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파렴치하구나
십일 호는 바로 초운이었다.
초운은 소냉처럼 괴로워하지 않고 냉정하게 분석하며 말했다.
"진남 사제, 누군가 우리를 이용하여 네 마음을 꺾으려 하는구나. 하지만 신경 쓸 필요 없다. 나와 소냉은 모두 너를 지지한다."
이어 초운은 심판을 보며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제가 졌습니다."
심판이 바로 큰소리로 외쳤다.
"오 호 진급!"
진남은 살며시 주먹을 불끈 초운을 한번 바라봤다. 그는 이내 몸을 돌려 걸어 내려갔다.
적지 않은 제자들은 이상함을 느꼈다.
그들은 진남이 연속 두 번이나 가까운 친구를 만난 걸 눈치챘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공교로웠다.
시합은 계속 진행되었다.
다섯 번째 시합에서 진남은 또 소냉을 만났고 소냉은 패배를 인정했다.
여섯 번째 시합에서 진남은 또 초운을 만났고 초운은 패배를 인정했다.
일곱 번째 시합에서 진남은 다시 소냉을 만났고 소냉은 패배를 인정했다.
열 번째 시합에서 진남은 다시 초운을 만났고 초운은 패배를 인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소냉은 여덟 번째 시합에 황용을 만나 패배를 인정했다.
아홉 번째 시합에는 남궁성을 만나 패배했다.
열두 번째 시합에서 다시 황용을 만나 패배를 인정하고 탈락했다.
초운도 연속으로 남궁성, 황용을 만나 탈락했다.
소냉과 초운 두 사람은 표정은 평온했지만, 눈은 분노로 움찔거렸다.
다른 제자들도 이제는 모두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채곤 분개한 얼굴로 말했다.
"이게 뭐야? 이건 대놓고 진남을 겨냥한 거잖아?"
"허……. 소냉과 초운은 진남을 만나지 않으면 황용과 남궁성을 만나는구나!"
"대장로가 권력을 이용하여 고의로 진남을 누르는 것이 뻔하잖아."
"이게 무슨 심사야? 한 제자를 누르기 위해 이렇게 대놓고 권력을 남용하다니."
"……"
장로석의 여러 장로들은 그저 속으로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이러한 상황에 그들이 어찌 분노하지 않겠는가? 다만 대장로의 권력에 그들이 왈가왈부할 처지가 못 되었다.
그들은 진남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을 건드렸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진남은 연속 아홉 번을 이겨 이제 마지막 한 번만 이기면 순조롭게 두 번째 시합에 진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남의 얼굴엔 기쁨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의 몸에서 차가운 살기가 뿜어 나와 주위를 휩쓸었다.
대장로 정표의 행동에 진남은 철저히 화가 났다.
그는 상대방이 이렇게 비열하게 그를 공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하하! 진남아 아홉 번을 이겼느냐? 참으로 대단하구나!"
남궁성이 사람들 속에서 걸어왔다. 입가에 웃음을 담고 말했다.
"다만 너의 두 친구는 참으로 아깝게 됐다. 이름이 소냉과 초운이지? 그들은 서열 십일 위, 십이 위고 경지도 떨어지지 않던데. 만약 기회가 좋다면 원래는 서열 오 위안에 들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남궁성은 조금 멈칫하더니 계속 말했다.
"다만 이 두 사람은 운이 그다지 좋지 못해 연속으로 너를 만나고 또 나를 만나고 또 황용을 만나 끊임없이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그러다 보니 결국 이번 시합에서 탈락했구나. 참으로 아깝구나!"
남궁성은 말을 마치고 고개도 흔들었다. 마치 진짜 한탄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드러난 고소해하는 표정을 누구든지 보아낼 수 있었다.
주위의 제자들은 다들 화난 눈으로 쏘아보았다. 만약 남궁성의 신분만 아니었으면 그들은 아마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
진남은 남궁성의 조롱을 듣고도 여전히 아무런 표정이 없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남궁성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속으로 시원해하며 말했다.
