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한 번만 더
상도맹의 가마 안,
수행이 무종 경지에 이른 노파가 조롱했다.
“황금 성령을 줄 때 거절하길래 대단한 재간이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무왕 경지도 안 되네요. 보통 사람일 뿐이군요.”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백의 여인이 고개를 저으며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고 무수가 되었으니 무왕 경지까지 돌파하는 게 더 어려울 거예요. 게다가 그의 무혼은 황급 팔품이잖아요. 수행하는 길은 위험과 기우가 동시에 존재해요. 천재라고 해도 도중에 죽을 수도 있고……”
말을 하던 백의 여인은 탄식했다. 그녀는 진남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런데 그의 팔자가 이렇게 기구할 줄은 몰랐다.
백의 여인은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추산 산봉이 울리게 말했다.
“도우 여러분, 무연각의 첫 심사는 이렇게 끝났어요. 이번 심사에서 일 위는 위호에요. 위호에게 걸었던 수사 분들은 이번 내기에서 이겼……”
그녀가 말을 끝내기 전에 무경에서 변화가 일었다.
* * *
진남이 자질석 앞에서 노인이 결과를 선포하기 전에 공손하고 공수하고 물었다.
“선배님, 소인 진남입니다. 소인에게 기회를 심사 기회를 한 번 더 주실 수 있는지요? 제가 무왕경지도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 말에 무연각 일 층의 제자들이 동시에 황당해했다.
‘진남이 심사 기회를 다시 달라고 하다니?’
무연각 일 층의 노인의 두 눈에 예리한 빛이 감돌았다.
‘꼬맹이가 감히 내게 요구를 하다니.’
그는 수염을 만지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에고, 그건 좀 어렵겠는데, 네가 사내가 아니고 여인이라면 모를까? 너에게 어떻게 다시 기회를 주겠느냐? 그리고 자질석을 믿어야 돼. 심사가 틀릴 수가 없거든.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무왕 경지를 돌파할 수 없다는 건 커다란 위험을 만나서 도중에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
노인이 좋은 마음에 진남에게 권고했다. 하지만 그는 진남의 눈을 보는 순간 몸을 흠칫하더니 말을 멈추었다.
세 번의 호흡이 오가는 동안 침묵하던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어디 그럼 다시 한번 심사해 보거라.”
진남은 얼른 고마움을 표하고 깊게 심호흡을 하더니 앞으로 다가가 손바닥을 자질석에 가져갔다.
노인은 진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 눈 깊은 곳에서 빛이 꿈틀거렸다. 그는 혼잣말을 했다.
“저 눈은……? 설마 저놈이……”
진남이 자질석에 손을 가져다 대자 자질석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진남은 깊게 심호흡했다. 그는 방금 전신의 눈을 굴려서 노인을 바라봤기에 이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전신의 혼을 가지고 있어. 전신의 혼이 황급 십품이지만 무한하게 승급할 가능성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내 성과가 무왕 경지도 도달하지 못할 수 없어. 유일한 가능성은 자질석에 문제가 생겨서 심사가 제대로 안 나온 거야.”
진남은 이를 악물고 자질석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자질석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진동하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왕도광망도 없었다.
그 모습에 진남은 머리가 새하얘졌다.
무연각의 수많은 천교들도 그 모습에 멍해지더니 이내 정신을 차렸다.
황궐이 제일 먼저 웃었다.
“하하하, 진남아 다시 한번 해 볼 필요가 있었어? 모든 건 정해진 거란다. 그걸 알아야지. 너는 평생 무왕 경지도 될 수 없어. 몇 번을 다시 해봐도 결과는 똑같아.”
위호와 왕약림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황용, 묵자삼, 서유 등은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진남은 그들 눈에 항상 자신만만한 사내였다. 어떤 경우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 이런 결과를 받게 되었으니 마음이 어떻겠는가?
“선배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진남은 조롱하는 소리들을 무시하고 다시 손을 뻗어 자질석에 올렸다.
자질석은 웅웅 진동하더니 다시 잠잠해지고 아무런 빛을 뿜지 않았다.
