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태고 무수
묘묘 공주는 선노의 말에 기분이 상해서 얼굴을 찡그리고 공격적으로 말했다.
"영감탱이, 무슨 말을 하는 게냐? 누가 어린 여자애라는 거냐? 선천단 오십만 알을 보상해주지 않으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다."
선노의 표정이 굳었다.
여자애가 감히 자신에게 오십만 알의 선천단을 보상해달라고 요구할 줄은 몰랐다.
현령종의 태상 장로인 선노는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을 갈취하려는 사람을 만났다.
"꼬맹아, 분수에 맞게 말하거라."
선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무형의 위압감이 그에게서 풍겨 나와 건물 전체에 꽉 찼다.
"분수에 맞게 말하라고?"
묘묘 공주는 한 걸음 나서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공주다. 나는 항상 분수에 맞게 말한다."
말이 끝나자 묘묘 공주에게서 엄청난 기세가 용솟음쳤다. 먹이를 노리는 맹수가 입을 쩍 벌리는 것 같았다.
선노의 안색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는 앞에 있는 여자아이가 이렇게 엄청난 경지일 줄 몰랐다. 심지어 자신보다 더 강한 것 같았다.
선노의 뇌리에 수백 가지의 생각이 스쳤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진남을 바라보며 마른기침을 하며 말했다.
"진남아, 이 여자애……이 공주는 대체 누구냐?"
진남은 묘묘 공주에게 눈치를 주었다. 오만한 묘묘 공주가 혹시라도 화를 낼까 봐 얼른 앞으로 다가가 선노의 귓가에 대고 몇 마디 했다.
물론, 진남은 묘묘 공주의 진짜 신분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저 묘묘 공주는 진씨 가문의 은인인데 이번에 현령종에 온 것은 그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했다.
선노는 진남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강자들이 사적으로 무예를 전수해 주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선노가 놀란 것은 진남이 운수가 좋아서 묘묘 공주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선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묘묘 공주. 이 늙은이가 방금 실수했소. 미안하게 됐소.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오."
묘묘 공주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좀 전의 강한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이상하리만치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어머, 너무 귀여운 늙은이구나.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어. 영감을 처음 봤을 때 벌써 사리에 밝은 것 같았어. 자자자, 다시 한번 공주마마라고 불러보거라."
선노의 몸이 굳었다. 현령종의 태상 장로인 그에게 '귀엽다', '사리에 밝다'라는 말을 쓰다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화를 낼 수 없었다.
진남은 그 모습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선노가 묘묘 공주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걸 보니 그가 당했던 억울함도 조금 풀렸다.
"아, 선노. 묘묘 공주는 이제부터 현령종에 오래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니 신분을 보장해주시기 바랍니다."
진남이 얼른 말했다.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참 침묵하더니 말했다.
"공주께서 우리 현령종에 오셨으니 명예 장로의 신분을 드리겠소. 이 신분은 현령종에서 태상 장로와 종주 바로 아래 서열이요. 종문 규정을 어기지 않는다면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을 것이요. 공주마마, 이 신분이 마음에 드오?"
묘묘 공주는 선노가 '공주마마'라고 부르자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그녀는 선노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녀의 원칙만 건드리지 않는 문제라면 무엇이든 다 대답할 기세였다.
"그럼 달마다 단약을 얼마나 가질 수 있어?"
묘묘 공주가 눈을 깜박거렸다.
"그건……"
선노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달마다 무왕단 십만 알을 받을 수 있소. 나와 같은 대우요."
선노의 말에 진남은 놀라서 멍해졌다.
'무왕단 십만 알이라니? 묘묘 공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달마다 십만 알의 무왕단을 가져갈 수 있다는 거야?'
묘묘 공주는 기분이 좋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영감탱이, 그럼 그렇게 해. 이제부터 나는 현령종의 명예 장로다."
선노의 두 눈에 기쁜 기색이 스쳤다.
진남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실 진남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낙하 왕국에는 사대 종문이 있는데 종문끼리 서로 마찰이 있고 싸우기도 했다. 만약 현령종에 묘묘 공주와 같은 무종 경지의 강자가 있다면 다른 종문에게도 커다란 위협을 줄 수 있었다.
무종 경지의 강자는 어느 종문에서나 최고의 전투력이었다
선노가 매달 십만 알의 무왕단을 대가로 무종 경지의 강자를 얻는 건 이득이었다.
묘묘 공주에게 영패를 건네주고 선노는 기분이 부쩍 좋아졌다. 그는 진남에게도 자룡적아령을 하나 건네며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이 영패는 절대 망가뜨리지 말거라. 그리고 너에게 궁금한 게 있다. 네 무혼은 대체 몇 등급이냐? 어떻게 반보 선천경지로 선천 경지 이 단계인 남궁성을 이긴 게냐?"
선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진남을 보았다.
진남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차렸다. 그날 만상도에서 만난 노인이 선노와 만난 게 분명했다.
"제 무혼 등급은 잠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선노, 부디 이해해주세요."
진남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선천 경지 이 단계인 남궁성을 이긴 건 제가 태고 영액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태고 영액을 복용한 이후 제 체내의 진기가 태고 진기로 변했어요. 그래서 오늘 선노께 그 문제를 여쭈려고 해요."
선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태고 진기 때문이구나. 너는 이제 태고 무수다. 태고 무수란 태고 진기를 수련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태고 진기를 수련하면 다른 무수들과 달리 경지가 계속 반보 선천 경지에 머무르고 다른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지. 하지만 체내의 진기가 선천 경지 십 단계까지 축적이 된 후에는 바로 무왕 경지의 강자가 될 수 있다."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잠깐 고민하더니 물었다.
