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사대 천재가 모이다
서풍소(西風嘯).
서씨 가문의 제일 천재였고 황급 구품의 무혼을 가지고 있어 동소허와 비교돼 왔다.
서풍소의 출현은 동악호를 놀라게 할 수 없었다. 의문스러운 건 그가 방금 천리전음표를 내보냈는데 무척이나 짧은 시간 내에 서풍소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서풍소가 진남을 향해 말했다.
"네가 용호산맥에 침입한 자냐?"
다른 서씨 가문 제자들이 진남을 보는 눈길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너와 무슨 상관이냐?"
진남이 그를 째려보았다.
서풍소는 안색이 변해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이때 수림 속에서 듣기 좋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하하! 참으로 재미있구나. 동소허와 서풍소의 체면을 이렇게나 봐주지 않는 사람은 처음 보는구나."
웃음소리와 함께 한 여자가 천천히 수림 속에서 걸어왔다.
여인은 분홍색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웃는 것이 아름다운 보기 드문 미녀였다.
여인이 걸어 나온 지 얼마 안 돼 수림 속에서 또 열여섯 명의 젊은이가 나왔다. 젊은이들은 모두 은색 갑옷을 입고 등에 은색 큰 창을 메고 있었다. 그들이 걸을 때마다 땅이 울려 쿵쿵 소리가 났다.
동악호와 다른 동씨 가문 제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안색이 변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어떻게 북씨 가문의 북유(北柔)도 왔지?'
북유는 서풍소, 동서허와 같은 급으로 북씨 가문의 제일 천재였다.
서풍소의 출현은 의문스러웠지만, 북유의 출현은 그들을 놀라게 했다.
북유는 오랫동안 폐관하여 가문의 대전에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전에 자신 이상의 천재가 와야만 직접 나타나겠다고 말한 적 있었다.
'왜 이번에 서풍소, 동소허와 함께 나타났지? 도대체 무슨 변고가 있는 걸까?'
동악호와 동씨 가문 제자들은 수림 속에서 들려오는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머릿속에 저도 몰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설마 남씨 가문의 제일 천재인 남진(南辰)도 나타날까?'
만약 남진이 나타나면 사대 가문의 사대 천재가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사대 가문은 이제껏 겉으로는 매우 화목했지만, 암암리에 쉴새 없이 싸웠다. 가문 제일의 사대 천재로서 그들은 자부심이 강해 더 격렬하게 싸웠다.
이십 년 사이에 낙하왕국 황실의 성전 외에 그들은 함께 나타난 적이 없었다.
"하하하! 재미있군, 재미있어. 도대체 어떤 자가 감히 우리 사대 천재, 사대 가문을 안중에 두지 않는지 궁금하군."
큰 웃음소리와 함께 긴 머리가 허리까지 오는 젊은이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열다섯 명의 남씨 가문 제자들과 함께 큰 걸음으로 걸어왔다.
남씨 가문 제일 천재 남진이었다.
동악호와 동씨 가문 제자들은 남진까지 나타난 걸 보고는 경악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진이 나타났다! 사대 천재가 다 모였다!'
이 시각 진남의 앞에 사대 가문의 사대 천재와 서른세 명의 사대 가문의 청년 강자가 서 있었다.
그에 비하면 진남의 기세는 완전히 약세였다.
하지만 진남의 얼굴에는 조금도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흥분이 드러났다.
'두려움이 아니야…. 설마 흥분이라고……?'
줄곧 진남의 표정을 관찰하던 동소허, 북유, 서풍소, 남진의 얼굴에 놀라움이 드러났다.
그들 네 사람은 사대 종문의 천재들과는 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 네 사람과 함께 온 제자들이라면 설사 사대 종문의 천재라도 두려워 물러섰을 것이다.
'이 녀석은 도대체 누구기에 우리들을 보고도 오히려 흥분하는 거지?'
"재미있군, 재미있어."
북유, 서풍소와 남진은 모두 중얼거리며 재미있다는 듯이 진남을 보았다.
다른 가문의 제자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치 조용히 우두머리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바보가 아니었다. 진남은 내력이 평범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혹여라도 먼저 나섰다간 진남의 실력을 시험하는 데 이용될 수 있었다.
동소허는 안색이 매우 흉해졌다.
그는 진남이 어중이떠중이가 아닐뿐더러 배후에 의지할 데가 있다고 느껴져 진남을 위협한 것이 약간 후회되었다. 그러나 이번 천리전음표는 그들 동씨 가문에서 내보낸 것이기에 이번 일은 응당 그들 동씨 가문에서 앞장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삼대 가문의 불만을 불러올 수 있었다.
'다 이 폐물들 때문이다!'
동소허는 무섭게 동악호 등 여러 명을 훑어보면서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렇게 담담한 걸 봐 틀림없이 내력이 평범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만약 사대 가문이 연합해 그를 죽이면 네 가문은 모두 입을 다물고 비밀을 지킬 것이다.
이자는 아마 선천 경지 육 단계이거나 선천 경지 칠 단계일 것이다. 우리 네 명과 제자들이라면 설사 선천 경지 구 단계의 강자라도 한번 싸워볼 만하다. 두려워할 거 없어……'
짧은 사이에 동소허는 결정을 내리고 크게 한 걸음 내디뎌 차갑게 진남을 보며 말했다.
"넌 내가 너의 이름을 알 자격이 없다고 했지. 그렇다면 사대 천재인 우리가 여기에 있는데도 네 이름을 알 자격이 없느냐?"
동소허의 말이 끝나자 서풍소, 북유와 남진은 일제히 황당해했다.
'앞에 있는 이 청년이 정말로 동소허가 그의 이름을 알 자격이 없다고 했단 말인가?'