“선배님,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
진남은 어두운 표정으로 다시 한번 손을 자질석에 올렸다.
자질석의 반응은 처음과 똑같았다.
“선배님, 한번 더 허락해주십시오!”
“……”
고작 수십 번의 호흡이 오가는 동안 진남은 같은 말과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자질석에 손을 올렸다. 도합 여섯 번이었다.
여섯 번 동안 자질석의 반응은 처음과 똑같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 *
무연각 밖에 있는 추산 산봉우리의 사람들도 처음에는 경악하더니 이제 정신을 차렸다.
적지 않은 무인들이 그 모습에 화가 나 욕설을 퍼부었다.
“저놈 미친 거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몇 번을 다시 해도 소용없어!”
“큰 타격을 입고 이성을 잃은 게 분명하군.”
“……”
무인들이 분노하는 것과 달리 비검문의 방 장로, 난염문의 장로, 청여종의 장로 세 사람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띠고 장태억을 바라보았다.
장태억의 온몸이 굳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칼날이 되어 그의 몸에 꽂히는 듯 고통스러웠다.
‘빌어먹을, 진남아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대체 몇 번이나 더 할 거야……’
장태억은 속을 진남을 욕했다. 그는 이제 진남을 원망했다.
진남이 무왕 경지에 도달 못 한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진남이 하는 행동은 더 부끄러웠다.
* * *
같은 시각 무연각 일 층의 제자들은 진남의 반복되는 행동을 멍하니 보다가 다들 정신이 들었다.
그들은 진남과 아무런 원한과 갈등이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 다들 분노했다.
‘진남이 미친 거지? 무왕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면 못하는 거지 왜 여러 번 심사를 받으면서 우리 시간을 낭비해?’
위호가 크게 화를 내며 날카로운 말투로 말했다.
“진남, 너는 폐물이야! 인정하고 지금 당당 꺼져! 아니면 네 배경이 하늘을 찌른다고 해도 오늘 네게 지옥 같은 고통을 느끼게 만들어줄 테니!”
위호의 욕지거리에 멍하니 있던 노인도 정신을 차렸다. 그의 표정이 더없이 날카로워졌다. 그가 크게 호통을 쳤다.
“심사마다 한 번의 기회가 있다. 너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준 것도 은혜를 베푼 것이야! 그런데 지금 여섯 번이나 하다니! 당장 멈추지 않으면 내가 살계를 펼친다고 해도 원망하지 말아라!”
노인은 등장할 때부터 장난스럽고 음흉했다. 그는 처음으로 화를 내는 것이었다.
아까 노인은 진남의 두 눈에서 신비한 힘을 느꼈다. 마치 몸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것 때문에 노인은 예외적으로 다시 한번 심사할 기회를 줬다.
그런데 진남이 단번에 여섯 번이나 더 심사를 받을 줄 몰랐다. 결과는 똑같았다. 미래에 무왕 경지에 이를 수 없었다.
진남이 규칙을 철저히 파괴한 것이다.
노인이 화를 폭발시키기 전에 진남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억지로 짜낸 것처럼 간절했다.
“선배님, 다시 한번 심사를 받을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이번에도 같은 결과이면 스스로 사지를 자르고 경맥을 끊고 단전을 부수겠습니다. 백 가지 형벌로 벌하신다고 해도 달게 받을 것입니다. 선배님, 제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그의 말은 글자마다 영혼에서 끌어낸 것처럼 그의 단단한 결심이 담겨있었다.
화가 나 있던 무연각의 제자들이 모두 말문이 닫혔다.
‘스스로 사지를 자르고 경맥을 끊고 단전을 부수고 백 가지 형벌을 달게 받겠다니? 마지막 기회를 얻으려고 저렇게 발악하는 거야?’
진남은 무왕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고 해도 두 무종 경지의 강자가 스승이니 신분이 꽤 높아 낙하왕국에서 그를 건드릴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진남은 결과가 뻔한 상황에서 스스로 폐물이 되더라도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하다니.
진남이 폐인이 된다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끝이었다.
