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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전혼-105화 (105/1,498)

105화 참견할 자격이 없다

만약 삼대 종문의 장로만이었다면 장태억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상도맹도 참여하니 형세가 매우 불리해졌다.

무인들은 감히 참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이 떠나지 않은 건 자신들의 자격을 운운한 진남이 상도맹과 삼대 종문의 압력을 받고 굴복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진남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무연각 청년이 한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크게 시끄러워질 것이었다.

자질석이 진짜라는 말은 진남의 미래가 무신 경지를 넘는다는 걸 의미했다.

사람들이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분명 믿는 사람이 몇 명은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진남을 죽이려 할 것이다.

진남은 그런 모험을 할 수 없었다.

진남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방림 등 삼대 장로를 보더니 싸늘하게 웃었다. 이어 상도맹 가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낭자, 상도맹을 대표해 나를 적대하기로 결정한 건가요? 비록 가마 안에 무종 경지의 강자가 앉아있다곤 하지만 그 정도로 지금 나를 상대하겠다는 건 무리일 텐데요?”

진남의 말에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상도맹의 가마 안에 무종 경지 강자가 있다고? 한데, 진남이 어떻게 가마 안에 무종 경지 강자가 있다는 걸 알았지? 그리고 진남의 말은 설마 그가 무종 경지의 강자마저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건가?’

상도맹 가마 안에 있던 백의 여인의 잔잔한 물처럼 평온하던 표정이 갑자기 확 변했다.

백의 여인의 앞에 앉아있던 노파도 순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난 무종 경지인데 한낱 반보선천 경지의 태고 무수인 진남이 어떻게 발견한 거지?’

노파가 이내 화를 냈다. 진남이 오만방자하게 상도맹의 성녀를 안중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백의 여인은 재빨리 평온을 되찾고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아셨는지는 모르지만 계속 저를 놀라게 하는군요. 한데, 저희의 한 수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태도라니요. 진남 도우의 비장의 한 수가 뭔지 궁금해지네요.”

이어 가마 안에서 콧방귀 소리가 들려왔다. 콧방귀를 뀐 이에게서 방대한 힘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안색이 일제히 변했다.

‘상도맹 가마 안에 무종 경지의 강자가 있다니!’

사람들의 시선이 진남에게 쏠렸다.

‘진남이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나려는 거지?’

그 시각 장태억은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상도맹에서 무종 경지 강자가 같이 올 줄 생각지 못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정말 무연각의 비밀을 공유해야 하는 건가……”

장태억은 머리를 빨리 굴렸다. 하지만 속으로 무력함을 느꼈다. 무종 경지의 강자까지 끼어들었으니 이제는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장태억이 절망에 빠지려는 순간 곁눈질로 한 소녀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한 가지를 깜빡했었다.

‘공주 마마가 계셨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언짢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상도맹, 진남이 무연각에서 나온 게 한참 전인데 내 무왕단을 내놓지 않고 무슨 헛소리들이야!”

사람들이 목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다. 입을 연 사람은 바로 묘묘 공주였다.

사람들은 모두 황당했다.

무인들은 여자애의 신분이 어떤지 대체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자애가 손쉽게 몇백만 알의 무왕단을 내기에 거는 걸 봐서 내력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내력이 만만치 않더라도 무종 경지의 강자가 있는데 대세를 되돌릴 수 있을까?’

상도맹의 백의 여인도 묘묘 공주가 갑자기 이 일을 꺼낼 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화를 내지 않고 말했다.

“공주 마마, 내기에 건 판돈은 진남의 일을 해결한 후 드릴게요. 절대 떼먹지 않아요. 양해해주세요.”

묘묘 공주는 눈을 흘기더니 언짢은 듯 말했다.

“안돼! 지금 당장 단약을 줘! 그리고 너희들은 나에게 단약을 빚지고도 나의 하인을 때리려고 하는 거냐? 나를 안중에 두기는 한 거야?”

마지막에 묘묘 공주는 말투를 높여 질책했다.

사람들은 황당해했다.

‘자칭 공주라는 저 여자애가 진남을 도와 상도맹을 상대하려는 건가?’

가마 안의 백의 여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실례하겠습니다. 공주 마마, 이해해주세요.”

쿵!

하늘에서 갑자기 번개가 치고 그림자가 가마에서 날아와 허공에 떠올랐다. 무서운 위압이 그림자에서 뿜어지더니 장내를 휩쓸었다.

그림자는 바로 상도맹의 무종 경지 강자였다!

사람들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호흡도 가빠졌다. 심지어 일부 수행이 낮은 무인들은 입가에 피를 흘렸고 두 다리를 후들거렸다.

무종 경지 강자의 위압에 무왕 경지 강자도 개미나 마찬가지였다.

“하! 감히 내 앞에서 위압을 발휘하다니. 살고 싶지 않은 게구나!”

묘묘 공주는 얼굴에 분노를 드러내며 크게 한 걸음 내디뎠다. 공포스러운 위압이 그녀의 몸 안에서 하늘을 찌르며 솟아올랐다.

그녀의 기세에 안색이 변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묘묘 공주의 몸에서 발산되어 나오는 위압은 태고의 맹수 같았는데, 상도맹 무종 경지 강자의 위압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누구든 구별할 수 있었다.

진남은 묘묘 공주의 실력을 믿고 있었다.

진남은 전신의 눈을 움직여 상도맹 가마 안을 엿보고 안에 무종 경지 강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동시에 무종 경지 강자의 수준을 대충 짐작했다.

묘묘 공주가 더 강하다는 것을 알아챈 진남은 상도맹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들은 여자애가 무종 경지의 강자일 줄 전혀 생각지 못했다.

