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나를 인도하는 것인가?
"우리가 이번에 온 건 십자비장 때문이다."
"십자비장은 우리 사대 가문의 조상께서 전에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용과 호랑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나타날 때가 십자비장이 세상에 나오는 날이라고.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십자비장을 얻으면 우리 사대 가문이 사대 종문과 어깨를 겨눌 수 있다고 하셨어."
그는 슬그머니 진남을 힐끔 봤다. 진남이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십자비장? 사대 종문과 어깨를 겨눈다고?'
진남은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계속 물었다.
"방금 너희들 저장 주머니 안의 지도는 무엇이냐? 그리고 너희 가문의 장로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그 지도들은 용호산맥 한 곳의 비장이야. 오늘 우리는 연합하여 그 비장을 얻으려고 했었어."
동서호는 사실대로 교대했다.
"우리 가문의 장로들은 지금 산맥의 깊은 곳에서 십자비장을 찾고 있어……"
"그런 거였구나."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는 지체하지 않고 걸음을 옮겨 떠나갔다.
동소허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크게 숨을 헐떡였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동악호는 한참을 옆에 멍하니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린 그는 바닥에 누워있는 동소허를 봤다.
자신이 존경하고 부러워하던 형님이 지금은 이토록 무너져 내려서 사람으로서의 기개마저 존재하지 않았다.
* * *
진남은 전력을 펼쳐 신속히 떠났다.
서풍소 등 사람들이 아마 가문의 장로들에게 연락했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한 시진 후 진남은 하나의 은폐된 동굴에 도착하여 걸음을 멈췄다.
"여기는 아마 안전할 것이다."
진남은 주위를 훑어보더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흥분한 기색을 가라앉혔다.
"이번에 얻은 수확이 얼마인지 보자."
진남은 수거해온 저장 주머니, 무왕단 등을 전부 꺼내 앞에 놓았다. 하나의 작은 보물로 된 산이 만들어졌다. 영광이 반짝이는 것이 그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
진남은 전신의 눈을 움직여 하나하나 보았다.
"이건 서풍소의 저장 주머니구나. 안에 세 개의 가문 비전무예가 있구나. 이런 무예들은 모두 가격이 엄청나다. 허, 또 두 개의 영기가 있었구나. 일월환하고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매우 대단하다."
"응? 이렇게 많은 무왕단이라니? 남진은 왜 이렇게 많은 무왕단을 가지고 있는 거지?"
"......"
동굴에서 탄성이 들려왔다.
반 시진이 지나자 진남은 흥분되어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얼굴이 상기되었다.
'모두 삼십육만 알의 무왕단이다! 요상성약은 그 가치가 팔만 알의 무왕단에 맞먹는다. 많은 가문 비전무예들은 적어도 가치가 삼만 알의 무왕단이다. 거기에 일월환, 동룡창, 명해법주, 시왕검 그리고 다른 영기들을 합치면 적어도 무왕단 오만 알은 넘을 것이다.'
진남은 정확한 가치는 가늠하진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진남은 최소 오십이만 알의 무왕단을 수확한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진남은 전에 초급 요수의 요핵을 사십 개 얻었고 또 동악호를 약탈하여 얻은 오만 이천 알의 무왕단이 있었다. 모두 오십칠만 칠천 알의 무왕단이었다.
"이제 요수를 조금만 더 죽이면 나는 빚을 전부 갚을 수 있다."
진남의 입가에 기분 좋은 웃음이 걸렸다.
만약 동씨 가문의 제자들을 만나는 행운이 없었다면,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요수를 죽여야 이렇게 많은 재산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한참을 기분 좋게 웃다가 진정하고는 생각했다.
'앞으로 반드시 대 단약을 얻어야겠어. 이렇게 남을 약탈하고 요수를 죽이는 것에만 의존하면 안 돼. 전신의 혼이 지난번에 한 번 상승하는데 오십만 알의 무왕단을 소모했다. 계속 올라가려면 훨씬 더 많은 단약이 필요할 것이야.'
무도세계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살인, 정보, 연단, 연기 등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중에서 연단과 연기가 제일 많이 알려졌다.
적어도 오 할 이상의 수사들은 모두 연단, 연기에 의해 생존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일단 이건 당장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니야. 중요한 건 십자비장이야."
진남은 예리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묘묘 공주는 아마 이미 십자비장을 찾고 있을 것이다. 한데, 사대 가문도 십자비장을 찾고 있는데 만약 그 두 사람이 만나게 된다면……"
여기까지 생각하자 진남은 사대 가문이 보통 운수가 사나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제자들은 진남을 만나 가진 것을 모두 털렸다.
그런데 만약 늙은 연배의 강자가 묘묘 공주를 만나면 결말은 생각할 것도 없이 뻔했다.
"나는 십자비장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당장은 동소허, 그자들이 말한 장소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구나."
진남은 빠르게 결심을 내렸다.
그는 십자비장에 매우 흥미를 느꼈지만, 아직 아무런 실마리도 없었다.
그러나 진남은 체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용호산맥에 들어섰을 때 전신의 눈에 반응이 있었다. 그러니 이번의 용음호소이상, 십자비장이 전신의 혼과 연관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 비장이 있는 곳을 가보자."
진남은 북유, 동소허, 허풍소, 남진의 저장 주머니에서 오래된 지도 조각을 꺼내 땅에 놓았다.
네 개의 지도가 일제히 흔들리더니 요종 경지의 위압이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솟아올랐다.
진남의 몸이 굳어졌다. 마치 거대한 산에 눌린 것 같았다.
"이 비장이 있는 곳은 분명 심상치 않겠구나."
