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건들지 말고 그냥 가라
"선천 경지 육 단계의 중급 요수인 흑우조(黑羽鳥)구나! 역시 구변화구나, 수호요수(守護妖獸)가 이렇게 강대할 줄이야!"
그는 급하게 손을 쓰지 않았다. 지난번 귀허석 채집을 통해 수호요수의 존재를 알았다.
만약 황급히 달려들었다가 구색화의 수호요수가 선천 경지 십 단계의 요수라면 어쩌겠는가?
"흑우조는 나와 같은 경지야. 능력을 따지면 나의 상대가 아니지만……. 흑우조는 하늘을 나는 속도가 매우 빨라서 반드시 구변화를 한 방에 맞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놈이 구변화를 가지고 도망칠 거야."
진남은 침착하게 숨을 고르며 움직이는 고목 나뭇가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구변화는 흑우조가 나타난 후 행동을 멈추었다.
고목 나뭇가지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칠흑 같은 수림을 밝게 비췄다. 빛 속에서 한 그루의 꽃이 흔들며 일어섰다. 그 꽃줄기 아래에 두 개의 다리 같은 뿌리가 있었는데 구변화를 지탱하며 사람처럼 앞으로 걸어갔다.
"지금이야!"
진남이 일어서더니 기세를 폭발시켜 구변화를 잡을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이때 수림과 멀지 않은 곳에서 날카롭고 높은 목소리가 울렸다.
"빨리빨리 가거라, 바로 앞이 흑목림(黒木林)이다! 구변화가 이 흑목림 속에 있다!"
앞에서 말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주위의 고요함을 순식간에 깨뜨렸다.
구변화와 하늘을 빙빙 돌던 흑우조가 경계하며 주위를 살피더니 손을 쓰려던 진남을 발견했다.
진남의 안색이 굳어졌다. 이 중요한 순간에 방해받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젠장, 큰일 났어. 흑우조가 나를 막는다면 구변화는 달아나서 붙잡기 어렵게 될 텐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구변화의 종적을 찾게 될지 몰라."
진남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 눈앞의 형세를 분석했다.
그러나 의외로 구변화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도망가지 않았다.
다만 하늘을 빙빙 돌던 흑우조가 큰 소리로 울더니 날개를 흔들어 광풍을 일구면서 칠흑 같은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칠흑 같은 고목을 끊임없이 흔들어 낙엽을 가득 떨어뜨렸다. 마치 낙엽이 비처럼 내리는 것 같았다.
이어 흑우조는 더는 움직이지 않고 무시하는 눈길로 진남을 바라보았다.
"허……?"
진남은 황당했다.
'무슨 뜻이지? 설마 새 따위가 나를 무시하는 건가?'
진남은 구변화를 바라보았다.
구변화는 진남을 향해 비웃는 듯 찍찍 소리를 냈다. 이어 빛이 반짝하더니 낙엽으로 변해 땅에 가득 떨어진 낙엽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전혀 구분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 광경을 본 진남은 깨달았다.
구변화는 아홉 가지로 변할 수 있었다. 일단 변하기만 하면 눈동자 비술이 있다 해도 구별할 수 없었다.
지금 땅에는 적어도 만 잎이 되는 나뭇잎이 떨어져 있었다. 구변화가 나뭇잎으로 변해 그 속에 들어가니 아예 찾을 수 없었다.
"재미있구나, 요수와 영약이 나를 조롱하다니."
진남은 그 둘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깨닫고 나니 화가 났다.
하늘의 흑우조와 땅 위의 구변화, 그들은 진남이 구변화를 잡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
사실 일반사람이라면 설사 무왕 경지의 강자라도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사람은 진남이었다. 그것도 전신의 눈을 장악한 진남말이다.
"나타나거라!"
진남의 동공이 빛을 뿜더니 순식간에 수만 잎의 나뭇잎을 샅샅이 훑어봤다. 그는 순식간에 구변화를 찾아내었다.
