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단전을 폐하겠다
"나의 피는 나의 정신을 품고 있다. 이 피로 온 천지를 적시고 나의 뜻이 스며들게 하자."
진남은 손가락을 깨물어 일곱 방울의 선혈을 고도에 떨궈서 스며들게 했다.
칠종죄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가장 쉬운 방법인 '적혈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피로 제련하고 무기가 자신의 몸과 일체가 되게 하려고 했다.
선혈이 고도를 적시자 칼들은 진동하더니 격렬하게 웅웅 소리를 냈다. 일곱 개의 서로 다른 의지가 고검에서 나오더니 진남의 뇌리에 꽂혀 강렬하게 반항했다.
영기는 원래 스스로 영지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칠종죄는 보통 영기와 달라서 피로 제련하려고 하자 반항을 했다.
진남은 오만, 질투, 폭노, 나태, 탐욕, 폭식, 색욕 등 일곱 개의 부정적인 의지가 뇌리에 들어와 그를 동화시키려고 하고 나락으로 끌고 가려는 것을 느꼈다.
"내 무도심은 창람대륙에서 역사를 새로 쓸 정도로 단단하다. 그런데 고작 부정적인 의지 따위가 나를 간섭하려 해?"
진남은 콧방귀를 뀌더니 두 눈에서 한기를 뿜으며 부정적인 정서를 무시하고 계속 연화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하루 밤낮이 지났다.
진남의 앞에 놓인 일곱 자루의 고도들이 순간 떨리더니 강한 도의를 뿜으며 진남과 하나가 되었다.
"드디어 연화했어. 이제부터 이 일곱 자루의 고도가 나와 함께 전장을 누비겠군.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들이 후천지기의 위엄을 찾고 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게."
진남은 일곱 자루의 고도의 의지가 점점 순순해지는 것을 느꼈다. 진남의 두 눈에 희색이 돌았다.
"시간이 되었으니 도장으로 가 볼까?"
진남은 일어나서 전음표를 꺼내더니 의념(意念)을 전달했다.
전음표는 묘묘 공주가 선물한 것인데 의념을 전달할 수 있는 도구였다.
진남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공법전으로 향했다.
* * *
외원 도장에는 황용, 묵자삼, 서유, 대호 등 무연각에 갈 제자들이 이미 와 있었다.
게다가 도장 주위에는 적지 않은 제자들이 모여있었다. 제자들은 모두 내원 제자들이었다.
무연각이 이 년에 한 번씩 열리기 때문이었다. 매번 무연각에 들어간 외문 제자들은 돌아오면 내원에 들어가게 되고 내원 제자 중 천재가 되었다.
내원 제자들은 누가 무연각으로 가는지 미리 알아보려고 온 것이었다.
물론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외원 심사에서 종문을 뒤흔든 진남이었다.
진남이 일곱 자루의 고검을 등에 지고 도장에 오자 모두가 시선을 돌렸다. 원래도 북적거리던 도장이 들끓었다.
"봐봐, 진남이야! 외원 심사 일 위!"
"저자가 진남이라고?"
"와, 역시 반보 선천 경지의 수행으로 선천 경지 이 단계를 이긴 사내야."
"진남은 태고 무수야. 지금 그는 선천 경지 일 단계와 비슷하거든?"
"그게 중요해?"
"……"
진남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이 이렇게 인기 있을 줄 몰랐다.
예전 같았으면 매번 그가 등장하면 욕설이 끊이지 않았는데 오늘 보니 그는 내원 제자들의 우상이 되어있었다.
황용 등 네 사람은 속으로 감탄했다. 그들도 예전에는 진남과 같은 급의 천재였다. 그런데 한 번의 심사로 진남이 우뚝 솟아 종문에 이름을 날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때 갑자기 강대한 기세가 하늘에서 소용돌이치더니 엄숙하기 그지없는 호통 소리가 들렸다.
"조용하거라!"
호통 소리는 무왕 경지 강자의 위엄을 담고 있어서 산처럼 사람들을 내리눌렀다.
