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얼른 나오거라!
외원 심사 후 현령종에 속한 사람들은 진남에게 강대한 배경이 있고, 태상 장로 선노와 매우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막경이 진남을 공격한 것은 배후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 배후가 바로 구양군이었다.
구양군이 왜 진남을 공격했는지도 뻔했다. 진남이 현령종에 들어온 이래 소경설과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구양군도 참. 저와 경설은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그녀가 절 보살펴 준 것도 저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구양군은 속이 좁네요. 막경을 조종해서 저를 괴롭히다니.”
진남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막경이 진남을 공격했을 때 묘묘 공주가 나서지 않았다면 진남은 중상을 입을 뻔했다.
궁양은 진남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진남, 왜 그렇게 생각해? 설마 소경설에게 마음이 없는 거야?”
“마음이요?”
진남은 궁양이 그런 질문을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하! 궁 형, 별생각을 다 했습니다. 전 경설에게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경설이 저에게 여러 차례 도움을 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
궁양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보기에는 진남이 소경설을 좋아하고 있었고, 그녀도 진남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궁양은 소경설 때문에 진남이 구양군과 싸움을 하고 난리가 날까 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할 작정이야?”
궁양이 한숨을 쉬고는 물었다.
“딱히 어떻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지난번에 구양군이 저를 공격한 일은 경설을 봐서라도 잘못을 따지지 않을 겁니다. 다만 나중에 그가 다시 저에게 덤벼든다면 더는 봐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진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만약 구양군과 소경설이 혼약을 맺지 않았다면, 그가 종주의 아들이라고 해도 찾아가 결판을 냈을 것이었다.
진남은 소경설과의 우정을 생각해서 한번 참기로 했다.
“그게……”
궁양은 말하려다 멈추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저었다.
“알면 됐다. 어떻게 하든 나도 상관하지 않을 거야. 아무튼 걱정하지 마. 누구든지 너를 괴롭힌다면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물러나지 않을 거니까.”
궁양이 눈에 살기를 품었다.
궁양은 이런 사람이었다. 겉보기에는 군자 같지만 화가 나면 살신(殺神)이 되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궁양과 진남은 경지 차이가 있어도 형제가 될 수 있었다.
“내 생각엔 구양군이 널 적대시하는 게 단순히 소경설 때문이 아니라고 봐. 현령종 종주와 태상 장로 사이가 심상치 않아. 그래서 구양군이 널 자기 편으로 만들지 못하면 반드시 무참히 짓누르려고 할 거야.”
궁양이 무겁게 한숨을 쉬더니 천천히 말했다.
“그래요? 그래서 구양군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바로 살의를 내보였던 거였군요.”
진남은 깨달았다.
“그래. 그러니 너는 서둘러 수련해서 경지를 높여 하루빨리 무왕 경지를 돌파하거라.”
궁양이 진남의 어깨를 격려하듯이 두드렸다. 그리고 힘껏 발을 구르더니 공중으로 휙 뛰어올라 자리를 떴다.
떠나는 궁양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진남의 두 눈에 불꽃이 일었다.
진남은 구양군과 원한을 맺게 됐다. 구양군의 성격을 보면 그에게 복수할 게 분명했다.
“구양군의 현재 실력은 무왕 경지에 거의 다 달했어. 불과 한 걸음밖에 남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 지금으로선 빨리 실력을 키울 수밖에……”
진남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결연한 눈빛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저장 주머니에서 마지막 하나 남은 힘의 열매를 꺼냈다.
진남은 수련이 한계에 부닥쳤을 때 힘의 열매를 먹으려고 했다. 그러나 구양군이라는 강한 적이 나타났기에 일단 경지를 빠르게 높여야만 했다.
진남은 주저하지 않고 힘의 열매를 꺼내 입에 넣었다.
힘의 열매가 금세 진남에서 체내에서 힘을 발휘했다. 마치 화염이 단전의 태고 진기 위에 그대로 떨어지는 듯했다.
태고 진기는 그 힘을 흡수하면서 요란하게 떨렸다. 그리고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기운이 순식간에 솟구쳤다.
짧은 시간에 몸속의 진기가 선천 경지 이 단계에 도달했다.
“힘의 열매는 역시 대단하구나. 그런데 한 알밖에 복용할 수 없다는 건 너무 아쉽구나…….”
그는 감격할 새도 없이 다시 저장 주머니에서 입미지석을 꺼냈다.
“입미지석을 흡수하고 무도가 대성 입미지경까지 도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진남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뒤이어 그의 등 뒤에서 노란빛이 반짝이더니 전신의 혼이 땅 위로 솟아올랐다.
진남은 입미지석을 앞에 내려놓더니 눈빛이 흐릿하게 변했다. 그는 심신합일하고 정신력을 미친 듯이 끌어올리더니 무아지경에 들어갔다.
잠잠하던 입미지석이 순간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입미지석은 빛을 내뿜으며 진남의 몸 전체를 감싸 안았다.
* * *
궁양이 진남의 정원에 도착한 시각, 사십삼 호 정원.
음침한 표정의 구양군을 보며 려홍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진남에게 그런 식으로 말해선 안 됐어. 진남은 황급 십품 무혼이고 태상 장로와 명예 장로의 제자야. 재능을 보나 배경을 보나 너희 두 사람은 별 차이가 없어.”
구양군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져서 나지막이 소리쳤다.
“려홍, 넌 더더욱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우리 형님만 아니었으면 널 죽였을 거야.”
말을 마치자 구양군은 당장이라도 덤빌 것처럼 기세등등했다.
려홍은 표정이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네 형님만 아니었다면 아무리 종주의 아들이라도 도와주지 않았을 거야.”
“너……!”
구양군은 분노했다.
하지만 구양군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차갑게 말했다.
