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내 단약을 뺏을 거야?
진남을 알아봤지만, 제자들 대부분은 여전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은 진남이 악패 오호의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남이 임자소를 죽이는 걸 직접 목격한 제자들은 말없이 태연하게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남궁 이소가 악패 오호와 연합하여 그에게 시비 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진남은 도발을 겁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방금 려홍의 말을 듣고 무도심에 변화가 생겨 얼른 돌아가서 폐관 수련하고 싶었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다음 날 다시 보자."
진남은 그 말만 던지고 바로 자리를 떴다.
그의 행동에 남궁 이소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고 무척 즐거워했다. 그의 눈엔 진남이 무서워서 도망친 걸로 비춰졌다.
악패 오호의 얼굴에도 독살스러운 웃음이 점점 짙어졌다. 그들은 몸을 움직여 진남의 앞에 날아가 그를 포위하고 가는 길을 막았다.
악패 오호의 우두머리 대호가 음침하게 말했다.
"우리 악패 오호에게 찍혔는데 어딜 가? 진남, 듣자 하니 만상 대회에서 일 위를 했다면서? 보상을 적지 않게 받았을 건데 눈치 있게 십만 알의 선천단과 구전금단 그리고 저장 주머니를 전부 이리 내놓거라.
그거 알아? 너를 죽일 수는 없어도 무예를 비기고 너에게 중상을 입혀 일어나지 못하겐 할 수 있어."
다른 네 명도 악랄하게 웃으며 주먹으로 우드득 소리를 냈다.
이번에 그들이 남궁 이소 대신 진남을 혼내주겠다고 대답한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남궁 이소가 적지 않은 보상을 약속했고, 둘째는 진남이 만상 대회에서 받은 보상이 욕심났기 때문이었다.
십만 알의 선천단과 저장 주머니 그리고 구전금단은 엄청난 재물이었다.
그 말에 진남은 멈칫하더니 표정에 살짝 변화가 생겼다. 입꼬리가 계속 푸들거렸다.
진남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악패 오호가 그의 단약을 노리자 얼마 전에 겪은 악몽이 또 떠올랐다.
진남은 깊은 호흡을 하고 고개를 들고 악패 오호를 보며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단약은 없어. 그러니 오늘은 다섯 분과 무예를 겨룰 수밖에 없겠군."
말이 끝나자마자 진남의 몸에서 쉬체 경지 구 단계의 진기와 소성입미지경의 도의가 순식간에 폭발했다.
순식간에 진남의 기세가 마치 거인이 된 듯 하늘을 찔렀다.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진남이 소문처럼 소성입미지경을 장악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들은 진남에게서 터져 나온 기세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악패 오호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좀 전까지 두 눈에 가득하던 경멸과 무시가 사라졌다.
"네가 소성입미지경을 장악했다니, 의외구나."
대호는 살벌한 시선으로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냐, 우리 다섯을 상대하기엔 부족하다."
그 말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이 다섯 명에게서 쉬체 경지 십 단계의 기세와 황급 팔품의 무혼이 솟구쳐 올랐다. 게다가 대호는 인기합일 대성 경지를 방출했다. 다른 네 명도 인기합일 소성 경지를 방출했다.
짧은 시간에 악패 오호는 모두 전력을 드러냈다.
"결진!"
대호의 외침에 기타 네 명의 몸이 움직여 발을 현(玄)위치에 두고 다섯 명이 하나의 진법을 이루었다.
진법이 형성되는 순간 그들 다섯의 기운과 힘이 순식간에 합쳐져서 하나가 되었다. 그 힘은 쉬체 경지 십 단계를 훨씬 뛰어넘었다.
제자들의 얼굴이 일제히 변했다. 그들이 놀라서 소리 질렀다.
"현광무형진(玄光無形陣)!"
"전에 내가 악패 오호에게 찍혔을 때도 이 진법으로 나에게 중상을 입혔어."
"괘씸해, 나도 이 진법에 패했어. 후에 책을 찾아보니 선천 경지의 고수가 와야 이 진법을 강제로 뚫을 수 있댔어. 반보 선천 경지에 도달했다 해도 풀 수 없다고 했어."
"그렇게 공포스럽다니!"
"……"
입을 연 사람들은 최소 쉬체 경지 구 단계는 되는 사람들이었고 외원 제자 서열에서도 앞에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도 악패 오호가 펼친 현광오행진(玄光五行陣)을 보자 두려웠다.