들끓던 현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독수리 눈썹을 가진 흑포 노인은 위엄있었다. 그는 발을 허공에 디디고 천천히 걸어왔다.
진남은 흑포 노인을 어디선가 본 것만 같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흑포 노인은 도장으로 걸어와 황용 등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나는 내문의 삼장로 막경이다. 이번에 종문의 명을 받고 너희 다섯 명을 무연각에 데려가려고 왔다."
말을 마친 막경은 시선을 진남에게 돌리더니 살기를 감추지 않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진남이지? 나는 네게 아주 관심이 많다."
그 말에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진남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진남은 드디어 이 흑포 노인이 왜 익숙한 느낌이 들었는지 깨달았다.
막경은 막려의 아버지였다.
진남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뇌리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났다.
그와 막경은 원수 같은 사이였다. 외문 심사에서 진남은 사대 전주의 손을 빌어 막경을 형벌전에 처넣고 십 년을 가뒀다.
막려의 아버지인 막경이 당연히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진남은 생각이 정리되자 평온한 표정으로 성큼 나서서 공수했다.
"막 장로께서 관심을 주시니 영광입니다."
다른 제자들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들은 진남과 막경의 모순을 잘 몰랐지만,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흥!"
막경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날카롭게 말했다.
"영광? 영광은 무슨! 진남, 내 아들 막려는 너와 아무런 원한도 없었다. 그저 말 몇 마디 더한 걸 가지고 형벌전에 가두고 십 년 동안 감금을 당하게 만들다니! 이건 분명 내문 삼장로인 나를 안중에 두지 않은 거다."
막경의 호통 소리가 우레처럼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 웅웅거렸다.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진남과 내원 삼장로 사이에 이런 원한과 갈등이 있을 줄 생각도 못 했다.
진남은 막경의 호통에 여전히 안색 하나 안 변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막 장로, 말을 가려서 해주세요. 막려가 형벌전에 갇힌 것은 형벌전 전주의 결정입니다. 저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내원 제자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소문에 의하면 진남은 겁이 없다고 했다. 시비를 건 사람이 누구든 망설임 없이 맞선다고 했다.
오늘 진남이 내원 삼장로에게 맞서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으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 네 말이 맞다! 그 일은 더 따지지 않겠다."
막경의 안색이 차분해졌다. 전혀 화가 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의 말투가 변했다.
"진남, 너는 태고 무수라서 경지가 무척 빨리 제고된다. 나는 네가 주화입마할까 걱정되는구나. 그러니 무연각에 들어가기 전에 특별히 무예를 가르쳐주겠다."
말이 끝나자 막경은 성큼 나서더니 손가락으로 진남을 찌를 듯 돌진했다. 무왕 경지의 힘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제자들은 경악했다.
막경이 사람들 보는 앞에서 이렇게 대놓고 진남에게 손을 쓸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지난번 외원 심사에서 외문 대장로와 형벌전 부 전주가 진남을 공격한 일 때문에 사대 전주가 화를 냈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막경은 뭘 믿고 당당하게 진남을 공격하는 걸까?
진남도 당황해서 미처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진남은 막경이 자신을 상대할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직접 달려들 줄 몰랐다.
'막경이 화가 나서 자신의 행동을 조종하지 못하는 걸까? 무왕 경지까지 수련한 삼장로가 설마 이성을 잃은 걸까?'
진남이 생각하는 사이에 강력한 손가락이 그의 어깨를 뚫었다. 진남은 피할 새도 없었다.
"윽!"
진남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깨에 전해지는 뼈를 에는 듯한 아픔에 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방금 고작 십 분의 일 할의 힘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못 피했어? 반응이 너무 늦다. 많은 훈련이 필요하겠구나."
막경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그는 성큼 나서며 말했다.
"잘 보거라!"
막경이 다시 공격을 해왔다. 이번에는 한 손가락이 아니라 세 손가락이었다.
그는 진남의 두 다리와 단전을 향해 찔렀다.