진남은 압박을 받으면서 힘겹게 손을 내밀어 네 개의 지도 조각을 한 데 맞췄다.
그가 예상한 대로 네 개의 지도가 한 데 맞춰지자 거대한 분노를 품은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터지더니한 마리의 태고 거수가 그 지도에서 뛰쳐나와 하늘로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방원 삼 리에 거대한 풍운이 몰려왔다.
진남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네 개의 지도 조각이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는 온몸의 혈액이 모두 굳는 것만 같았다. 마치 거대한 짐승의 그림자에 눌린 것처럼 숨쉬기조차 힘들어졌고, 온몸을 벌벌 떨었다.
하늘로 날아오른 커다란 짐승의 모습이 싸늘하게 진남을 흘겨보더니 몸을 움직였다. 마치 진남에게 손을 쓰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때 커다란 짐승의 몸 안에서 수없이 많은 부적이 밀려 나오더니 그의 몸이 부풀기 시작했다. 요종인 짐승이 아무리 발악해도 소용없었다. 이내 완전히 부풀어 오르더니 터져서 온 하늘의 빛으로 변했다.
온 하늘의 빛이 순식간에 지도 한 장을 이루었다.
"이건……!"
진남은 깜짝 놀라 서둘러 지도를 기억했다.
대략 열 번 호흡하는 시간이 지나자 빛이 사라지고 주위의 모든 것이 평온을 되찾았다.
"참으로 아슬아슬하구나!"
진남은 길게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정신을 가다듬고 지도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려 했다.
그러나 이때 이변이 또 발생했다.
강렬한 뜨거움이 진남의 두 눈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두 눈이 다시 뜨거운 불에 타는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습!"
진남은 눈이 아파 냉기를 들이마시고 정신을 붙잡았다. 안색이 더할 나위 없이 창백해졌다.
'어떻게 된 거지? 왜 다시 이변이 발생했을까? 심지어 지난번보다 더 강렬해.'
탁! 탁! 탁!
그가 궁금해하고 있을 때 진남은 자신의 두 눈이 뛰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두 눈이 심장이 된 것처럼 좌우로 뛰었다.
"이건……?"
진남은 깜짝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탁! 탁! 탁 탁!
그의 두 눈이 더 강렬하게 뛰었다. 그리고 계속 왼쪽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 마치 진남의 눈에서 튀어나와 왼쪽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건 설마…… 나를 인도하는 것인가?"
진남은 고개를 들고 왼쪽 산맥을 바라보았다.
'왼쪽 산맥에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 * *
그 시각 동소허, 서풍소, 남진 삼대 천재는 한 무리의 젊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광활한 곳에 도착하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여기서 하면 될 거 같아. 어서 빨리 각 가문 장로들에게 알리자!"
서풍소가 재촉하며 먼저 천리전음표를 하나 꺼내 진기를 주입하더니 허공에 날렸다.
다른 삼대 가족의 천재들도 똑같이 했다.
"절대 진남을 가만둘 수 없어!"
서풍소의 눈에 원한이 스쳤다.
서풍소뿐만 아니라 남진, 동소허 등의 눈에도 살의가 번뜩거렸다.
그들은 손실이 막중했다. 아무리 진남은 내력이 거대하다고 해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더욱이 남진은 무혼이 격파됐고 동소허는 자신이 전무후무한 수치를 당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리전음표를 펼친 지 한 시진이 지나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제자들의 마음속에 불안이 싹트자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다들 당황하지 말아라! 가문의 장로들은 아마 십자비장을 발견하여 오시지 못하는 걸 거다!"
서풍소가 크게 외쳤다. 그는 얼떨결이지만 사대 가문 제 일인자가 되어 기세가 높아졌다.
이에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안색이 많이 평온해졌다. 서풍소의 말이 효과를 본 것이 분명했다.
이번 대전에서 남진의 무혼이 격파되고, 북유의 무혼은 유일한 능력마저 잃었고 동소허는 진남에게 온갖 괴롭힘을 당해 이미 위신을 잃었다. 서풍소만이 전투에서 무혼을 펼쳐 동소허를 구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서풍소에게 탄복했다.
반 시진이 지난 후 주위에서 다급히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로께서 오셨어!"
제자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휙! 휙! 휙!
동, 남, 서 삼대 가문의 장로들이 순식간에 모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장로들을 보자마자 안색이 굳었다.
장로들은 다들 얻어맞아 코가 시퍼렇게 되고 얼굴이 부어올랐고 옷차림이 남루했다. 피가 옷에 튀어 있었고, 숨결은 매우 가빴다. 마치 수없이 많은 요수들에게 호되게 짓밟힌 것 같았다. 더는 무왕 경지 강자의 풍채가 보이지 않았다.
"……"
제자들은 삼대 가문의 장로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인데 천지전음표를 썼느냐? 너희들 어떻게 된 거냐? 비장은 얻었느냐?"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동씨 가문 가주였다. 그는 얼굴이 새파래서 매우 보기 안 좋았다. 은은하게 살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게……"
동소허는 아버지의 엄한 모습에 깜짝 놀라 우물쭈물하며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를 본 서풍소가 먼저 나서 방금 있은 일을 낱낱이 설명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진남은 정말 안하무인이구나!"
장로들이 더없이 분노했다.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강대한 기세에 수림이 떨기 시작했다.
동씨 가문, 남씨 가문, 서씨 가문의 세 가주의 분노는 더욱더 심했다. 마치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휴, 이제 끝났어, 이제 다 끝났어……"
한참 후 남씨 가문 가주가 무혼이 부서진 남진을 보며 포기한 듯 더는 화를 내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남진은 얼떨떨했다.
'무혼이 부셨지만, 왜 다 끝났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