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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전혼-87화 (87/1,498)

87화 좀 빌려주거라, 나중에 갚으마

순간 무종 경지의 위압감이 용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마치 태고의 거대한 산이 태산의 기세로 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막경도 표정이 굳었다. 그의 눈에 놀란 기색과 공포가 드러났다. 그의 몸은 저도 모르게 격렬하게 떨렸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여자애가 무종 경지의 위압감을 풍기다니? 열두, 세 살의 여자애가 무종 경지의 엄청난 강자란 말인가?'

"너, 너……"

막경은 경악한 표정을 한 채 손가락으로 묘묘 공주를 가리켰다. 삼장로이자 무왕 경지 강자의 품위는 없어진 지 오래였다. 부들부들 떨면서 한마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너는 무슨 너! 닥쳐!"

묘묘 공주의 얼굴에 화난 기색이 어리더니 손을 휘둘렀다.

짝!

막경이 비명을 질렀다. 얼굴을 거세게 얻어맞아서 머리가 웅웅 울렸다.

제자들도 입이 떡 벌어졌다. 막경이 뺨을 맞다니!

"감히 장로를 때려? 내 너를……"

막경이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그는 삼장로이자 무왕 경지 강자였으며 지위가 높았다. 그러니 누가 감히 그의 뺨을 때릴 수 있었겠는가?

막경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눈앞에 있는 여자애가 무종 경지의 강자라고 해도 그는 상관없었다.

짝!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 번 통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막경이 다시 한번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묘묘 공주는 두 눈에 화가 가득했다.

"이 늙은 놈이 겁도 없이 내 사람을 때려?"

짝!

짝짝짝!

짝짝짝짝짝!

연속 내리치는 손바닥은 마치 폭풍우처럼 막경의 얼굴을 내리쳤다.

폭력적이고 강력한 장면에 제자들은 몸과 마음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렇게 작은 여자애가 이렇게나 폭력적일 줄이야.

진남도 벌어지는 상황에 표정이 변했다.

그가 생각하는 묘묘 공주는 단약을 빼앗을 때는 횡포하고 잔인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악인이었다. 비록 묘묘 공주와 협력을 하기로 했지만 혈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합의를 본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악질이던 묘묘 공주가 진남을 위해 내문 삼장로를 두들겨 팼다.

진남은 악질 묘묘 공주가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졌다.

묘묘 공주가 수없이 뺨을 때리고 나서야 멈추고는 차갑게 물었다.

"이제 네 잘못을 알겠느냐?"

사람들의 시선이 막경에게 쏠렸다. 막경을 확인한 사람들은 헛숨을 들이켰다.

위풍당당하던 막경은 얼굴이 퉁퉁 부어 돼지 같았다. 너무 얻어맞아서 눈도 잘 보이지 않았다. 가느다란 눈에서 절망과 공포가 드러났다.

묘묘 공주의 말에 막경은 동아줄이라도 잡은 것처럼 웅얼거렸다.

"재소함니다……자모태어요…… 요서해주에오. 요어애 즈에오.(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묘묘 공주는 콧방귀를 끼면서 그를 흘겨봤다.

"공주마마라고 부르거라."

막경이 얼른 입을 열었다.

"고주마마, 즈어를 요서해주에오. 요어애 즈에오(저를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주세요.)"

묘묘 공주의 차가운 표정이 순식간에 사르르 녹더니 시원하게 웃었다. 그녀는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듯이 막경의 머리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좋다. 늙다리가 눈치는 빠르구나. 이제부터 만날 때마다 꼬박꼬박 공주마마라고 세 번씩 인사하고. 알았지? 맞다, 너 단약 가지고 있지? 좀 빌려주거라. 나중에 갚으마."

막경은 황당했다.

진남을 비롯한 모두도 황당해했다.

