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묘묘 공주
"나?"
여자아이가 살며시 고개를 들더니 새하얀 목이 드러났다. 마치 선녀 같았다.
"나는 너의 주인, 묘묘 공주다."
"묘묘 공주?"
진남은 다소 당황했다. 이내 그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고른 고삼이 지금 살아있는 여자아기가 되었다는 걸 믿을 수 있었다.
뭔가 물어보려던 진남은 갑자기 뭔가 생각나 안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살기등등해서 날카롭게 물었다.
"묘묘 공주? 네가 무슨 공주든 나와 상관없어. 네가 내 영약을 얼마나 삼켰느냐? 이제 모두 돌려줘라. 순순히 내놔! 내가 손을 쓰게 하지 말고!"
진남은 온몸의 기운을 순간적으로 폭발시켜 발아래의 돌멩이를 부숴버렸다.
묘묘 공주는 그런 진남을 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의 하인이니 너의 모든 건 다 내 것이다."
"네 것이긴 개뿔!"
진남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분노가 치밀어올라 크게 한발 내디뎠다. 묘묘 공주를 향해 하늘을 찌르는 기세를 내뿜는 한 방을 날렸다.
"으흥?"
묘묘 공주는 눈썹을 찡그리더니 손가락을 굽혀 진남을 향해 튕겼다.
이 간단한 한 수는 보기에 아무런 힘도 없는 것 같았지만, 이를 본 진남의 안색이 갑자기 확 굳어졌다.
진남은 한 번의 튕김에 담긴 거력을 읽어냈다. 그는 손가락 튕김 앞에서 한 마리의 벌레처럼 아무런 저항을 할 수도 없었다.
쿵!
거대한 힘이 진남의 이마를 때렸다.
진남은 순간 너무 아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는 방대한 거력에 맞아 연거푸 뒤로 서너 발을 물러섰다.
그의 분노가 순식간 사라졌다.
진남은 미련하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이 자신의 이마를 향해 튕기는 순간 힘이 절반이나 줄어들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었다면 그의 머리통은 바로 날아갔을 것이었다.
"너……!"
진남은 고통을 삼키며 묘묘 공주를 바라봤다. 그는 손을 내밀어 이마를 감싸 쥐었다. 몸에서 식은땀이 송골송골 돋아났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손가락의 힘에 비해 아픔이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묘묘 공주는 그런 진남을 보고 놀리듯 말했다.
"나의 하인아, 너무 까불지 말거라. 방금 전의 그 한 방은 교훈을 준 것이다."
진남은 그녀를 바라보며 이를 깨물고 가만히 전신의 눈을 운행했다.
그는 이 묘묘 공주의 실력이 도대체 얼마나 강대한지 보고 싶었다.
전신의 눈으로 묘묘 공주를 살핀 진남은 깜짝 놀랐다.
'이 묘묘 공주의 실력이 선노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잖아?'
선노는 현령종의 태상 장로로 그 경지가 현령종의 종주(宗主)와 비슷한 무종 경지였다.
즉 앞에 있는 이 열세 살쯤 돼 보이는 묘묘 공주도 무종 경지의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진남이 전신의 눈을 통해서 살펴본바 묘묘 공주의 체내에는 신비한 힘이 잠들어있었는데, 그 힘이 선노의 힘을 초과한 것 같았다.
묘묘 공주는 진남의 시선을 느꼈는지 눈이 싸늘해졌다.
"하인 주제에 나를 계속 훔쳐보다니. 멈추지 않고는 내가 무정하다고 탓하지 말거라."
그녀의 말에 진남은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전신의 눈을 거둬들였다. 묘묘 공주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달라졌다.
진남은 속으로 묘묘 공주를 무척 원망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경지를 읽어낸 후 복수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었다. 그는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진남은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묘묘 공주, 너처럼 실력이 강대한 사람이 왜 나 같은 사람을 신경 쓰는 거야. 그냥 내 단약을 돌려주면 안 돼? 그리고 각자 갈 길 가자. 이제부터 우린 아무런 연관이 없는 거야."
