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삼대 종문의 연합
무인들은 숨을 멈추고 조용히 상황을 지켜봤다.
이렇게 빨리 비검문의 제자와 현령종의 천재 제자가 부딪힐 줄 몰랐다.
그들의 눈에는 기대가 가득했다. 그들은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 보고 싶었다.
황궐의 말에 장태억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어린 후배, 너무 날뛰지 말거라.”
“허허허.”
방 장로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장태억, 이건 제자들 사이의 겨룸이오. 자네가 끼어들면 창피하지 않소? 제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지.”
청여종의 중년 미부는 황궐 등을 훑어보고 또 진남을 살펴보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방 장로의 말에 동감해요. 제자들 사이의 일은 그들끼리 해결하게 해야지요.”
비검문과 청여종의 두 장로가 동시에 입장을 표하자 장태억이라고 해도 그를 무시할 수 없었다.
장태억은 한숨을 쉬고 황궐을 한번 쳐다보고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장태억이 나선 것은 황궐이 더 이상 진남의 화를 돋우지 말기를 바래서였다. 진남은 성격이 황궐보다 더 흉포했다. 그러니 봐주는 일이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비검문과 청여종의 두 장로들이 고마워하기는커녕 끼어들지 말라고 질책했다.
그런 생각에 황용 등은 다소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 장로는 진남을 살펴봤는데 황궐과 마찬가지로 태고 무수였다.
그러나 황궐이 누구인가? 황급 십품의 무혼을 가진 초급 천재였다.
만약 진남과 황궐이 충돌이 발생한다면 반드시 진남이 질 것이었다.
방 장로가 원한 것은 바로 이러한 결과였다. 그는 많은 무인 앞에서 현령종의 체면을 크게 구겨주고 싶었다.
청여종의 중년 미부는 진설아와 왕약림 사이에서 왕약림을 선택하고 그녀의 손을 들어줬다.
황궐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장로가 너를 보호해줄 거라고 기대하지 마.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너도 태고 무수겠구나. 같은 태고 무수인 점을 봐서 한번은 봐주마. 사과해라. 그거면 충분하다.”
진남은 어이가 없었다.
‘왕약림의 말 한마디에 시시비비를 따지지도 않고 사과를 하라고 하다니.’
진남은 차갑게 웃으며 그의 성격을 드러내며 말했다.
“봐주겠으니 사과하라고? 사람 입으로 개소리를 하는구나. 너는 내가 잘못한 걸로 보이나 봐?
충고 한마디 하지.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살아라, 멍청하게 다른 사람의 이간질에 놀아나지도 말고. 그렇지 않았다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진남의 말에 비검문의 다른 제자들은 깜짝 놀랐다.
방 장로도 경악했다. 진남이 이런 식으로 황궐을 도발할 줄은 전혀 몰랐다.
황궐은 당황해서 말을 잃었다.
황급 십품의 무혼을 가진 초월급 천재인 그는 비검문에서 신분이 대단했다. 그가 원하는 마음대로 행동했었다. 그래도 어느 누구 하나도 그에게 대든 적이 없었다.
그런데 현령종 제자가 감히 자신을 도발했다.
왕약림은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너 살고 싶지 않구나. 보잘것없는 놈이 감히 황궐 오라버니에게 그딴 식으로 말하다니!”
진남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차갑게 내뱉었다.
“꺼져!”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현령종 제자의 태도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청여종의 자랑인 왕약림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너……!”
왕약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치욕을 당해 본 적이 없었다.
황궐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그는 살기를 풍기며 말했다.
“내가 네 잘못이라고 하면 네 잘못인 거다. 한데, 사과하기는커녕 나를 도발하고 약림이를 모욕해? 너 내 한계를 건드렸어. 지금 당장 너에게 도전한다. 목숨 걸고 싸우자. 다시 한번 배짱을 보여봐라!”
말이 끝나자 황궐의 몸에서 엄청난 검의가 곧게 솟아올랐다.
무인들은 놀라서 말했다.
“대단한 검의야. 적어도 선천 경지 이 단계는 되는 것 같군.”
“허, 하지만 고작 반보 선천 경지야. 보아하니 태고 무수겠어.”
“현령종의 제자가 겁을 먹고 이 도전을 받아들이지는 못하겠어.”
“……”
방 장로와 비검문 제자들은 동시에 냉소를 지었다.
진남이 도전을 받아들이면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왕약림의 두 눈에는 악랄함이 가득했다. 그녀는 진남에게 여러 번 치욕을 당했던 터라 그가 빨리 죽어버리기 바랐다.
장태억과 황용 등은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들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황궐을 바라보았다.
황궐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다.
“비검문의 정보도 별로군. 아직 진남의 소문을 듣지 못했다니.”
장태억과 황용 등은 이렇게 생각했다.
진남은 두 눈에 살기를 번뜩이며 도전에 응하려고 했다.
이때 어디선가 커다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가 우리 비검문의 천재 황궐을 이토록 화나게 했을까? 재미있어. 정말 재미있어. 이렇게 재미있는 일에 내가 빠질 수 없지.”
갑자기 들린 말소리에 모든 시선이 쏠렸다.
뚱뚱한 청년이 붉은 장포를 걸치고 무리를 이끌고 왔다. 그의 얼굴에는 순진무구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뚱뚱한 청년의 뒤에는 백발노인과 네 명의 제자가 따르고 있었다.
여섯 사람이 도착하자 주변의 온도가 순식간에 높아졌다. 마치 여섯 개의 화로가 온 것 같았다.