현광오행진은 그들의 마음에서 지울 수 없는 악몽이었다.
옆에 있던 남궁 이소는 고개를 높이 쳐들고 오만하게 말했다.
"진남 봤지? 이게 바로 네가 나에게 밉보인 결과야! 오늘 너에게 중상을 입힐 뿐만 아니라 네 단약도 다 빼앗아가겠어."
"그래?"
진남은 남궁 이소를 쳐다보지도 않고 악패 오호를 노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현광오행진을 뚫어주지."
진남의 두 눈에 시퍼런 빛이 번쩍였다. 전신의 눈이 재빨리 움직였다.
이제 전신의 눈은 완전체였다. 하늘도 땅도 다 뚫어볼 수 있고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전신의 눈을 사용하니 현광오행진이 가진 힘을 전부 통찰하고 그 속의 빈틈도 전부 확인할 수 있었다.
악패 오호는 진남의 말을 듣자 동시에 비웃었다.
"현광오행진을 파괴하겠다고? 웃기는군! 그럼 한번 받아봐라!"
대호가 호통을 쳤다. 다섯 명의 몸이 동시에 움직이며 거대한 산과 같은 기세로 응집되어 진남을 향해 무겁게 눌렀다. 주변의 땅도 진동하는 걸 보면 얼마나 강대한 힘인지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진남의 눈이 반짝하더니 손을 휘둘렀다.
끝없는 도의가 용솟음치더니 커다란 칼이 되었다.
진남은 손에 큰 칼을 들고 백현팔보를 펼치며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손에 든 칼이 이내 끝없는 위력을 발산하며 현광오행진의 빈틈을 찔렀다.
쿵!
거대한 폭발음을 울렸다.
곧이어 견고하고 무서울 정도로 강하다고 여겨지던 현광오행진이 순식간에 힘없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부러졌다.
악패 오호의 얼굴이 동시에 변했다. 그들이 미처 반응하기 전에 현광오행진이 부서졌다.
뿜어지는 반발이 채찍처럼 그들의 몸을 마구 후려쳤다. 다섯 사람은 너무 아파서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몸이 채찍에 맞아 멀리 날아갔다.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벌어져 사람들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제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하는 악패 오호를 보자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아서 두 눈을 부릅떴다.
득의양양하던 남궁 이소의 얼굴이 순간 그대로 굳어버렸다. 두 눈에는 충격이 가득했다.
'현광오행진을 파괴했다고……? 현광오행진이 한 방에 무너졌다고?''
순간 장내가 물 뿌린 듯 조용했다.
악패 오호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경악했다.
그들이 펼친 현광오행진은 기우를 만나서 얻은 태고의 진법이었다. 종문의 장로가 보고 입이 마르게 칭찬했었다.
오늘 그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위세를 떨쳤던 현광오행진이 상대방에게 이리 쉽게 무너지다니?
대호는 비명을 질렀다.
"이럴 수가! 어떻게 현광오행진을 파괴한 거야!"
그의 비명에 넋을 놓고 있던 제자들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장내가 술렁이었다.
"현광오행진을 한 방에 파괴했어……."
"세상에나, 현광오행진을 파괴하다니!"
"대체 현광오행진을 어떻게 파괴한 거야? 현광오행진은 남궁성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잖아!"
"더구나 진남은 한방에 부숴버렸어! 단 한방에!"
"……"
제자들은 놀란 동시에 흥분했다.
그들 대부분은 악패 오호의 현광오행진에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불패신화 같던 현광오행진이 파괴됐으니 어찌 흥분하지 않겠는가!
남궁 이소는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의 뇌는 반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럴 수가……. 현광오행진이 파괴되다니……. 악패 오호도 진남에게 상대가 안 되다니…….'
진남은 무표정했다. 마치 주변의 놀란 소리를 못 듣는 것 같았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악패 오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악패 오호는 가슴이 떨렸다. 그들은 연신 뒷걸음질 쳤다. 특히 대호가 먼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지, 진남. 뭐, 뭐 하는 거야! 여기는 도장이다. 종문 규칙을……"
다른 네 명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현광오행진이 파괴되는 순간 그들 다섯은 전의를 상실했다.