"선노, 태고 무수는 지금의 우리와 뭐가 다른가요?"
"유일하게 다른 점은 태고 무수는 진급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왕 경지를 돌파할 때는 보통 사람의 세배 노력이 필요하다."
선노는 진남을 힐끗 쳐다보더니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진남아, 한 달 만에 쉬체 경지 일 단계를 돌파했지?"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선천 경지 일 단계를 돌파하는데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선노는 묘묘 공주를 보더니 무언가 알아차린 듯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진남아, 사형이 너를 무척 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내 경고 좀 해야겠다. 태고 무수가 선천 경지를 연마하는 속도는 확실히 빠르지만, 반드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전에 현령종의 제자들도 빨리 수련하고 싶은 욕심에 태고 무수의 방법을 시도하다가 수십 년이 지나도 무왕 경지를 돌파하지 못했다. 황급 십품의 천재도 태고 무수가 된 후 오 년 동안 수많은 자원을 사용하고 나서야 겨우 무왕 경지가 되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빠졌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그려나갔다.
'태고 무수가 무왕 경지를 돌파하려면 큰 어려움이 있다고? 하지만 그때가 되면 전신의 혼도 현급 무혼이 될 수 있겠지? 현급 무혼이 될 수 있다면 태고 무수의 결점 따위는 충분히 무시할 수 있을 거다.'
옆에 있던 묘묘 공주가 입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공주의 말은 한마디조차 진귀한 것이니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 * *
선노와 대화를 나눈 후 진남은 묘묘 공주를 남겨두고 혼자 공법전으로 향했다.
선노는 태고 무수는 수련 속도가 엄청 빨라서 무예를 연습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때문에 진남은 무연각에서 열흘을 보낼 예정이었다. 그동안 제자들이 무예를 연마하는 것도 관찰하고 자신을 충실하게 하고 싶었다.
진남은 이제 현령종에서 유명했다. 그가 공법전 삼 층에 도착하자 흑포를 입은 장가 연신 아부하며 진남을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대외에 공법전 삼 층은 수리를 시작하겠으니 다른 제자들은 출입을 금지한다고 선포했다.
"이곳이야말로 천당이구나."
진남은 대전에 놓인 고적들을 보자 눈에 열기가 일었다. 그는 굶주린 늑대처럼 고적들을 한 권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진남은 무예의 오묘한 세계에 빠져서 나올 수 없었다.
진남이 공법전에 푹 빠져 있는 동안 현령종에서 커다란 사건 몇 개가 벌어졌다.
한 번은 한 내문 장로가 내문 제자를 지도할 때 새하얀 여자애가 갑자기 나타나서 그 내문 장로를 한바탕 혼냈다. 내문 장로는 화가 나서 그 여자애를 때리려고 했지만 결국 내문 장로가 중상을 입고 가지고 있던 단약도 모두 빼앗겨 버렸다.
다른 사건은 더 이상했다. 형벌전 전주가 형벌전에 가는 길에 약탈을 당해 지니고 있던 단약을 전부 빼앗겼다.
이 두 가지 일은 선노를 놀라게 했다. 그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묘묘 공주를 찾아갔다. 그가 묘묘 공주에게 어떤 조건을 제안했는지 모르지만 그제야 그녀가 소란을 멈추었다.
물론 빼앗은 단약은 돌려주지 않았다.
그 이후로 현령종의 고위 관리들 사이에 이런 말이 돌았다.
'새하얀 여자애를 건드리지 말자.'
* * *
시간은 천천히 흘러 어느덧 여덟 날이 지났다.
공법전 삼 층에 있던 진남이 서서히 눈을 떴다. 이글거리는 그의 두 눈엔 마치 무수한 신광이 번쩍이는 것 같았다.
여덟 날 동안 진남은 삼 층의 고적을 전부 다 읽었는데 수확이 적지 않았다.
진남은 입미지경 위에 더 높은 무도지경 취세(聚势)가 있다는 걸 알았다. 취세는 천지대세를 모을 수 있어 그 경지가 매우 강력했다.
뿐만 아니라 진남은 여덟 날의 독서를 통해 무예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진남은 이제 한 주 향이 타는 시간 동안 중급 무예를 식은 죽 먹기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루 동안 노력하면 고급 무예를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종급 무예(終級武技)를 만드는 건 시간을 들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온전히 인연과 운수를 봐야 했다.
"삼 층의 고적을 다 읽었는데도 이틀이나 남았으니 칠종죄를 연화해야겠어."
진남은 결심했다.
칠종죄를 얻은 이후로 제대로 연화할 시간이 없었다. 기회가 있을 때 인기합일로 연화하려고 했다.
진남은 저장 주머니에서 오만, 질투, 폭노, 나태, 욕심, 폭식, 색욕 등 일곱 자루의 칼을 순서대로 꺼내서 앞에 펼쳐놓았다.
"무기는 영기, 후천지기, 선천지기, 왕도지기, 황도지기 등으로 나눈다. 칠종죄는 영기이긴 하지만 체내에 강대한 힘을 품고 있어서 그 힘을 깨우면 후천지기에 뒤지지 않을 거야."
진남의 눈에 열정이 타올랐다.
내문 제자라고 해도 후천지기를 얻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칠종죄는 일곱 자루의 칼이었다. 만약 각성한다면 일곱 개의 후천지기이고 합친다면 보통의 후천지기보다 훨씬 강대했다.
진남은 마음을 가다듬고 일곱 자루의 고도를 바라보았다. 모두 서늘한 빛을 풍기고 있었는데 날카로운 검광을 날름거려서 마치 모든 것을 부숴버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