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반드시 사과를 받아야겠다
사흘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추산은 무척 북적였다. 무인들도 평소보다 배는 더 많았다.
무연각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장태억의 인도하에 제자 다섯은 산봉우리에 도착했다.
도착한 산봉우리는 다른 산봉우리와 달랐다. 정상이 평평해서 마치 광장 같았고 수천 명은 활동할 수 있었다.
진남 등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산봉우리는 이미 사람이 꽉 차 있었다. 대부분 낙하왕국에서 온 무인들이었다.
"그거 들었어? 이틀 전에 추산에서 두 무종 경지의 요종(妖宗)들이 싸웠대."
"뭐? 그게 진짜야?"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소문에 의하면 추산에 경천지보(驚天至寶)가 있는데 두 요종이 그걸 쟁탈하기 위해서 싸웠대."
"허허, 나도 봤어. 하루 밤낮을 싸우더군. 그중 한 요종은 죽었어."
"……"
무인들은 흥분해서 이틀 전에 벌어진 대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진남은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무표정하게 듣고 있었다. 이틀 전부터 그는 묘묘 공주와 연락이 끊어졌다.
그러나 진남은 걱정하지 않았다. 묘묘 공주의 생사가 그와 상관이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혈계를 맺은 사이라서 진남은 묘묘 공주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장태억은 시끄러운 무인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왕 경지의 위엄이 순식간에 일렁거렸다.
뜨겁던 장내가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모든 무인들이 동시에 쳐다봤다.
"현령종이 도착했소. 다들 길을 비켜주시오."
장태억이 별다른 표정 없이 호통을 쳤다.
장태억 앞을 막고 있던 수사들이 흠칫하며 얼른 길을 비켜주었다.
장태억이 앞에 서고 제자들이 뒤에 섰다. 산봉우리의 변두리에 도착하니 멀리 추성대해가 보였다.
무인들은 그 모습에 불만은 전혀 없고 오히려 흥분하고 경외의 기색이 떠올랐다.
"현령종이 제일 먼저 왔구나."
"현령종에서 데려온 제자들은 다들 반보 선천 경지야."
"당연히 반보 선천 경지지. 이들은 현령종의 천재들이야."
"……"
진남 등 제자들을 보는 무인들의 얼굴에 부러움과 존경이 가득했다.
묵자삼이 미간을 찌푸리며 낮게 말했다.
"이번에 열리는 무연각에는 사대 종문의 제자들만 들어갈 자격이 되는데 이 무인들은 대체 뭐 하러 온 거지?"
묵자삼 뿐만 아니라 진남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 모두 똑같이 궁금해했다.
장태억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무인들은 또 다른 성회에 참가하러 온 거다. 나중에 너희들도 알게 될 거다."
진남 등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멀리 있는 추성대해를 바라보며 무연각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반 시진이 지나자 먼 곳에 있던 추성대해에 이변이 생겼다.
광활하고 끝없이 넓은 추성대해에 삼백삼십 척은 되는 거대한 파도가 추산을 향해 맹렬하게 덮쳤다. 모든 하늘이 다 흔들렸다. 쿵쿵쿵 하는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은 그 광경이 너무 놀라워서 도무지 태연하게 있을 수 없었다.
연세가 좀 있는 무인 한 명이 흥분해서 외쳤다.
"무연각이 온다! 무연각이 와!"
진남 등 다섯 사람은 그 말에 날카로운 표정으로 그 거대한 파도를 지켜보았다.
곧이어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더니 한 줄기 눈부신 노란빛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노란빛 속에서 다섯 층 높이의 누각이 천천히 나타나 파도 위에 있었다. 누각은 태산처럼 평온하고 마치 무형의 현묘한 힘에 둘러싸인 것 같았다. 계속해서 일렁이는 파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이게 무연각이라고?"
진남은 정신을 가다듬고 전신의 눈을 굴려 거대한 누각을 살폈다.