이어 그는 크게 한 걸음 내딛더니 한 줄기의 전광으로 변해 수림 속으로 쳐들어갔다. 하늘의 흑우조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진남은 손을 뻗어 구변화가 변한 나뭇잎을 손에 잡았다.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구변화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구변화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된 일지? 설마 내가 이 녀석에게 잡혔다고?'
하늘에서 날던 흑우조의 눈에 가득했던 무시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감히 영약 주제에 나를 놀려?"
진남은 차갑게 웃으며 구변화를 저장 주머니 속에 넣었다.
하늘에 있던 흑우조가 정신을 차리고 분노하며 울부짖더니 두 날개를 세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마치 칠흑 같은 전광으로 변한 것처럼 하늘에서 빠르게 진남을 향해 떨어져 내려왔다.
"잘 왔다!"
진남의 두 눈에 전의가 짙었다. 그는 크게 한 걸음 내딛더니 한 방 날렸다.
펑!
거대한 소리가 울리더니 급강하하며 내려오던 흑우조가 방대한 힘에 밀려 몇십 척 밖으로 밀려났다.
진남은 지금 전력이 칠 할밖에 안 되었지만, 그는 대성입미지경을 장악한 무인이었다. 지금의 전력이라도 일반적인 선천 경지 칠 단계 정도는 죽일 수 있었다.
더욱이 흑우조는 선천 경지 육 단계의 요수일 뿐이었다.
흑우조의 눈에 거대한 놀라움과 공포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눈앞의 인간이 어떻게 구변화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는지도, 전력도 이렇게 강대한지도 전혀 몰랐다. 그러나 이대로 부딪친다면 자신이 진다는 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흑우조는 짧은 시간 내에 두 날개를 세차게 흔들어 하늘을 향해 날아가며 도망칠 준비를 했다.
"도망가려고?"
진남의 등 뒤에서 일곱 자루의 고도가 윙윙 흔들리더니 영기지위(靈器之威)가 순식간에 넘실거렸다.
그는 날 줄 몰랐지만 백보비공을 장악하고 있어 방원 삼십 척 이내는 하늘에 있든 땅에 있든 모두 죽일 수 있었다.
이때 들려오던 발소리가 속도를 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앞에 싸우는 소리가 난다. 속도를 높이거라! 그렇지 않으면 구변화는 분명히 다른 가문의 손에 들어가게 될 거다."
그 목소리에 진남이 잠깐 멈칫했다.
그가 멈춘 사이에 흑우조가 재빨리 위로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빠른 속도로 날아 도망갔다.
"……"
진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한 마리의 중급 요수였다. 중급 요수의 요핵은 족히 오만 알의 선천단과 맞먹었다. 지금의 진남에게는 엄청 거대한 재화였다.
이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수림으로부터 나와서 진남의 앞으로 왔다. 사람들은 모두 여덟 명이었다.
그중에 남자가 여섯 명이고 여자가 두 명이었다. 사람들의 경지는 모두 선천 삼 단계 정도였고 나이는 약 스무 살을 조금 넘은 것 같았다. 모두 같은 계열의 주홍색 복장을 하고 있었고 복장 중앙에는 시커먼 "동" 자가 있었는데 특별히 눈에 띄었다.
"동씨 가문의 사람이구나."
진남은 사람들을 대충 훑어보더니 이내 알아차리고는 얼굴에 짜증을 드러냈다.
여덟 명의 젊은이들은 진남을 보고 일순 당황했다.
'이 녀석은 대체 누구지? 왜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어느 가문 사람이냐. 왜 가문의 복장을 하지 않았지? 그리고 거기 서서 뭐 하는 게냐."
우두머리인 한 젊은이가 나섰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질문했다.
진남은 그의 목소리가 익숙했다. 그가 바로 방금 크게 외쳤던 자였다.
"내가 어느 가문 사람인지 네가 알아서 뭐 하게."
그는 연속 두 번이나 진남의 일을 방해했다. 진남이 구변화를 못 잡을 뻔하게 만들었고, 결국 중급 요수의 요핵을 잃게 했다. 때문에 그를 향한 진남의 말투가 매우 퉁명스러웠다.
