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세상에 비하면 그저 먼지일 뿐
열흘 동안 진남은 조각상이 된 것처럼 미동도 없이 수련에 몰두했다.
수련은 원래 외롭고 지겨운 일이었다.
진남은 외로움이나 지겨운 건 전혀 두렵지 않았다. 큰 장점이었다.
드디어 진남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체내에서 콸콸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기가 용솟음치는 것이 마치 강물이 포효하는 것 같았다.
이건 강물이 포효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남의 혈기가 더 강대해지고 끊임없이 흐르는 소리였다.
"드디어 쉬체 경지 구 단계다. 소성 입미지경과 취천일격까지 합해지면 남궁성을 상대하기 충분해. 다만 남궁성은 반보 선천 경지라서 선천 경지까지 한 걸음 차이밖에 안 나는 게 문제야. 그가 장악한 힘은 쉬체 경지 십 단계를 훨씬 넘어설 것이야."
진남은 희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남궁성과 그 사이의 승률을 따져보았다.
진남이 얻은 결론은 그의 현재 수행으로 진남을 쓰러뜨릴 확률은 오 할밖에 되지 않았다. 변수가 너무 많아서 확정하기 어려웠다.
진남이 진보하는 동안 남궁성도 진보하기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진남이 이내 결정을 내렸다.
"계속 수련하자."
진남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전신의 혼을 방출하고 수련에 빠져들었다.
그 뒤로 또 열흘이 지났다.
진남은 방대한 영기를 끌어 자신의 몸에 빨아들이고 육신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혈기도 강화시켜 한 걸음씩 진보했다.
그러나 진남은 지난번처럼 열흘 사이에 돌파하지는 못했다.
무도 수행은 경지가 높아질수록 속도가 점점 늦어졌다.
물론 진남에게 칠색화, 용연향이 있었다면 쉬체 경지 십 단계를 무조건 돌파했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들자 진남은 눈을 떴다. 그는 마음이 아파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게 다 저 고삼 때문이야."
진남은 칠종죄로 고삼을 내리치고 싶은 충동을 참고 연속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안정을 되찾고 수련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때, 선천 경지의 최고봉의 기세를 풍기는 사람이 외원봉에 들어와서 큰소리로 외쳤다.
"제자들은 전부 출관하라. 한 시진 후 외원의 도장에서 내원 제자가 수업을 진행할 것이다."
"수업?"
진남은 눈을 떴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가서 수업을 듣는 것보다 수련을 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다시 한번 호통을 쳤다.
"참석 안 하는 자는 선천단 만 알의 벌금을 징수하겠다."
그 말을 들은 진남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외원 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수업에 아무런 흥미가 없었지만 선천단 만 알의 벌금을 징수한다는 건 그의 목숨을 달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진남이 도장에 도착해보니 이미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대충 보아도 삼백여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수가 점점 많아졌다.
진남은 기운을 거두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 구석 자리에 얌전히 서 있었다.
비록 그는 유명 인사였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무척 적었다. 전에 만상 대회에 참가한 제자들이 그를 알아본다고 해도 입을 닫고 그에 대해 아는 체하지 않았다.
외원 도장에 온 제자들이 점점 많아지자 도장은 북적북적해졌다.
"이번 수업엔 누가 올지 맞춰봐."
"이 형님이 알려줄게. 오늘 수업은 려홍(厲虹) 사저가 진행할 거야."
"뭐? 려홍 사저라고? 정말이야?"
"려홍 사저라니. 내원 서열 십 위 안에 드는 사람이잖아. 게다가 황급 구품의 무혼을 소유했다고 들었어."
"려홍 사저가 오면 지난번 그 녀석처럼 실력자랑만 하지는 않겠지. 오늘은 적지 않은 걸 배울 수 있겠어."
"나는 경지를 돌파하는 중에 왔거든. 그런데 려홍 사저가 수업을 하는 거라면 경지를 돌파 못 한 것도 중요하지 않아."
"……"
시간이 흘러 한 시진이 지났을 때 기다란 무지개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왔다.
무지개는 무척 날카로워 마치 창처럼 모든 장애물을 뚫을 것만 같았다. 무지개는 보는 사람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남장한 여인이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검은 머리를 높게 올려 묶어서 품위 있는 미소년 같았다. 그녀는 등 뒤에 은색의 큰 창을 메고 있었는데, 살기가 더해져서 철혈장군처럼 느껴졌다.