진남의 머리에서 윙 하는 큰 떨림이 계속 울려 퍼졌다.
천지를 다 꿰뚫어 볼 수 있는 전신의 눈이라고 해도 무연각을 살피려는 순간 말로 할 수 없는 태고의 힘이 그의 머리를 때렸다.
무연각을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진남이 선천 경지 일 단계와 대등하지 않았다면 기절했을 수도 있었다.
"무연각은 참 무서운 곳이구나!"
진남은 전신의 눈을 거뒀다. 그의 얼굴에 진지한 기색이 떠올랐다.
전신의 눈을 각성한 이후 묘묘 공주 몸속의 힘도 진남은 읽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완전히 보이지 않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진남은 전신의 눈이 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지가 낮고 무연각의 힘이 너무 강대해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황용 등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훤히 드러났다. 서유는 넋이 나갔다.
현령종의 이장로 장태억은 무연각을 수도 없이 만났다. 그는 무연각에 대해 잘 알았다. 하지만 그도 지금껏 무연각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몰랐다.
즉 장태억뿐만 아니라 사대 종문 모두 잘 알지 못했다. 무연각이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말이다.
이때, 금창(金戈)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진남이 돌아보았다.
무표정한 중년이 커다란 검을 등에 메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무왕 경지의 위압감을 숨기지 않았다.
중년의 뒤로 다섯 청년이 따라왔다. 다들 고검을 메고 있었는데 그 행태가 각양각색이었다. 검의가 사방을 비추고 살기 등등했다.
무인들은 그들을 보고 안색이 변했다.
진남은 눈을 가늘게 떴다. 비검문 사람들이었다.
낙하왕국의 사대 종문 중 청여종의 제자는 모두 여인이었다.
비검문은 검법을 연마하는 제자들만 받았는데 무혼도 검 무혼인 자들만 뽑았다. 난염문은 화 속성의 제자들을 받아들였다.
사대 종문 중 오직 현령종만 제자를 받을 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속성을 가리지 않았다. 오직 무혼의 등급만 확인했다.
현령종은 비검문과 사이가 안 좋아서 늘 작은 규모의 전쟁을 치르곤 했다.
"장태억!"
중년 사내는 장태억을 보자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한걸음 나섰다. 검의가 이글거리는 것이 그는 화를 내지 않아도 위엄이 있었다.
"이번 현령종을 이끄는 장로는 막경 아니오? 어찌 자네가 직접 왔소?"
장태억은 담담하게 그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방 장로, 투기를 거두시오. 무연각이 이미 나타났고, 몇 시진 후면 문이 열리오. 굳이 자네와 싸우고 싶지 않소!"
방 장로라 불린 중년 사내는 안색이 변하고 화를 내려다가 무엇이 떠올랐는지 침묵했다.
무인들은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진남은 막경 두 글자를 듣고 방 장로를 힐끔 보더니, 눈길을 돌려 비검문 제자 다섯 명을 바라봤다.
"응?"
진남은 비검문 제자들 중 가장 앞에 선 백의 청년을 보았을 때, 눈동자가 약간 흔들렸다. 그는 태고 무수였는데 체내 진기가 농후하여 선천 경지 이 단계 정도였다.
자신 이외의 태고 무수를 처음 만난 진남은 흥미가 생겨 전신의 눈을 움직이며 자세히 살펴봤다.
한 번 훑어보고 진남은 놀랐다. 왜냐하면 이 백의 청년 체내의 무혼이 황급 십품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황급 십품 무혼은 사대 종문에서 진정한 초월급 천재이며, 종문의 진전 제자가 될 수 있어 앞날이 창창했다.
장태억은 진남을 힐끗 보더니 입술을 약간 움직였다. 그의 목소리가 진남의 뇌리에서 울렸다.