"응? 진남 왜 말이 없지? 넌 일 위가 아니냐? 한데 왜 아무 말이 없어. 혹 두려운 거야?"
남궁성은 진남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후련한 마음으로 몸을 돌려 떠나갔다.
이때 갑자기 줄곧 침묵하던 진남이 입을 열었다.
"잠깐만. 남궁성, 너에게 할 말이 있다."
남궁성이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한테 할 말이 있느냐? 이번 시합은 무작위로 한 거다, 나하고는 조금도 관계가 없……"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남이 몸을 날려 그의 앞까지 왔다. 진남은 손가락을 내밀어 그의 단전을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난 그저 너에게 나와 마주치지 말라고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넌 무조건 나한테 질 테니 말이다."
제자들은 모두 일제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남은 역시 진남이었다.
남궁성의 얼굴이 진남의 말을 듣고는 굳어졌다. 그가 크게 화를 냈다.
"너……"
하지만 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장로석의 칠장로가 입을 열고 크게 외쳤다.
"스무 번째 시합은 구 호 대 육 호, 삼백삼십삼 호 대 이백이십이 호, 삼백구십구 호 대 칠 호…… 오 호 대 삼 호다!"
이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갑자기 얼어붙었다.
분노하고 있던 소냉과 초운 두 사람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오 호, 진남!
삼 호, 묵자삼!
강자 대 강자의 대결이었다.
남궁성의 분노가 순간 사라지고 웃음으로 바뀌었다.
"하하하! 진남, 이번에 묵 형과 만날 줄 몰랐구나. 난 좀 궁금하구나, 너와 묵 형 중에 도대체 누가 더 강할까? 네가 나를 이긴다고 했는데…… 나를 탈락시키기 전에 너는 이미 다른 사람에 의해 탈락할 것이다!"
웃는 얼굴로 말을 마친 남궁성은 비할 바 없이 득의양양해졌다.
장내의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 더욱 분개하여 참지 못하고 분분히 입을 열었다.
"진짜 너무하구나, 이건 일부로 묵자삼을 만나게 한 거잖아. 두 사람이 싸우면 분명히 한쪽이 상하게 될 거야."
"너무하구나, 이런 게 외원 심사라니."
"하, 나는 낯이 두껍다는 말이 어떤 이를 보고 하는 말인지 오늘 확실하게 배웠어."
"……"
제자들은 전부 남궁성을 질책했다. 그들은 대장로 정표도 돌려서 욕했다.
대장로 정표는 이 광경을 보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쌀쌀맞게 웃으며 말했다.
"외원 심사는 모두 문파에 규정돼 있다! 이의가 있고 불만이 있으면 내 앞에 나와 말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아래에서 계속 쓸데없이 떠들지 말거라. 만약 계속 헛소리를 하는 게 들린다면 내가 직접 나서서 잡아내겠다!"
사람들의 얼굴빛이 변했다. 그들은 분노했지만, 정표의 위엄에 눌려 참을 수밖에 없었다.
오직 진남만이 얼굴빛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진남은 큰 걸음으로 연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어 묵자삼도 등장했다.
묵자삼은 흰색 옷을 입고 허리춤에 옥패를 하나 걸고 손에 부채를 하나 들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반보선천 경지에 도달해 매우 강대했다.
심판이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바로 시작하거라!"
진남은 두말하지 않고 저장 주머니에서 천천히 오래된 칼을 한 자루 꺼냈다.
오래된 칼은 바로 칠종죄 중의 하나이고 이름이 폭노(暴怒)였다.
묵자삼은 두 눈을 찡그렸다. 그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남, 너는 강적이야. 나도 너하고 진지하게 싸우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이용되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 너하고 싸우지 않겠다. 나는 네가 남궁성에게 도전하는 걸 보고 싶다."
말을 마친 묵자삼은 한 켠에 있는 심판에게 말했다.
"이번 시합은 나는 패배를 인정해요."
