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폐물이네
자질석에서 한 줄기의 반짝이는 금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금빛은 용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되었다. 엄청난 위압이었다.
빛은 놀랍게도 황도광망(皇道光芒)이었다. 무황 경지를 대표했다.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눈을 떼지 못하는데 황도광망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금세 사라졌다가 종도광망으로 바뀌었다.
위호의 미래 성과는 무종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노인은 그 광경을 보고 낄낄거리며 말했다.
“젊은이, 참 대단하다. 무황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다만 이 기회를 잘 잡아야 돼. 못 잡으면 놓치게 되지.”
그 말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동요했다.
‘무황 경지라고?’
낙하왕국을 둘러봐도 무황 경지의 강자는 없었다.
무황 경지에 도달한 강자는 하역에서 최고의 전력이었다.
위호에게 무황 경지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얻기 어려웠다. 하지만 똑같이 황급 십품 무혼인 황궐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무연각의 많은 천재들이 위호의 표정을 보며 경의를 표했다.
* * *
무연각 밖의 많은 사수, 많은 장로들도 놀라움이 가득했다.
가마 안 백의 여인이 나지막이 말했다.
“위호 도우의 장래가 무황 경지에 오를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낙하왕국 사대 종문의 진전 제자 외에는 그와 겨룰 사람이 없겠네요. 이번 무연각의 첫 심사에서 위호가 일 위를 할 것 같아요.”
현장의 사람들은 백의 여인의 말에 감격스러워서 할말을 잃었다.
“세상에! 위호가 무황 경지에 오를 수도 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재능이란 말이야.”
“대단해! 첫 심사에서 그는 무조건 일 위야!”
“하하하, 나는 위호에게 걸었지!”
“……”
위호에게 판돈을 건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나 모두 충격을 받았다.
난염문의 장로는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공수하며 말했다.
“방 형, 이거 참 미안하오. 이번 시합에 우리 위호 소주가 이겼소.”
방림은 입가를 실룩거릴 뿐 딱히 말을 내뱉지는 못했다.
황궐은 무종 경지에 이를 만큼의 자질이 있었다. 이것도 대단했다. 하지만 위호가 무황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자질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방림은 마음이 괴로워도 승부를 인정했다.
청여종의 장로는 무왕단 오천 알을 잃고도 표정이 평온하고 심지어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 왕약림은 위호의 여인이었다. 그녀가 위호와 무도의 벗이 될 수는 없었지만, 선한 인연을 맺는다면 청여종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유일하게 장태억만이 괴로웠다.
이번 심사가 시작되기 전, 장태억은 일찍이 위호가 반드시 일 위를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령종 장로라는 신분 때문에 그는 오천 알의 무왕단을 진남에게 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위호에게 판돈을 걸 수 있었다면 오천 알의 무왕단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오천 알의 무왕단도 잃게 되었어. 그건 무왕단 만 알을 잃은 셈이나 마찬가지다.’
장태억은 속으로 마음 아파했다. 그는 얼굴을 한껏 찡그렸다.
잠시 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다시 잠잠해졌다. 그들은 다시 무경을 바라봤고 다른 천재의 모습도 보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좀 전과 분위기가 달랐다. 현장의 무인들, 그리고 사대 종문의 장로는 다른 천재들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이번 자질석의 시험은 위호가 일 위를 할 게 뻔했다.
그들은 첫 관문에서 단지 어느 제자가 승급할 지만이 궁금했다.
* * *
같은 시각 무연각 일 층
제자들은 위호의 성적을 보고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특히 황궐은 벼락을 맞은 듯 오만한 표정이 빠르게 사라졌다. 안색이 새하얘졌다.
위호는 크게 웃으면서 의기양양했다. 그는 노인에게 공수한 뒤, 왕약림에게 다가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봤지? 네 남자가 이렇게 강해. 황궐보다 훨씬 낫지? 그러니 나를 모시는 걸 영광으로 알아야 해.”
말을 마친 위호는 뚱뚱한 손을 왕약림의 긴 치마 속으로 쑥 밀어 넣더니 멋대로 만지기 시작했다.
왕약림은 야릇한 소리를 내더니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녀는 거절하지 못하고 교태를 부렸다.
처음에는 굴욕적이었지만 그녀는 더없이 흥분해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들러붙었다.
왕약림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황궐이 보내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위호의 여인이 될 수 없었다.
노인은 위호가 왕약림을 농락하는 것을 보자 질투했다. 그는 언짢은 기분으로 말했다.
“어이어이, 나머지 다섯 명, 심사에 참가할 거야 말 거야? 싫으면 빨리 물러가. 내 소중한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노인의 말을 들은 현장의 제자들은 충격에서 벗어났다. 나머지 제자들도 재빨리 심사에 임했다.
앞의 네 제자의 심사 결과는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않고 평범했다.
첫 관문의 심사는 진남만 응하지 않은 채 드디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진남, 네 배경이 그렇게 놀라운데 이번 심사에서는 어떤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황궐이 진남에게 시선을 돌리고 신경을 건드는 말투로 말했다. 아무 문제가 없는 말이었지만 듣는 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사실 진남의 배경을 알게 된 황궐은 진남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 전 위호의 결과에 충격을 받아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그는 진남이 자신을 무시했던 것이 생각나 저도 몰래 입을 열었다.
