일일 것이다.'
고민하던 진남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고작 선천 경지의 수사일 뿐이고 너는 무종 경지 정상의 존재인데 우리가 어떻게 협력한다는 거야. 나는 관심 없어. 너 혼자 가서 가지거라."
말을 마친 진남은 돌아서 가려 했다.
"잠깐!"
묘묘 공주는 진남이 속지 않자 창피하고 화가 나 말했다.
"팔 대 이, 팔 대 이로 나누면 되지? 정말 많이 양보했어. 그리고…… 야야야, 가지 마! 칠 대 삼이면 되지? 사람이 왜 이렇게 욕심이 많아? 칠 대 삼도 만족하지 않으면 협력할 필요도 없어. 그러면 이 안의 물건을 우리는 누구도 얻을 수 없을 테니까…… 아! 육 대 사! 이게 최대한 양보한 거야!"
진남은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웃으며 말했다.
"잘해 봐."
"너!"
그의 모습에 묘묘 공주의 작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으면 그녀가 어찌 이렇게 굽실거리며 그가 괴롭히도록 가만뒀을까?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어!"
묘묘 공주가 쌀쌀맞게 말했다.
"잠깐."
진남은 움직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협력하기 전에 나에게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하지 않겠어? 또 이 십자비장에 도대체 뭐가 있는지도 말해."
"너!"
묘묘 공주는 눈에 화가 드러났다.
'사람을 업신여겨도 분수가 있지.'
그녀는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분노를 누르고 이를 꽉 물고 말했다.
"너는 두 눈으로 안에 쳐진 금제를 보아내어야 한다. 하지만 십자비장에 대해선 나도 아는 게 많지 않아.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건 각 지부전에 세 가지 진전지보가 있다는 거다. 매우 진귀하고……"
진남은 묘묘 공주가 한 말을 모두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묘묘 공주가 속인 건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따 직접 보면서 확인하자."
진남은 혼자 중얼거리며 결심하고 말했다.
"그럼 공주께서 길을 안내하시오."
"흥!"
묘묘 공주는 고개를 돌려 임자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진남은 뒤를 따랐다.
* * *
임자대전에 들어선 진남은 깜짝 놀랐다.
대전 안은 온통 시커멨다. 전신의 눈이 있어도 방원 삼 척밖에 볼 수 없었다.
방원 삼 척 안에는 청색 돌길이 있었다. 그 청색 돌길과 멀지 않은 곳에 장검 한 자루가 떠 있었다.
"이건 선천지기야!"
진남은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무도의 법보는 영기, 후천지기, 선천지기, 왕도지기, 제황지기로 나뉜다.
낙하왕국 사대 종문에 있는 선천지기의 개수는 손가락에 꼽을 수 있었다.
'임자대전에 들어오자마자 선천지기를 만났으니 대전의 깊은 곳에는 얼마나 강한 존재가 있을까?'
옆에 있던 묘묘 공주가 쌀쌀맞게 웃으며 말했다.
"고작 선천지기일 뿐인데 뭘 그렇게 놀래? 어서 빨리 이곳의 금제를 풀 거라!"
진남은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전신의 눈을 움직여 방원 삼 척을 둘러봤다.
둘러보던 그는 안색이 변했다. 선천지기를 만났을 때보다 더 놀랐다.
그는 전신의 눈을 통해 청동고검 위에 작은 진법이 떠 있는 걸 발견했다. 진법은 마치 하늘에 촘촘한 별처럼 서로 뒤엉켜 있었는데, 매우 오묘했다. 운행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진법에서 나오는 차가운 기운은 오금을 저리게 했다.
이 진법을 잘못 건드린다면 설사 무종 경지의 강자라도 중상을 입을 거라는 걸 진남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내게 협력하자 하고, 눈이 필요하다 한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진남은 모든 걸 깨달았다. 그는 전신의 눈을 움직여 대전을 둘러봤다.
만약 평소라면 그는 며칠의 시간이 필요했을 거다. 그러나 이번에 용호산맥에서 전신의 눈에 이변이 발생해 관찰하는 능력이 발전했다. 그래서 한 시진 만에 그는 진법 전부를 꿰뚫어 봤다.
"여기야!"
진남은 몸을 움직여 손가락으로 숨어있는 진법의 중심을 가리켰다.
진법은 오묘하고 복잡하여 하늘의 별 같았다. 그러나 관찰을 통해 진남은 진법 깊은 곳에 일곱 개의 깊이 숨은 진안이 있고 진안을 뚫으면 진법은 자연적으로 부서진다는 걸 알아냈다.
쿵쿵쿵쿵!
연속 일곱 번 가리키자 대진이 부서졌다.
대진이 부서지면서 허공에 떠 있던 청동고검이 소리를 내더니 자유를 얻은 것처럼 강렬한 의지를 뿜었다. 마치 진남이 자신을 데려가기를 갈망하는 것 같았다.
진남은 매우 흥분해서 백현팔보를 펼쳐 청동고검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묘묘 공주가 비명을 질렀다.
"진남, 멈춰라! 잡으면 안 된다! 절대 잡으면 안 돼! 대전에서는 한 가지 보물만 가질 수 있다. 이걸 가지면 임자대전의 지보(至寶)는 더는 가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