"제일 앞에 선 제자는 황궐(黃闕)이다. 황급 십품의 무혼을 가졌고 무예 재능 또한 매우 높지. 소문에 저자는 악랄하고 포악하다고 한다. 이번 무연각 대회에서 아마 강적이 될 것이다."
장태억은 현령종이 보낸 장로로서 이번 무연각이 열리는 것을 중시했다.
진남 등 다섯 사람이 이곳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그도 문파에서 큰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진남은 황급 팔품 무혼만을 가지고 있을 뿐인데, 어떻게 등급이 더 높은 천재들을 끊임없이 죽일 수 있고, 현령종에서 끊임없이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지 장태억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진남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거두었다.
이때 다시 무왕 경지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랐다.
멋스러운 중년 미부가 생글거리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의 뒤로 왕약림, 진설아 등 여 제자들이 따랐다.
이번에 온 사람들은 청여종이었다.
청여종이 나타나자 무인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무인들은 그녀들의 아름다움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청여종의 제자들이 나타나자 미색에 좌중에서 가장 눈부신 존재가 되었다.
왕약림은 진남을 보자 표정이 굳고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녀는 눈을 돌리다가 비검문의 황궐을 보자 눈에 빛이 돌더니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황궐 오라버니, 빨리 오셨군요."
왕약림이 여성스럽게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중년 미부와 방 장로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들은 왕약림의 그런 모습에 이미 적응이 되었다.
황궐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약림아, 오랜만이구나. 어쩜 점점 더 예뻐지는구나. 이번 무연각에서 내가 일 위를 하면 꼭 내 방에 찾아오너라."
이 말을 마친 황궐은 시선을 감추지 않고 대놓고 왕약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왕약림은 예쁜 얼굴에 홍조를 띠며 수줍어했다.
주위의 무인들은 이 모습을 보고 가슴이 미어졌다. 그들은 왕약림이 희롱당할 줄은 몰랐다. 다만 그들은 황궐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과 왕약림의 태도에 마음을 다잡았다.
"오라버니!"
진설아가 사람들 중에서 진남을 알아보고 기뻐했다.
지난 일 이후 왕약림의 진면목을 알게 된 진설아는 왕약림과 왕래를 하지 않았다.
진설아가 유일하게 안타까웠던 것은 지난번 진남을 만나 제대로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진남을 만나게 되자 그녀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기뻐했다.
황용 등은 이상야릇한 표정이었다. 진남이 추산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저렇게 이쁜 여인과 친분을 얻을 줄은 몰랐다.
진남이 헛기침을 하더니 입가에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때 멀리 있던 왕약림은 진남을 발견하고 표정이 확 바뀌었다.
"현령종의 제자였구나!"
그녀는 진남에게 분노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진남의 실력 때문에 그날 그를 보내줬다.
말을 마친 왕약림은 한가지 계략이 떠올랐다. 그녀는 두 눈에 살기를 풍기며 황궐에게 말했다.
"황궐 오라버니, 지난번에 저자가 저를 괴롭혔어요.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던 천정화를 전부 빼앗아 갔어요.
"그래?"
황궐은 미소를 거두고 진남을 바라보았다.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검의가 일렁거렸다.
장태억, 황용 등은 그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불과 사흘 만에 진남이 청여종의 제자와 악연을 맺어서 황궐과 엮이게 될 줄은 몰랐다.
현령종에서 벌어진 일들을 생각해보면 진남은 어디를 가든 시끄러운 일들을 일으켰다.
진남이 입을 열기 전에 진설아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왕 사저, 모함하지 말아요. 사저가 오라버니의 천정화를 빼앗으려 한 거잖아요. 게다가 여러 번 오라버니를 위협했는데 실력이 안 돼서……"
진설아가 말을 하고 있는데 우레 같은 호통 소리가 울렸다.
"닥치거라!"
황궐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검의를 내뿜으며 앞으로 크게 내디뎠다. 그는 진남을 쏘아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너와 약림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관없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사과를 받아야겠다."
황궐의 횡포함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