“너하고 쓸데없이 말다툼하고 싶지 않아. 당장 제삼 정원으로 가서 진남을 도발해. 그에게 패배와 굴욕을 안겨줘.”
려홍의 눈빛이 굳었다. 그녀는 잠시 뒤 천천히 말했다.
“나는 진남을 공격하지 않을 거야.”
“그래?”
구양군은 의외로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냉봉을 찾아가서 진남을 마음껏 공격하라고 전해줘. 다른 일은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이정도는 할 수 있겠지?”
구양군은 말을 마치며 서늘하게 그녀를 노려봤다.
려홍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을 마친 려홍은 재빠르게 정원을 빠져나갔다.
려홍이 완전히 떠나자 구양군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의 두 눈에서 흉악한 빛이 반짝였다.
* * *
입미지석은 하늘과 땅의 조화가 잉태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 돌 안에는 웅장한 입미지의를 담고 있었다.
진남이 무아지경으로 들어간 뒤에 무궁무진한 입미지의가 그를 감싸 안았다. 그는 입미지의의 오묘함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입미, 입미, 무도입미(武道入微)야.”
“나는 이미 도의입미(刀意入微) 했어. 칼 한번 휘두르는데도 도의가 존재해.”
“이걸로는 부족해. 입미란 자신의 무도, 자신의 모은 힘을 가리켜.”
“이건 경지일 뿐만 아니라 한 개의 초식이야. 천지의 오묘함이기도 하지.”
“……”
진남은 방대한 입미지의에서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오묘함을 속속들이 깨달았다. 입미지의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고 투명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흘이 지나갔다.
나흘째 되는 날 해가 막 떠오를 때, 진남 앞에 있던 입미지석에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폭발하여 가루와 먼지가 되었다.
두 눈을 꼭 감고 있던 진남은 그제야 천천히 눈을 떴다.
“드디어 대성입미지경을 깨달았어.”
진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일어나 힘껏 발을 구르더니 백현팔보를 펼쳤다.
다만 이전과 달리 진남이 백현팔보를 디딜 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의지가 폭발했는데 백현팔보에 속하는 의지였다.
그 의지가 폭발하자 진남의 속도가 이전보다 최소 몇 배나 빨라졌다.
의지의 정체가 바로 입미였다. 무예입미(武技入微), 초식 하나하나가 전부 입미지경에 들어갔다.
“지금 내 실력으론 선천 경지 삼 단계에 도전해도 전혀 문제없을 것 같은데……”
진남의 눈빛이 반짝였다.
진남은 지금 황급 십품 무혼에 대성 입미지경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칠종죄라는 영기보조도 있어 두 경지를 넘어 상대를 격파할 수 있었다.
더구나 진남은 취천일격이라는 최강의 살초까지 가지고 있었다.
“구양군에게 미움을 샀으니 그가 전력을 다해 날 공격할 거야. 이보전에 단약을 바꾸러 간 백횡이 방해를 받지 않았을지 모르겠네.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아.”
잠시 고심하던 진남은 이내 수련을 멈추고 외출 준비를 했다.
진남은 지금 매우 가난했기에 단 하나의 힘의 열매라도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됐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의 호통이 천둥과 같이 제삼 정원의 입구에서 울려 퍼졌다.
“진남! 냉봉이다! 얼른 나오거라!”
이에 진남이 흠칫했다.
‘냉봉이 왔다고?’
뒤이어 진남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냉봉에 대해 진남은 잘 알고 있었다. 냉봉은 내원 제자 십 위이고 잔인했다. 그는 적을 모두 잔인하게 죽인 사람이었다.
“이보전 경매에서 냉봉이 남궁성을 시켜 칠종죄를 사오라고 했는데 결국 내가 가져왔었지. 그래서 냉봉이 칠종죄를 위해 온 모양인데……”
진남은 냉봉이 찾아온 이유를 눈치챘다. 그는 두려운 기색도 없이 저장 주머니에서 칠종죄를 꺼내 곧장 대문을 나섰다.
제삼 정원 앞에는 흑의 청년이 서 있었다.
흑의 청년은 긴 칼을 등에 지고 있었다. 그는 만년이 지나도 녹지 않는 얼음처럼 차가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가 바로 냉봉이었다.
냉봉은 진남을 보더니 그의 등 뒤에 있는 일곱 자루의 고도를 훑어봤다. 그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그가 차갑게 말했다.
“진남, 네가 칠종죄를 내놓는다면 살려주마.”
그 말을 듣자 진남은 어이없어서 웃을 뻔했다.
냉봉은 뻔뻔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마치 자신에게 진남이 칠종죄를 내놓는 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 내원 십 위이고 선천 경지의 칠 단계에 도달했구나. 게다가 황급 십품의 무혼을 가지고 있고 소성 입미지경까지 장악했네? 전력으로만 본다면 날 죽이고도 남겠어.”
진남은 전신의 눈을 동원해 냉봉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
냉봉은 진남이 그의 경지를 말하는 것을 보고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웃기지도 않는 협박이군.”
말을 마친 진남이 고개를 돌려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는 냉봉과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귀찮았다.
“거기 서!”
냉봉이 온몸의 진기를 끌어올리며 진남의 등 뒤로 호통을 쳤다.
호통이 마치 천둥소리같이 내원 산봉우리 전체에 울려퍼졌다. 폐관하고 수련하던 제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 냉봉 아니야? 왜 진남을 찾아왔지?”
“냉봉이 누군가를 찾아갈 때마다 죽이려고 하던데…. 설마 이번엔 진남을 죽이려는 건가?”
“간이 부었어. 감히 진남을 죽이려고?”
“……”
내원 제자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진남도 냉봉의 호통에 걸음을 멈추더니 싸늘하게 뒤를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