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상도맹(商道盟)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위호도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위호는 진남을 혼내주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장태억이 현령종과 난염문이 전쟁을 치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진남을 보호하겠다고 나섰다.
‘고작 현령종의 제자 하나 때문에 장태억이 고집을 피우는 건가?’
청여종의 중년 미부는 더 이상 손 놓고 구경할 수 없어서 좋은 마음에 권고했다.
“장 장로, 당신도 위호의 성격을 알잖아요. 그저 제자 하나를 혼내 주려는 것뿐이에요. 고작 제자 한 명 때문에 난염문과 대적할 필요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모른 척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죽이는 것도 아니고 고작 사지를 못 쓰는 거뿐이잖아요.”
무인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태억이 고작 제자 한 명 때문에 난염문과 맞서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장태억은 그 말에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깨달았다. 청여종이나 비검문이나 위호 등 모두가 진남을 보잘것없이 생각해서 안중에 두지 않은 것이었다.
장태억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현령종의 제자를 건드리겠다면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
그 모습에 위호는 살기를 번뜩이더니 싸늘하게 명령했다.
“명령입니다. 굳이 입씨름할 필요가 없어요. 다 없애버리세요.”
“존명!”
난염문의 장로와 제자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리고 강력한 살기를 풍기며 장태억 등을 향해 덮쳤다.
그때 큰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상도맹(商道盟)이 도착했다. 다들 멈추거라!”
호통 소리와 함께 흑포 노인 네 명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들은 무서운 기운을 풍겼다.
그 뒤로 여덟 명의 은색 갑옷을 입은 무인이 거대한 가마를 들고 발걸음을 맞춰 다가왔다. 발이 바닥에 닿으며 쿵쿵 소리를 내고 기세가 대단했다.
네 명의 무왕 경지의 강자가 길을 터주고 여덟 명의 무왕 경지 강자가 가마를 들고 나타났다.
이에 사대 종문 장로들의 안색이 변했다.
싸우려던 난염문 장로와 제자들은 강대한 무리가 나타나자 그대로 멈춰서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장내가 침묵에 잠기더니 이내 무인들이 흥분했다.
“세상에나, 상도맹은 정말 대단하구나.”
“허허, 상도맹이 나타나니 사대 종문의 기세가 다 꺾이네.”
“그딴 건 다 상관없어. 난 이번 내기에서 반드시 크게 한탕 벌어야겠어!”
“……”
무인들의 표정은 흥미진진했다.
사대 종문의 제자들도 나타난 무리를 보며 눈에 의혹을 드러냈다.
‘상도맹이라고?’
그들은 그런 세력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때 비검문의 방 장로가 길게 심호흡을 하며 제자들에게 설명했다.
“상도맹은 하역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다. 하역의 모든 나라에 그 세력이 분포되어 있다. 하역의 두 성지도 그들을 감히 못 건드린다. 하지만 상도맹은 무도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경매나 도박장 등을 운영하지.”
말을 마친 방 장로가 공수하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나무 가마에 타신 분은 상도맹의 어느 어르신입니까?”
방 장로뿐만 아니라 장태억, 중년 미부, 난염문 장로까지 얼른 공수했다.
방 장로의 설명을 듣고 장로들의 태도를 보자 모든 제자들이 놀랐다. 진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낙하왕국에 사대 종문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았지 상도맹이 존재하고 그들이 상도를 전문 경영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진남은 여전히 의문스러웠다.
‘상도맹이 왜 여기에 나타난 걸까? 왜 무인들이 저렇게 좋아하는 거지? 상도맹은 왜 난염문 장로를 멈추게 했을까?’
장태억은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이 년마다 무연각이 열리면 상도맹은 사람을 보내서 도박을 진행한다. 도박은 각 종문의 제자들이 무연각 대회에서 누가 우승을 할지 맞추는 것이지. 그것 때문에 무연각이 열릴 때마다 무수한 무인들이 모여드는 것이란다.”
그 말에 진남 등 사람들은 깨달았다.
무인들이 무연각 대회에 참가하지도 못하는데 여기에 머무는 것은 도박성회 때문이었다.
이때 위호가 나섰다. 그는 살이 뒤룩뒤룩 찐 얼굴에 의문을 지니고 말했다.
“소인 위호입니다. 제 기억에 상도맹은 무도의 일에 참여하지 않고 중립을 유지하지요. 그런데 왜 저에게 현령종을 공격하는 걸 멈추라고 하신 겁니까.”
갑자기 긴장감이 흘렀다.
긴장감 속에서 나무 가마에서 부드럽고 듣기 좋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위호 도우(道友), 오해 마세요. 상도맹은 성립 이래 줄곧 중립을 유지합니다. 다만 위호 도우가 현령종을 공격하기 전에 저에게 자그마한 정보가 있는 걸 먼저 알려주려고요. 위호 도우께서 제 체면을 봐서 잘 들어보세요.”
사람들은 놀랐다. 나무 가마에 앉은 사람이 여자일 줄은 몰랐다.
특히 사대 종문의 장로들은 머리가 터져라 저 여인이 누구일지 추측했다.
위호는 그녀의 말에 크게 웃으며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저도 궁금합니다. 상도맹이 어떤 소식을 가져왔는지 말입니다.”
난염문의 문주 아들이자 초급 천재인 위호도 상도맹 앞에서는 날뛰지 못했다.
상도맹의 체면은 무조건 봐줘야 했다.
여인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위호 도우, 현령종의 제자를 공격하려고 했던 거죠? 도우가 공격하려고 했던 제자의 이름은 진남인데 그의 이야기는 사대 종문 여러분들이 다 모를 거예요.”
“이야기?”