'이, 이거 변화가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조금 전까지 불같이 화를 내더니 이제 친한 척이라니? 게다가 단약을 빌려 달라니? 무종 경지의 강자가 고작 무왕 경지에게서 단약을 빌린다고? 이건 그냥 빼앗는 짓이잖아!'

막경은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묘묘 공주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차갑게 말했다.

"싫은가 보다?"

막경은 흠칫하더니 가지고 있던 저장 주머니를 꺼냈다.

묘묘 공주는 저장 주머니를 빼앗더니 표정이 다시 즐거워져서 손을 흔들었다.

"됐다. 이제 떠나도 좋다."

막경은 그 말에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들었다.

'얼른 악몽 같은 곳에서 벗어나자.'

진남은 그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고 막경을 막으려고 했다.

진남은 자룡적아령을 가지고 있고 선노와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막경이 그를 공격했다는 것은 그 뒤에 다른 세력이 있다는 뜻이었다.

진남은 대체 막경을 지지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묘묘 공주가 소리 질렀다.

"잠깐!"

막경은 제자리에 굳었다. 그는 울고 싶었다.

'이 악마가 대체 뭘 하려는 걸까?'

냉담한 표정의 묘묘 공주가 쌀쌀맞은 표정으로 만년 한빙 같은 두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네 배후의 사람을 말해라. 진남은 내 사람이다. 너 같은 장로들이나 전주들 심지어 현령종 종주라고 해도 내 사람을 건드리면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 줘야지."

그녀의 말에는 패기가 가득했다.

제자들은 그 패기에 압도되어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진남은 그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진남의 단약을 수없이 삼킨 악질 묘묘 공주가 이토록 자신을 지켜주리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묘묘 공주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물론, 충분한 단약을 준다면 진남을 마음대로 괴롭혀도 된다."

진남과 제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 * *

막경은 낭패를 보고 떠난 뒤 자신의 정원에 돌아와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무종 경지면 현령종에서 저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되나?'

막경은 이를 악물었다. 곧 머릿속에 악랄한 계획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가 계획을 실시할 준비를 하기도 전에 한 가지 소식이 그의 귀에 들어왔다.

"내문 장로가 강탈을 당했다!"

"형벌전 전주도 강탈을 당했다!"

"강탈을 한 사람은 묘묘 공주라는 사람이다. 묘묘 공주는 현령종의 명예 장로라고 했다."

막경은 그 소식에 고개를 흔들었다.

'형벌전 전주도 묘묘 공주에게 강탈을 당하고 감히 복수할 생각을 못 하는데 고작 내문 삼장로인 그가 어떻게 복수를 할 수 있을까?'

막경은 우울했다. 진남이 대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선노의 관심을 받을 뿐만 아니라 무종 경지의 강자까지 뒤를 봐주는지 궁금했다.

* * *

외원 도장

모든 제자들은 내원, 외원 할 것 없이 모두 진남을 존경스럽게 바라봤다.

제자들도 멍청하지 않았다. 막경이 다들 지켜보는 데서 진남을 공격할 때는 현령종의 강대한 존재가 뒤를 봐주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의 배후 세력이 막경을 종용해서 진남을 처리하게 한 것이었다.

하지만 도중에 묘묘 공주라는 무종 경지의 강자가 그를 지킨 것이다.

진남은 강대한 배경이 있을 뿐만 아니라 무종 경지의 강자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진남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깊게 숨을 들이쉰 진남은 묘묘 공주를 향해 말했다.

"이번 일은 고마워."

묘묘 공주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나 바쁘니까 귀찮게 하지 마."

말을 마친 그녀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저장 주머니를 살폈다. 두 눈에서 빛이 반짝이고 취한 듯이 보였다.

진남은 입꼬리를 푸들거렸다.

'감사 인사에 저따위로 대답할 줄이야.'

진남은 더 말하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상처를 치료했다.

잠시 후, 무지개가 하늘을 가르더니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손에 총채(拂塵, 중이나 도사가 번뇌 따위를 물리치는 표지로 쓰는 것)를 들고 있었는데 기세가 막경보다 강대했다.