여섯 사람은 난염문의 사람들이었다.
진남에게 도전을 한 황궐은 뚱뚱한 사내를 보자 미간을 찌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위호(魏豪), 너와 상관없는 일이다.”
무인들이 술렁였다.
“뭐? 위호라고?”
“이번에 위호도 왔어? 그럼 무연각 대회는 위호가 일 위겠구나.”
“위호의 이름은 들어만 봤는데 드디어 오늘 얼굴을 보는구나!”
“……”
무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진남은 그들의 말에 저도 몰래 위호를 살폈다.
다른 제자들의 시선도 위호에게 쏠렸다.
무인들은 사대 종문의 천재들을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알고 있다는 건 낙하왕국을 뒤흔드는 정도가 돼야 했다.
‘위호라는 자는 수행이 반보 선천 경지밖에 안 되는데 무인들이 어떻게 그를 아는 것일까?’
장태억은 진남 등 다섯에게 말했다.
“이번에 너희들 상대를 제대로 만났구나. 위호는 황급 십품의 무혼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예 재능이 뛰어나서 소성 입미지경을 돌파했다. 진남과 비슷한 수준이지. 게다가 신분이 높다. 난염문 문주의 아들이고 어린 나이에 전국에 이름을 날렸다.”
그 말에 진남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황급 십품에 소성 입미지경을 돌파했고 난염문 문주의 아들이다. 천부적 재능을 보나 출신을 보나 위호는 황궐보다 훨씬 위다. 그러니 무인들이 위호를 알고 있지.’
위호는 대범하게 앞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황궐, 흥미가 생겨서 도저히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네? 불만 있어? 그러면 어떡할 건데? 아무리 태고 무수라고 해도 나는 너를 승복시킬 수 있어.”
황궐은 노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안색이 더없이 어두워졌다.
황궐의 눈에 가장 큰 적은 위호였다. 위호 때문에 그는 태고 무수를 택해 경지를 빠르게 끌어올리고 위호를 제압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직은 형세를 확정할 수 없었다. 황궐은 무연각에 들어가기도 전에 위호와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이었다.
위호는 작은 눈을 굴리더니 왕약림을 아래위로 훑어 보어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황궐, 네 옆에 있는 여인이 꽤 괜찮구나. 기억이 맞다면 왕약림이 분명한데……. 좋아, 그녀를 나에게 줘, 그럼 너와 연합할게. 어때?”
왕약림은 몸을 흠칫 떨었다. 위호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자 그녀는 저도 몰래 황궐을 쳐다봤다.
청여종에 들어 온 이후 왕약림은 황궐을 사모했다. 그녀는 위호의 신분과 재능에 마음이 끌리기는 했지만, 무인들 앞에서 물건 취급당하며 보내지고 싶지 않았다.
황궐은 위호의 말에 망설임 없이 말했다.
“마음에 들면 가져가.”
왕약림은 표정이 변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무슨!”
황궐은 냉랭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왕약림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물건처럼 줘버리는 일은 너무나 치욕스러웠다.
하지만 왕약림은 심호흡을 하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위호에게 다가갔다.
“위 오라버니, 이제부터 오라버니가 저를 잘 보살펴줘야 해요. 걱정마세요. 황궐과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위호는 기분이 좋아서 왕약림을 와락 끌어안고 거리낌 없이 만졌다.
방 장로와 중년 미부는 그 모습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나 그들이 마음속으로 분노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위호는 무혼 등급이 높고 무예 재능이 강대할 뿐만 아니라 신분도 높았다. 그들이 뭐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왕약림이 위호의 마음을 꽉 잡는다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궁무진했다.
장태억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안색이 살짝 변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무연각이 열리면 대게 현령종과 비검문이 일 위를 다투고 청여종은 현령종 편에 섰다. 그리고 난염문은 독립적으로 행동했다.
그런데 지금은 청여종, 비검문, 난염문이 연합을 할 기세였다.
장태억은 곁에 있는 진남을 살펴보았다. 시종일관 침착한 진남을 보자 그의 마음도 차분해졌다.
무인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을 지켜보며 두 눈에 짙은 혐오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위호, 황궐의 신분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남도 속으로 할 말을 잃었다.
위호가 왕약림을 달라고 하자 황궐은 바로 넘겼다. 그런 행동에 그는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진남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위호는 왕약연을 한참이나 희롱하더니 뚱뚱한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진남을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황궐, 이 녀석이 너와 대적하겠다고 한 거야?”
황궐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왕약림은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위 오라버니, 저자가 저를 괴롭혔어요.”
무인들은 진남에게 동정하는 시선을 보냈다.
진남은 황궐에게 미움을 사고 또 위호에게도 미움을 샀으니 그 결과가 뻔했다.
위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진남을 훑어보며 대충 손을 흔들었다.
“장로, 그리고 형제들, 현령종의 애송이 녀석이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거 같으니 손발을 부러뜨려서 교훈을 주세요. 만약 현령종이 저 녀석을 감싸려고 한다면 전쟁입니다.”
그 말에 황궐과 방 장로 등은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난염문과 현령종이 전쟁을 한다면 이득을 보는 건 그들이었다.
장태억과 황용 등은 표정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위호가 이토록 오만방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위호 뒤에 있던 노인과 네 제자들이 동시에 싸늘하게 웃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때 장태억이 싸늘한 표정으로 강경하게 말했다.
“난염문,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정도껏 하거라. 감히 현령종의 제자들을 건드린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