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교룡경(蛟龍鏡)
"고약하군! 고약해!"
동씨 가문 가주와 서씨 가문 가주는 모두 방금 일어난 일을 생각하니 얼굴이 마귀처럼 사나워졌다.
그 바람에 사람들의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도 이상함을 눈치챘다.
'어떻게 된 거지?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거지?'
"내가 말하겠소."
한 나이가 많은 장로가 맞아서 부은 코끝을 만지며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에 우리가 십자비장에 대해 조금 알아냈을 때 어디선가 무종 경지의 여자애가 달려와 한마디 말도 없이 우리를 죽도록 때렸다. 우리가 지니고 있던 모든 물건을 깡그리 뺏고 마지막에 우리에게 다시는 산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너희들의 천리전음표를 받고 너희 젊은이들이 그 보장을 얻었기를 바랐다. 그런데 너희들이 진남을 만나……"
장로의 말은 제자들에게 청천벽력이었다.
그들이 진남에게 모조리 뺏긴 건 그렇다 쳐도 그들 삼대 가문의 장로들마저 무종 경지 강자를 만나 마찬가지로 모조리 뺏기다니?
'이, 이게 뭐지?'
삼대 가문의 장로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번 손실로 사대 가문은 아마 십 년 내에는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어떻게 된 거냐? 도대체 무슨 일을 당한 게야. 북유는? 북유는 어디 있느냐?"
이때 노기등등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렸다.
대머리 사내가 길이가 석 장이나 되는 거검을 메고 뒤에 이십여 명의 장로들을 이끌고 내려왔다.
북유의 아버지, 북씨 가문 가주 북열혈(北烈血)이었다.
"북씨 가문!"
삼대 가문의 장로들은 일제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대 가문이 수색한 방향이 다르다 보니 북씨 가문은 편벽한 산간에 가서 십자비장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약탈당하지 않았고 충분한 영기와 단약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독한 어린 여자애를 생각하자 희망이 다시 사그라들었다.
상대는 무종 경지 강자인데 북씨 가문이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았다고 한들 어떡하랴.
좀 전의 그 나이가 많은 장로가 다시 나서서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북씨 가문 가주, 사정은 이러하오……"
한참 후 한 무리 북씨 가문 장로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북열혈은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뭐라고? 너희들이 무종 경지 강자를 만났다고? 그럼 어떻게 십자비장을 얻는단 말이냐? 그리고 진남이 혼자 우리 사대 가문의 제자들을 약탈했다고?"
이건 질문이 아니라 경악이었다.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슬프고 처량한 표정으로 그에게 이번 용호산맥 행이 얼마나 불행한지 알려줬다.
"내 딸아이는?"
북열혈은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그들 북씨 가문은 아무런 손실도 없었다. 심지어 이번에 삼대 가문이 약탈을 당했으니 그는 반대로 삼대 가문을 억압하여 이득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손실이 제일 적다고 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지금 북유의 행적이 제일 걱정되었다.
"가주, 소주… 소주께선……"
이번엔 북씨 가문의 젊은이가 나서서 싸움에서 있었던 일을 낱낱이 설명했다.
다른 삼대 가문의 장로, 제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진남이 그토록 강할 줄은 몰랐다.
으득!
"내 딸아이가 하인 노릇을 시켰으면 영광으로 알아야지 감히 내 딸아이를 다치게 해? 장로들, 교룡경을 사용해 그 녀석을 찾아야겠소!"
북열혈이 분노해서 외쳤다.
다른 가문의 장로들의 시커먼 눈빛이 순식간에 반짝거렸다.
사대 가문에는 모두 가문지보(家門之寶)가 있었다. 북씨 가문의 가문지보는 명성이 자자한 후천지기였다.
"교룡경(蛟龍鏡)!"
북열혈은 저장 주머니에서 빨갛고 네모난 거울을 꺼냈다. 거울 속에 넓은 바다가 나타났다. 바다의 끝에 교룡 한 마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교룡의 두 눈은 은은하게 빛났는데 살기를 뿜고 있었는데, 마치 언제든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천강대우, 교룡출해!"
북열혈이 손가락을 굽혀 힘을 거울에 튕기자 교룡경에서 순식간에 빛이 폭발하더니 한 갈래의 요사스러운 기세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쿵!
거대한 포효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자들은 그 소리를 듣고는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교룡경에서 길이가 다섯 장 되는 교룡의 허영이 바다에서 날아와 기다란 꼬리를 흔들며 허공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흥! 그 자식은 절대 내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북열혈은 살기등등하게 말했다.
다른 가문의 장로들은 모두 가까이 다가와 교룡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교룡경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교룡경을 사용하면 교룡의 허영을 통해 방원 천 리 이내의 모든 생령(生靈)을 볼 수 있었다.
그들 삼대 가문은 무종 경지 강자에게 강탈당했지만, 진남은 두렵지 않았다. 그를 죽이지 못하더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빼앗고 무연각의 비밀도 얻으려 했다.
* * *
그 시각, 다른 수림 속
진남은 두 눈동자가 더 격렬하게 뛰었다. 그를 인도하여 좌우로 끊임없이 뛰었다.
누군가 그를 보았다면 그의 눈동자가 금빛을 반짝이고 신비롭고 공포스러운 은은히 드러내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왠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
진남은 중얼거리며 재빨리 저장 주머니에서 단약을 꺼내 입 안에 넣어 상처를 회복했다.
앞으로 뭘 만나게 될지 모르기에 그는 미리 준비해야 했다.
이때 이상한 느낌이 진남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마치 어둠 속에서 한 쌍의 눈이 자신을 지켜보는 것처럼 소름 끼쳤다.
"어떻게 된 일이지?"