여인은 내원 제자이자 서열 십 위인 려홍이었다.
려홍은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란 눈에서 날카로운 빛을 뿜으며 장내를 둘러봤다.
"조용하거라. 이제부터 규칙을 어기면 내 창을 받아야 할 테야."
제자들은 몸을 흠칫하면서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려홍의 기세를 느끼고 굴복했다.
진남은 려홍을 보자 전신의 눈을 움직여 살펴봤다. 그의 눈에 빛이 감돌았다.
려홍 사저는 선천 경지 육 단계이지만 이미 소성 입미지경에 도달했기에 힘을 폭발시키면 그 힘이 폭풍과도 같을 것이었다.
"나는 오늘 너희들을 가르치지도 않고 무예를 전수하지도 않을 것이다."
려홍은 빠른 속도로 말을 했는데 군더더기가 없었다.
"나는 가르치러 온 게 아니고 너희들에게 이 세계가 얼마나 큰지를 알려주려 온 거다. 다들 잘 듣거라. 한 번만 말해주겠다. 그리고 임의로 뽑아서 질문할 거다. 만약 대답하지 못하면 내 말을 가벼이 여긴 걸로 생각하겠다. 그럼 내 창을 받아야 할 것이야."
그녀의 말에 제자들의 머릿속에 려홍 사저가 은 창을 들고 달려오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농땡이 부릴 엄두를 못 냈다.
진남은 그녀의 말에 흥미가 생겼다.
그는 현령종에 들어온 이래 창람대륙을 제대로 알아본 적이 없기에 이 세상이 얼마나 큰지 알고 싶었다.
려홍이 도장을 한번 쭉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창람대륙은 상역(上域)과 하역(下域)으로 나뉜다. 상역은 넓고 끝이 없이 보이지 않으며, 기우도 무궁무진하고 강자도 부지기수이다. 하역은 그에 비하면 호수와 바다의 차이이다. 교외의 황무지 같다."
제자들 중 대부분의 제자들은 창람대륙이 상역과 하역으로 구분하는 것도 몰랐다. 진남도 다를 바 없었다.
려홍이 말을 이어갔다.
"현령종은 하역에 속한다."
"하역에는 백 국이 있고 오백여 개의 종문이 있다. 이 종문들은 우리 현령종과 같은 급이다."
"오백여 개의 종문 위에는 삼대 성지가 있다. 모든 종문은 삼대 성지에서 관리한다. 삼대 성지는 하역에서 최고 수진문파(修真門派)이다."
"……"
순간 모두들 두 눈을 크게 떴다.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그들은 현령종이 하역에 있고 수많은 종문 중 하나이며 위에 삼대 성지가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진남도 안색이 변했다.
려홍은 장내를 다시 한번 훑어보더니 계속 말했다.
"그럼 무도에 대해 말해주겠다. 무도 일도(一途)는 쉬체 경지, 선천 경지, 무왕 경지, 무종(武宗) 경지, 무황(武皇) 경지, 무존(武尊) 경지, 무성(武聖) 경지, 무조(武祖) 경지, 무제(武帝) 경지, 무신(武神) 경지가 있다. 각 경지는 십 단계로 나눈다. 우리 현령종의 종주는 무종 경지의 최고봉이다."
려홍은 화제를 돌려 말했다.
"그러나 상역에는 전설 속의 무신이 존재한다."
여기까지 말한 려홍은 부드럽게 말했다.
"너희들이 알아야 할 것은 현령종에 들어온 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혹은 기우를 만났다고 다른 것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 드넓은 세상에 비하면 그저 먼지일 뿐이다."
그 몇 마디가 마치 무거운 망치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제자들의 시선에는 하나같이 두려워하는 기색이 어렸다. 현령종 제자라는 우월감이 이 순간 모두 사라졌다.
려홍의 말처럼 그들은 그저 먼지에 불과했다.
진남은 깊게 심호흡했다. 려홍의 말은 글자마다 그의 가슴에 쏙쏙 박혔다.
진남은 이 세상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려홍의 말을 듣고 그는 드디어 깨달았다. 왜 소경설이 진씨 가문에서 현령종은 그저 시작일 뿐이라고 했는지 말이다.