황궐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고작 외문제자일 뿐이에요. 무슨 이야기가 있겠어요.”
위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고작 현령종의 제자를 내가 건드릴 수 없다는 말인가?’
하지만 진남도 다른 이유로 미간을 찌푸렸다.
여인은 황궐의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진남, 삼 개월 전에 현령종에 들어갔지요. 들어가기 전에는 쉬체 경지 오 단계, 인도 합일의 대성경지를 돌파하고 황급 팔품의 무혼을 가졌어요. 종문에 들어가서 내문 제자 막려, 황급 구품의 천재 임자소와 갈등이 생겼는데 싸워서 제압했죠.”
여기까지 말하자 무인들은 진남에게 경외의 시선을 보냈다.
황급 팔품의 무혼으로 황급 구품의 천재를 제압한다는 건 진남이 무예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황궐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무예 재능으로 황급 구품을 제압한 걸 가지고 대체 뭐가 대단하다고…….”
여인은 계속 말했다.
“보름 후, 현령종에서 열린 만상 대회에서 진남은 쉬체 경지 육 단계가 되어서 참가했어요. 난심고죽림에서 천 보를 걷고 역사를 새로 썼죠. 더욱이 임자소를 죽이고 만상대회의 일 위를 차지했어요. 동시에 쉬체 경지 팔 단계, 소성 입미지경을 돌파했어요.”
이 말에 사람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웅성거렸다.
사대 종문의 제자들도 진남을 바라보는 시선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황급 팔품의 무혼으로 황급 구품의 천재를 죽였다니?’
‘보름 만에 세 단계나 돌파했다니?’
‘보름 만에 소성 입미지경을 장악했다니?’
황궐은 진남을 조롱하더니 그 말에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인은 변화를 느끼기라도 한 듯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계속 말했다.
“보름 전, 외원 심사가 시작됐죠. 진남은 태고 무수를 수련하고 강한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그는 황급 구품의 남궁성을 제치고 외원 심사 일 위가 되었죠. 게다가 외문 대장로와 형벌전 부전주가 손을 잡고 그를 억압하자 현령종의 사대 전주들이 친히 나서서 상황을 반전시켰어요. 외문 대장로와 형벌전 부전주는 이 일로 백 년을 갇히게 됐어요. 수십 명의 집법 장로와 내문 제자 막려도 갇혔지요. 이 일로 현령종이 들썩였어요.”
여인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계속 말했다.
“상도맹의 조사와 분석에 따르면 진남은 현령종에 들어가자마자 태상 장로의 제자가 되고 자룡적아령을 받았어요.”
여인은 사정없이 마지막 폭탄을 던졌다.
“게다가 열흘 전에는 진남의 주위에 무종 경지의 강자가 나타났는데 조사 결과 그 강자의 내력이 신비해 신분을 알 수 없었어요. 그 강자는 지금 현령종의 명예 장로예요. 그 무종 경지의 강자는 진남의 또 다른 스승일 가능성이 높아요.”
여인은 말을 마치고는 위호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위호 도우, 이 소식들을 듣고도 진남을 공격할 거예요?”
현장의 무인뿐만 아니라 비검문, 난염문, 청여종의 사람까지 전부 넋이 나갔다.
그들은 진남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다른 삼대 종문으로서는 진남이 초월급 천재를 죽인 일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었다. 그저 기우를 만나 수련의 속도가 황급 구품 무혼의 초급 천재를 훨씬 능가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진남의 신분이었다.
현령종 태상 장로의 제자, 무종 경지 강자의 제자와 누가 비교할 수 있겠는가?
특히 삼대 종문 장로들은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보잘것없는 황급 팔품의 무혼인 진남이 어떻게 태상 장로이자 무종 경지 강자의 제자가 되었을까?
아무리 황급 십품의 초월급천재라고 해도 태상 장로의 제자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진남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대단한 배경이 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조금 전 진남이 감히 황궐에게 싸움을 걸고 왕약림에게 호통을 칠 수 있었는지 깨달았다. 진남에게는 충분한 저력이 있었던 것이다.
장태억 장로는 난염문의 공격에도 진남을 적극적으로 감쌌다. 그 이유는 그의 뒷배경이 이토록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위호라도 이 상황에서는 얼떨떨해했다. 그는 진남을 졸개라고만 여겼었다. 그는 지남이 대단한 사람일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다.
위호는 황급 십품 무혼의 초급천재이자 난염문 문주의 아들이다.
하지만 오늘 그가 진남을 죽이게 된다면, 현령종 태상 장로와 무종 경지 강자의 분노를 직접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난염문 전체가 연루될 것이고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그게……”
위호는 가마 속 여인의 물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위호뿐 아니라 황궐과 왕약림도 당황했다.
그들 두 사람과 위호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남은 현령종의 졸개일 뿐이라 죽여도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배경을 놓고 따진다면 그들은 진남과 비교도 할 수 없었다.
황궐은 조금 전 진남과의 싸움을 떠올리며 속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그리고 왕약림은 추산에서 진남을 백방으로 위협하던 것이 떠올라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듯 위호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
위호는 난염문 문주의 아들이라 반응이 빨랐다.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진남에게 말했다,
“진남 형제, 정말 미안해. 아까는 내가 안하무인이었어. 네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었다니. 조금 전 일은 따지지 말거라. 무연각이 끝난 뒤 잔치를 열어 내가 제대로 사과를 하겠다.”
위호가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진남은 담담한 표정으로 공수하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뭐 이런 작은 일 가지고.”
“그래 그래. 작은 일, 작은 일일 뿐이지.”
위호는 서둘러 말했다. 그는 가마를 향해 눈길을 돌리며 고마움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