이 세 손가락을 다 맞는다면 진남은 생명을 잃지는 않아도 중상을 입고 한달 내에 회복하기 힘들 것이었다.
진남의 안색이 변했다. 전에 없는 위기감에 그가 긴장했다. 백현팔보를 최고 단계까지 끌어올려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피했다.
하지만 두 개의 진기만 피하고 한 개는 피하지 못해서 왼쪽 다리에 맞았다.
"윽!"
진남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깨와 왼쪽 다리에서 전해지는 아픔은 진남이라고 해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막경이 잔인하게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두 가닥의 진기 사이에 이상한 힘이 섞여 있었다.
그 힘은 진남을 공격한 다음 그의 몸 안으로 들어가서 끊임없이 휘젓고 다니는 바람에 통증이 열 배는 더 했다.
그 모습에 안색이 변하지 않는 제자들이 없었다.
그들은 이제야 알아차렸다. 막경이 여기까지 온 목적은 진남에게 중상을 입히기 위해서였다.
진남은 이를 악물었다. 두 눈에는 짙은 살기가 번뜩거렸다.
"내 수행이 당신과 무슨 상관있어요! 막경, 그냥 솔직하게 말해요. 나를 죽이고 싶다고! 오늘 나를 죽이지 못하면 반드시 복수할 겁니다!"
"복수하겠다고? 이게 무슨 일이냐? 이 정도 통증에 벌써 주화입마를 하다니? 보아하니 네가 태고 무수가 된 후 경지는 빨리 올랐지만, 폐단이 너무 많구나.
네가 천재이고 미래가 기대된다는 점을 감안해서 오늘은 단전만 폐하겠다. 그러니 나중에 단약을 이용해서 다시 단전을 만들고 착실하게 수련하거라."
막경은 입가에 독살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성큼 나섰다. 그의 온몸에서 웅장한 기세가 손바닥에 실려 진남의 단전을 향해 날아갔다.
이번에 막경은 진남의 단전을 완전히 부숴버리려 했다.
황용 등 네 명의 제자들이 그 장면에 안색이 급변했다. 그들은 막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실력이 안 되었다.
진남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핏기가 가셨다. 덮쳐오는 막경을 보자 두 눈에 불이 났다.
"막경! 당신이 감히!"
막경은 비웃었다.
막경도 잘 알고 있었다. 진남은 선노가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도 뒤에서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히 내 하인을 괴롭혀? 너 살기 싫구나!"
강대한 기세가 소용돌이치며 맹수처럼 덮쳐왔다.
막경의 몸이 굳었다. 무왕 경지 최고 실력에 경험이 풍부하고 육감이 뛰어난 그는 본능적으로 거대한 위험을 감지했다.
그가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면 아마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막경은 망설임 없이 몸을 떨어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나며 나타난 사람을 쳐다봤다.
대체 누구기에 이토록 강대한 힘이 느껴지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당황했다. 자리에 있던 제자들도 당황했다.
막경을 막은 사람이 새하얗고 작은 여자애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로 묘묘 공주였다.
'열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어떻게 장로인 막경을 막았을까?'
진남은 묘묘 공주를 보자 긴장이 풀렸다. 그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이 일은 너와 상관없다.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
묘묘 공주는 진남을 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굳은 얼굴을 하고 싸늘한 눈으로 막경을 노려보며 위엄을 풍겼다.
막경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오히려 시름을 놓았다.
그는 종문의 어느 장로가 강림한 줄 알았다. 그런데 어린 여자애일 줄이야.
막경은 조금 전 느꼈던 거대한 힘을 생각하자 실소가 터졌다.
'여자아이가 무슨 위협이 될 수 있을까? 분명 잘못 느꼈을 것이다.'
"어느 집 아이인지 모르겠지만 얼른 돌아가거라. 내 너에게 따지지 않겠다."
막경이 오만하게 묘묘 공주를 훑어봤다.
"그래?"
묘묘 공주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작은 몸으로 성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