'묘묘 공주를 건드릴 수 없지만, 멀어질 수는 있잖아?'
묘묘 공주는 진남의 말에 기분이 상해서 말했다.
"그게 하인의 태도냐? 네가 나에게 피 한 방울을 떨구는 바람에 혈계(血契)가 맺어졌고 우린 서로 방원 백 리 이상 떨어지면 안 된다. 그것만 아니면 나는 이미 가버렸을 거다. 그리고 단약은 네가 당연히 나에게 줘야 하는 건데 왜 다시 돌려줘? 네가 처음으로 하인 노릇을 해서 잘 모르는 점을 감안해서 큰 자비를 베풀어 용서해 주겠다."
묘묘 공주가 웃었다. 자신의 결정이 영명하다고 생각해 기분이 좋았다.
진남은 그녀의 말에 하마터면 어질어질해 쓰러질 뻔했다.
'혈계가 맺어져서 방원 백 리를 떠날 수 없다고? 그 말은 평생 묘묘 공주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근데 내 단약을 전부 처먹어버리고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거지?'
진남은 이를 갈며 말했다.
"묘묘 공주, 네가 뭐가 됐든 그따위로 행동하면 안 돼!"
말을 하는 진남의 등 뒤에서 열 갈래의 노란빛이 솟아올랐다. 전신의 혼이 우뚝 솟아올랐다.
"응?"
묘묘 공주는 진남을 혼내 주려고 하던 찰나에 눈앞에 나타난 전신의 혼을 보자 행동을 멈추었다.
"내가 인간 모습을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약한 시기이긴 하지만 저번과는 다르다. 오늘 한번 보자꾸나. 고작 황급 십품 무혼이 대체 얼마나 현묘한지 말이다!"
묘묘 공주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발을 내디디니 그녀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방대한 힘이 솟구쳐 나왔다. 그 힘은 하늘을 찌를 것 같은 기세로 전신의 혼을 향해 세차게 나아갔다.
쿵!
진동 소리가 들렸다.
묘묘 공주는 얼굴에 핏기가 가시더니 연속 수십 걸음 뒤로 밀려났다. 두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 순간, 그녀는 고작 황급 십품의 무혼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힘을 느꼈다.
그 힘은 전성기 때의 그녀라도 넘볼 수 없었다.
'고작 황급 십품밖에 안 되는 무혼인데…… 대체 정체가 뭐지? 어떻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거야?'
진남은 묘묘 공주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묘묘 공주와 전신의 혼이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한다는 걸 느꼈다. 게다가 전신의 혼이 우세를 차지했다.
그 결과에 진남의 마음이 차분해졌다.
방금 전신의 혼을 방출한 것도 묘묘 공주를 겁주기 위해서였다. 진남은 결과에 만족스러웠다.
진남은 입가에 냉소를 짓고 말했다.
"내가 함부로 괴롭혀도 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거라."
"쳇."
묘묘 공주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네 무혼이 강대한 건 인정한다. 하지만 혈계 때문에 내가 너를 못 죽이니 망정이지 아니면 네 무혼 따위가 감히 나를 막을 수 있겠느냐?"
진남은 침묵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혼은 무혼이고 중요한 건 자신의 실력이었다.
그녀의 말에 진남은 안심했다. 그녀가 자신을 공격하지 못하니 생명의 위험도 없었다.
"음……"
묘묘 공주는 턱을 괴고 한참 생각하더니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내, 하인을 아끼니 단약을 공짜로 가져가진 않을 거다. 이번에 삼킨 무왕단 만 알, 선천단 십만 알 그리고 충왕단 한 알은 스무 방울의 태고 영액으로 보상해주마."
"뭐? 태고 영액을 스무 방울이나 주겠다고?"
진남은 깜짝 놀랐다. 분명 잘못 들었을 거라고 귀를 의심했다.
전에 진남은 태고 영액을 세 방울만 복용했는데도 그의 단전 내 태고 진기가 선천 경지 일 단계에 달했다.
'만약 태고 영액을 스무 방울 복용하면 태고 진기가 선천 경지 삼 단계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진남을 보며 묘묘 공주는 교활하게 웃었다.