깜짝 놀란 진남은 온 힘을 다해 미친 듯이 뛰는 두 눈동자를 통제하고 하늘을 바라봤다.
그의 안색이 확 변했다.
흰 구름 위에 한 마리 푸른 비늘의 교룡이 도사리고 앉아 싸늘한 눈동자로 진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어디서 교룡이 나타났지?"
"아니야, 아니야, 이 교룡은 허영이야!"
"그런데 교룡이 살아있는 것 같은데…… 설마 이 교룡이 나를 정탐하는 건가?"
진남은 정신이 확 들었다.
'무도 세계의 온갖 비기(秘技)와 많은 법보(法寶)는 모두 정탐하는 효능이 있다. 이 교룡은 틀림없이 누군가 비기를 펼치거나 법보를 써 태어난 것이다.'
"이런 법보와 비술이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보통 사람이 아닐 거야. 줄곧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은데 설마 사대 가문의 사람인가?"
진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대 가문의 젊은 청년들을 그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지만, 만약 사대 가문의 장로 등의 인물들을 끌어왔다면 그에게는 매우 불리했다.
게다가 두 눈동자가 감화했는데 이런 기회는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진남이 머리를 굴려 생각하고 있을 때 그의 두 눈동자에 격렬한 뜨거움이 전해왔다.
"이건……"
진남은 긴장되었다.
금빛이 반짝이던 진남의 두 눈에서 두 갈래 금색 빛이 하늘로 솟구쳐올라 그 교룡의 허영을 향해 달려갔다.
구름 위에 도사리고 있던 교룡의 싸늘한 눈길에 두려움이 띠더니 재빨리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도망치지 못하고 두 줄기 금빛에 맞았다.
키에에엑!
교룡은 비명을 지르며 한참을 미친 듯이 발악하더니 부서져 사라졌다.
"내 두 눈동자가……"
진남은 깜짝 놀랐다. 자신은 전신의 눈에 언제 이런 변화가 생겼고 금빛을 품어 교룡을 죽일 수 있게 됐는지 몰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진남은 마음속의 수많은 의문을 누르고 자신의 영기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두 눈동자가 이끄는 대로 용호산맥의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 * *
사대 가문의 집결지.
교룡경에 진남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걸 본 장로들은 하나같이 다들 정서가 고조되었다.
북열혈은 더욱더 노발대발했다.
"이 자식이군! 내 이 자식을 산산조각 내고 말겠어!"
북열혈이 소리 지르는 순간에 교룡경에서 한 줄기 금빛이 하늘을 찌르고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빛 때문에 눈을 가렸다. 그 순간 교룡이 굉음을 내더니 폭발해 사분오열되었다.
북열혈은 순간 말을 잃었다.
장로와 제자들은 모두 황당해했다.
'교룡경이 깨지다니?'
교룡경은 후천지기라 무왕 경지의 강자가 전력으로 공격한다고 해도 깰 수 없었다.
"이번에……"
동씨 가문 가주, 남씨 가문 가주, 서씨 가문 가주는 길게 숨을 들이쉬고 서로를 마주 보더니, 결정을 내렸다.
"모든 가문의 사람들은 낙하왕국으로 돌아가거라. 오늘부로 십자비장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말거라!"
삼대 가주는 이번에 나타난 무종 경지 강자와 진남을 통해 일어난 일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이 계속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든다면 그들은 더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북씨 가문 가주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살기가 더 격렬해졌다.
"아니! 나는 절대 저 자식을 가만둘 수 없소. 현령종의 천재라고 해도 아직 애송이오! 가자! 북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나를 따르라! 임수성의 진씨 가문을 멸하겠다!"
다른 삼대 가문의 사람들은 경악했다.
'임수성 진씨 가문을 멸한다고?'
무도세계에는 한가지 철칙이 있었다. 상대방 가족에게는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만약 가족에게 손을 대는 자는 무인들에게 욕을 먹고 보복을 당하게 되었다.
북열혈이 정말로 미쳤구나!
"당신들은 가겠소, 말겠소?"
북열혈은 핏발 선 눈동자로 다른 삼대 가문을 노려봤다.
삼대 가문은 망설이더니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진남을 매우 원망했지만, 가문을 멸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허허, 못난 놈들!"
북열혈은 삼대 가문이 진남 등 뒤의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줄 알고 그들을 비난하더니 북씨 가문 사람들을 거느리고 거칠게 산을 내려갔다.
그는 임수성의 그 개미 같은 진씨 가문이야말로 자신의 일생에 진정한 악몽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삼대 가문의 사람들을 자신들의 윗사람들의 결정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 *
세 시진 후 진남은 드디어 용호산맥 깊은 곳에 도착했다.
"드디어 도착한 건가……"
진남은 두 눈이 점차 작게 뛰는 걸 느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때 이변이 발생했다.
눈앞의 장면이 변하더니 생기가 가득하던 동굴이 어두워지고 끝없는 살기가 산간을 뒤덮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서 마치 지옥처럼 느껴졌다.
진남은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천지를 바꿔놓다니, 십자비장은 진짜 비범하구나……"
진남은 감탄했다.
이어 그는 멈추지 않고 두 눈동자가 가리키는 대로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걸어가고 있었는데 귓가에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는 뼈가 마찰하면서 내는 것처럼 매우 이상했다. 들으면 보통은 아마 모골이 송연해질 것이었다.
진남은 무도심이 강해 영향받지 않고 쌀쌀맞게 바라봤다.
싸늘한 바람이 그의 앞을 스쳐 갔다. 이어 희미한 사람 형상의 허영이 천천히 날아왔다. 이상한 웃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꺼져!"
진남 등 뒤의 일곱 자루의 고도가 윙윙하고 떨었다.
사람 형상의 허영은 격렬한 충격을 받은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부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