쉬체 경지 구 단계이고 소성입미지경을 장악했고 그들 현광오행진을 파괴한 사람이다. 그를 상대로 다섯 명이 힘을 합친다고 상대가 될까?
그 말에 진남은 발걸음을 멈추고 다섯 명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악패 오호, 나는 원래 려홍 사저의 수업을 듣고 서둘러 수련하고 싶어서 너희들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 단약을 빼앗으려고 하다니."
여기까지 말한 진남의 무표정한 얼굴이 갑자기 분노로 바뀌고 온몸이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속에 분노가 가득 쌓여 있었다.
'분명 내 단약인데 빌어먹을 고삼이 다 삼켜버렸잖아. 그런데 또 내 단약을 빼앗으려고 해? 이 다섯 놈도 고삼처럼 나를 만만하게 본 거야?'
진남은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입미지경의 도의가 끝없이 용솟음쳤다. 그는 인간 모습을 한 요수처럼 오호 사이로 쳐들어갔다.
악패 오호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비명을 연신 질렀다. 그들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도망을 다녔다. 하지만 어떻게 도망을 가든 백현팔보를 익힌 진남에 비할 수 없었다.
두, 세 호흡을 하는 사이 악패 오호는 전부 진남에게 잡혔다. 진남의 주먹이 폭풍우처럼 그들 몸을 무차별하게 내리쳤다.
퍽퍽퍽!
주먹을 한 방 한 방 날릴 때마다 폭발음이 들리고 악패 오호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니들이 내 단약을 빼앗아가겠다고?"
퍽퍽퍽!
"빌어먹을! 내 단약을 빼앗기만 해봐!"
퍽퍽퍽!
"이제 내 단약을 빼앗을 거야 안 빼앗을 거야? 뭐? 안 하겠다고? 일찍 뭐하다 이제 와서!"
퍽퍽퍽!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단약을 뺏는 거야!"
퍽퍽퍽!
제자들은 그 모습에 아예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폭발음과 휘두르는 주먹에 마치 그들도 얻어터지는 것처럼 움찔움찔했다.
얻어맞는 것이 자신들이 아니라 악패 오호이긴 하지만 그들도 그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잔인하다!’
‘너무 폭력적이다!’
‘너무 무섭다!’
남궁 이소는 겁에 질린 채 다리에 힘이 풀려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드디어 한 주 향이 타는 시간이 지나고 진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악패 오호를 때리는 행동을 멈추었다.
모든 사람들은 저도 몰래 악패 오호에게 시선이 갔다. 그들 모습을 확인한 제자들은 가슴이 덜컹해서 찬 숨을 들이쉬었다.
평소에 위풍당당하고 살기 등등하던 악패 오호가 죽은 개 마냥 바닥에 축 늘어져서 경련을 일으켰다. 게다가 그들은 얼굴이 퉁퉁 부어서 마치 돼지 대가리 같았다. 얼굴 여기저기가 울퉁불퉁 붓고 울긋불긋했으며 커다란 두 눈도 부어서 한 줄이 되었다. 사람의 모양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진남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는 악패 오호에게 담담하게 물었다.
"너희들, 또 내 단약을 빼앗을 거야?"
악패 오호는 그 말을 듣자 몸을 덜덜 떨며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 퉁퉁 부은 입술로 우우우 소리만 낼 뿐이었다. 두 눈은 겁에 잔뜩 질려있었다.
만약 두 눈이 맞아서 한 줄이 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엉엉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눈앞의 이 사내는 사람이 아니라 악마였다.
그들을 죽일 듯이 때린 이유가 그 한마디 때문이라니 악패 오호는 미칠 것 같았다.
'한마디 때문에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때리다니…….'
"좀 전에는 너희들이 나를 갈취하려고 했지? 그럼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겠지?"
진남은 당당하게 다가가서 악패 오호의 몸을 더듬거리며 스물네 개의 옥병을 찾아냈다. 옥병마다 백 알의 선천단이 들어 있었다.
진남은 눈을 반짝거렸다. 우울하던 기분이 드디어 가셨다.
"음, 좋아. 너희들은 이제 꺼져도 된다."
이 말이 사면령이라도 된 것마냥 악패 오호는 미친 듯이 몸을 꿈틀거리며 기다시피 도장을 떠났다.
구경꾼들은 황당했다.
위풍당당하던 악패 오호가 저런 모습을 보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