진남은 살짝 당황했다. 묵자삼이 패배를 인정할 줄이야. 그는 한참 동안 침묵한 후 말했다.
"고맙소."
묵자삼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어 몸을 날려 많은 제자들 속으로 들어갔다.
심판이 진남을 보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진남이 두 번째 관에 진급한다!"
제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심사는 무연각에 들어가느냐와 관계되고 일 위는 충왕단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풍부한 보상이 있는데 묵자삼이 패배를 인정하다니.
제자들을 저도 모르게 묵자삼에게 탄복했다.
오직 남궁성만이 얼굴의 웃음기가 사라져 보기 흉해졌다.
원래 대장로 정표의 계획대로라면 진남은 심사 내내 천재 제자들과 만나게 될 것이었다. 원래 대로라면 설령 진남의 전력이 평범하지 않아도 그를 말려 죽일 수 있을 것이었다.
"묵자삼……."
남궁성은 이를 악물고 묵자삼을 노려보았다.
도장에서는 시합이 계속되었다. 한 시진이 지나자 첫 번째 시합이 끝났다.
첫 번째 시합에서 모두 삼백아흔아홉 명의 제자들이 탈락했고 서른 명의 제자가 두 번째 시합에 진급했다.
칠장로는 사람들에게 많은 휴식 시간을 주지 않고 일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두 번째 시합은 모두 서른 명이다. 여전히 무작위로 뽑는 제도를 실행할 것이다. 차례로 십 위, 오 위에 든 사람을 선발하고 한 번도 지지 않은 사람이 쌍강결전에 들어갈 것이다. 지금부터 시합을 시작하겠다!"
"일 호 대 팔 호, 이 호 대 십삼 호, 삼 호 대 이십 호, 사 호 대 오 호……"
제자들의 얼굴빛이 다시 어두워졌다.
두 번째 시합에서 사 위인 서유를 진남과 대결하게 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대장로의 파렴치함이 도를 넘었다.
초운과 소냉, 두 사람은 눈에서 불이 떨어지고 몸의 살의가 더욱더 짙어졌다.
진남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에 고도 폭노를 들고 연무대 위에 서 있었다.
서유는 거친 청년이었다. 몸의 기질이 황용과 조금 비슷했다. 서유가 먼저 입을 열고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진남, 난 너에게 양보하지 않을 거다. 다만 네가 현광오행전을 뚫고 오호를 흠씬 때릴 정도로 실력이 매우 강하니 나 서유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나중에 만약 기회가 있으면 나는 꼭 너에게 다시 한번 도전할 거다!"
말을 마치고 서유는 몸을 날려 돌아서 떠나갔다.
심판이 바로 큰소리로 외쳤다.
"진남이 십 위 안에 진급했다!"
장내의 제자들은 모두 눈이 반짝거렸다. 다들 속으로 더없이 통쾌했다. 묵자삼뿐만 아니라 서유도 길을 비켜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남궁성과 대장로 정표의 얼굴빛이 보기 흉해졌다. 그들은 그들의 계획이 물거품이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시간이 계속 흘러 열 명 중에 다섯을 뽑기 시작했다.
이번에 진남의 상대는 황용이었다.
연무대 위에 진남과 황용이 마주 서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의 몸에서 모두 매우 위험한 기세가 뿜어 나왔다.
황용의 등 뒤에 아홉 갈래의 빛이 떠오르고 혈검이 솟아올랐다. 그는 진남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끊임없는 살기가 그의 체내에서 흘러나와 주위의 온도를 낮췄다.
이걸 본 남궁성과 대장로 정표는 의심하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황용은 바로 패배를 인정할 것 같지 않았다.
"황용, 뭘 망설이는 거예요? 당신은 오래 기다렸잖아요."
진남이 담담하게 말했다.
"설사 나를 위해 길을 비켜주지 않아도 오 위안에 들어 바로 남궁성에게 도전할 수 있어요. 그러니 나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황용의 눈에 흉악한 빛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