노인은 내문 이장로 장태억(張太億)이었다.

그는 제자들을 훑어보더니 묘묘 공주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그의 두 눈에 경계의 빛이 가득했다. 그는 곧 전체를 다시 훑어보며 말했다.

"방금 일어난 사건 때문에 내가 너희들을 무연각으로 안내할 것이다. 적지 않은 시간을 낭비했으니 쓸데없는 말은 삼가하겠다. 너희 다섯은 얼른 나를 따라오너라."

진남, 황용 등 다섯 명은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나섰다.

그 뒤로 묘묘 공주가 따라갔다.

혈계 때문에 묘묘 공주와 진님은 백 리 이상 떨어질 수 없었다. 그러니 묘묘 공주는 무연각에도 반드시 따라가야 했다.

* * *

무연각은 낙하 왕국의 서부에 있는 '추성'이라 불리는 바다 가운데 있었다.

추성대해는 낙하왕국의 삼대 바다 중 하나였다. 가을이면 바다의 색이 투명하게 변하고 밤하늘의 별이 비춘다고 해서 이름이 추성대해였다.

추성대해에는 큰 산이 있는데 추성대해와 인접한 탓에 '추산'이라고 불렀다.

추산은 천봉산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추산에는 수많은 요수와 재부 그리고 기우들이 숨어 있었다. 해마다 수많은 무인들이 이곳에서 기우를 만나 무예가 높아지기를 기대하며 모험을 했다.

낙하왕국의 사대 종문은 해마다 무연각에 들어가기 전 추산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수십 일 후, 장태억은 진남 등 다섯 명과 묘묘 공주를 데리고 추산에 도착했다.

현령종의 휴식처는 산봉우리에 있었는데 산봉우리는 절벽이었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추성대해였다.

장태억은 사람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무연각이 열릴 때까지 닷새가 남아있다. 닷새 동안 너희들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연각이 열릴 때마다 추산에 무인들이 몰리기에 그만큼 위험도 많아진다. 그들과 최대한 싸움을 일으키지 말거라.

자, 이 영패를 받거라. 위험에 부딪혔을 때 이 영패를 부수면 내가 전심전력으로 달려갈 것이다."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영패를 받았다.

하지만 아무도 추산으로 가지 않았다. 시간이 닷새밖에 안 남았기에 그들은 돌아다니기보다는 한시라도 수행에 전념하는 편이 나았다.

진남과 묘묘 공주도 방에 돌아왔다. 진남이 수행을 하기 전에 묘묘 공주가 말했다.

"진남, 너랑 협력하고 싶은 일이 있다."

"무슨 일인데?"

진남이 경계했다.

묘묘 공주가 그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그녀의 인품을 잘 아는 진남은 경계를 풀 수 없었다.

"여기 지도가 있다. 이 지도를 보고 추산에 가서 보물들을 찾아오거라. 물론, 찾아온 물건들은 다 내 소유다."

묘묘 공주가 지도 한 장을 진남에게 넘겼다.

"이 지도는 어디서 났어? 거기에 뭐가 있는데?"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지도의 출처는 신경쓰지지 말거라."

묘묘 공주가 말했다.

"이 지도가 잘못 기록한 게 아니라면 여든 그루의 천정화가 있을 거다. 천정화는 저급 영약이지만 팔면 한 그루당 무왕단 천 알은 받을 수 있어."

"뭐?"

진남은 깜짝 놀랐다. 그는 천정화를 잘 몰랐다. 하지만 한 그루의 천정화가 무왕단 천 알을 받을 수 있으니 여든 그루면 무왕단 팔만 알이었다.

진남은 심호흡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천정화를 따러 가는 게 위험할 수도 있는데 절반은 나눠줘야 갈 수 있어."

"절반?"

묘묘 공주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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