"태고 영액 스무 방울 가져가려면 내 조건도 들어줘야 한다."
"어떤 조건?"
진남은 안색이 변했다.
"조건은 간단하다."
묘묘 공주가 진지하게 말했다.
"혈계 때문에 십 년 동안 너와 나는 떨어질 수 없다. 그러니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내 신분을 드러내면 안 되고 서로의 비밀을 지켜줘야 한다. 둘째, 나는 네 단약을 더는 그냥 뺏지 않을 거다. 충분한 대가로 바꿀 거다. 셋째, 내 하인으로서……"
묘묘 공주는 단숨에 여섯 개의 조건을 제시했다.
"이 조건들이다. 응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들만 들어주면 되는 거야?"
진남은 살짝 놀랐다. 그가 생각하는 묘묘 공주는 뻔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제시한 조건은 공평하게 협력하는 거였다.
묘묘 공주는 그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왜? 조건이 너무 적으냐? 내 기꺼이 더 추가하마."
이 말을 할 때 묘묘 공주는 사실 우울했다.
전신의 혼이 아니었다면 묘묘 공주도 이런 조건을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빼앗으면 그만이었다.
진남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네 조건에 응하지.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스무 방울의 태고 영액을 나에게 줘야지."
묘묘 공주는 이번에는 매우 통쾌했다. 옥같이 하얀 손가락으로 진남을 가리키자 손가락 끝에 스무 방울의 태고 영액이 나타났다.
진남은 두 눈을 반짝거리며 옥병을 꺼내 들고 그 스무 방울을 잘 넣었다.
스무 방울의 태고 영액에서 거대한 힘을 느낀 진남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피었다.
진남은 기분이 좋아져서 공수하고 인사했다.
"묘묘 공주, 고마워!"
진남이 처음으로 '공주'라고 불렀다.
묘묘 공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무척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좋아! 아주 좋아! 소남자(小南子), 그 공주라는 말이 듣기 좋구나! 이제부터 내가 네 뒤를 봐주마. 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내 반드시 불태워 죽일 거다!"
진남은 '소남자'라는 단어를 아예 무시하고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진짜?"
묘묘 공주는 얼굴에 웃음기 가득한 채로 말했다.
"당연히 진짜지. 하지만 전제 조건은 충분한 단약을 제공하는 것이다."
진남은 말없이 다른 문제를 생각했다.
'묘묘 공주는 무종 경지의 강자이고 경지가 선노와 맞먹는다. 그녀가 곁에 있으면 목숨을 부지하는 비장의 카드가 하나 더 많아진 거잖아? 비록 단약을 지불해야 하지만 일반적인 무종 경지 강자를 고작 단약으로 조종할 수 있는가?'
진남은 묘묘 공주가 곁에 있는 게 나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남은 태고 영액 스무 알을 바로 연화하지 않았다.
그는 묘묘 공주를 데리고 선노의 처소로 찾아왔다.
선노를 방문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외원 심사에서 진남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선노 덕분이었기에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했다.
둘째, 진남은 지금 반보선천 경지이긴 하지만 체내의 태고 진기는 이미 선천 경지 일 단계에 이르렀다. 진남은 선노를 찾아가 자신의 이런 상황을 물어보려고 했다.
셋째, 묘묘 공주는 현령종에 갑자기 나타났고, 경지도 높았기에 신분이 필요했다. 아니면 현령종 사람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었다.
진남과 묘묘 공주가 공법전 옆에 있는 누각에 들어서자 선노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나의 어린 벗 진남, 드디어 왔구나.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느냐? 응? 누굴 데리고 왔구나?"
외원 심사가 끝난 후부터 선노는 줄곧 진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진남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진남이 오지 않자 우울했다.
거기다 진남이 외부인을 데리고 오자 선노는 표정이 더욱 안 좋아졌다. 그는 묘묘 공주를 훑어보더니 딱딱하게 말했다.
"어린 여자애는 왜 데리고 왔느냐?"
진남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무언가 말하려고 하다가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