다른 제자들은 고개를 흔들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직 왕약림만이 진남에 대해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진남의 배경을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위호의 여인이니 배짱이 두둑했다.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황 오라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진남은 두 명의 무종 경지 강자의 제자예요. 황급 팔품 무혼이니 앞날이 창창할 걸요? 아마도 이번 심사에서도 일 위를 할지도 몰라요.”
왕약림은 그 말을 하면서 황급 팔품 무혼이라는 여섯 글자를 일부러 강조했다.
위호도 진남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왕약림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허허 웃었다.
“역시 내 여인이야. 말도 잘하네. 진남의 자질이 무황 경지까지는 가야 하지 않겠어? 어쩌면 무황 경지도 넘을 수 있을 것 같아.”
위호의 그 말은 진남을 비꼬는 말이었다.
다른 천재들은 위호, 황궐, 왕약림이 연달아 진남을 비꼴 줄은 생각지 못했다.
황용, 묵자삼, 서유 그리고 대호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분노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진남은 배경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대단하고 무예 재능도 대단했으며 무도심도 엄청났다. 하지만 그의 무혼은 어디까지나 황급 팔품 무혼이었다. 그의 미래 성과는 결코 높지 않을 것 같았다.
창람대륙에서 무혼 등급은 거의 모든 것을 대표했다.
위호 등 세 천재에게 비웃음을 당한 진남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한가롭게 정원을 거닐다가 자질석 앞으로 다가가 천천히 손바닥을 내밀었다.
현장에 있는 모든 제자들은 동시에 시선이 쏠렸다.
위호, 황궐, 왕약림도 집중했다.
진남이 손바닥으로 자질석을 덮자 전체가 웅웅거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질석이 웅웅 거리며 진동하더니 이내 멈추었다. 아무런 빛도 없었다.
위호는 당황했다. 황궐도 당황했다. 왕약림을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다 당황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진남도 당황했다.
첫 심사에서 진남은 자신감이 가득했다. 위호가 무황 경지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결과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전신의 혼이 황급 십품이 되었고 승급할 가능성이 무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질석의 반응을 보니 그는 무왕 경지도 도달할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진남도 순간 당황했다.
무연각 일 층에 침묵이 흘렀다. 위호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귀가 따갑게 웃었다.
“하하하, 진남, 무왕 경지에도 도달할 수 없다니 실로 다시 보게 되는구나.”
위호는 대놓고 조롱했다.
무왕 경지도 도달할 수 없는 사람이 아무리 대단한 배경이 있다고 한들 어떠하랴.
위호뿐만 아니라 황궐과 왕약림의 얼굴에도 동시에 비웃음이 어렸다. 그들은 진남을 폐물 보듯이 쳐다봤다.
두 사람은 좀 전까지 진남의 배경을 조심스러워했지만, 지금은 그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황궐은 냉소를 지으며 일부러 감탄했다.
“의외군, 의외야. 무왕 경지 강자의 제자가, 황급 팔품의 무혼 존재가 무왕 경지에도 이를 수 없다니 정말 충격이군, 충격이야.”
충격이라고 말하는 황궐의 표정에는 비웃음이 점점 더 짙어졌다.
진남은 위호와 황궐의 연이은 비웃음에도 침묵했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황용, 묵자삼, 서유 등 사람들은 그 모습에 경악했다. 그들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진남은 무혼 등급이 황급 팔품이긴 하나 당연히 무왕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남이 무왕의 경지에 오를 희망도 없다는 말인가?’
* * *
무연각 밖의 추산 산봉우리에 있는 모든 무인, 사대 종문의 장로들은 무경에서 투사된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눈빛이 진지해지며 어떤 것도 놓치려고 하지 않았다.
진남은 등장해서부터 모두의 시선을 받더니 마지막에는 강력한 배경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 집중했다.
진남은 자질 심사를 하려고 했다. 그의 무혼이 황급 팔품이라 이미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그의 자질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모두 직접 확인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진남의 자질을 확인하자 무경을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동시에 할 말을 잃었다.
‘자질석이 왕도광망마저 내뿜지 않다니,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일지? 그럼 황급 팔품 무혼의 진남이 무왕 경지마저 도달할 수 없다는 말인가?’
침묵이 흘렀다. 적지 않은 무인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남의 불행을 즐기는 듯했다.
“하하하! 진남 이 녀석! 무왕 경지도 될 수 없다니.”
“쯧쯧, 그렇게 날뛰며 황궐과 대적하고 위호를 무시하더니.”
“허허, 상상해봐. 진남이 지금 어떤 마음일까?”
“......”
무인들은 아무런 배경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진남처럼 배경이 강대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했다.
진남이 충분한 자질을 보여줬으면 모를까, 지금처럼 앞날이 캄캄한 게 확인되니 무인들은 그 불행을 즐거워했다.
장태억은 표정이 어두웠다. 입술을 달싹였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여종의 중년 미부가 위로했다.
“장 장로, 속상해할 필요 없어요. 현령종의 다른 제자들은 모두 무왕의 경지에 이를 수 있잖아요. 청여종보다 훨씬 나아요.”
장태억은 그녀를 보더니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 장로는 진남이 무척이나 거슬렸던 차에 이런 결과가 나오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맞는 말이오. 장 장로, 신경 쓸 거 없소. 현령종에는 천재가 많은데 진남 하나 없다고 해서 별거 있소? 이번 무연각은 실패라고 생각하고 이 년 후에 다시 와서 도전하면 되잖소.”
난염문의 장로도 진남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맞소. 폐물 같은 놈에게 감정 낭비해서 뭐 하겠소.”
장태억의 표정이 더욱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사실 앞에서 반박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