세계는 무척 컸다. 세계의 모든 무인을 놓고 보면 진남은 그저 작디작은 먼지 같은 존재였다. 심지어 먼지보다 더 눈에 안 띄는 존재일 수 있었다.
려홍은 손을 뻗어 진남을 가리키며 담담하게 물었다.
"저기 있는 제자, 네가 말해 보거라. 무도는 몇 개의 경지가 있느냐?"
진남은 잠시 흠칫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무도는 쉬체 경지, 선천 경지, 무왕 경지, 무종 경지, 무황 경지, 무존 경지, 무성 경지, 무조 경지, 무제 경지, 무신 경지가 있는데, 경지마다 십 단계로 나뉩니다."
"좋다."
려홍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내밀어 영패를 던져주며 말했다.
"이건 내 영패다. 영패를 가지고 있으면 아무 때나 내원에 와서 나를 찾아도 된다."
말을 마친 려홍은 한 걸음 내딛더니 몸을 날려 사라졌다.
진남은 큰 창을 새긴 영패를 보았다.
제자들은 진남을 향해 질투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렇게 쉬운 문제를 그들도 대답할 수 있었다. 그렇게 쉬운 질문에 대답하고 려홍의 영패를 얻을 수 있다니 부러울 따름이었다.
려홍은 내원 서열 십 위였다. 그녀의 영패라면 이후에 현령종에서 적지 않은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었다.
진남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려홍이 왜 영패를 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영패를 품에 넣고 신속하게 자리를 뜨려고 했다.
려홍의 말은 한 줄기 빛처럼 진남에게 커다란 세계를 열어주었다. 진남의 무도심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진남은 빨리 돌아가서 자신을 파악하고 무도심을 더욱 굳건히 하고 싶었다.
진남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속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려홍의 말이 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 같았다.
그러나 이때 오만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남! 거기 서거라!"
진남은 미간을 찌푸리고 돌아섰다. 그를 부른 사람은 남궁 이소였다.
남궁 이소의 뒤에 다섯 명의 건장한 사내가 있었다.
다섯 명의 사내는 생김새가 무척 비슷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얼굴이 흉악하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걸음걸이에서부터 짙은 살기를 풍겼다.
진남은 전신의 눈으로 살폈다. 다섯 명의 사내는 쉬체 경지 십 단계이고 무혼이 황급 팔품이었다.
남궁 이소는 팔자걸음을 하며 오만하게 진남에게 다가와 하대하듯 큰 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에 배경이 있다는 걸 믿고 이보전에서 나를 눌렀지? 경지로 따지면 나는 너를 못 이는게 맞아. 하지만 나, 남궁 이소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알아? 오늘 악패 오호를 데려왔다. 그러니 살고 싶다면 무릎 꿇고 사과해!"
남궁 이소 뒤에 있던 다섯 명의 사내가 동시에 웃었다. 그 모습이 무척 흉악했다.
도장에 있던 제자들의 표정이 변했다.
외문 제자들 중 악패 오호는 서열 육, 칠, 팔, 구, 십 위였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는데 악패 오호에게 걸린 제자들은 최소 중상을 입었다.
외원 제자 서열 일 위인 남궁성도 악패 오호는 조금 꺼렸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그들은 진남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며 서로 귓속말을 했다.
"대체 누구지? 어쩌다가 남궁 이소와 악패 오호에게 밉보인 거지?"
"나 저자를 알아. 만상 대회의 일 위인 진남이야. 난심고죽림에서 천 보를 걸어서 역사를 새로 쓰고 초월급 천재를 죽였다는 소문도 있었어."
"아, 그 자구나. 근데 불쌍하군."
"왜? 진남은 초월급 천재도 죽였다면서? 그런데 악패 오호를 두려워하겠어?"
"그건 소문일 뿐이야. 나는 저자가 초월급 천재를 죽였다는 걸 못 믿겠어. 비록 진남이 서열 오 위라서 단독으로 붙으면 악패 오호를 두려워하지 않겠지. 하지만 악패 오호가 강대한 게 왜인지 알아? 다섯 명이 연합한다는 거야. 진남은 그들의 상대가 안 돼."
"……“