서풍소, 북유와 남진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만약 정말로 앞에 있는 이 청년이 동소허한테 자격이 없다고 했다면 그건 그들 또한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삼대 천재들의 표정 변화에 따라 장내의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진남을 향했다.
"하하하!"
큰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남이 한참을 웃고 나서는 동서허를 보며 말했다.
"내 이름을 알기 위해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 줄이야. 그렇다면 귀를 깨끗이 씻고 잘 듣거라."
진남은 잠시 멈추더니 사대 천재들을 훑어보았다.
"내 이름은 진남이다."
'진남? 이 청년이 진남이라고?'
동소허, 서풍소, 북유, 남진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충격으로 헛숨을 들이마셨다.
그들은 줄곧 사대 종문의 소식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진남의 이름을 이미 일찍이 들어본 적 있었다.
"진짜 네가 진남이냐?"
북유의 호흡이 조금 빨라졌다. 긴장 속에 조금의 흥분이 담겨있었다.
"생각났어! 진남은 임수성 진씨 가문의 소주다!"
북유의 말에 사람들은 마음속에 남아있던 의문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진남은 임수성 진씨 가문의 제자였다. 그러니 당연히 용호산맥의 이상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었다.
진남이 사대 가문의 봉쇄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곳에 온 건 당연한 것이었다.
"응? 네가 나를 이렇게 잘 알 줄은 몰랐구나."
진남은 의외라는 듯 북유를 힐끔 봤다. 이어 동소허 등 사람을 보며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다 나를 아는 걸 보니 나의 명성이 매우 큰 모양이구나. 모두 나를 안다면 잘 됐구나. 아직도 나를 용호산맥에서 내쫓을 테냐?"
그 말에 안색이 변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만약 일반적인 천재라면 그들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내쫓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앞에 있는 사람은 진남이다. 천재일 뿐만 아니라 매우 커다란 배경이 있었다.
그 배경은 그들 사대 가문이 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소허, 서풍소, 남진, 북유는 서로를 바라보며 의견을 물었다.
이번 용호산맥 행은 그들 사대 가문에 있어 매우 중요했다. 때문에 진남을 내쫓을지 말지 잘 판단해야 했다.
"이자는 건드려선 안 돼."
북유가 옥패를 잡고 진기를 그 속에 주입하며 입술을 살짝 움직여 동소허, 서풍소, 남진에게 말을 전했다.
옥패는 옥음이(玉音耳)라는 매우 보기 드문 영기였다. 진기를 주입하면 소리를 귀에 전달하는 효능이 있었다.
이번에 사대 가문이 용호산맥에 들어올 때 오직 사대 천재들만이 옥음이를 가지고 들어왔다.
동소허, 서풍소와 남진은 일제히 이맛살을 찌푸렸다.
'진남의 내력이 강대하긴 하지만, 지금은 사대 가문의 일과 관련되어 있어. 어찌 이렇게 경솔할 수 있단 말인가? 설마 북유는 이대로 진남을 놓아주자는 뜻인가?'
사실 그들 세 사람은 모르고 있었다.
진남의 이름이 사대 종문에 알려지고 여러 무도세가들에게 알려지고 나서 그를 질투하고 증오하고 싫어하고 멸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그를 좋아하고 탄복하고 숭배하는 사람도 있었다.
북유는 처음 진남의 이름을 들었을 때 진남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진남의 여러 가지 사연을 들은 후 속으로 진남을 크게 숭배했다.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진남처럼 성격이 대쪽 같아야 한다.'
얼마 전에 진남이 스스로 진 것을 인정하고 체면이 많이 깎였지만, 북유는 줄곧 진남에게 틀림없이 말 못 할 고충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러한 북유의 사정을 다른 삼대 천재들은 모르고 있었다.
"아니. 그대로 놓아주면 안 돼."
동소허가 서늘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응?"
서풍소, 남진은 다시 한번 이맛살을 찌푸렸다.
"우린 당연히 진남을 죽이면 안 돼. 만약 죽이면 그 결과를 우리 사대 가문은 감당할 수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고분고분 보내줄 수도 없어."
동소허가 눈이 반짝이더니 말했다
"얼마 전에 진남이 냉봉과 싸우려다가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여 그의 두 스승이 그에게 무척이나 실망했다고 들었어."
"그게 어때서?"
북유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진남은 여전히 양대 무종 강자의 제자야. 그에게 밉보이는 건 그의 배후에 밉보이는 거나 마찬가지야. 어찌 됐건 그의 배후의 세력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서풍소와 남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북유의 말이 도리가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북유의 말을 듣고도 동소허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북유, 왜 이리 급하지? 우리는 이미 진남을 도발했어. 만약 그를 그냥 놓아준다고 해도 그는 우릴 공격할 가능성이 커. 그렇다고 그를 놓아주지 않으면 그의 배후를 건드리게 될 거야. 이럴 바에 중간을 택해 그에게서 얻을 걸 챙기고 그를 놔주자.
그는 오만해. 그러니 우리에게 당했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체면이 크게 상하게 될 테니 말이야. 그리고 이렇게 하면 우리 사대 가문의 손실도 메꿀 수 있을 거다."
"진남을 잡아서 얻을 걸 얻자고? 만약 그랬다가……"
북유는 그 말에 반박하려고 했다.
하지만 동소허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는 욕심 가득한 눈을 하며 말했다
"아마 너희들도 진남이 무연각의 오 층을 통과하고 역사를 새로 쓴 걸 알고 있을 거다. 그리고 진남이 무연각의 비밀을 얻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 그 비밀이 얼마나 귀중한지도 너희들은 잘 알고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