노인은 놀랐다. 그는 진남 같은 사람을 처음 만났다. 세상에 이렇게 멍청할 정도로 간절한 사람이 있다니. 노인은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진남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단호한 시선으로 다시 손을 자질석에 가져갔다.
무연각의 제자들은 모두 자질석에 집중했다.
그들은 진남이 모든 걸 걸고 심사를 받는 결과가 어떨지 궁금했다.
자질석이 일곱 번째로 웅웅 울렸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시커먼 자질석이 웅웅 진동했다. 그 속에서 빛이 반짝이며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후 자질석은 잠잠해지더니 왕도광망조차 뿜지 않았다.
장내가 조용했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황궐은 진남의 간절한 모습에 처음에는 놀랐다. 그래서 눈앞의 결과를 보고 큰소리로 웃지 않았다. 다만 입가에 약간의 비웃음을 드러냈다.
“허허, 이런 결과일 줄 뻔히 알면서도 아직 단념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다시 한번 시험해보겠다니. 네가 폐인이 되고 싶다니 하늘도 네 소원을 들어주는구나.”
진남을 바라보는 위호와 왕약림의 눈에 짙은 경멸이 가득했다.
그들은 전에 진남의 배경을 꺼렸다. 그러나 이제 진남은 완벽한 폐인이 될 것이었다. 그들이 진남을 꺼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황용 등은 마음속에서 짙은 비애가 끓어올라 고개를 돌렸다. 진남이 폐인이 되는 걸 볼 수 없었다.
불과 삼 개월 만에 현령종에서 진남의 이름을 날려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진남은 많은 적수를 만났었다. 설령 그보다 강대한 적수를 만났더라도 그는 끊임없이 기적을 만들어내며 형세를 돌려놓았다.
진남은 이미 그들의 존경을 얻었다. 그러니 존경스런 사내가 참혹한 현실 속에서 완전히 이성을 잃고 폐인이 될 모습을 도저히 볼 수 없었다.
* * *
그 시각, 추산 산봉우리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위호, 황궐, 왕약림이 진남에 대해 조롱, 멸시, 냉소를 보낼 때 무인들은 진남이 신분이 높은 제자에서 순식간에 폐인이 되는 걸 보고 마음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생겼다.
그중 나이가 많은 무인들은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휴, 죽을지언정 구차하게는 살지 않겠다는 건가?”
“그러게 말이야. 무왕이 되지 못해도 선천 경지 정상의 실력만이라도 이 낙하왕국에서는 수백만 명보다 더 강할 텐데.”
“아깝구나, 진짜 아까워.”
“……”
몇 마디 조롱하려던 방림 장로, 난염문 장로는 무인들의 말을 듣고 모두 입을 다물었다.
만약 이런 상황에 진남을 조롱하여 사람들의 반감을 일으키면 그들의 명성에 금이 갈 것이었다.
진남은 어차피 곧 폐인이 될 거니 그들이 입을 열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조롱하고 깔보게 될 것이었다.
장태억은 진남이 풍운을 휘젓던 천재에서 하나의 폐인이 되는 걸 보며 진남에 대한 마음속의 화가 사라졌다.
그는 진남의 무에 대한 집념과 그 집념과는 다른 현실에 안타까웠다.
상도맹 가마 안의 백의 여인이 실망하는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나는 지금껏 진남의 품행을 매우 좋게 봤어요. 그는 오기가 있고 억압에도 머리를 숙이지 않았지요. 그러나 나는 그가 결과가 뻔히 결정된 상황에서 여전히 자신의 길을 고집할 줄은 생각지 못했어요. 죽을지언정 구차하게 살지 않겠다는 집념은 어리석어요.”
“진남은 자신이 무왕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미친 것처럼 연속으로 심사를 받았어요. 그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예요. 안타깝지만 어리석어요.”
“……”
백의 여인은 혼잣말하고 나서 눈빛이 다시 평온해졌다.
황궐, 위호 등의 천재들은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처음부터 진남을 마음에 들어 한 것은 바로 그의 성격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능과 경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진남은 다른 수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