심지어 상도맹 무종 경지의 강자보다도 더 강했다.

가마 안의 백의 여인이 깜짝 놀랐다. 이어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말투는 정중해졌다.

“선배가 바로 현령종의 명예장로이고 진남의 스승 중의 한 분인 묘묘 공주군요. 좀 전에는 실례했습니다. 부디 저의 죄를 용서해주시길 바라요.”

허공에 떠 있던 노파도 표정이 굳어지더니 묘묘 공주를 향해 인사를 했다.

그녀는 묘묘 공주의 체내에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다는 걸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보다 적어도 세 배나 강했다.

“여기 선배님의 단약이에요.”

백의 여인은 손가락을 굽혀 저장주머니를 하나 튕겨내더니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께서 계시니 여기서 무연각의 비밀을 들을 수는 없겠네요. 하지만 진남 도우의 비밀을 차후에라도 상도맹에 알려주길 바라요. 상도맹의 신용으로 맹세하는데 절대 이 비밀을 다른 종문에 폭로하지 않겠어요. 만약 선배님께서 허락하시고 진남 도우가 알려준다면 후하게 사례할게요.”

묘묘 공주의 경지를 알아차렸지만, 백의 여인은 물러날 수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장태억은 대답하고 싶은 충동이 가득했다. 비밀을 상도맹에 공유한다고 해도 아무런 손실이 없을 것이었고 상도맹의 호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방림 등 삼대 장로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들은 상도맹에게 버림받았다. 분노해야 했지만, 공포스러운 위압을 풍기는 묘묘 공주를 보자 그들은 눈에 공포감이 가득 차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무종 경지의 강자가 있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설사 묘묘 공주가 삼대 장로를 죽인다 해도 배상을 요구하는 것 외에 종문은 별다른 행동을 취할 수 없을 것이었다.

게다가 묘묘 공주는 일반적인 무종 경지 강자가 아니었다.

그 말을 들은 진남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가 거절하려는데 묘묘 공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묘묘 공주는 저장 주머니를 들고 더없이 흥분한 기색이었다. 얼굴이 불그레하게 상기되었다. 그녀의 눈이 기대감에 초롱초롱해졌다.

“진짜야? 진남이 저 안의 비밀을 너희들에게 알려주면 나에게 수많은 단약을 줄 거야?”

“네.”

백의 여인은 묘묘 공주가 흔들리는 걸 보고 재빨리 한마디 보탰다.

“만약 비밀이 진짜라면 우리 상도맹이 풍부한 보상으로 선배님을 만족시켜 드릴게요.”

“그래?”

묘묘 공주의 두 눈이 더욱 빛났다. 그녀는 입을 살짝 벌리고 단번에 대답할 것만 같았다.

진남은 깜짝 놀라 그녀에게 소리쳤다.

“대답하면 안 돼요! 이 비밀은 아무도 알려줄 수 없어요!”

“조용히 해!”

묘묘 공주는 눈을 흘기며 언짢은 듯 말했다.

“하인인 주제에 감히 참견하다니! 네가 참견할 자격은 없다.”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궐, 위호 등 제자들은 저도 모르게 입가를 실룩거렸다.

무연각에 있을 때 그들은 진남이 매우 오만하다는 걸 느꼈다.

그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며,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한데, 지금 사람들 앞에서 어린 여자애에게 대놓고 창피를 당했다.

진남은 순간 안색이 더없이 나빠졌다.

그는 묘묘 공주가 이렇게 나올 줄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녀에게 겨우 믿음이 생겼었는데 말이다.

이때 묘묘 공주가 갑자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단약을 매우 좋아한다. 하인이 가끔 까불긴 하지만 평소에는 태도가 좋다. 때문에 나는 그를 속상하게 할 수 없다. 또 이번에 나를 위해 적지 않은 단약도 벌었다. 그러니 나는 반드시 그를 보호해야 한다. 무연각의 비밀을 상도맹에서는 더 이상 묻지 말거라. 일은 그냥 이렇게 마무리하자.”

말을 마친 그녀는 늙은이가 위세를 부리듯 손을 저었다.

진남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묘묘 공주의 행동에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묘묘 공주는 왠지 사람을 절망하게 하고 다시 희망을 주길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가마 안의 백의 여인은 한참 침묵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선배님께서 고집하시니 저도 더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진남 도우는 오늘부로 상도맹 아래의 어떤 경매장에도 발을 들여놓을 수 없어요. 아니면 상도맹의 추격을 받을 거예요.

물론 진남 도우의 생각이 바뀌면 무연각에서 얻은 비밀을 갖고 상도맹으로 와 거래할 수 있어요. 비밀이 충분한 가치가 있으면 상도맹은 당신이 원하는 어떤 물건이든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말을 마친 백의 여인은 담담한 소리로 외쳤다.

“가마를 들거라, 집으로 돌아가자.”

가마를 든 여덟 명의 은색 갑옷을 입은 무사는 대답하더니 가마를 들고 재빨리 떠나갔다.

삼대 장로와 함께 진남을 둘러싸고 있던 네 무왕 경지의 강자들, 그리고 하늘 위에 있던 노파는 진남을 힐끔 보더니 바로 몸을 날려 떠나갔다.

사람들은 상도맹이 떠나가는 걸 보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일제히 진남을 바라봤다.

상도맹은 이전에 진남에게 아부하기 위해 황금성령을 선물하려 했다. 그런데 지금의 진남은 상도맹에게 미움받게 되었다.

그들은 진남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누구든 평생 상도맹 아래의 경매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커다란 손실이었다.

하지만 진남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무연각에서 발생한 일은 상도맹 경매장 출입이 금지되는 것과 전혀 비교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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