"뭐? 너……!'
우두머리 젊은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가주의 아들이었다. 이렇게 무례한 대접을 받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른 동씨 가문의 제자들도 안색이 매우 보기 흉했다.
사대 가문은 줄곧 사이가 좋았다. 제자들 사이에 때론 마찰이 있었고 서로 경쟁 관계였지만, 대체론 매우 우호적이었다.
"좋다, 좋아. 나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건 네가 처음이다."
우두머리 젊은이가 억지로 화를 삼키며 차가운 눈길로 진남을 보며 말했다.
"나는 동악호다. 아마 너도 내 이름을 알고 있겠지? 너와 헛소리할 시간이 없으니 빨리 구변화가 어디 있는지 말해라!"
"동악호?"
진남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무슨 동악호? 미안한데 난 들어본 적 없어. 그리고 미리 말하는데, 난 지금 기분이 매우 좋지 않으니 건들지 말고 그냥 가라."
동악호는 황급 칠품 무혼밖에 안 됐지만, 동씨 가문 가주의 아들로서 다른 삼대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동악호와 다른 동씨 가문의 제자들은 진남의 말에 모두 경악했다.
'동악호를 모른다고? 설마 다른 삼대 가문의 사람이 아닌가?'
"넌 사대 가문의 사람이 아니구나."
동악호가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그는 두 눈으로 진남을 뚫어지게 주시하며 사납게 말했다.
"넌 도대체 누구냐? 용호산맥이 이미 사대 가문에게 점령되어 그 어떤 외부인도 들어오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느냐? 넌 지금 우리 사대 가문에 도전하는 거다!"
진남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하하하. 이 용호산맥은 천지의 조화로 생긴 것인 사대 가문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 산맥 전체를 점령한단 말이냐. 헛소리하지 말고 얼른 꺼지거라"
동악호와 다른 제자들은 어이없었다.
만약 그들이 경험이 풍부한 수사였다면 진남이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고 반드시 경계했을 것이었다.
다만 동악호는 동씨 가문 가주의 아들이었으며 어릴 때부터 호의호식해서 세상 물정을 잘 몰랐다. 또 그는 여러 번이나 진남의 도발을 듣고 나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마에 핏줄이 불끈 솟았고 화가 가슴에서 솟아올랐다.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동악호가 일갈하며 진기를 폭발시키더니 진남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동악호의 공격은 은은하게 용 울음소리를 내었고 대성인기합일의 권의를 내뿜었다. 기세가 더없이 사나워 사람을 가루로 만들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무예는 현령종 내원 제자들에게는 언급할 수준조차 되지 못할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상대는 진남이었다.
"하하하! 용기 있구나!"
진남의 입가에 싸늘한 비웃음이 어렸다. 그는 손바닥을 내밀어 동악호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팍!
큰 소리와 함께 다른 일곱 동씨 가문 제자의 놀란 눈길 속에 동악호는 날아가 고목에 부딪혔다.
"너, 너……"
동악호가 피를 토했다. 분노하던 그는 진남에게 한 대 맞고 정신을 차렸다. 그는 질겁한 표정으로 진남을 바라봤다.
다른 동씨 가문 제자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들은 눈앞의 이 젊은이가 한 대에 동악호를 날려버렸으니 분명 내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사대 종문 중의 제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남이 싸늘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나는 방금 너희들에게 내가 지금 기분이 좋지 않으니 건들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너희들이 듣지 않았다. 너희들에게 단 한 번의 기회를 주겠다. 몸에 지니고 있는 저장 주머니, 보물 등을 전부 바치거라. 조금도 남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았다가 걸리면 뒤는…… 알아서 생각하거라."
마지막 한 마디를 강조했다.
진남 등 뒤의 일곱 자루의 고도가 윙윙하고 떨자 도의가 솟구쳤다. 그는 살기 등등했다.
동악호 그리고 다른 제자들은 진남의 기세에 놀라 완전히 겁에 질렸다.
그들은 공포감에 본능적으로 저장 주머니를 꺼내 진남에게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