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사과하거라
북유는 북씨 가문의 총명한 딸이지만 극히 드물게 모습을 드러내 보기가 매우 어려웠다.
북유는 아직 무혼을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 진남을 굴복시키면……"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북유가 진남을 굴복시킨 상황을 생각하고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만약 북유가 진남을 굴복시키면 진남의 자질과 잠재력으로 미래의 북씨 가문은 반드시 우뚝 일어설 것이었다.
"진남, 너의 주인의 무혼을 보거라!"
북유는 흥분해 크게 소리쳤다. 그녀의 여린 체구 뒤에서 아홉 갈래의 노란 빛이 반짝이더니 검은 머리카락을 드리운 거대한 여인의 허영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그러자 수림에서 마치 음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아서 사람들이 몸서리를 쳤다.
"이것이 나의 무혼이다. 유명요희(幽冥妖姬)!"
북유는 흥분되어 볼이 상기되었다.
"구승 위는 하늘이고 구회 아래는 땅이다. 하늘은 사방이 현이고 현은 호탕하고 청명하다. 땅은 사방이 급이고 급은 심오하고 매혹적이다. 나는 삼생삼세 진명으로 이 시각의 유명성을 바꾼다. 유명성, 유명성. 끝없는 저주가 어둠으로 변하고 어둠 속에 귀신은 끝없는 법력이 그 혼을 가두어 마음을 금하고 뼈를 봉한다……"
북유가 노래 부르기 시작하자 그녀의 등 뒤의 검은 머리카락의 여인 무혼이 파동을 일으켰다.
그러자 마치 어둠이 내린 것처럼 손을 내밀어도 손가락이 보이지 않았고 귓가에서 수없이 많은 귀신이 비명 지르는 것 같았다.
쿵!
사람들의 마음이 내려앉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등 뒤의 검은 머리 여인이 처량한 비명을 질렀다. 입에서 끝없는 검은빛이 뿜어져 나왔고 검은빛은 상고의 사슬을 만들어 천지를 뒤덮었다. 사슬은 마치 진남의 몸을 덮는 것만 같았다.
제자들은 머리가 터지는 것 같았다. 끝없는 어둠이 그들의 머리를 잠겨버릴 것 같은 느낌만 들었다.
진남의 얼굴에도 약간의 황홀함이 나타났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것 같았다. 매력을 가진 이 여인은 섬섬옥수를 내밀어 그의 영혼을 끌고 끝없는 수렁으로 떨어졌다.
이 일격은 영혼 공격이었다.
북유는 그런 진남의 모습을 보고 매우 흥분했다.
"하하하! 진남! 나의 하……"
그녀가 '인'자를 말하려 하자, 얼굴에 황홀함이 가득하던 진남이 눈꺼풀이 뜨더니 하늘을 찌르는 살기를 내뿜으며 우레와 같은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꺼져!"
일갈과 함께 진남의 머리카락이 미친 듯이 휘날렸다. 그의 등 뒤에서 청색의 거대한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 거대한 청색의 몸은 무심한 듯 검은 머리카락의 여인 형상의 무혼을 힐끔 보더니 반짝이며 사라졌다.
쿵! 쿵! 쿵!
하늘에 가득하던 쇠사슬이 순식간에 부서졌다. 주위의 암흑이 마치 광풍이 휘몰고 지나간 것처럼 조금도 남지 않고 순식간에 밝아졌다.
북유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등 뒤의 무혼이 절로 흩어지고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더는 전의 당당하던 모습을 조금도 남지 않고 두려움이 가득 찬 눈을 크게 뜨고 떨며 말했다.
"너, 너……"
"너는 무슨 너."
진남이 차갑게 그녀를 보았다. 그는 몸에 전신의 혼을 가지고 있는데 감히 그의 영혼을 가두려고 하다니?
그녀가 기절하여 인사불성이 된 것을 보자 그는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는 눈길을 돌려 사람들을 보았다.
진남은 고도를 두 손에 쥐고 말했다.
"계속 나와 싸울 사람이 또 있느냐?"
사람들은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지? 북유의 그렇게 강대한 무혼이 설마 패퇴한 건가?'
진남의 질문에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진남은 그런 그들을 보고 전의가 천천히 사라졌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하고 싸울 사람이 없는 것 같네, 실망이구나."
장내의 사람들이 분노로 부들거렸다.
진남이 화제를 돌려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 보상 얘기를 해보도록 할까? 너희들은 나더러 무연각의 비밀을 내놓으라고 했지. 하지만 내가 이겼으니 너희들은 몸에 지니고 있는 모든 영약, 영기 등을 모두 바치거라. 만약 남기면……"
진남은 말투가 차가워졌다.
"다 죽이고 살려주지 않을 것이다."
장내의 사람들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들은 모두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만약 그들이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진남은 그들을 죽여버릴 것이었다. 조금의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사대 가문의 제자들이 놀라 혼비백산해 조금도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빠르게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을 전부 꺼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무더기의 선천단, 무왕단, 상처를 요양하는 성약 그리고 각종 병기가 쌓였다. 심지어 일부 가문의 무예비적도 있었다.
진남의 심장이 힘껏 뛰었다.
진남의 앞에 작은 산이 반짝거리며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물건의 가치를 계산해보지 않았지만, 어림짐작해도 엄청난 재화일 것이었다.
진남은 깊게 숨을 두 번 들이마시며 심신을 안정시켰다. 이어 그중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성약을 쥐고 끊임없이 복용했다. 그러면서 일심 이용하여 눈길은 멀지 않은 곳에 쓰러진 북유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진남은 재빨리 앞으로 걸어가 북유의 저장 주머니를 뜯어내 정탐했다. 그는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탄성을 지를 뻔했다.
이 저장 주머니 안에는 족히 삼만 알의 무왕단이 있었다. 그 외에 한 무더기의 요상성약과 북씨 가문의 더없이 진귀한 비전무예도 있었다.
물건들을 전부 합치면 아마 오륙만 알의 무왕단은 될 것이었다.
"응?"
진남의 시선이 굳어졌다.
그는 북유의 저장 주머니에서 오래된 지도 한 조각을 발견했다. 전체의 사분의 일 정도로 보이는 지도였다.
이 지도는 한 가지 요종 급의 짐승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시간의 침식을 겪었지만, 여전히 강대한 위압이 담겨있었다.
"이 오래된 지도는 용호산맥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분명해."
진남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 그는 다시 삼대 천재들을 바라보았다.
동소허, 서풍소, 남진 세 사람은 진남의 시선을 느끼고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들은 진남이 방금 북유의 저장 주머니를 가졌으니 틀림없이 그 지도를 발견했을 거라고 확신했다.
진남이 차가운 소리로 말했다.
"후회하지 말고 자진해서 내놓거라."
동소허, 서풍소, 남진 세 사람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들 삼대 천재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저장 주머니에 용호산맥의 비밀을 일부 가지고 있었다. 만약 이 비밀을 진남이 가지게 되면 분명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오게 될 것이었다.
동소허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체면을 무릅쓰고 빌었다.
"진남, 방금 전엔 우리 사대 가문이 잘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도는 내놓을 수 없다……."
각 가문이 지도 조각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오직 네 개가 모두 합쳐져야만 완전했다.
그러니 만약 지도 조각이 진남의 손에 들어가면 그들 사대 가문의 이번 용호산맥 행은 분명 손실이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동소허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남이 그를 질책했다.
"잘못했다고? 아까 나를 핍박하더니 이제 와서?"
진남의 한 쌍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너희 사대 가문이 용호산맥을 봉쇄한 이런 포악한 행실을 난 크게 탓하지 않겠다. 그러나 너희들이 나를 막고 여럿이서 나를 공격하고 또 무연각의 비밀을 얻으려 했다. 이 얼마나 사람을 멸시하는 행위더나? 그래놓고 지금 고작 한마디 미안하다면 끝인 거냐? 만약 나의 실력이 네놈들보다 뛰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네놈들보다 더욱 처참한 처지였을 것이다."
덜컹!
진남은 등 뒤에서 고도를 하나 뽑더니 동소허를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만약 내놓지 않으면 나는 이 자리에서 너를 죽일 것이다."
진남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이 자들이 그를 먼저 핍박했었다. 만일 그의 실력이 부족했더라면 지금 그는 어떤 처지일지 불 보듯 뻔했다. 그러니 그가 어찌 그들을 놓아줄 수 있겠는가?
동소허는 온몸이 차가워지더니 눈에 두려움이 솟아올랐다.
그는 진남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비난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난……"
동소허는 말을 내뱉지 못하고 침묵했다. 그 시간은 더없이 길게 느껴졌다.
그는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한기에 온몸이 굳어졌다. 그는 결국 침을 삼키며 구걸했다.
"진, 진남… 가진 물건을 다… 다 너에게 줄게. 전부 너에게 줄 테니 살려줘……"
그는 서둘러 저장 주머니를 꺼내 진남에게 건네주면서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 진남… 그러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를 용서해줘……."
장내의 제자들은 모두 동소허를 혐오스럽게 쳐다봤다. 동씨 가문의 제일의 천재로서 이렇게 빨리 굴복하다니, 참으로 기개가 없고 창피했다.
진남은 안색이 많이 밝아졌다. 그는 더 이상 동소허를 거들떠보지 않고 서풍소와 남진에게 눈길을 돌렸다.
소풍소와 남진은 원래 계속 버티려고 했다. 그런데 동소허가 허무하게 무너지고 장로들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들 두 사람도 다른 방법이 없이 이를 악물고 저장 주머니를 꺼내는 수밖에 없었다.
삼대 천재의 저장 주머니를 가진 진남은 열어보지 않고 손을 저으며 말했다.
"동소허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모두 가도 된다."
이 말이 나오자 장내의 사람들, 동씨 가문의 제자들마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이제 진남이 두려웠다. 그리고 그들은 빨리 돌아가서 가문의 장로들에게 소식을 전해야만 했다. 그래야 지금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었다.
"왜 나를 남겨놓는 거냐, 난 이미 저장 주머니를 바쳤다."
동소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자에게 사과하거라!"
진남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악호를 가리키며 쌀쌀하게 말했다.
"내가 어찌 저 폐물에게 사과할 수 있느냐?"
동소허는 그제야 동악호의 존재를 발견하고 무의식중에 반박하려 했다.
하지만 폐물이라는 두 글자가 진남을 자극했다.
짝!
진남은 그의 뺨을 한 대 때리며 차갑게 말했다.
"저 자에게 사과하거라!"
"난……"
동소허는 뺨을 맞고 당황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반응할 겨를이 없었다.
짝!
또 한 대!
진남의 목소리가 더욱 차가워졌다.
"너 사과할 거야 안 할 거야?"
"사과할게, 사과할게."
동소허는 진남의 말에 따라 서둘러 동악호를 보며 말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어. 동생아 내가 잘못했어."
동악호는 이 상황에 당황해하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방금 동소허가 남겨진 것을 보고 그의 안위가 걱정되어 남았었다. 그런데 진남이 나서서 그의 형님을 혼내주고 자신에게 사과까지 하라고 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좋아, 그리고 너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 사대 가문이 이번에 용호산맥에 들어온 건 도대체 무슨 물건 때문이냐?"'
진남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등 뒤에서 다시 한번 고도를 하나 뽑았다.
동소허는 그의 행동을 보고 놀라 혼비백산해 다급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